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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다페스트의 재발견 - 헝가리 여행

작성자하늘보리여행|작성시간18.07.04|조회수742 목록 댓글 1

오늘은 6월 10일로 17일째 토요일이다.

슬로베니아 마리보르(Maribor) '호스텔 M'에서 출발하여 오후 늦게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해야 할 숙소는 부다페스트 시에 있는 엘레나 아파트다. 

엘레나 아파트를 네비게이션(navigation)에 입력하여 이동하기시작했다.

그러나 네비게이션(navigation)은 변죽만 울리고 있었다.

엘레나 아파트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으나 어느 아파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헤맨 끝에 아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아파트는 출입구 위에 호수가 기재되어있었다.

호수를 따라 이동하니 우리가 원하는 호수를 찾을 수 있었다.

호수는 34호에서 37호까지다.


트램을 타기 위해


그런데 문이 잠겨져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주인에게 직접 스마트폰을 연결시켰다.

신호 음은 울리는데 수신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신자자 스마트 폰을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

스마트폰이 연결되었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았다.

헝가리 공용어를 제외하고는 이해할 수 없어서 일 것이다.

방법이 없었다.


부다페스트 관광지



옆집 가게 종업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가게 종업원은 친절했다.

생면부지의 동양인이 뜬금없이 도움을 요청하자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게 종업원은 당황하지 않고 주인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 주인은 이해를 하고 금방 현장에 나타났다.

아파트 주인은 자신을 엘레나(Elena)라고 했다.

삭삭하고 상냥했다.



그녀는 여러 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 중 몇 채를 여행자 숙소로 제공하고 있었다.

여행자 숙소는 50년 이상 된 고층 아파트에 있었다.

외관은 낡고 허름했다.

아파트 앞은 이면도로가 있었다.

이면도로는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면도로는 차량 통행이 많았다.

평일은 주차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주차 티켓이 없으면 아파트 앞에 주차할 수 없다.


부다왕궁의 포토포인트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는 누구나 무료로 주차할 수 있었다.

오늘은 토요일 오후라 주차걱정은 하지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주창장에 여유 공간이 없었다.

주차장에서 차량이 빠져나가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주차장에서 차량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재빨리 주차를 했다.

가방과 핸드 캐리어를 아파트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묵어야 할 숙소는 7층이다.


세체니 다리. 

우리 이행이 걸어왔다.


7층으로 가방을 운반하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19세기나 볼 수있는 명물이었다.

4인이 동승하면 여유 공간이 없었다.

큰 가방과 핸드 캐리어(Hand Carrier)는 엘리베이터로 운반하고 몇명은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갔다.

방은 모두 3개였다.

각 방마다 침대가 놓여있었으나 앉아보니 삐거덕거렸다.

화장실은 두개가 있었으나 목욕은 한군데서만 가능했다.

다행인 것은 세탁기가 있었다.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그동안 입은 옷은 세탁을 못해 냄새가 역겨웠다.

주방기구 중에서 도마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름기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기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옆방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침대가 산산이 부서져있었다.

제일 큰 형이 잠을 잤던 곳이다.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침대가 박살난 것이다.

여러사람이 공용으로 사용하다보니 모든 실내 기구가 낡고 덜컹거렸다.

그러나 시내 접근성은 비교적 양호했다.


근위병 정신 좀 차리고 있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부다왕궁으로 이동했다.

전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방향이 다른 전차로 옮겨탔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두번째 방문이다.

저녁 노을이 질무렵이면 부다페스트 시내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특히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부다왕궁의 저녁 모습은 신비하기 까지 했다.

부다페스트의 저녁 노을을 관람하기위해서는 시간과의 전쟁을 거쳐야 한다.

패키지 여행은 시간을 맞추기가 어렸다.

그러나  자유여행은 가능하다.


국립미술관


조금만 시간이 엇갈려도 환상적인 광경을 바라볼 수 없다.

저녁 노을은 장관이다.

노을이 하늘에 수놓기 때문이다.

그 광경은 길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을 뒤흔든다.

이것이 끝나면 유람선을 타고 도나우 강을 가로지를 수 있다.

환호성이 절로 터진다.



그러나 두번째 부다페스트 방문에서 이것을 놓치고 말았다.

시간대를 맞추지 못했기때문이다.

게레르트 언덕을 포기하고 부당왕궁으로 이동했다.

부다(Buda) 왕궁은 신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성이다.

13세기 경 아르파도 왕조의 베라 4세가 처음 건립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 거의 소실되고 말았다.

화려했던 본래의 모습은 1950년대에 가서야 복원되었다.


사자의 안뜰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와 견줄 수있는 다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세체니다리다.

세체니다리는 부다지방과 페스트지방을 연결하는 다리다.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도나우 강의 진주로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 한강 철교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으나 세체니다리의 역사를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세체니다리를 직접 걸었다.

많은 관관객이 동행했다.

세체니다리 입구에 도착하자 사자 한마리가 울부짖고 있었다.

포효하고 있었다.


혀가없는 두마리 사자


낯선 사람이 등장했기때문일 것이다.

다리 난간에 조각된 사자는 혀가 없다.

위험성이 없다는 증거다.

세체니다리는 세체니 이슈트반(Szechenyi Istvan) 백작의 아이디어로 설계되고 스코틀랜드인 클라크 아담에 의해 건설되었다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경제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1945년에 독일군에 의해 다리가 폭파 되고 말았다.

다리를 개통한 100년만에 부다(Buda) 페스트를 하나로 연결시켰다.

마자르 족의 단합을 하나로 모으기위해서다.


주교관


세체니(Szechenyi)라는 이름은 다리 건설에 일조한 세체니 백작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는 밤을 밝히는 전구의 모습이 마치 사슬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체니다리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에서 빼놓을  없는 관광지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양안에 걸쳐 있다.

부다(Buda) 언덕 위에 자리하며 왕궁의 언덕과 겔레르트 언덕 등이 강기슭 근처까지 뻗어 있어 역사적인 건축물이 많다.

반면에 페스트(Pest) 상업지역으로 공장과 주택이 많다.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


14세기 부터 부다(Buda) 헝가리의 수도가 되고, 페스트(Pest)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부다(Buda)왕궁으로 걸어가고 있다.

눈에 띤 곳은 포토존 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기때문이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갔다.

부다페스트 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동 유럽국가라면 어디에서나 바라볼 수 있는 밝은 주황색 지붕이 이곳에서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환상적 이었다.


쓰레기통 앞에 서서


옆에 기념탑이 있었다.

독수리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비상할 것 같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긴 칼을 가슴에 감싼채 하늘로 부상 하려 하고 있었다.

국민들의 웅지가 함축되고 있었다.

그것은 마자르 족의 정체성 이었다.

다시 사보여 테라스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마침 근위병 교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북을 치면서 절도있게 근위병이 이동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하나도 흩으러지지 않고 있었다.


자유여신상이 보인다.


쌍방이 거수경례를 하며 교대를 하기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우리나라 경복궁에서 도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상기시키기 위해 제식을 거행하고 있다.

의미는 헝가리와 비슷하다.

그런데도 관광객은 이곳이 훨씬 많았다.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민족은 수없이 많다.

정체성의 부재때문이다.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던 두 민족의 역사는 비슷하다.

아직도 부동 자세로 기립하고 있다.


줄너이 타일이 멋있다.


다시 사자의 안뜰로 이동했다.

사자 두마리가 입구 양쪽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대행인 것은 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은 궁정이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유럽의 궁정은 보통 ‟ㅁ”자 형이 많다.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기위해서일 것이다.

마차시 성당으로 이동했다.


부다페스트 전경


정식 이름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남쪽 탑에 마차시 1 왕가의 문장과 그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마차시 성당으로 불리고 있다.

성당은 1015년에 건축되었다.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의 장소로서 이용되었던 곳이다.

건물은 14세기 후반에 후기 고딕 양식으로 건조되었다.

이후 1479년에 개축이 대대적으로 단행되었다.

높이 80미터의 첨탑이 증축 되고, 성당의 외관이 화려하게 도색 되었다.

700년이라는 역사를 간직한 성당은 헝가리 인에게 마음의 안식처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침공을 받았다.


이것이 세체니다리다.


그때마다 정체성이 무너지곤 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지배는 오래갔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행사가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수치스러운 역사가 반복이었다.

도나우 강 주변에 전등이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환상적 이었다.


주인없는 신발


국립미술관에 고대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무기류 와 미술품 그리고 노동운동 역사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스페인에 안토니오 가우디가 있다면 헝가리에 레히네르 외된이 있다. 

천재 건축가로 일컬어지는 그는 아르누보 전성기시대에 활동했다.

그의  건물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창성을 간직하고 있다.

헝가리의 정체성인 마자르 문화가 담겨있기때문이다.

헝가리 자수는 빼놓을 수없는 전통문화다.


헝가리 국회의사당


전통 중에서도 자수에서 볼 수있는 산뜻한 색과 섬세하고 독특한 문양을 건축에 재현하고 있다.

레히네르 외된의 사상은 금속이나 유리 등에서도 자유자재로 구현되고 있다.

이것이 졸너이 타일이다.

졸너이의 타일은 높은 온도에서 구워 동결 방지와 산성화를 막아주는 기법이다.

지붕 뿐만이 아니라 벽과 계단의 난간도 졸너이 타일을 이용하고 있다.

마자르 기법을 마음껏 뽑내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슈테판 대성당이나 중부 유럽의 건축 물에서도 이러한 기법의 타일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졸너이 타일을 이용하여 건축한 대표적인 건물이 마치시교회다.

마차시 교회의 지붕은 황금 타일로 장식하고 있다.



원색의 고딕 건물로 13세기 경에 건축되었다. 

1740년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1876년 프란츠 요셉 왕, 1916년 칼 왕이 이곳에서 거주했다.

터키 지배하에서는 성당이 모스크로 바뀌기도 했다.

그후 1800년대에 네오고딕 양식으로 재 탄생되었다.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했다.

첫번째 여행 때 유람선을 타고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갔다.

외관만 바라본 것이다.

때문에 주옥같은 진주를 발견할 수 없었다.


철판을 뚫은 총탄의 흔적


그러나 이번 여행 때는 국회의사당 앞쪽으로 걸어가 정면의 수려 함과 진면목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가히 환상적 이었다.

감탄이 절로나왔다.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건축방법도 독특했다.

마자르 족의 진수가 돋보이고 있었다.

다시 국회의사당의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는 식당도 있고 영상관람실도 있었다.

헝가리의 역사를 편집해 방문자에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관람료를 지불해야 했다.


박물관


자국의 역사를 관광객에게 소개하면서 관람료를 요구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났다.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상은 열대지방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도나우 강을 따라 북상했다.

그런데 각종 남녀의 신발이 강가에 조각되어 있었다.

그것도 한두 짝이 아닌 수백 켤레가 되는 신발이 전시되어 있었다.

주인을 잃은 신발이었다.


청사 앞에 기립한 근위병


신발을 보고 가슴이 매스껍고 울렁거렸다.

이곳은 유대인을 학살 했던 곳이다.

그리고 살해 후 시신을 강으로 밀어버린 곳이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신발 짝만 도나우 강을 지켜보고 있었다.

역사는 말이없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있을까?

순간 몸이 떨리기시작했다.


무명의 기념비


성 이슈트반 대성당으로 이동했다.

첫번째 헝가리 여행때는 패키지 여행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자유여행이다.

현지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보고 있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다행이 영어교사가 있어서 대화를 시도했으나 그것도 쉽지않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주저앉을 수 없었다.


무명 용사 앞에 헌화


성 이슈트반 대성당으로 이동했다.

첨탑 세 개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사람이 건조할 수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마법에 감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성당으로 빠져들었다.

신 앞에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 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성호를 그었다.

본당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당 입구에서 차단되고 말았다.

금전 때문이다.


성 이슈트반 성당




속이 상해서 관람을 포기하려고 했다.

영어교사가 미사여구로 안내인을 설득했다.

슬그머니 들어가라고 눈짓을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현지의 살황에 적응해야 했다.

본당은 천국이었다.



부다페스트 야경


엘리자베스 다리위에서 바라본 야경

황홀하다.


경건하여 고개를 숙이게 했다.

본당 중앙에 제단이 있고 그 바로 뒷면에 예수의 일대기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본당 양옆은 채색된 스테인드글라스가 태양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이곳은 천국일 것이다.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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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mall world | 작성시간 18.07.04 조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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