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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르카디 플라스토프 -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성자디아니|작성시간20.08.19|조회수256 목록 댓글 1

아르카디 플라스토프 (Arkady Plastov / 1893~1972)의 경우 러시아 화가라고 불러야 하는 것인지 지금은 없어진 소련 화가라고 해야 맞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젊음    Youth / 170cm x 204cm

 

벌판이라도 뛰어 온 걸까요? 웃옷을 벗고 풀밭에 누웠습니다. 들판을 건너오는 바람 그리고 거칠게 몰아 쉬는 숨소리가 들려 옵니다. 터질 것 같은 가슴 때문에 뛰어 본 적이 없다면, 그 것이 사랑이든 분노이든 끓어 오르는 신열을 어쩌지 못해 풀 밭에 누워 본 적이 없다면, ---- 그 젊음은 너무 차갑습니다.

다시 몸이 뜨거워졌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머리만 뜨겁습니다. 그나저나 같이 뛰어 온 개도 어지간히 힘이 든 모양입니다.

 

플라스토브는 지금은 울래노브스키라고 불리는 심브르스크의 프리슬리니하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였는데 대대로 성상(聖像 / 이콘)을 그리는 집안이었습니다. 화가의 유전인자가 그의 몸 속에 있었던 것이죠. 열 살 때 심브르스크의 신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시작하는데 나중에 모스크바 예술학교를 졸업하는 24세까지 그의 공부는 계속 됩니다.

  

 

말 목욕 시키기   Horse bathing / 67cm x 100cm / 1937

 

가득 찬 생명력이 그림 밖으로 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말과 나체의 젊은이들이 햇빛이 녹아 든 푸른 강물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말을 씻는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젊은이들의 역동적인 놀이입니다. 왼 쪽 말 등 위에서 서서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는 고추정도 보여주는 것은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것은 당당함입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건강한 원시성이기도 합니다 

모스크바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플라스토프는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8년 정도 고향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서 알 수 없지만 고향의 자연 풍경을 그리는데 몰두 했다는 것으로 봐서는 붓을 내려 놓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를 졸업 한 10년 뒤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와 포스터 제작일과 여러 출판사에서 책의 삽화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명성을 얻은 것은 화가로서였습니다.

  

 

소나무 숲에 내리는 가을 햇살    Autumn Sun, Pine Trees / 52cm x 62cm / 1940s

 

1929, 플라스토프는 첫 작품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그의 작품은 서정적이고 풍부한 색감을 가졌던 선배 러시아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31, 그의 집에서 불이나 집 전체를 태웠는데 이 때 집안에 보관 되어있던 그의 1920년대 작품 대부분이 소실됩니다. 그런 이유로 플라스토브의 초기 작품은 알 수 가 없습니다.

 

건초 만들기   Haymaking / 31cm x 43.5cm / 1944~1945

 

서양 화가들의 작품에는 건초 만드는 내용을 묘사한 것이 많습니다. 노동의 고단함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주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건초 만드는 일이 농촌의 삶을 대표하기 때문이겠지요. 대개 가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은데, 이 작품 속의 젊은이는 한 여름을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햇빛에 그을린 구리 빛 몸은 튼실하기 보다는 약해 보입니다. 지쳐 보이는 어린 그의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발갛게 표시 된 귀를 보면서 플라스트프 선생님, 참 섬세하셨군요하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건초 만들기   Haymaking / 1945

 

자작나무 숲 끝에 펼쳐진 풀 밭에 식구들이 모두 나섰습니다. 맨 뒤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순서대로 줄을 서서 풀을 베고 있습니다. 고단한 시골 생활이 한 짐씩 사람들의 어깨에 얹혀 있는데 속절없는 들꽃들은 화려한 모습들로 식구들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차라리 예쁘지나 말지 ---.

 1935년부터 플라스토프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합니다. 스탈린의 통치가 본격화 되면서 예술계에도 삼엄한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만 허용되는 상황이 됩니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정의한다면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사실주의 기법과 정책의 의도가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문화와 정책을 홍보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합니다. 사실 도구라고 표현 했지만 미술 작품인 것은 분명합니다.

 

 

 추수      Harvest /166cm x 219cm / 1945

 

황금빛 벌판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일까요? 식사라고 차려 온 것을 보니 수프하고 손에 든 감자가 전부인 것 같습니다. 노인이 들고 있는 스푼의 그림자가 수프 위에 고스란히 떠 있습니다. 건더기 없는 맑은 수프이겠지요. 아이들 부모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물끄러미 음식을 바라보는 노인 옆의 개의 표정도 썩 좋지는 않습니다. 오늘도 굶는 건가 ---.  

벌판은 누렇게 익어가는데 노인의 얼굴은 상념으로 검게 타 들어가고 있습니다.

 2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플라스토프는 새로운 주제에 매달립니다. 전쟁기간 중 집단 농장에서 일하는 노인들과 여인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과 전쟁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소련 인민들의 모습을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시골 생활의 모습을 담는 것은 계속 되었습니다.

 

 배급 받는 날    Pay Day / 165cm x 196cm / 1951

 

아마 집단농장의 식량 배급일인 모양입니다. 가운데 역삼각형의 구도에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배급해야 할 식량을 저울에 다는 남자와 기록을 하는 여자 그리고 자기 몫이 정확하게 기재되고 있는지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는 긴장감이 담겨 있습니다.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은 느긋합니다. 양곡 마대 위에 올라가서 배를 깔고 해바라기 씨를 먹는 소년은 맨발입니다. 생활이 간단치 않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930년 대 말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플라스토프는 1947, 소련 아카데미의 회원이 됩니다. 모든 소련의 화가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오른 것이죠. 그리고 얼마 후 국민화가칭호도 받습니다. 소련에서 화가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영예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Spring / 211cm x 123cm / 1954

 

플라스토프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방금 사우나를 끝 낸 아이의 옷을 입히고 있습니다. 숄을 여며주는 엄마와 안 춥다는 표정의 앙증맞은 아이 얼굴이 내리는 눈송이들 속에서도 따뜻하게 다가 옵니다. 하늘은 잿빛이지만 밝은 색 짚과 여인의 몸이 화면을 밝혔습니다. 이제 긴 겨울이 끝났다는 이야기일까요? 그렇다면 내리는 것은 눈이 아니라 봄의 전령들일 수 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소련 예술의 전환점이 된 작품입니다. 공식적인 장소에 걸린 비 정치적인 내용의 일상을 묘사한 첫 작품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1954년은 스탈린이 죽은 지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정치색이 사라진 작품이 허용되었습니다.

 

 감자 수확    Harvest of potatoes / 113cm x 163cm / 1956

 

글쎄요, 감자를 저렇게 캐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마 감자를 땅 속에 저장했다가 다시 담는 것 아닐까요? 무는 땅속에 묻지만 감자는 땅 속에다 안 묻거든아내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흙 묻은 얼굴과 손등 위로 굵게 튀어 나 온 힘줄을 보면서 고향을 사랑했고 소련 농민들의 삶을 살아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했던 플라스토프에 대한 평가가 떠 올랐습니다.

 후대 소련의 휴머니즘 아트 화가들은 가장 존경하는 화가로 플라스토프를 들었는데,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림 속에 사람이 있거든요.

 

 

트랙터 기사의 저녁 식사     Tractor driver's supper / 200cm x 167cm / 1961

석양 빛에 대지가 검붉게 물들었습니다. 지평선부터 갈기 시작한 밭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트랙터를 켜 놓고 잠깐 저녁 식사를 하는 모양인데 다른 음식은 보이지 않고 흰 우유뿐입니다. 두 손으로 잡은 음식 그릇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는 트랙터 기사의 얼굴도 속에 입고 있는 붉은 셔츠처럼 물들었습니다. 고단하지만 그의 얼굴은 흙과 같이 한 세월 때문이지 흙을 닮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얼굴에서 피곤하지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힘이 보입니다. 잔광이 등에 앉은 남자들의 얼굴과는 달리 소녀의 모습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때문에 소녀만 동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만약 소녀가 없었다면 작품이 너무 팍팍했을 것 같습니다.

 

 시골 마을 (우유 한 잔)     In the village (A mug with milk) / 154cm x 228cm / 1961~1962

 

우유를 짜는 엄마 무릎이 앉아 있던 아이가 불쑥 컵을 내밀었습니다. 엄마는 능숙한 솜씨로 젖의 방향을 컵으로 향했습니다. 아이가 먹으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고양이에게? 그 것도 아니면 송아지에게누구에게 주던 간에 송아지로서는 답답할 노릇입니다. 엄마 젖의 주인은 자기인데도 이러 저리 하는 인간들이 아주 못마땅한 눈초리입니다. 어미 소의 심사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휙 하고 지나가는 소 꼬리의 소리가 들리시는지요?

 

 

나무의 죽음   Death of a tree / 270cm x 133cm / 1962

 

이렇게 그림 속에서 반짝거리는 나뭇잎을 본 적이 없습니다. 떨어지는 햇빛들이 나뭇잎 마다 부서지면서 모두 재잘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밑 둥을 동그랗게 자른 나무를 힘주어 밀자 나무가 넘어 가고 있습니다. 벌써 넘어간 나무 밑 둥에는 도끼가 꽂혀있고 톱을 든 노인의 눈은 나무에 고정되어 있는데, 살짝 벌린 노인의 입에서는 짧은 탄식이 흘러 나오는 것 같습니다. 노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넘어가는 나무 일까요, 아니면 나무와 함께 한 세월일까요?

 

 오십 대 중반의 장님     Blind. The middle fifties / 108cm x 133cm / 1967

 

러시아어로 된 제목을 영어로 옮긴 것이겠지요. 제 머리로는 저렇게 밖에 읽히지 않습니다. 지팡이를 집고 가로수 그림자가 얼룩덜룩한 길을 따라 우리를 향해 걸어 오는 두 사람 모두 장님일까요? 앞에 선 여인이 장님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 다 앞을 못 본다면 너무 힘들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곁을 지나 고개를 향해 달려가는 자전거 위의 젊은이는 이제까지 그들 곁을 하고 지나갔던 수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입니다. 더 많이 돌아보고, 더 많이 그 들 앞에서 멈춰야 했는데 그냥 많이 지나쳐 왔습니다.

반성할 일입니다. 유월인데요 --- 그래야 할 것 같은 맑은 유월입니다.

 79세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도 플라스토프는 그림 제작에 몰두 했습니다. 대단한 정열이었습니다. 말년에는 소련 예술가 동맹 비서를 역임했고 각종 메달과 상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소련의 위대한 사실주의 화가 중 한 명이었고 스탈린 시대에 가장 뛰어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화가였다라는 평에 걸맞은 영예였습니다. 플라스토프 선생님,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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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0.08.19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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