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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5 - 산마르코광장 두칼레궁전에서 영광을!

작성자콘스탄츠|작성시간21.01.18|조회수131 목록 댓글 8


 

 

베네치아 여행5 - 산마르코 광장의 두칼레 궁전에서 베네치아의 영광을 떠올리다!

 

 

 

5월 22일 아침에 베네치아 그랑 카날레  리알토 다리 에서 2번 바포레또 배 를 타는데

20여분간을 대운하 그랑 카날레 를 내려와서는 산 마르코 S.Marco 선착장에 도착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한 정거장 후인 산 차카리아 S. Zaccaria 에서 내릴수도 있습니다.

 

 

산마르코 선착장 에서 2~ 3분도 채 걷지를 않아서 바로 베네치아

에서 가장 큰 산마르코 광장 Plazza San Marco 에 도착

하는데, 이 광장은 세 방향이 대리석 주랑 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광장에는 100m의 종탑 500년 된 시계탑 이 있으며 일년중 건기인 겨울에

밀물이 들면 광장이 몇십센티미터는 물에 잠기기도 한답니다.

여행자 괴테 는 1787년 독일에서 마차를 타고 파비아에 이르러 배로 바꾸어

타고 여기 베네치아 에 도착해 잉글랜드 여왕관 이라는 호텔에 묵었다고 합니다.

 

 

그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전부 고귀함 으로 가득차 있다!

이 도시는 인간의 노력의 결정체 위대함과 존경

받을 가치가 있다” 라고 괴테는 베네치아를 높이 평가 했던 것입니다!

 

 

온통 비둘기가 뒤덮고 있는 광장 을 걸어 들어 가노라니.... 사시사철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붐비는 관광지 답게

오늘도 인산인해 를 이루는데 산마르코 대성당 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그 옆에 바다쪽 으로 붙어 있는 두칼레 궁전 Palazzo Ducale 부터 보기로 합니다.

궁전 옆 회랑에 있는 매표소에서 16유로 짜리 티켓을 사서는 입장을

하는데.... 여기 두칼레 궁전 은 베네치아 공화국 도제 Doge (원수)의 관저 입니다.

 

 

궁전의 내부는 무척 호화로우며 2층에는 틴토레토 가 그린 “천국” 벽화 가 있고

운하 건너에 있는 감옥 을 잇는....... "탄식의 다리" 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두칼레 궁전 안으로 들어가니 장방형의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건너편에 보이는 것은

산마르코 대성당 이고..... 그리스 신화 에서 유래하는 화려한 인물 조각상이

늘어선 바로크식 건축물 들을 일별하고는 오른쪽 건물로 들어서서는 계단을 오릅니다.

 

 

16세기에 유럽 인구 를 보면 스페인 800만, 포르투갈 100만, 프랑스 1,600만

베네치아를 제외한  이탈리아 1,100만 이고 독일 1천만 그리고

영국은 300만터키 는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제외하고도 1,600만명 이었습니다.

 

 

베네치아 본토 섬 인구가 불과 "15만명" 미만이었으며 육지쪽에

확장을 파도바, 베로나 및 베르가모등이 130만 으로...

육군은 오직 용병 이 있을뿐 "해군으로 지중해를 제패" 했던 것이라!

 

 

두칼레 궁전 은 천장이며 벽이 온통 금으로 치장 되어 세월이 흘렀건만 황금색

여전하며.... 그리고 벽에는 베네치아파 화가 들의 그림들이 많이 보입니다.

틴토레토 와 베로네제의 벽화며 파브리아노와 피사넬로며 젠틸레 벨리니의 그림이라!

 

 

 베네치아 원수 피사넬로 가 원수처럼 싸우던 신성로마 황제와 로마 교황을 초빙해 서로

화해를 시킨 그림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둔한 내 눈에는 들어오지를 않네요?

1479년 오스만 터키와 평화협정 을 맺었을때 화가 벨리니 콘스탄티노플에 초청 됩니다.

 

 

젠틸레 벨리니 콘스탄티노플의 오스만 터키의 궁전 에서 초상화

그림을 그려주어 술탄의 마음 을 사로 잡았는데..... 참수된

세례 요한의 목 을 보고는 술탄은 저 그림은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합니다.

 

 

목을 치면 혈관이나 신경은 베인 반동으로 안쪽으로 움츠려 드는데

"그림에서는 바깥으로 나와 있다" 는 것이라! 화가가 침묵 하자

터키 술탄은 바로 하인 노예 를 데려와 "목을 쳐서 증명" 해 보였답니다?

 

 

그 중에서도 역사가 취미인 내 눈을 바로 사로잡는 것은 거대한 크기의

이탈리아 지도 라...... 바닥에는 엄청 큰 지구본

보이는 것이.... 새삼스레 암스테르담의 네델란드 왕궁 이 떠오르네요?

 

 

특히나 아드리아해 북안 베네치아 인근의 지도 어지나 상세하던지 항해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라........ 그만큼 지도 에 관해 관심이 많았을 터 입니다?

 

 

상세 지도는 아드리아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지중해 너머 오리엔트와 터키 반도

멀리 흑해 까지 걸쳐 있어서 국제 무역 을 주름잡았던 베네치아의 상권 을 봅니다.

 

 

베네치아가 성장해서는 국가 원수 를 처음으로 선출한 것은 698년 인데

이후 원로원에서 간선 하다가.... 1289년에 시민들이

집회 를 열어 자코모 티에폴로 직접 선출하는 돌변사태 가 일어납니다.

 

 

이에 원로원 에 의해서 새로 선출된 피에트로 그라데니고

다른 나라의 위협에 대처하고자 개혁 을 단행해

1천여명 이 넘는 귀족들의 국회 를 만들어 정치를 안정시킵니다. 

 

 

1,000명이 모인 국회 원수 및 200여명의 원로원 의원 을 선출하고

여기서 추첨과 선출 을 통해 1년 임기의 원수 보좌관 6명 과

10인 위원회 및 40인 위원회 위원을 뽑아 국정을 맡겼던 것이지요.

 

 

정치가 안정되니 베네치아 는 1,100년 역사를 통해 반란이 단 2차례

일어났을 뿐인데 그마저 신속히 진압 했으며......

합의제 로 영웅을 허용하지 않으니 단 한건의 암살 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프랑스군을 격파 하고 프랑수아 왕을 포로 로 잡은

스페인등 유럽의 절반을 다스리던 신성로마 황제인 카를 5세 가....

베네치아 그리티 원수에게 이제는 중립 대신에 황제편에 서라고 강요 했을 때!

 

 

두분 군주는 모두 나와 친구 사이라 상념이 복잡한 것은 어쩔수

없으니....... 승리한 왕 과는 기쁨을 같이 나누고

불행에 빠진 군주와는 함께 울겠습니다외교사령 치고는 걸작 이라?

 

 

베네치아 는 천년 역사를 통해서 “바다와 결혼식” 이라는 축제를

계속했으니..... 화려한 의복 으로 치장한 원수

원로원 의원을 거느리고 그리스도 승천일 바다로 행차 하는 것이니?

 

 

수많은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여기 선착장에서 부친토르호 에 올라

리도 나아가서는... “너와 결혼한다, 바다여! 영원히

내것이어라”  엄숙하게 외치고는 금반지를 바다에 떨어뜨리는 것이라?

 

 

이러한 축제 같은 성대한 의식을 통해 바다와 결혼한 베네치아 목재와

유리를 수출하고 흑해에서 밀과 노예 무역 을 중계하며.....

오리엔트에서 금은 보석과 향신료 와 다마스카스 직물을 무역했던 것이라!

 

 

로마 교황의 "이교도와 무역금지" 에 대해서는 정교분리 로 대응하며

아드리아해를 내려가 그리스의 코르푸와 크레타 섬 그리고

키프로스 등지에 수많은 무역기지를 건설 했던 무역 대국 이라....

 

 

르네상스기 를 포함 9~ 17세기에 베네치아의 조선술은 세계 최고

자랑했으니 너비와 길이가 3배인 범선

8배인 노젓는 갤리선 대형 갤리선 갈레아차 를 건조했으니.....

 

 

1492년에 콜럼부스가 인도를 찾기 위해 탄 산타마리아호가 100톤 남짓

이고 훗날 미국에 간 메이 플라워가 180톤 인데 비해 당시

베네치아500톤급 로카 포르테급 배를 6척 이나 소유한 나라였습니다!

 

 

항해 대국이니 "바다 바람" 에 대해 북풍은 트라몬타나(산너머) 요, 북동품은 그레코 (그리스),

 동풍은 레반트(레바논), 남동은 시로코(시리아), 남서풍은 리베치오요....

서풍은 포넨테(태양이 지는곳),  남풍은 후일 오스트레일리아의 어원이 된

아우스트로요, 북서풍은 마에스트랄레(스승 로마방향) 등 다양하고 재미있게 불렀던 것이지요!

 

 

예전에 기술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아르테 Arte 가 지금은 예술

 쓰이는데 “ 태초에 장사 가 있었나니....”

라고 말할법한 베네치아인들은 천상 이코노믹 애니멀 이었어라....

 

 

13세기가 되면 200톤급 범선은 라틴 돛 을 달다가..... 삼각돛을

장착해 역풍에도 항해 할수 있었다는데 노잡이가 100여명

이나 필요한 갤리선은 전투선 이자 귀중품 수송 위주였다고 하네요?

 

 

항해를 하다 보면 풍랑을 만나거나 목적지에 전염병이 돌거나 전투가 벌어지는

돌발 상황 이 벌어져 항로를 변경 해야할 상황에 처하는데...... 이 때

베네치아는 선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고 선장과 배 소유자, 화물을 실은

상인 대표 2명 4명의 합의제로 결정 했다니 민주적인 공화국 백성 이었던 것이라?

 

 

그러니까 제노바인 은 평소에는 상인 이지만 예기치 않은 난관을

만나 손해를 보게 되면....... 해적으로 돌변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베네치아인들은 끝까지 상인 이었던 것이라!

 

 

베네치아는 이슬람 오스만 터키 와는 수없이 전쟁과 평화를 되풀이

하여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 하기도 하고

또 패하여 에우보이아, 키프로스 크레타섬 을 뺏기기도 합니다.

 

 

베네치아는 제노바와는 지중해 상권을 두고 4차례 전쟁 을 벌였는 데,

1204년 제4차 십자군때 비잔틴 제국을 멸하고

라틴제국 을 세우면서 베네치아는 콘스탄티노플의 상권을 독점 합니다.

 

 

이후 이스라엘 북단 아코 에서 제노바인들이 베네치아 상관을 습격 하니

1257년에 베네치아는 즉각 함대를 파견하여......

성전 기사단과 연합 하고 프랑스 기사들의 후원을 받는 제노바를 쫓아냅니다!

 

 

다음해 1258년 제노바 는 몽포르 후작의 후원을 받으며 50척의 갤리선과 4척의 범선

동원하니, 베네치아는 대소 53척 을 출항시켜 아코(아콘, 아크레)에서 승전 하여

아코의 중앙 광장에 서 있던 양각 기둥 2개를 여기 산 마르코 광장 에 옮겨 왔다던데.....

 

 

1261년에 제노바의 후원으로 라틴제국을 멸하고 비잔틴이 복구 되니 제노바가 승세

탑니다! 3년후 제노바는 동방으로 가는 베네치아 상선단을

나포했으며 1298년에는 쿠르촐라 해전 에서 베네치아가 패하니 저

마르코폴로 도 포로가 되어 제노바 감옥 에 갇혀 동방견문록 을 저술했던 것이지요!

 

 

페스트 가 창궐하는 가운데 비잔틴 을 두고 3차 해전을 겪은후에는 

 1378년에 베네치아가 다다 넬스 해협의 섬에 요새

구축하니....  4차전이 일어나 안치오에서 베네치아 함대가 패합니다.

 

 

다음해에 제노바파도바 및 헝가리 와 연합하여 이 도시 베네치아를 포위 하고

서쪽 육지 와의 경계점인 키오지아를 점령 하니 절체절명의 위기라.... 포위된

베네치아는 개펄을 장벽 으로 4개월의 농성 끝에  새로 건조된 함대로 수로에 돌을

실은 배를 가라앉혀 제노바와 파도바군을 역포위하여 8개월후에 항복 을 받았던 것이지요. 

 

 

 패배한 제노바 는 자중지란을 일으켜 네가문이 두패로 갈라져 싸우다가 정권을 차라리

외국인 밀라노 공 에게 맡기게 됩니다. 이리하여 4대 해운강국은 아말피와

피사가 탈락한데다가 제노바 마저 몰락하니 이제 베네치아 전성시대 가 열렸던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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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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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콘스탄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1.23 베네치아! 베네치아......
    한때 지중해 바다를 주름잡앗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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