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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5 - 뤽상부르 궁전을 구경하고 빅토르 위고가 잠든 국립묘지 팡테옹에 가다!

작성자콘스탄츠|작성시간20.05.24|조회수238 목록 댓글 0


 

 

파리 15 - 뤽상부르 궁전을 보고 빅토르 위고가 잠든 국립묘지 팡테옹에!

 

 

 

6월 17일 파리 에서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로 세느강을 건너 앵발리드 를 보고

다시 몽파르나스 묘지 를 거쳐 걸어서 뤽상부르 공원과 궁전 을 구경합니다.

 

 

 

뤽상부르 궁전 Palais du Luxumbourg 은 1610년에 앙리 4세의 제2 왕비 이자.....

루이 13세의 섭정 인 모후 마리 드 메디시스 (메디치) 를 위하여 건축한 것입니다.

 

 

 

신교도 위그노의 영수 였던 나바르(앙리4세)구교 가톨릭교도였던 카트린 메디시스

 딸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공주 와 결혼해서는 국왕에 올라 부르봉 왕조 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였던 가브리엘 데스트레 가 앙리 4세의 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어버리자..... 피렌체의 마리 드 메디치 와 결혼하였던 것이지요.

 

 

 

피렌체의 파라치오 피티의 마니에리스모적인 모티프를 도입한 호화스러운 건축물인....

뤽상부르 궁전 에는 루벤스 의 대작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가 걸려있습니다.

 

 

 

그림에서는 이들의 결혼 으로 이루어진 프랑스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동맹 에 대한 은유가 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성은 왼손에 피렌체를 상징하는 붉은 백합 을 들고 있으며 한 아이가

프랑스 상징하는 흰 백합 을 오른손에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두르고 있는 푸른 망토 또한 테두리가 백합 으로 되어 있으며

주변에 놓여진 전쟁의 상징물 들 역시 백합 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 그림은 루브르 미술관 으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여기 뤽상부르 궁전에도 미술관이 병설 되어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저 그림을 비롯하여 걸작품 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으며

뤽상부르궁전 은 현재는 프랑스 의회의 상원 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뤽상부르등 파리의 호화로은 궁전 이며 파리지안들의 사치스러운 삶 을 보며 문득 2,014년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탈리아 영화 “그레이트 뷰티”가 떠오릅니다.

 

 

영화 그레이트 뷰티 에서는 소위 유럽 상위 1% 사람들의 사는 모습 이 펼쳐지는 것이니!

 20대에 쓴 유일한 소설 덕분에 40년 동안이나 사교계의 왕 으로 군림하는....

 

 

 

젭의 65세 생일 파티 부와 명예, 지성과 외모 등 세상이 다 부러워하는....

상류층 인사들이 벌떼 처럼 모여들지만 젭이나 다른 상류층 인사

들도 겉만 번지르할뿐 속내를 들여다 보면 공허하고 권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특권층의 여유 를 즐기며 말만 이념 을 앞세우는 “리무진 좌파”부터

맨몸으로 돌을 들이받는 해괴한 퍼포먼스 를 벌이는 현대 예술가 에.....

 

 

영혼보다 요리에 관심이 더많은 추기경 하며 세속적인 성공 을 거둔 이들이

허위의식과 천박한 인성 이 2시간 동안 만화경 처럼 펼쳐지는 것이라....

 

 

 

하지만 2,014년도 노벨 문학상 은 이 도시 파리 시민인 파트릭 모디아노 가 수상했는데,

프랑스는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에 이어 15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를 배출했습니다.

 

 

한림원은 "파트릭 모디아노 는 붙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기억의 예술로 환기시키고

나치 점령 당시의 생활 세계 를 드러냈다"고 노벨 문학상 수상 이유를 설명했으니

이어 "모디아노는 이 시대의 마르셀 프루스트 이며 21세기 최대의 작가" 라고 덧붙였습니다.

 

 

모디아노 는 1945년 파리에서 유대계 이탈리아인 아버지 와 벨기에인 배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23세 때 소설 "에투알 광장" 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78년에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공쿠르상 을 수상했는데

노벨 문학상 일본인도 3명이나 수상 했으니 고은씨를 기대한 한국인들은 실망 이 컸네요?

 

 

그런데 문학상에 이어 경제학상도 프랑스 학자 가 수상했으니 장 티롤 툴루즈 1대학 교수로

그는 최악의 침체 를 겪고 있는 프랑스 경제 해법 “노동 시장 개혁”으로 꼽았습니다.

 

 

프랑스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스칸디나비아나 독일처럼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저 국가들은 복지정책 을 확대하는 대신 노동시장 을 과감하게 유연화 했습니다.

 

 

그는“프랑스 기업들은 정규직 직원을 뽑는 것을 두려워 계약직으로 채용 하고 있다”

“직원들에 대한 과도한 보호 가 오히려 고용 시장을 동결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주의 국가 미국 처럼 직원(노동자)을 쉽게 해고 해야 쉽게 고용할수 있다는?

 

 

티롤 교수 는 또 프랑스 정부를 개혁해 작은 정부 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가가 크면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다”고도 말했는데

그럼... 국가가 복지정책 을 너무 많이 하면 국가 재정이 어려워진다는 말 인가요?

 

 

궁전의 정원 에서 아름다운 조각품 들을 구경하고는 밖으로 빠져나오니.... 아마도

이 거리는 학생가 라고도 불리는 카르티에라탱 인가 본데 가이드북에서

오려낸 한글 시내지도 를 보며 몇블록을 걸어 올라가서는 드디어 팡테옹 에 도착합니다.

 

 

팡테옹 Pantheon 은 루이 15세가 병이 치유된 것을 신에게 감사하기 위하여 생트 주느비에브

교회 로 지었으나 뒤에 나라에 공헌한 위인들이 묻히는 국립 묘지 로 바꾸어 사용햇습니다.

 

 

“생트 주느비에브”훈족의 습격 으로부터 파리를 구한 수호 성녀의 이름

으로 팡테옹 뒤편에는 그녀를 모신 “생 테티엔 뒤 몽” 교회 도 있습니다.

 

 

1758년에 건물 기초가 세워졌고 프랑스혁명이 시작되던 1789년에 완성 되었는데

기둥이 있는 돔의 모양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마리니 후작 로마의 판테온 을 보고 감명을 받았으나 건축가 수플로는 자신의 목표는

“고딕 교회의 구조적 가벼움을 그리스 건축의 순수함과 조화 시키는 것”이라 했는데

  그리스 십자가 설계의 중앙 돔 과 네개의 트랜셉트 위에다가 구조적 공식을 결정했습니다.

 

 

팡테옹파리 카르티에 라탱 에 자리한 신고전주의 건축물로 1851년 푸코지구의 자전

증명하기 위해서 돔의 높이 를 이용해 저 유명한 추의 실험을 한 곳 이기도 합니다

 

 

저명한 예술가와 정치인의 묘 로 유명하니 미라보, 볼테르, 루소,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퀴리, 말로 등이 건물 지하에 안장 됨으로써 로마의 만신전같은 팡테옹 으로 불리웁니다.

 

 

나폴레옹 1세의 제정 시기에는 다시 교회 가 되었으나 그 후 왕실의 묘와 예배당

되기도 하고 파리 코뮌 때는 사령부 로 사용되는 등 수난의 역사 는 계속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모습은 1885년에 빅토르 위고 가 안치된 이후로 내부에는 19세기에 클로비스 왕,

생 루이, 잔 다르크 와 같은 영웅의 역사적인 에피소드 모티프로 벽화를 제작 합니다.

 

 

그중에서도 퓌비 드 샤반 “성 주느비에브”가 유명하며 중앙의 돔 천장 에는.....

1811년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성 주느비에브를 숭배하는 프레스코화 가 있습니다.  

 

 

지하 납골당의 입구 건물 뒤쪽 에 있으며 현재까지 70명이 안치 되었는데 근세에는

리 부처와 앙드레 말로 가 있으나 지금은 수선중이라 문이 닫혀 아쉽네요?

  골목길로 들어서니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보이는데 바로 유명한 소르본느 대학교 입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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