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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운보 김기창 화백의 생애와 그림

작성자디아니|작성시간20.05.15|조회수37 목록 댓글 3
★운보 김기창 화백의 생애와 그림 

 

 

 

♣ 생애 ♣

 

 

 

김기창은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당시 총독부 토지관리국 직원이던

 

아버지 김승환과 어머니 한윤명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

 

 

 

여덟 살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한 후 언어 장애의 증세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소개로

 

이당(以堂) 김은호 화백에게 동양화를 배워

 

1931년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하여 1940년까지 6회 입선,!

 

특선 3회를 기록했다.

 

 

 

24살 때인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최고상을 받은 운보는

 

연4회 특선 경력으로 27살에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는데,

 

이후로 광복 전까지 주로 일제의 내선일체사상을

 

정당화하는 친일 활동이 이어졌다.

 

1943년,30세에 아내 우향 박래현과 처음 만나서

 

3년간의 필담연애 끝에 1946년 결혼하였다.[2]

 

 

 

♣ 그림 

 

김기창 화백이 그린 예수님의 일생

 

(한국적으로 표현한) 
 
* 수 태 * 

 
* 예수의 탄생 * 

 
*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 * 

 
* 제자들을 만남 * 

 
* 오천명을 먹임 * 

 
* 물 위를 걷다 * 

 
*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 

 
* 예수의 발을 씻음 * 

 
* 최후의 만찬 * 

 
*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 

 
* 재판을 받다 * 

 
* 십자가를 지시고 * 

 
* 십자가에 못 박히심 * 

 
* 시체를 옮기는 제자들 * 

 
* 부 활 * 

 
* 승 천 *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

 

기독교 한국 현대작가전에 초대 출품했다.

 

1960년 국전 초대작가가 되어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타이베이(台北)와 홍콩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 출품했고 이어

 

도쿄(東京)·마닐라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도 출품했다.

 

 

 

1962년 수도여자사범대학(훗날 세종대학교)으로 교직을 옮겼고

 

문화자유전에 출품했다. 1963년에 5월문예상 미술본상을 수상했고,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도 한국 대표로 출품했다.

 

1964년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도미(渡美), 1969년에 재차 도미하여

 

뉴욕에서 개인전을 가졌다.[3]

 

 

 

홍익대학교와 세종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1979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에 취임하였고,[4]

 

1984년에는 서울 역삼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인 청음회관을 설립하였다.[5]

 

 

 


 
밤새(부엉이)/ 1972, 종이에 수묵채색, 99 x 182 cm 

 
전복도(戰服圖)/ 1934, 비단에 채색, 71.5 x 57.5 cm 

 
아악의 리듬/ 1967, 비단에 수묵채색, 86 x 98 cm

 

 

 


 

춘정(春庭)/ 1976, 비단에 채색, 64 x 62 cm


 
닭/ 1977, 비단에 채색, 61 x 69 cm 

 
귀로/ 1993, 비단에 수묵채색, 130 x 160.5 cm
 

 
부엉이/ 1976, 비단에 수묵채색, 120 x 83 cm 

 
초저녁/ 1974, 종이에 수묵담채, 128 x 131 cm 

 
청산도/ 1967, 비단에 수묵채색, 85 x 100.5 cm 

 
백운도(白雲圖)/ 1978, 비단에 수묵담채, 82 x 105 cm 

 

 
수묵 청산도/ 1976, 비단에 수묵담채, 53 x 61 cm 

 
탈춤/ 1961, 종이에 수묵채색, 48.5 x 35 cm 

 
바라춤/ 1961, 종이에 수묵채색, 47.6 x 40.8 cm 

 
청자(靑磁)의 이미지/ 1960~1964, 종이에 채색,

 

165.5 x 111.5 cm 

 
연(蓮)II, 유자, 학과 매병, 연꽃과 고양이/ 1958~1959,

 

종이에 수묵담채, 66 x 70 cm (4폭) 


 
군해(群蟹- 게떼)/ 1966, 종이에 수묵담채, 174 x 462 cm 

 
보리타작/ 1956, 종이에 수묵채색, 84 x 267 cm 

 
정청(靜廳) / 1934 종이에 채색 193 x 130 cm 

 
동자(童子) / 1932 비단에 채색 56 x 32.5 cm 

 
흥락도(興樂圖) / 1957 종이에 수묵채색 221 x 168 cm

 


 
복덕방 / 1953~1955 종이에 수묵담채 75 x 96 cm 

 
가을(엽귀-?) / 1935 비단에 채색 170.5 x 109 cm 

 
군상(群像) / 1959 종이에 수묵담채 136 x 69 cm (4폭) 

 
군작(群雀-참새 떼) / 1959 종이에 수묵채색 142 x 319 cm 

 
호박꽃 / 1959 종이에 수묵담채 57.5 x 35 cm

 


 
금붕어 / 1960년대 비단에 수묵채색 57.5 x 52 cm 


 
고양이와 나비 / 1964 종이에 수묵채색 98.5 x 50.3 cm 

 
청산도 / 1970 비단에 수묵채색 82 x 101 cm 

 
청록산수 / 1976 비단에 수묵채색 84 x 101 cm 

 
청산농경(靑山農景) / 1970년대 비단에 수묵채 69 x 138 cm

 

 

군마도/ 1986, 비단에 수묵채색, 177 x 27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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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사랑 정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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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Elderly student | 작성시간 20.05.16 어머니가 진명여고 나온 신여성~
  • 작성자Elderly student | 작성시간 20.05.16 몇십년전 김기창관련 책 읽고기억 나는 것은...
    엄마가 진명여고 출신.
    그리고 결혼식에 친정에서 아무도 안왔다. (확인차 인터넷자료 찾아도 안나오네요)
    ~~~
    일본미술학교를 졸업한 박래현과 청각장애에 초등학교만 졸업한 김기창의 연애사는 '미술계 전설'로 남아있다.

    당시 선전의 추천작가였던 김기창에게 인사를 하러 간게 인연이었다. 휜칠한 김기창의 외모에 종아리가 예쁜 박래현에 서로 반했지만, 청혼은 여자가 먼저했다. 가진게 없어 주저하던 남자는 "결혼 후에도 화가로 살 수 있게 해달라"며 사랑 고백을 한 박래현에 푹 빠졌다.

    출처: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80911_0000416014
  • 작성자레몬과 커피 | 작성시간 20.05.16 감동적입니다 그림이. 처음 보는 작품도 보게 되어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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