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베르가마2 - 케이블카로 산 정상의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다!

작성자콘스탄츠|작성시간21.04.24|조회수131 목록 댓글 0

 

베르가마 여행2 - 베르가마에서 케이블카를 타고는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다!

 

 

여행 21일째인 6월 2일 이즈미르 의 올림피야트 호텔에서 8시 반에 나와 비스마네 지하철

역에서 메트로를 타고는 6정거장 보르노바 Bornova 역에 내려 505번 버스를 타고는

이즈미르 오토가르 Izmir Otogar 에 도착하는데 시내에서 302번 버스 를 타면 바로 옵니다.

  

 

 버스회사 사무실에서 10리라를 주고 표를 끊어 베르가마 Bergama 라고 적힌 20인승 중형

버스를 타고 2시간만에 교외에 자리한 첫 번째 오토가르를 거쳐 15분을 더 가서는

시내에 2번째 오토가르이고 5분여 더 가서 3번째 올드타운 오토가르 못미쳐 내립니다.

 

 

다시 마을로 들어가서는 10여분 골목길을 올라 아크로폴리스 Akropolis 오르는

케이블카 정류소에 도착해서는 왕복 15리라 하는 케이블카 를 타니

오르면서 보자니 베르가마 Bergama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여 경치는 좋습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보니 도중에 보이는 성벽과 건물 잔해는 아크로폴리스 중시 인 것

같은데 좀 더 오르니.... 건너편에 댐을 막은지라 푸른 호수 가 눈에 들아옵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가게를 지나 매표소에서 25리라 하는 입장권 끊고는 1리라

짜리 물과 2리라 짜리 콜라를 산 다음 화장실에 들러니 요금을

내야한다는데..... 아크로폴리스 입장권 이 있다니까 그냥 들어가라고 합니다.

  

 

 언덕을 올라 아크로폴리스 Akropolis 상시 Akropol ( 언덕을 내려가며 중시,

하시가 있었습니다 ) 에 서니 2천년 세월이 흐른지라 성한 건물을

보기 힘들 정도로 폐허로 변했는데 입구 옆에서는 아직도 발굴이 진행중 입니다.

 

 

페르가몬 Pergamon 은 이즈미르 북쪽 80km 미시아에 소아시아 그리스 계통인 헬레니즘

국가 중 하나로 고대 트로이 왕국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아킬레스의 아들

네프톨레무스 와 결혼해 나은 아들 “페르가무스” 가 성을 쌓아 만든 도시에서 유래합니다.

 

 

 그럼 트로이 전쟁 에서 그리스의 용사 아킬레스 가 왕자 헥토로 와 결투를 해서 죽이고 성을

함락한 다음에 그 아내를 전리품 으로 빼앗아 그리스로 데려와 며느리 로 삼았다는

것일까요? 거기서 태어난 손자 가 다시 에게해를 건너 소아시아에 상륙해 도시를 건설했다는?

 

 

고대에 지중해는 두 민족이 자기 나라를 떠나 신천지로 가서는 새로운 도시국가를 세웠는데

레바논에 해당하는 페니키아 는 아프리카 북쪽 지방으로 나아가 카르타고 를 세웟으며

시칠리아에 진출했고 그리스인 은 이탈리아 남부와 터키의 서해안 에 흑해로 뻗어나갔지요!

 

 

 BC 323년 페르시아 제국 을 쳐부수고 세계 제국을 이룩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젊은 나이에 말라리아로 급서한자 그 영토는 부하 장군들에 의해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와 시리아, 이집트 로 나뉘는데 여긴 리시마코스의 마케도니아 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리시마코스 가 BC 3세기 전반에 동쪽으로 진격해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와 싸우다

전사 하자 그의 보물과 자금 관리 를 맡았던 필레타이로스가 독립 을 쟁취하는데....

 

 

 

 

여기 산 정상에다가 천혜의 환경을 갖춘 특성을 이용해 성벽을 건축하는 등 군사

요충지 를 만들었고 아들인 아탈로스 1세때 페르가몬 왕국 을 칭하게 됩니다. 

  

 

그후 에우메네스 2세 때가 최전성기로 로마제국과 셀레우코스왕조 시리아가 전쟁 을 할때

로마편에 참전 해서는 큰 전공 을 세워 BC 190년 로마로 부터 셀레우코스 안티고스조가

지배하던 소아시아를 양도 받으니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번영을 누립니다.

 

 

그러고는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계 2위라는 페르가몬 도서관 을 세우는데 양피지 

뜻하는 영어 “parchment” 의 어원은 라틴어의 “charta Pergamenum”

 "페르가몬의 종이" 이니 에우메네스 2세때 페르가몬에서 양피지를 발명 했기 때문입니다.

  

 

 BC 133년 후손이 없이 임종을 맞이한 아탈로스 3세의 유언에 따라 왕국을 로마에 양도 하자

로마제국은 소아시아 라는 이름으로 속주 로 삼았는데 수도 페르가몬 은 그후에도

오래 번영해 제우스 신전· 왕궁· 도서관과 “빈사의 갈리아인” 등 헬레니즘 미술을 남겼습니다.

  

 

아들이 없어 조국을 남의 나라에 넘긴다는게 동양인들로서는 잘 이해가 안되는데 터키나

아랍, 동양은 부인이 여럿이라 아들이 많아 탈이지만 "유럽은 1부 1처제" 이니

아들이 적은데다가 정실 이 아닌 다른 부인(첩)의 자식 은 아들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엘리자베드 여왕 을 낳는 앤불린 은 헨리 8세가 정부(후비)를 삼으려고 집요하게 유혹해도

정비로 삼지 않으면 응할수 없다고 버텨서 정비인 스페인의 왕녀 캐서린과 이혼 하면서

로마교황청의 반대로 영국은 가톨릭과 결별 하고 영국성공회 라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지요?

 

  

 또 동양은 장남에게 나라 전부를 물려주지만 유럽 게르만족 전통은 자식들에게 나라를 쪼개어

주는데 자식이 없으면 서로 왕이 되려고 처참한 내란 이 일어날 터이니 그럼

진짜로 나라가 망하게되는지라 이를 염려한 아탈로스 3세가 나라를 로마에 넘긴 것이네요?

  

 

 아크로폴리스 상시 Akropol 를 둘러보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지라... 대개는 폐허로 변한

가운데 제우스의 출생지인 탓인지 제우스의 제단 이 있기로 저만치 보면서 올라가니

기둥 몇 개가 서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트라야누스 신전 Temple of Trajanus 인가 봅니다.

 

 

신전은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 때 착공해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완공된 제우스 신전 으로

아크로폴리스의 대표적 건축물로 로마와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한데 아래에 연결된 통로인 좁은 회랑을 따라 내려가면 원형극장 이 나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기단이나 기둥들 중에 일부는 고대의 것이 아니고 새로 만들어 넣은

것인데 2천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앞에 무느져 내린지라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