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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가마5 - 이즈미르로 돌아와서는 투르크족을 회상하다

작성자콘스탄츠|작성시간21.05.08|조회수168 목록 댓글 4

베르가마 5 - 베르가마에서 버스로 이즈미르로 돌아와 투르크족을 회상하다!

 

 

6월 2일 이즈미르 에서 메트로를 타고는 보르노바역에 내려 505번 버스를 타고는 이즈미르

오토가르  2층에서 베르가마행 버스를 타고 베르가마 Bergama 에 도착해서는 걸어서

케이블카 를 타고 아크로폴리스 상시 Akropol 에 내려 페르가몬 왕국 유적지 를 구경합니다.

 

 

 내려와서는 크즐 아블루 Kizil Avlu 를 보는데 붉은 벽돌로 건설된 까닭에 “붉은 정원”

이란 뜻의 크즐 아블루는 원래는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때에 이집트 사라피스

여신의 신전 으로 세워진 것을 기독교가 공인된후 버가모 교회 로 사용되었던 건물 입니다.

 

 

 그러고는 택시를 타고 아스클레피온 Asklepion 으로 가는데 B.C 4세기

헬레니즘 시대 환자를 돌보던 의료 시설 로 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 를 기리는 신전 에서 출발했기에 성스러운 곳이라고 합니다.

 

 

“신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죽음은 이 곳에 들어갈 수 없다” 는 글귀가 새겨진 기둥을

따라 성스러운 길을 지나가면 도서관, 신전, 원형극장 등 여러 시설이 나옵니다.

 

 

 아스클레피온 이란 이름은 건강과 약 치료의 신 이며 독사로 상징되는 아스클레피오스

부터 따왔는데 물, 진흙, 스포츠, 연극, 도서관 등으로 병을 고쳤다고 합니다.

 

 

베르가마 고고학 박물관 Bergama Arkeoloji Muzesi 은 1차 세게대전 이후 터키 공화국

성립 후에 발굴된 출토품이 주로 진열되어 있잇는데 승리의 여신 니케상,

아스클레피온 신에게 바친 황금귀 등이 있다지만 시간이 없으니 구경하지는 못합니다.

 

 

줌후리예트 광장 근처에 베르가마의 의사 로 서양의학을 집대성하여 르네상스 시대까지

유럽 의학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물 갈레노스 Galenos 동상만 보고는

이즈미르 로 되돌아갈 시간이 바쁘니 마음에 여유가 없는 탓인지 그만 발길을 돌립니다.

 

 

갈레노스 외에 사티로스 와 같은 유명한 의사 들이 이 도시 베르가마(페르가몬) 에서

활약했으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도 이 도시에서 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베르가마에 3곳 오토가르 중에 구시가지 에 있는 올드타운 오토가르 를 찾는데

엉뚱한 곳을 몇바퀴 돌았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참 오래된 골목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버스표 를 끊어 기다렸다가 오후 3시 반에 중형 버스에 오르는데 손님이 적어

이래가지고 밥이나 먹을까 걱정했더니 불과 몇분만에 다시 신시가지 에 위치한

중간 오토가르 에 도착해 손님을 태우고는 시내를 빠져나가다가 다시 손님을 더 태웁니다.

 

 

첫 오토가르 를 출발한지 25분쯤 되어 4시에 들판에 홀로 자리한 큰 오토가르 에 들러는데

이스탄불에서 이즈미르 로 가는 원거리 대형 버스 들은 승객을 하차시키고 바로

떠나는지라 30분에 한 대씩 운행한다는 순환 버스를 타고 베르가마 시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중형 버스에는 손님이 가득찼는데 들판을 달리는중에 하루종일 강행군

에 피곤했던지 마눌이 졸더니 내 어깨에 기대고 잠이 들었기로 문득

황인숙의 행복한 시 에 나오는 이수익 님의 시  “어느밤의 누이”  가 떠오릅니다.

 

 

한 고단한 삶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혼곤한 잠의 여울을 건너고 있다.

밤도 무척 깊은 귀가길,

 

 

전철은 어둠 속을 흔들리고...

건조한 머리칼,해쓱하게 야윈

핏기없는 얼굴이

어쩌면 중년의 내 이종사촌 누이만 같은데

 

 

여인은 오늘 밤 우리의 동행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어깨에 슬픈 제 체중을 맡긴 채

송두리째 넋을 잃고 잠들어 있다.

 

 

어쩌면 이런 시간쯤의 동행이란

천 년만큼 아득한 별빛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잠시 내 어깨를 빌려주며

이 낯선 여자의 오빠가 되어 있기로 한다.

 

 

전철은 몇 번이고 다음 역을 예고하며

심야의 지하공간을 달리는데...

려서는 어둠이 내릴무렵

 

 

그러는 중에도 버스는 계속 달려서 오른쪽으로 바다 가 나타나고 도시가 이어지더니

출발한지 두시간이 좀 넘어 드디어 이즈미르 오토가르 İzmir Otogar 에 도착합니다.

 

 

1층으로 내려와 오토가르 밖으로 나가니 버스 정류소인데 지하철역인 보르노바 Bornova

역으로 가는 204번과 505번 버스는 그냥 보내고 그후 도착한 302번 버스 에

타는데 이 차는 이즈미르 시내 까지 가니 중심지로 기차역인 바스마네역 에 내리면 됩니다.

 

 

도중에 휠체어 를 탄 장애인 버스에 타니 발받침이 내려와 도로에 바짝

붙는지라 올라타고 그러면 다시 받침이 제 위치로 올라오고

버스는 출발하는데....... 옆 사람이 나서서 도와주는 모습을 구경합니다.

 

 

 이윽고 이즈미르 바스마네 Basmane 역 정류소에 도착해 역을 지나 거리를 걸어 구경하고

어제 보았던 작은 가게인 "Bufe" 에 들어 에페스 맥주 를 6리라를 주고 사서

올림피야트 호텔 로 돌아와서는 마눌이 휴대한 전기 남비 로 밥을 해서 저녁을 먹습니다.

 

 

밥을 먹은후 텔레비전 을 보는데 화면에 한시간 이상 이어지는게 우리로 같으면

역사 드라마 인데 깊은 산골인데다가 아주 소박한 것을 보니 투르크족

초창기가 배경 인 것 같으니... 문득 이들의 조상인 돌궐족 突厥族 이 떠오릅니다.

 

 

돌궐 突厥 은 흉노의 후예 로 6세기 중엽부터 200년간 몽골고원에서 활약한 유목 튀르크

(Türk) 족으로 그 음을 딴 한자 인데 알타이산맥에서 유연에 소속되어 있던중 552년에

아사나씨의 족장인 부민 이 유연과 철륵을 격파하고 독립하여 일리가한 이라 칭하였습니다.

 

 

부민의 동생 서돌궐의 이스테미 야브구 는 알타이 산맥에서 이식 호수와 톈산 까지 진출하며

사산조 페르시아와 협력해 에프탈을 물리친 실크로드를 장악한 사산조 페르시아

대항해 동로마 비잔틴과 협력 하는데...... 흑해 북부 연안의 크림 반도 까지 영토를 확장 합니다.

 

 

돌궐 은 3대 무칸 때 동쪽으로는 만주에서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에 까지 세력이 미쳤으나

이스테미 야브구의 아들 타르두는 동돌궐의 칸인 이쉬파한에게 내란 을 일으키니

돌궐은 582년 동서로 갈라진후 동돌궐은 585년 당나라에 복속 됐다가 659년에 망합니다.

 

 

서돌궐 은 당나라가 분열을 획책하니 타르두는 반란으로 603년 투유훈족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고 659년 당나라에 복속 됐는데 투르크족(돌궐)은 681년 쿠툴룩 이

흩어진 투르크족을 결집시켜 제2차 돌궐 제국 을 건설하고 아들 카프칸이 중국을 공격 합니다.

 

 

696년 당나라는 키르기즈족, 오노크족 등과 연합하고 투르기쉬나 카를룩 등 여러 투르크

부족들을 돌궐에 대항해 싸우도록 선동 하니 돌궐의 카프간 은 이들 응징 에 나섭니다.

 

 

 하지만 응징 중에 중국의 지원을 받은 투르크 부족인 바이르쿠족에 의해 살해 된후

제위를 차지한 빌게 칸은 중국을 공격 하지만 결국에는 745년 위구르 에 망합니다.

 

 

  그후 투르크족 유민 들은 오구즈 투르크 (Oghuz Turks) 일족에 속해 있다가

드디어 서쪽으로 이동 하는데....... 그 오래전에 이미 카스피해

흑해 까지 먼저 이동해 정착한 투르크족 도 있었으니 다시 서로 섞입니다.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오구즈 족의 카칸 야브구 는 9세기 중반 이슬람 제국의

경계인 카스피해와 아랄해 연안에서 거주하다가 이슬람 을 받아 들입니다.

 

 

10세기에 이르러 오구즈족의 일파인 셀주크족 은 페르시아의 호라산 지방으로 이주해

수십년 간 페르시아의 문화와 전통 을 받아들이며 현지인들과 혼혈 을 이루었습니다.

 

 

셀주크 왕조 를 건설하게 되는 투그릴 베그 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진출해서 가즈나왕조를

격퇴하고 사만 왕조를 병합 한후 1043년 이스파한을 함락함으로써 페르시아를 장악 하고

1055년 바그다드 에 입성하여 부와이흐조 로 부터 "이슬람세계의 지배권" 을 넘겨받습니다.

 

 

 셀주크 투르크 는 알프 아르슬란 과 아들 말리크 샤 때에 군사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절정에

 달했으니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을 장악하고 파티마 왕조를 이집트로 축출 하며 11세기

말에 이르러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 합니다.

 

 

 1071년 8월 셀주크의 술탄 알프 아르슬란 아르메니아 를 점령하고 에데사를 포위 한후 3만

기마군을 이끌고 터키 동부 반(Van) 호수 북방에서 벌어진 만지케르트 전투 에서 7만여

동로마 비잔틴군을 참패 시키고는 황제 로마누스 디오게네프를 포로 로 잡는 대승을 거둡니다.

 

 

비잔틴군은 숫자는 많았으나 용병 이 많았고 셀주크군을 포위하기 위해  요셉 타카네이오티스

에게 3만을 떼어 주어 우회 시켰는데 전투에서는는 미아 가 되어버렸으며 본대 4만중에도

투르크인 용병이 달아나고 부하 두카스가 퇴각 하니 황제는 역습을 받아 전멸 했던 것입니다.

 

 

 승리로 셀주크족 은 여세를 몰아 소아시아 로 쏟아져 들어오니 아나톨리아 전역이 이슬람화

되었으며 바다를 건너 유럽에 침입 하니 위협을 느낀 비잔틴제국의 요청 으로

로마 교황청이 주도한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핑계 로........ 십자군 전쟁 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래토록 계속된 십자군 전쟁이슬람 살라딘의 활약으로 실패 했으나 셀주크는 몽골 

에게 점령 되어 망하는데.... 이후 셀주크족의 일족 인 오스만 투르크 가 다시 

일어서는데, 아나톨리아와 중앙아시아를 장악한 오스만 투르크 는 비잔틴을 포위

했다가 갑자기 동쪽에서 침입해 온 몽골의 후예 티무르군 에게 패해 그 속국 이 됩니다.

 

 

하지만 오스만투르크는 절치부심기독교 백인 소년 들을 붙잡아다가 이슬람교

개종 시킨후...... 군인으로 훈련시켜 만든 예니체리부대 의

맹활약으로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하고는 세계 제국 이 되었습니다.

 

 

그리스와 세르비아등 발칸 반도와 헝가리며 불가리아 까지 점령하고 오스트리아 수도 빈 

까지 포위 하는등 맹위를 떨치던 오스만투르크 도 산업혁명후 근대화 과정 에서 

예니체리 부대를 해산 하는데 텔레비젼 화면은 저들 예니체리 군인들의 저항 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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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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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1.05.08 다시가보고 싶네요.
    축복 받은 곳에서
    사진 찍고싶네요
  • 답댓글 작성자콘스탄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5.08 배낭 여행자의 천국은.......
    크로아티아와 터키인가 합니다!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로마유적이 많으며
    물가는 싸고 사람들은 친절하다는.......
  • 작성자돌고래왕 | 작성시간 21.05.08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콘스탄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5.08 감사는 제가 드려야.......
    언젠가 다시 찾을 날이 있을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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