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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홀란드의 바로크 대가 렘브란트

작성자디아니|작성시간20.06.26|조회수72 목록 댓글 0

홀란드의 바로크 대가 렘브란트


Rembrandt van Rijn (그림69-1)Self-portrait, 1658



렘브란트 반 린Rembrandt van Rijn(1606~IG69)은 홀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다. 그는 인간의 심리적 갈등 · 번뇌 · 사색 · 존엄성과 깊은 신앙심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뛰어난 천재 화가였다. 그가 겪은 만년의 가난과 가정의 어려움 래문에 인간 내면의 심리묘사는 더욱 침통하고 무겁게 그림에 표현되었다.

렘브란트(그림 69-1)는 1606련 홀란드의 라이덴에서 물레방앗간 주인인 아버지와 빵집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라이덴 대학 1학년을 중퇴하고 그림공부를 시작하여 자수성가한 화가다. 그는 라이덴에서 번화한 암스테르담 시로 이사한 것 외에는 외국에 나가본 일이 없으며,그 덕분에 루벤스와는 달리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고 독창적인 화풍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는 교황이나 군주가 아니라 부유한 시민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루벤스처럼 렘브란트도 젊어서 성공하여 33세에 시내에 좋은 집을 마련 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수집가로 유명했으나, 루벤스가 값진 일류만 조심스럽게 수집하던 것과는 달리 렘브란트는 자기 맘에 들고 그림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지, 심지어 울긋불긋한 낡은 유태인 옷 같은 것 마저도 사들였다.

그의 부유한 첫 부인 사스키아가 죽은 후 1645년에 헨드릭제 스토펠스가 하녀로 들어와 그의 부인이 되었다. 스토펠스는 빛쟁이로부터 렘브란트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어린 아들과 개인회사를 세워 렘브란트의 그림을 관리, 판매했다. 스토펠스는 렘브란트의 모델로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명화 <밧세바Bathsheba>(그림 69-2)에도 나온다.


(그림69-2)Rembrandt van Rijn,Bathsheba at Her Bath 1654.

<밧세바>는 젊어서 용감하게 돌팔매를 날려 적장 죽인 시편의 저자 다윗(다비드) 왕이 탐욕 때문에 남의 아내를 뺏고 죄를 범한 이야기다. 밧세바를 독점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전선에 보내어 죽게한다는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그림의 주제로 택했다. 밧세바는 다윗왕의 부인이 되어 후에 유명한 성전을 건설한 솔로몬왕을 낳는다. <밧세바>에는 목욕탕에서 다윗 왕이 보낸 편지를 한 손에 든 채 죄의식과 사랑의 갈등 속에서 번뇌하는 여인의 비통해하는 모습이 잘 포착되어 있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에서 누드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종래의 누드는 서 있거나 누워 있는 육체의 감성미와 성적 매력을 강조했지만, 렘브란트는 육체보다는 정서를, 감성보다는 생각을 앞세웠다. 그림의 여인은 보티첼리의 젊고 날씬한 여인보다는 성숙하고 근엄한 여인이다. 그녀는 완숙한 여인으로서 다윗왕이 보낸 편지의 함축성을 이해하고 번민한다.

이 그림에는 목욕을 하는 동안의 한 유부녀의 어지러운 내면적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 렘브란트는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배운 테네브리즘을 이용해 어둠 속에서 드러난 밧세바의 잘 발달한 몸에 입체감을 주었다. 그녀의 몸은 익은 과일처럼 아름답게 상체가 드러나 있다. 그녀가 깔고 앉은 흰 목욕 가운 같은 옷은 그녀의 젖가슴과 배의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도록 만든다. 그러나 고개를 떨어뜨린 얼굴은 그늘져 있다. 다리를 포갠 그녀의 오른발 밑에서 그녀의 발톱을 단장하는 노파는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밧세바 혼자 외롭게 번민하는 듯한분 위기를 조성했다.

렘브란트의 깊이 있는 내적 정서와 사색의 세계는 그의 다른 작품들 <자화상>(1658년). <유태인 신부>(1665년)와 <돌아온 탕자>(1662~1668)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고 파산하여 외로운 여생을 살아가는 렘브란트의 격정이 통제된 초상화인 <자화상>에 감명 깊게 드러난다.

(그림69-3)Rembrandt. Isaac and Rebecca. (The Jewish Bride). c. 1666.

<유태인 신부>(그림69-3)는 얀 반 아이크의 차가운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과는 달리 남편이 신부의 어깨를 한 손으로 안고 다른 손을 가슴에 부드럽게 얹고서 사랑을 나눈다. 신부 역시 신랑의 손에 자기의 손을 살짝 얹고서 조용히 답례하는 이 부부 초상화는 어느 신혼사진보다 더 여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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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9-4)Rembrandt.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ca 1668/69



<돌아온 탕자>(그림69-4)는 인간의 사랑과 포용력을 통해 깊은 종교적 체험을 표현한 걸작이다. 이 그림의 주제는 한 아들이 아버지한테서 받은 유산을 가지고 객지로 나가 떠돌며 사창가에서 유산을 모두 탕진하고 돼지 먹이로 끼니를 때우다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의 용서와 환대를 받는다는 성서 누가복음 15장의 이야기다. 렘브란트는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발에는 새 신을 신기고,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 잡고, 춤과 풍류를 즐기는 성서의 장면을 택하지 않았다. 그대신 거지같이 해진 옷에 죄수처럼 머리를 깍고, 다 떨어진 신을 한 짝만 걸친 채 황망하게 무릎꿇고 사죄하는 아들의 어깨에 늙은 아버지가 두 손을 부드럽게 얹고 용서하는 자비의 순간을 묘사했다.

렘브란트는 심리적 통찰과 인간의 고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성서의 의미를 해석했다. 그는 성서에 묘사된 입맞추는 첫 만남이 아니라 그 다음의 포옹과 용서의 감동적인 순간을 택했다. 아버지는 자식으로 인한 지난날의 괴롭고 복잡했던 감정을 억제하려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사랑의 손길로 아들의 등을 어루만진다. 용서와 사랑이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은 깊은 품위가 느껴지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의 얼굴엔 한없는 너그러움과 거룩하기까지 한 성자의 모습이 깃들어 있다. 한편 돌아온 탕자는 너무 왜소하고 초라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인간상 속에서 화가 렘브란트는 예수가 죄 많은 인간에게 베푸는 속죄와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아버지의 흰 수염과 핏기 없는 자비로운 굳은 손, 그리고 그의 구부린 몸은 하나님의 인간을 사랑하는 장면을 실감케 한다. 렘브란트는 색을 통해서 아버지의 어깨에 두른 긴 홍포와 아들의 누더기 옷, 아버지의 긴 백발과 아들의 아무렇게나 쥐어뜯긴 것 같은 머리를 너무도 강하게 대조시켰다 사랑에 충만한 늙은 아버지의 인자한 얼굴과 흰 수염, 그리고 자비로운 손길을 밝고 따뜻한 빛으로 비추어 강조한다. 옆의 계단 위에서 값진 옷과 화려한 모자를 쓰고 언짢은 표정으로 이들을 내려다보는 냉담한 형제들은 어둡고 차게 묘사되어 있다. 빛은 사랑과 구원을, 어둠은 시기와 무정과 죄를 상징한다. 렘브란트는 이렇듯 인간 내면의 화(禍)와 사랑을 깊게 통찰하고 이해하려 한 바로크의 위대한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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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아름다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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