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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드리엥 모로 - 화려했던 시절로의 여행

작성자루시|작성시간20.08.15|조회수176 목록 댓글 0

 

아드리엥 모로 - 화려했던 시절로의 여행

 

예전에 사회를 설명하는 여러 이론 중의 하나로 사회 유기체설을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기억도 가물거리는 내용들이지만 사회도 사람의 속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도 살다가 , 옛날이여를 찾듯이 사회도 그 이전, 화려한 시대를 그리워할 때가 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아드리엥 모로 (Adrien Moreau / 1843~1906)의 그림 속에는

17~18세기 화려했던 프랑스 귀족들과 풍경이 있습니다.

 

 

 

  17세기 가장 무도회   A Masquerade in 17 century / 97.79cm x 133.35cm / 1887

가장 무도회 선두 행렬이 마을 광장에 있는 분수대 앞을 지나고 있습니다.

악대 앞에 있는 사람 중 붉은 색 옷의 남자와 그 옆의 여인만 가면을 썼습니다.

구경하는 사람이나 행렬에 낀 사람이나 모두 신이 났습니다.

가장 무도회라고 해서 모두 가면을 쓰거나 가장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저 정도로 자신을 숨긴다고 숨겨질까요?

가면을 쓴 사람이 동네의 가장 힘센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인지 알지만 서로 모르는 척하고 낄낄대는 사회는 고이는 것이 없지요.

그런 사회에 대한 꿈을 꾸다가 지금까지 왔습니다.

 

모로는 트로와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미술가들과 관련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와 관련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모로 (Moreau)라는 성을 가진 프랑스 화가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혹시 같은 집안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구스타프 모로 (Gustave Moreau)? --- 어디까지나 상상입니다.

집안에서는 모로가 법률가가 되었으면 했지만 모로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 식구들은 결국 그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After the Wedding / 61cm x 81.3cm / 1882

 

결혼식이 끝나고 신부가 나오는 길 앞에 신랑이 모자를 벗고 신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신부가 문 앞에 나타나자 축가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부가 내려오는 계단은 교회 안 신의세계와 마당의 속세를 구분하는 선이 됩니다.

약속은 신의 세계에서 이루어졌지만 살아가는 것은 결점투성이 사람들의 문제이죠.

결혼은 보이는 서로의 결점을 끝없이 닦아주는 것이지요.

붉게 달아 오른 얼굴을 한 여인은 언제쯤 이 것을 알게 될까요?

 

모로는 고향에 있는 유리제조업자의 도제로 들어가면서 첫 미술에 대한 훈련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서 파리 유학 길에 오릅니다.

에콜드 보자르의 레옹 콩니에 화실에 입학했지만

1년 뒤 당시 사실주의 거장이던 이시돌 필 (Isidore Pils)의 화실로 자리를 옮깁니다.

새로 옮긴 화실은 잘 만들어진 곳 이었다고 합니다.

모로의 경우는 다르지만 주위 환경에 유독 민감한 사람들이 있지요.

 

 

 

중세의 결혼   Wedding in the Middle Ages

 

앞 작품의 배경보다 더 시대가 올라갔습니다. 복장은 수수합니다.

악사를 앞세우고 가는 길, 팔짱을 낀 신혼부부의 눈길이 향한 곳은 난만히 피어 있는 들꽃입니다.

 길 옆에 있는 꽃들도 모두 머리를 들어 축하하는 듯 합니다.

뒤 따르는 사람 중에 목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소리 좀지른다고 뭐라 하겠습니까?

첫날 밤에, 첫 날 밤에 --- 그냥 잤네예전 우리가 불렀던 축가입니다

 

이시돌 필의 화실에서 풍속화와 역사화를 공부하는데 이 주제는 그의 남은 생애 전체를 사로잡는 주제가 됩니다.

20대 초반, 일생을 걸 주제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정해진 길을 따라 온 저 같은 사람에게는 한 없이 부러운 일입니다.

일찍 시작하면 설령 그 길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돌아 갈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괜찮죠.

물론 틀린 길도 다 의미는 있지만요.

 

 

목욕하는 젊은이  The Young Bather / 73cm x 55cm / c.1880

 

 옷을 다 벗었지만 막상 물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양입니다.

고개를 떨구고 물끄러미 물을 쳐다보는 아이의 가는 팔과 앙상한 등이 안쓰러워 보입니다.

가 봐도 물이 차가울 것 같습니다.

살면서 수 많은 결심을 해야 하는데 저 것도 아이에게는 큰 결심이 요구되는 것이겠지요.

확 뛰어들어, 처음에는 차가워도 좀 지나면 괜찮아. 처음부터 따뜻한 것은 세상에 없단다.

 

스물 다섯이 되던 해, 모로는 종교적인 주제를 그린 작품을 살롱에 출품합니다.

처음 출품한 작품이었지만 모로는 당대 종교화를 주제로 하는 대가들의 대열에 이름을 올립니다.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젊은 나이에 살롱의 무심사 통과 자격을 얻었을 정도로 예술적 재능이 뛰어 났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단했군요, 모로 선생님.

 

 

 

운동하는    A Day of Sporting / 71.12cm x 91.44cm / 1882

 

요즘이야 운동이라고 하면 축구, 야구 같은 것을 생각하지만 그림 속에서는 사냥이 운동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의 손에는 사냥도구가 보이질 않는데 뱃전에는 사냥한 새들이 수북합니다.

어이, 내가 안보입니까?’

여인과 사내의 손에 앉은 매가 한마디 하는군요.

매사냥인가요 ---- ?

 

다음 해에도 로마의 네로 황제를 주제로 한 역사화를 출품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보불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독일에 패했고 파리는 포위되었죠.

파리 시내로 날아 온 포탄에 모로의 화실이 파괴되었습니다.

3년 정도 모로는 전시회 참가를 중단합니다.

생각해보면 전쟁이 파괴하는 것은 일상의 삶입니다.

그 잔해들 중에 화실도 있고 만신창이가 된 인간성도 있는 것이죠.

 

 

 

추정 상속인을 위해 건배   Toast to the Heir Presumptive / 73.7cm x 99.1cm

 

추정 상속인이라는 어려운 법률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더 빠른 상속권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 상속을 받은 권리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림 속에서는 누가 추정 상속인일까요?

제 생각에는 여인의 무릎 위에 앉은 어린 아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모두들 각자의 계산이 깔린 건배의 자리처럼 보입니다.

왼쪽에 따로 앉은 여인의 미소도 의미 심장해 보입니다.

아내가 불쑥 한마디 했습니다.

목에 테를 두르는 것이 당시 유행이었나 봐

테라고 --- 분명히 목에 두른 건 맞는데, 저걸 테라고 합니까?

 

1873, ‘화실에서 열린 아마추어 콘서트라는 제목의 작품을 살롱에 출품합니다.

이 작품으로 모로는 본격적인 명성을 쌓게 됩니다.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뛰어난 기술과 함께 유머가 녹아있는 모로의 작품을 얻기 위해

열광하는 고객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모로의 시대가 열린 것이죠.

 

 

 

나루터에서   At The Ferry / 72.4cm x 91.4cm / 1883

 

강을 건널 사람들을 위해 작은 배를 대는 사공의 몸짓이 아주 신중합니다.

 남자들은 느긋하게 옆으로 비켜서서 여인들에게 순서를 양보하고 있습니다.

레이디 퍼스트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여인을 배려하는 동작입니다.

아이는 흐르는 물에 시선을 던졌습니다.

 저 나이면 배에 먼저 오르겠다고 할 것 같은데 배가 좀 무서운가요?

사실 지금도 저런 배를 탈 때면 겁이 납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비애이죠.

 

1876, 모로는 살롱에 출품한 농장에서의 휴식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메달을 받습니다.

인기도 있었고 실력도 좋았던 모로가 정작 수상을 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1889년과 1900년 세계박람회에 출품해서 두 번 은메달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수상을 한다는 것이 공적인 인정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상이 외면한 화가들도 제법 있죠.

 

  

 

특별한 선물   A Special Prixe / 61cm x 81.3cm

할머니가 손자 손녀들을 불러 선물을 하나씩 나눠주고 있습니다.

인형을 받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말 모형을 받은 아이가 보이는 군요.

선물보다는 식탁에서 떠날 줄 모르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내 손녀가 하나 남은 선물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혹시 선물 주인은 따로 있는 것 아닐까요?

선물을 높게 치켜 든 할머니의 표정이나 옆에 서 있는 어른들의 표정에 당혹감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 더 사오셨으면 좋았을 걸 --- .

 

모로의 작품 배경은 중세부터 18세기까지 프랑스의 모습입니다.

중세의 모습을 결심하기로 한 것은 아마 그가 벨기에와 네덜란드 여행 중 현지에서

중세를 무대로 한 작품을 보고 난 뒤 결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에서는 과거 영화로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청혼    The Courtship / 103.51cm x 90.17cm

 

청혼을 남자의 눈은 간절한데 여인의 표정은 종잡을 수 없습니다.

남자는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을 하기 위해 들꽃 한 무더기를 여인에게 건냈습니다.

그런데 입이 왜 샐쭉한 거죠? 마음 속에 딴 남자가 있나요?

아니면 너무 부끄러워서?

손에 든 말 회초리로 풀밭을 두드리는 여인의 자세를 보면 마음이 어지간히 뛰는 모양입니다.

받아주시죠,

당신을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해야 당신이 행복해지거든요

 

모로의 상류 계급 사람들의 우아함과 고상함을 그림 속에 묘사했습니다.

작품 속 여인들은 남자들의 손 짓에, 몸 짓에 수줍어했고

그런 여인들을 바라보는 남자들은 음유시인 같은 낭만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사회의 분위기와 모로의 작품은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17~18세기 프랑스의 과거를 돌아 봤고

당시를 묘사한 그의 작품은 많은 소장가들이 가지고 싶었던 작품이 되었습니다.

 

 

 

갈기    Plowing The Fields / 116.8cm x 167.6cm

 

다시 씨를 뿌리기 위해 밭을 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겨울이 완전히 떠나지 않은 때가 되겠지요.

날씨가 추웠는지 함께 밭에 나온 어르신들을 의해 모닥불을 폈습니다.

좀 쉬었다 해요 이제 한 줄 갈았는데, 있다가 쉴께.

들판 곳곳에 서 있는 짚단의 모습은 우리 시골과 닮았지만 소 대신 말이 밭을 가는군요.

귀족들의 모습만큼 서민들의 모습을 묘사한 모로의 솜씨에 감탄하게 됩니다

 

모로는 정교하게 당시의 복식과 관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16~7세기 부유한 프랑스의 할 일 없는 귀족들의 일상을 묘사한 작가로 기억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풍경과 농촌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상당 수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김홍도나 신윤복을 통해서 조선 후기로 돌아 갈 수 있듯이

모로는 프랑스의 과거로 돌아가는 문을 만든 것일 수 도 있습니다.

 

 

 

 

나루터    Le Bac / 128.9cm x 201.3cm / 1884

 

강을 건너기 위해 사람들이 배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군인도 있고 귀족 내외도 보입니다.

머리에 짐을 진 시골 아낙도 있고 걸인의 모습을 노인도 눈에 띕니다.

모두 같은 배를 타겠지요.

어딘가를, 무엇인가를 건너야 할 때 남녀와 노소 그리고 빈부 같은 조건 없이 함께 가는 것이

옳은 세상이라고 모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더 나뉠 수도 없을 만큼 조각나고 있는 세상을 보다 보면 정말 이 세상에 희망은 있는가할 때도 있습니다.

같이 건넜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건넙시다.

 

 

모로의 작품은 대서양 건너 돈 많은 미국 부호들에게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가 계속 되었고 그의 작품들이 예술사 책에 실렸습니다.

책이 널리 출판되면서 덩달아 그의 작품도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가 되었습니다.

일이 잘 될 때는 집 나간 개도 친구까지 데리고 다시 돌아 옵니다.

 

 

 

오월 축제    May Day / 1885

 

May Day를 노동절로 표기한 것은 1890년부터 일이니까 오월 축제가 제목이 됩니다.

유럽에서는 5 1일에 열리는 봄 축제를 May Day 라고 했다지요.

삶과 자연의 에너지를 기원하는 축제답게 그림 속 모든 사람들도 활기에 차 있습니다.

역시 축제는 젊은이들이 주인공입니다.

 가운데 탁자를 두고 여인과 앉은 젊은 남자는 모자가 땅에 떨어진 것도 모르고 아가씨에게 빠져 있습니다.

아가씨도 남자가 마음에 드는지 붉어진 뺨을 살짝 돌렸습니다.

오월에는 --- 무엇을 해도 잘 될 것 같았습니다.

 

모로는 나폴레옹 3세로부터 새로 만든 오페라 하우스의 천장화를 그려달라는 주문도 받습니다.

그리고 그가 받은 주문 중에는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 것도 있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나 볼테르의 작품에 삽화를 그려 달라는 것이었는데

수채화나 드로잉으로 작업한 그의 삽화가 뜻밖에도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유화 못지 않은 재능이 확인 된 것이죠.

 

 

 

 

공원에서     In the Park / 36.83cm x 27.31cm / watercolor on paper

 

바닥에 낙엽들이 있는 것을 보면 계절은 가을로 접어든 언제쯤이겠군요.

공원에서 한 나절을 보낼 생각이었는지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열린 가방 밖으로 천이 흘러 내린 것을 보고 혹시 먹을 것을 담아 온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는 바람에 뚜껑이 열린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영혼을 따뜻하게 하는 것에 몰두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좋습니다.

책 앞에 놓인 붉은 꽃 한 송이, 그러나 책 읽는 여인이 더 곱습니다.

 

알퐁소 도테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을 위한 삽화도 그리게 됩니다.

삽화를 그리는 일이 그에게 상당한 수입을 보장 해 주었습니다.

더욱 좋았던 점은 문학과 연계되는 일을 하다보니 나중에 모로는 모로 가족의 역사에 대한 책을 직접 저술하기도 합니다.

일이 정말 잘 될 때는 집 나간 개가 친구까지 데리고 왔는데 들어오자 마자 친구로 따라온 개가 강아지도 낳습니다.

, 개 장수 아닙니다.

 

 

 

나룻배   The ferry / 73.66cm x 92.71cm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배가 도착했습니다.

배를 타고 건너는 일이 일상이니 사공과 서로 잘 아는 사이겠지요.

마음이 급한 처녀는 배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빈 병을 들고 배로 향하고 있지만

앉아 있는 아가씨는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주먹도 쥐었군요.

왜 이렇게 늦었어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누가 늦고 싶어서 늦었나요? 나도 바빴어요.

애가, 미안하다는 말은 안하고 말 대답을 하네, 너 이리와 봐.

자꾸 그러면 나 그냥 돌아갑니다.

기다림은 두근거림으로 시작되지만 길어지면 원망이 됩니다.

그리고 그 끝이 보이지 않으면 절망이 됩니다.

혹시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

만약 기다리는 중이라면 어디선가 그대를 향해 정신 없이 달려오는 사람을 기억하시면 어떨까요?

도착하거든 그냥 안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892, 당대 아카데믹 전통을 지키는 화가로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모로에게 프랑스 정부는 레종드뇌르 훈장을 수여합니다. 자신이 배운 전통으로부터 구애됨 없이 새로운 자신만의 전통을 만든 그에 대한 평가였겠지요.

1906, 63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로는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프랑스의 화려했던 중세로 지금도 우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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