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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르 2 - 5개 우물광장 성문에서 베네치아를 보다!

작성자콘스탄츠|작성시간21.02.15|조회수120 목록 댓글 2


 

 

자다르 2 - 자다르 장거리 버스터미널을 다녀와 5개 우물광장 성문에서 베네치아를 보다!

 

 

 

우린 어제 5월 22일 밤에 이탈리아 동부 안코나 에서 페리 를 타고 밤새 아드리아해 바다

건너서는 아침 7시에 크로아티아 북서부 리아스식 해안이 중첩한 항구 자다르 에 내립니다.

 

 

 

걸어서 론리 플래닛 프렌즈 동유럽 에서 오려낸 시내지도 한 장을 들고 호텔 을 찾는데

 Ulica Nikole Matafare 2 번지에는..... 그냥 평범해 보이는 문 닫힌 아파트 뿐이네요?

 

 

우리가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한 원베드룸 오션뷰 아파트

 Hotel Central Royal Apartments

찾을수가 없으니.... 한국에서 거는 방식대로 전화를 합니다.

 

 

 

10여분을 기다려서는 전화를 받고 나온 청년 을 따라... 나로드니 광장 근처

 "Malo Misto" 레스토랑 으로 들어가는 데 여기가 임시 사무실

모양으로 4시간 후에 다른 아파트 로 안내해 주겠다기에 시내 관광을 나섭니다.

 

 

 

200유로를 7.4쿠나 환율로 환전한 다음에 생각하니... 내일

새벽에 스플리트 가는 버스표 를 미리 예약해 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청년(사장?) 에게 터미널 위치 를 물어 봅니다. 

 

 

여기 나로드니광장은 지금은 다리 로 연결되지만 성벽으로 둘러쌓인 같은 구시가지

버스는 신시가지 까지 가야 하니 멀기 때문에 택시 타는 곳 으로 데려다 주겠답니다.

 

 

청년을 따라 나로드니 광장 에서 동쪽으로 몇 블록을 걸어 시장

지나 성문을 빠져 나와서는 다시 성벽 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데.... 배가 많은걸 보니 여기가 동쪽 부두 인 모양입니다?

 

 

저만치 택시 정류소 를 가리키며 아마 2유로 쯤 할거라며 돌아

서기에 울 마눌과 둘이 주차 해 있는 택시에 올라

Bus Station  :  Autobusni Kolodvor 로 가자고 말합니다.

 

 

미리 Autobusni Kolodvor 라고 인쇄해온 종이 를 내미니 고개를 끄덕이는데

섬과 육지 사이에 배들이 늘어선 구시가지 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달립니다.

 

 

미터기도 꺽지 않은채 한 10여분을 달려서는 여기서 3km 쯤 남쪽 신시가지 에 자리한

장거리 버스 터미널 에 내리는데....... 녀석이 40쿠나(약 5 유로) 를 달랩니다?

 

 

바가지 인가 싶어 황당한 데..... 그럼 우리가 청년에게서 들은게 2유로

아니고 5유로 였던가 싶은 생각도 들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쩌랴?


 

 

돌아올 때도 택시를 타서는 처음 장소 보다 좀 못미쳐 구시가지 입구

내리니 거리가 줄어든 탓인지 30쿠나(4유로)

받는 것을 보면.... 외국인에게 비싸게 받는 협정가격 인 모양이네요?

 

 

여기 좀 황량해 보이는 장거리 버스 터미널 맞은편에는

“Hyundai 현대” 자동차 판매 영업소 가 있어

이역만리 머나먼 곳에서 보는지라... 반가운 마음 이 듭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을 지나 사무실로 들어가서는 Liburnija

창구에서 스플리트 못미쳐 프리모스텐 으로

가는 버스표를 1인당 72 쿠나( 약 10유로) 씩에 구입 합니다.

 

 

여기 장거리 버스 터미널 에서는 북유럽 처럼 화장실 을 이용하는데도 2쿠나

(400원) 씩을 받는게 소액이긴 하지만...... 영 마음에 차지가 않네요?

 

 

 

그러고는 다시 택시를 타고 원래는 "섬" 이었던 구시가지 입구 에 내리는데

이곳은 다섯 개의 우물 광장  Trg Pet Bunara  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Trg Pet Bunara 은 16세기에 베네치아인 들이 오스만 투르크의 침입

대비해 팠다고 하는 데...... 일렬로 늘어선 모습이 장관 입니다.

 

 

 

그러고 보니 고대 로마의 신전 기둥 을 지나

그 아래에는 오래된 성문 이 보이는 데...

 

 

견고한 성채 도시 자다르(자라) 에서도 남문 에 해당하는 성문

코프네나 브라타 Kopnena Vrata ( Town gate ? ) 라고 부릅니다. 

 

 

여기 성문 바깥에는 아프리카든 어디든 예전의 로마 도시 가 그러하듯이

산에서 부터 이어져온 수로 는 일부 남아 있으나,

로마 원형경기장 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수가 없답니다!

  

 

그런데 기이한 것 은 그 성문에 "날개를 단 사자" 가 새겨져 있으니......

저건 "베네치아의 수호신" 성 마르코의 상징 이라 그럼 어떻게 된 것일러나?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보는 도시 자다르 는 예전에 로마시대에 기원

을 둔 도시로 원래는 "자라" 라고 불리었는 데......

베네치아 가 해상무역으로 성장하면서 그 영향 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후 1200년경 자라 는 남진해온 헝가리에 굴복해 그 아래로 들어가니

베네치아해상무역 루트의 중심인 자라 를 잃게되어 속앓이 를 합니다.

 

 

이 무렵인 1198년에 프랑스왕인 필립 오귀스트 조카 상파뉴 백작

22세의 청년 티보 성주 상파뉴에서 마상 창시합 을 주관하게 됩니다.

 

 

 

당시 프랑스 상파뉴 마상 창시합 에는 많은 귀족들이 참가 했는데 그중에는 영국왕

리처드의 조카 블루아 백작인 27세 청년 루이(리처드 조카) 도 있었습니다.

 

 

 

이 대회에 로마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 가 보낸 수도승 이 나타나서  

성지 예루살렘 수복 을 위한 "제4차 십자군"

제창하니 귀족들은 모두 젊은 혈기로 분기탱천해 참가를 맹세 합니다.

 

 

베네치아 십자군 수송 계약 에 따라 엄청난 숫자의 배를 새로 건조 했지만,

주장인 상파뉴 백작이 27세 젊은 나이로 죽으면서 베네치아에

집결한 4차 십자군의 숫자는 예정의 3분지 1 에 불과하니 심각한 재정문제 라...

 

 

노회한 베네치아십자군이 배 운임을 지불하지 못하는 것을 약점으로

잡아 우선 아드리아해의 헝가리 도시인 자라를 점령 주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 삯을 탕감해 주겠다고 십자군을 유혹 하게 됩니다.

 

 

프랑스 십자군 은 베네치아 원수 엔리코 단돌로 를 따라 같은 기독교

국가인 달마티아의 자라를 침략하여 도시를 함락하는데

이에 교황청이 진노 하자, 베네치아의 단돌로는 이왕 이렇게 됐으니......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이집트를 공격 하기 전에 쫃겨난 비잔틴 황태자를 복위 시키기

위해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을 공격하여 전리품

나눈 후에 새 비잔틴국의 지원 으로 이집트를 공격하자고 십자군 지휘부를 꼬드깁니다.

 

 

배 삯인 돈이 떨어진 몽펠라토 후작, 플랑드르 백작, 블루아 백작, 생폴 백작

십자군 지도부는 비잔틴 함락 후에는 교황청이 간절히

바라는...  "그리스 정교를 로마 카톨릭" 으로 합친다는 유혹 에 넘어 갑니다.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서 겔리선 50척, 범선 50척, 말 수송용 평저선 80척에

화물선 20척 등.... 합계 200척 에 이르는 전대미문의 대함대

1202년 8월 하순에 베네치아를 출항 해서는 이스트리아 반도 폴라 에 기항합니다.

 

 

4차 십자군은 폴라 에서 물과 식량 그리고 노잡이를 충원한 다음에

남진하여 11월 10일 이 도시 자다르(자라) 이르니....

5일째 총공격에서 바다쪽 성벽이 허물어지니 도시는 마침내 함락 됩니다.

 

 

 

이에 격분한 교황십자군 전체를 파문 에 처하니 당항한 프랑스

십자군은 사죄 사절을 로마로 보내 간신히 용서를 받지만....

이미 정교분리 로 대응해온 베네치아는 파문 따위는 개의치 않습니다!

 

 

 

이제 베네치아의 늙은 원수 단돌로 십자군 수뇌부를 꾀어 이집트로

가기 전에, 몇년 전에 삼촌의 반란으로 왕좌에서 쫃겨난

비잔틴 황자 알렉시우스 복위 시키기 위해 비잔틴으로 진격합니다. 

 

 

제4차 십자군이 침공해 치열한 공방전 끝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 되면서 2천년 동로마

비잔틴 제국은 무느지고 프랑스 귀족들은 라틴 제국 을 세워 왕과 제후

 되어 주저앉으니 십자군은 소멸 합니다. 화장실 갈때와 돌아올때는 다르다고 했던가요?

 

 

10년 후인 1212년 에는 "바다가 갈라지리라" 는 계시를 받은 니콜라스 의 5천명 무리와

또 편지를 든 양치기 티엔 의 3만에 달했다는 두 무리의 소년 십자군 중도에

포기 하거나 노예로 팔려 갔다던가요? 해서 성지탈환이라는 종교적 열정은 사라져간 것이라!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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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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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1.02.15 날이 흐리네요
    건강하시고
    열심히 운동하고..ㅎㅎ
  • 답댓글 작성자콘스탄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2.15 어제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으니.....
    오늘은 햇살이 따뜻할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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