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츠 여행3 - 마르크트 광장과 대성당을 거쳐 구텐베르크의 집을 보다!
독일 동부 드레스덴 에서 라이프니찌와 프랑크푸르트 를 거쳐 독일 서남부의
고대 로마 도시 에서 출발한 마인츠 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을 합니다.
거리를 걸어 어렵게 찾은 마트 에서 장을 본후에 마르크트 광장 에
이르니..... 분수와 예쁜 목조 주택 들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꽃으로 장식된 목조주택 들이 참으로 예뻐보여 사진을 여러장 찍는데
한가지........ 집들이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것은 왠일일까요?
2차 대전시 독일은 영국과 미국 공군의 융단 폭격 으로 도시들은 잿더미 가 되었으니
로텐부르크 를 제외한 아우구스부르크등 대부분 도시는 전후 다시 재건했기 때문일까요?
그러고는 다시 골목길을 걸어 빙빙 돌아 대성당의 정문 을 어렵게 찾아가는데
나중에 보니 반대편 으로 갔으면 쉬웟을 것을 둘러왔나 보네요....
대성당 광장 에는 높은 기둥위에 성인인듯 동상들이 서있는게 눈이 뛰고.....
또 무슨 인도나 태국 양식과 비슷한 문이 눈에 뜁니다.
대성당 Dom 은 975년에 착공되었는데 쾰른, 트리어와 더불어 독일 3대 성당중 에 하나로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역대 대주교들의 묘비 조각이고 안쪽 회랑은 박물관입니다.
1,526년에 마르크트 광장에 있던 우물에 대주교 알브레히트 는
“승자에게는 감사를, 그러나 패자에게는 영원한 경고를! ” 이라고 새겼다고 합니다.
또 여기 유서 깊은 마인츠 대성당 앞 한쪽에는 마인츠에 독일 최초로
대주교좌를 설치하도록 만든 보니파티우스 상이 서 있습니다.
여기 대성당 주변의 건물들도 볼만한데.... 특히나 광장 한복판에는 붉은 기둥이 서있고
그 아랫부분에 주물 이 둘러싸고 있으니 그 중에도 투구 등 여러 모습이 특이합니다?
다시 마르크트 광장으로 돌아와서는 한켠에 위치한 구텐베르크 박물관 을 보는데
마당에 엄청 큰 나무 조각들이 있어 무언가 보았더니.... 세상에나?
이게 바로 활자 를 새긴 것인데 실제 크기는 아니고 엄청 크게 새겨 전시하는 것이라!
Gutenberg Museum 에서는 이 도시 마인츠 출신인 구텐베르크 가 1,440년에 활판 인쇄 를
발명하였으니 전시하는 외에 당시의 기계를 사용해 시연 을 보인다고 합니다.
활판 인쇄술은 양피지 시대에서 종이 의 도입으로 비로소 가능했는데 종이는 화약과
나침반 및 국수(스파게티)에 활판 인쇄술 과 더불어 중국 에서 전래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현지인 병사를
모집했는데 돼지나 소의 기름을 묻힌 종이 탄약통을 입으로 찓게 했으니 힌두교도는
소를 신성시하고 이슬람교도는 돼지를 기피하니 이로인해 일어난 반란이 세포이 전쟁이라?
1차대전시 연합군은 하루 100만장의 종이전단 삐라 를 열기구에 띄워 독일군 진영에
뿌렸고 2차대전시는 이탈리아 땅에 한달에 1억장을 뿌렸다고 합니다.
또 1차세계대전후 바이마르 정부의 독일에서는 인플레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화폐가치가
땅에 떨어지자 사람들은 벽지 대신에 "종이돈을 도배 재료" 로 썼다고 합니다.
목판은 보관 중에 활자가 갈라져 버리는 단점이 있어 고려에서는 서양보다 앞서 1234년에
구리를 이용한 금속활자 로 "고금상정예문" 을 50권 인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존 하는 것으로는 서기 1377년(우왕 3년)에 청주 흥덕사 에서 인쇄한
백운 화상 직지심체요절 이 세계 최고(最古) 의 금속활자본 입니다.
저 직지 는 조선 시대 고종 때 주한 프랑스 공사 로 근무했던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해간
장서에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에 보관된게 유일합니다!
우리 한국인들의 자존심인 국보가 한국에는 없고 남의 나라에 보존 되어 있는 것이지요?
라이프찌히 그라시 민속박물관 Grassimuseum 에는 19세기에 4개의 발톱을 가진 용조각이
어깨에 올려진 융으로 짜서 장수의 용맹한 기상이 느껴지는 조선 갑옷과 용과
봉황이 금빛으로 새겨진 붉은 털머리에는 푸른 보주와 화염무늬가 위엄있는 투구 12점에...
얇게 자른 나무 끝에 백색 유황을 묻힌 성냥인 引光奴(인광노) 등 3천점의 조선 유물이
있으니 고종의 고문이던 묄렌도르프 가 서울에서 돈 주고 수집한 것들인데 시장 좌판
을 쓸어담거나 공방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것으로 우리 선조들은 가치를 몰랐던 것일까요?
고려· 조선 시대의 금속활자는 구리· 철· 납 등 여러 가지 금속이 사용되었는데
사각 기둥으로 글자가 뒤집어져서 튀어나오게 새겨져 있습니다.
금속활자 를 만드는 방법은 고려 흥덕사의 밀납주조법 과 조선 시대 금속활자인
주물사주조법 으로 나눌수 있으며 인쇄는 고착식을 거쳐 조립식으로 바뀝니다.
활자 배열 이 끝나면 공간을 죽목으로 메워 움직이지 않게하고 편편하게 고르고 나서
먹솔로 활자면에 먹물을 골고루 칠한 다음에 종이를 놓고 말총이나 헝겊뭉치로 누릅니다.
조선 시대 관의 인쇄에서 한 권에 한 자의 착오 가 있으면 30대의 곤장 을
맞고, 한 자씩 더 틀릴 때마다 한 등씩 더 엄한 벌 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출장 은 한 권에 먹이 진하거나 희미한 글자 한 자가 있을 때 30대의 매 를 맞고 한 자가
더할 때마다 벌이 한 등을 더했으니 교서관은 다섯 자 이상 틀렸을 때는 파직 되었습니다.
오래되기로는 고려의 금속활자 이나 제작방법이 힘든데다가 인쇄부수는 "하루에 수십부" 라
인류사에 끼친 영향력 으로 보면 구텐베르크의 영향력 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고려시대는 불경 몇십권 을 찍고 조선시대는 한자로 책한권을 만들면 “대학”이나 “중용”
처럼 얇은 책도 논 세마지기 에 해당하는 2천만원 값 이니 누가 산다는 말인가요?
또 금속활자는 손으로 직접 쓰는 붓글씨인 필사 보다도 느리고 비효율적이며 비싸니...
"대량제작을 위해서는 목판인쇄" 가 훨씬 효율적이고 활자도 오래 사용했습니다.
반면에 1999년 미국 시사잡지 “라이프” 에서 지난 1천년 동안의 사건 가운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 을 행사한 100대 사건 1위 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양피지에 필사하던 시절에 금속활자 뿐만 아니라
인쇄기 까지 발명했으니.... 성경을 대량으로 인쇄 하여 대중에게 보급했습니다.
당시 성경은 수천만원대인데다 외국어인 라틴어로 되어 있으며 교회에서 대중이 보는걸
원치않는지라 대중은 "교회를 통해서만 하느님 말씀" 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등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이 싼값으로 찍어져 나오니....
교회의 독점이 무느지면서 바로 "종교개혁" 이 일어났던 것이지요?
또한 이단인 그리스 철학 등 무수히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문화와 학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르네상스 시대가 성숙되고 유럽 근대화를 앞당겨 놓은 1등 공신 입니다.
구텐베르크는 한번에 200부 의 기독교 성서를 찍었지만 우리 조선의 기술로는 20부~40부
정도밖에 못 찍었다고 하니.... 그 비싼 가격으로 대중화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글이나 영어 같은 표음 문자 는 글자가 24자 내지 26자라 금속활자 로
인쇄하기에 좋지만 세종대왕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이전에는 한글 활자 를 사용해서 인쇄된 책은 전무 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한자는 만여자 가 넘으니 크기와 활자체를 고려하면 십만개가 넘는 금속활자 를
만들어야 했으니 비효율적이라 조선말 까지도 대량인쇄 는 여전히 목판인쇄 를 사용합니다.
일본 은 임진왜란때 약탈해 간 금속활자 및 인쇄 도구를 통해 1593년에 “고금효경”을
찍었으나 조선이 하루 40부를 인쇄할 때 기술부족으로 7~8부 정도 인쇄가 고작이었다네요?
우리나라가 금속 활자 를 세계 최초 로 발명했다는 것은 문화 민족으로
크나큰 영예요, 자부심 이 들지만... 세계문화사 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인류사 를 바꾸는데 공헌했느냐고 물으면 그 영향은 미미합니다.
구텐베르크 활자 발명 50년 후에 유럽에서는 250개의 인쇄소에서 4만종의 책 을 발간했지만
조선은 왕실 주자소와 교서관에서 열몇 종류 정도 찍어 관리들에게 보급할 정도였습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는 그 내용 중에서도 일부만이 인쇄가 아닌 필사본 으로 19세기
말에야 보급되었고 1,883년 에 최초로 박문국에서 발행된 신문 한성순보 는
비효율적인 조선활자 가 아닌 박영효가 일본에서 들여온 능율적인 서양활자 로 인쇄됩니다.
또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는 조선시대가 지나고 일본 식민지 시절인 1,932년 에야
서양에서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양 활자 로 인쇄되어 대중에게 보급되었던 것입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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