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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오를레앙 2 - 오를레앙에서 잔다르크를 보고 옛일을 회상하다!

작성자코츠월즈|작성시간19.01.25|조회수464 목록 댓글 2


 

 

오를레앙 여행2 - 오를레앙 거리를 걸어 잔다르크를 보고 옛일을 회상하다!

 

 

 

 

  10월 25일(월) 오를레앙 의 호텔에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어두운 레퓌블리크 거리

Rue de la Republique 를 걸어 마르트루아 광장 Pl. du Martroi 으로 향하는데,

  우리는 오늘 아침에 오를레앙을 보고는 기차로 파리 로 가서는 그간 파리에 2번이나

갔는데도 미처 보지 못한....

 

 

 

 

  페르 라세즈 묘지 를 보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옛날 프랑스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랭스 로 가서 관광 까지 해야 합니다.

 

 

 

 

  마르투아 광장에 이르니 어둠속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말위에 올라 탄

처녀 잔다르크 압니다!

 

 

 

 

  하지만 아직은 새벽이라 너무나도 추워 우선 근처 카페에 들어가 커피 카페라떼

시켜서는 언 몸이며 손가락 부터 녹이고 봅니다.

 

 

 

 

  다시 나와서는 제네랄 드골 광장 Pl. du General de 에 이르러...  잔다르크의 집

Maison de Jeanne d'Arc 을 보는데 너무 일찍은 시간이라 아직은 문이 닫혔네요!

 

 

 

 

   여긴 1429년 4월 29일부터 5월 9일까지 잔다르크 가 지냈던 집으로 현재 박물관인데,

중세 갑옷과 투구..... 

  그리고 잔다르크에 관한 자료와 초상화 및 17세기 태피스트리가 진열되어 있답니다.

 

 

 

 

 

 그러고는 루아얄 거리 Rue Royale 를 걸어 샤틀레 시장 Halles Chatelet 을 볼까 하다가

역시나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라 그냥 내처 걸어서.....

  루아르 강 La Loire 조르주생크 다리 Pont George 에 이르니 강변에는 숲이 우거졌는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자니 동녘 하늘이 불그스레지는게 이제사 해가 뜨는 모양이네요?

 

 

 

 

  잔다르크가 등장하는 100년 전쟁 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프랑스 땅에

영국과 프랑스가 전투와 휴전을 되풀이한 전쟁입니다.

 

 

 

 

  일찌기 백 수십년 전에 프랑스 세느강 하구에 정착한 바이킹의 후예 인 노르망디공

윌리엄 이 1,066년 1만 5천명의 기사와 보병을 이끌고....

  영국으로 진격해서는 노르만 왕조 를 세운이래 프랑스 땅에도 영토를 소유하였고.....

 

 

 

 

  그후 노르만 왕조 마지막 왕 헨리 1세가 딸 마틸다 프랑스 앙주 백작 에게 시집보내

헨리 2세 가 태어나는 데....

 

 

 

 

  앙주 백작을 계승한 헨리 2세 총각이 파리 궁정에 세배 드리러 갔다가.... 프랑스 왕비

엘레노어와 눈이 맞아서!!!

 

 

 

 

  엘레노어 를 이혼시켜 결혼하니 그녀의 친정 땅 보르도의 가스코뉴와 아키텐, 키엔느

를 상속하고, 처가인 영국으로 진격해 왕에 올라 플랜타지넷 왕조 를 열었던 것이라!

 

 

 

 

 하여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 내에 3차례에 걸쳐 획득한 엄청난 땅을 소유하니 왕권 신장을

노리는 프랑스와 끊임 없는 분쟁 을 겪어오던 중에...

 

 

 

 

  1328년 프랑스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가 없이 사망하자, 그의 4촌 형제

발루아가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오르니 프랑스에 발루아 왕가 가 출현합니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 는 그의 모친이 카페 왕가 출신 (샤를 4세의 누이) 이라는

이유로 잉글랜드 왕인 자신이....

 “프랑스 왕위를 계승”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양국간에 심각한 대립을 빚게 됩니다.

 

 

 

 

 

  에드워드 3세 는 프랑스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하여 프랑스가 지배하던 플랑드르

 (벨기에 북부) 에 수출해 오던 양모 공급을 중단하니......

 

 

 

  

  그 보복으로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인 키엔느와 가스코뉴 의

몰수 를 선언하는데,

  마침내 1337년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에게 공식적인 도전장 을 띄우게 됩니다.

 

 

 

 

   플랑드르 (벨기에) 는 프랑스 왕의 종주권 아래에 있었지만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지대로 번창하여.....

  원료인 양모의 공급국인 영국 이 이 지방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끼엔느 역시 유럽 최대의 포도주 생산지였으므로, 프랑스 왕들은 항상 이 두 지방

탈환을 바라고 있었으니.....

  100년 전쟁 의 근본적 원인은 프랑스와 영국이 두 지방의 쟁탈을 목표로 한 것입니다.

 

 

 

 

  루아르 강을 떠나 루아얄 거리를 걸어 만나는 도로인 잔다르크가 Rue Jeanne d'Arc

오른쪽으로 걸으니 생트 크루아 광장 Pl. Sainte Croix 이 나오는데.....

  어떤 청사 건물 앞에 아침 부터 사람들이 줄 서 있는데 무슨 이민국 같은 것일러나?

 

 

 

  

 

 

  그 앞에 높은 첨탑을 가진 생트 크루아 대성당 Cathedrale Sainte Croix 인 데,

14세기에 세워진후 화재등을 여려차례 겪은후.....

 

 

 

 

 

  부르봉 왕조를 연 앙리4세 와 메디시스의 명으로 1,601년에 착공해 1,829년에 완공

되었다는데 높이 81m의 파사드와 탑은.....

 

 

 

 

  18세기 건축물로 곡선 장식이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중심부분이다. 19세기에 완성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잔다르크의 생애 가 묘사되어 있다지만..... 아침이라 문이 닫혀 있네요?

 

 

 

 

 

 잔다르크 는 농민의 딸로 1429년“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고향을 떠

루아르 강변의 시농 성(城)에 있는 샤를 왕세자 ( 뒷날의 샤를 7세 ) 를 방문합니다.

 

 

 

 

  프랑스는 서부 및 북부를 영국군 및 부르고뉴파 군대가 점령 하고 있었고 왕위

1420 트루아 조약에 따라....

  프랑스의 샤를 6세 사후에 영국왕 헨리 5세가 계승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잔 다르크 는 샤를 황태자를 격려하고는...  군대를 이끌고 나가 영국군을 격파하여

여기“오를레앙을 해방”시킨 데 이어 각지에서 영국군을 무찔렀습니다.

 

 

 

 

  흰 갑주를 입고 선두에 선 잔 다르크 의 모습만 보고도 영국군은 도망하였다.  내친

김에 랭스 까지 진격한 잔 다르크는....

 

 

 

 

   랭스 대성당 에서 프랑스의 오랜 전통적인 전례에 따라.... 샤를 7세의 대관식

거행토록 하였습니다.

 

 

 

 

  잔 다르크 는 왕의 측근들의 질시와 선망 속에서도 전투에 전념하다가 1430년 5월

콩피에뉴 전투에서.....

 부르고뉴파 (프랑스 동부의 부르군드족 나라) 군대에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집니다.

 

 

 

 

 

   1431년 종교재판 에서 마녀 로 낙인 찍혀 이단 선고를 받고 루앙에서 화형 을 당하

는데...

   프랑스측 왕실과 가톨릭 교회는 참으로 후안무치하여 야비하게도 이에 동조했습니다.

 

 

 

 

 

   전장에 나간 장수의 공이 너무 높으면 "하늘도 시기하고 임금도 질투"  한다고

했던가요?

   하여 이순신 장군 노량 해전에서 자살 하여 자식과 조카나마 구했던 것이라!!!

 

 

 

 

  후일 1456년에야 샤를 7세는 앞서의 유죄 판결을 파기하여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켰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1920년에야 그녀를 "성녀로 시성" 하였습니다.

 

 

 

 

  오를레앙 미술관 Musee des Beaux Arts d'Orleans 인 데, 16 ~ 19세기말 이탈리아,

플랑드르 및 프랑스 회화 5만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파스텔화 컬렉션이 풍부하답니다.

 

 

 

 

   하지만 역시 아침 일찍은 시간이라 문이 닫혀있어 현관에 있는 조각 몇 점과 말에

올라 깃발을 치켜 든 잔다르크의 그림 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건너편에 시청 Hotel Groslot 건물이 보이는 데, 1,550년에 지어진 대관의 집으로

1,790년 이후 시청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견학은 무료라지만 역시나....

 

 

 

 

  다시 길을 걸어 호텔로 돌아오면서 보니 큰 도로에 공사중인 데....  아마도 트램

노선을 하나 새로 깔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고는 라베유호텔 de L'Abeille Hotel 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는 파업으로

여기 오를레앙역은 기차가 운행하지 않으니.....

 

 

 

 

  어제처럼 4km 떨어진 Gare de Fleury Les Aubrais 역으로 가기 위해 트램 을 타기로

하고 길거리에 있는 티켓 자판기를 보니.....

 

 

 

 

 

  불어로 되어 있기는 하나 짐작컨대 동전이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무슨

교통카드 같은 것을 사용해서 티켓을 구하는 것 같아 포기할 수 밖에....

 

 

 

 

 

  마침 트램이 도착하기로 그냥 올라타서는 유로화 동전을 차장에게 직접 건네려고

하니 유리 칸막이가 되어 있어 불가능 하네요?

 

 

 

 

 

   동전을 들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둘러보니 승객들의 웃는 모습에.... 돈을 내지

그냥 타고 가라고 격려(?) 하는 것 같아 쑥스러운 마음에 그냥 안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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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done | 작성시간 19.01.28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대리만족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코츠월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1.29 고마운 말씀입니다!
    어디나 사람 사는 모습은 같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대리인 가톨릭 교회에 의해
    희대의 사악한 마녀로 밝혀져 화형에 처해진 여인 잔다르크가
    세월이 흐르니...... 거룩한 "성녀"로 둔갑했네요?
    가톨릭 교회는 시대에 따라 가치 기준이 이렇게나 달라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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