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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7 - 셀리미에병영에서 나이팅게일을 생각하다!

작성자콘스탄츠|작성시간21.06.10|조회수121 목록 댓글 4

이스탄불 여행7 - 위스큐다르 하렘의 셀리미에병영에서 나이팅게일을 생각하다!

 

 

6월 3일 이스탄불 공항 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점인 예니카프 Yenikap 역에 내려 

근처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트램을 타고 에미노뉴 Eminonu 에

내려서는 다시 바푸르 라고 불리는 페리 를 타고는 보스포루스 해협 을 건넙니다.

 

 

 아시아쪽인 위스퀴다르 Uskudar 에 내려서는 처녀의 탑  크즈 쿨레시 Kiz Kulesi 를 지나

해변에서 “1543” 이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는........ 1453년 셀주크 투르크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니 천년 영화를 가진 동로마 비잔틴제국 최후 를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해안을 따라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여기 위스퀴다르 아래쪽 

하렘 Harem 이라고 부르는데..... 앙카라등 아나톨리아 로 가는

장거리 버스 터미널 인 하렘 가라쥐  Harem Caraji 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렘에 있는 셀리미에 병영 Selimiye Kislasi 은 1853년 크리미아 전쟁

때에 사용되었던 병원 으로.... 그 유명한 영국인 간호사 나이팅게일 이

 활약하였다는데.... 탑은 그녀를 기념하는 박물관이며 셀리미에 자미도 있습니다.

 

 

 

하렘에서 좀더 내려가면 카드쿄이 Kadikoy 로 고대 그리스 시절에는 카르케돈이라

불렸다는데 아시아측에서 가장 멋진 쇼핑가로 바으다트 거리는 가로수

길이며 옆에는 아나톨리아로 가는 기차 시발역인 하이다르파샤 기차역 이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먼저 나이팅게일의 흔적을 찾아 셀리미에 병영 Selimiye Kislasi 을

찾아가는데 자연히 160여년전에 일어난 크림전쟁 Crimean War 을 떠올립니다.

 

 

1853년에 전투가 시작되어 4년간 지속된 전쟁은 오스만 투르크 를 향한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사르데냐

각국의 연합군이 터키를 도와 크림 반도와 흑해에서 러시아와 싸운 전쟁 입니다. 

 

 

크림반도 라면 우크라이나 땅인데 얼마전에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러시아계가

주민투표를 거쳐 우크라이나에서 분리해 러시아에 합병 을 요청하자

푸틴 대통령 이 군대를 파견해 서방국가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합병한 바로 그 땅입니다.

 

 

 

크림전쟁 은 나폴레옹 전쟁후 유럽 국가끼리 처음 벌인 전쟁으로 러시아는 패전후에 본격적

으로 근대화를 추진하게 되는데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이 야전병원 에서

활동하여 간호학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여성들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열었습니다.

 

 

크림전쟁의 복병은 전염병 이었으니 콜레라 는 1840년에 인도를 출발해 1863년까지

유럽, 아시아, 미국 등으로 퍼져나갔으니 프랑스군은 출발 전부터

콜레라의 공격 을 받았는데 질병은 점차 강해져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위생과 의료사정이 열악했기 때문에 질병이 퍼졌지만, 음식과 약품이 부족한 것도 한몫했으니

 연합군과 러시아군 모두 멀리서 군수품이 전달 되었으므로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영국군은 1854년 11월 한달동안 330명의 병사가 괴혈병, 이질, 장티푸스 에 걸려 쓰러집니다.

 

 

 질병자 중에 50% 가 사망했고, 상처 부위에 2차 감염이 생겨 사망하는 병사들도 많았는데

침상으로 사용하는 천은 더러워져도 깨끗한 것으로 바꾸지 않았고 빨지도 않았으니

영국의 한 병원에서는 셔츠 여섯벌을 빠는 동안 2,000명의 이질 환자 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나이팅게일 은 크림전쟁에서 페스트 환자 13,000명중 52퍼센트가 사망

했다는 타임스지 러슬 기자의 보도 에 크게 충격 을 받고는....

 

 

1954년 11월 38인의 간호사과 함께 이스탄불 스쿠타리 (위스퀴다르) 에

도착해서는 야전병원의 개혁 에 노력한 결과 사망률은

100인중 3명으로 줄게되었으니 "전장의 천사"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성공회 간호사들과 함께 간호사 직제의 확립과 의료 보급관리, 오수 처리로 의료 효율을

일신하여 '광명의 천사 (The Lady with the Lamp)'로 불렸는데 귀국후 1860년

에는 킹스 칼리지 런던에 나이팅게일 간호 학교 를 창설하고는 간호시설을 설립합니다.

 

 

 의료구호제도에 관해 국내외 정부와 조직의 자문에 응하기도 하면서 간호전문 서적

집필에도 힘썼다가 1910년 죽은후 이스트웰로에 매장되었는데 국제적십자에서는

 '나이팅게일상(賞)'을 마련했으며 '나이팅게일 선서' 는 간호사의 좌우명으로 유명하지요?

 

 

원래 러시아는 나폴레옹전쟁후인 1814년 빈 회의후 오스만 투르크 영내로 남하 를 기본적인

대외정책으로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쟁의 직접적 계기는 프랑스가 제공 하게 됩니다.

 

 

 프랑스내 가톨릭의 인기 를 얻으려고 한 나폴레옹 3세 가 예루살렘 성지 에서의

가톨릭교도의 특권 을 투르크의 술탄에게 요구하자 그리스 정교도의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 황제가 서로 대립한 데 있습니다.

 

 1853년 7월 러시아군은 몰다비아와 왈라키아에 침입하여 점령하였고 서유럽 열강의 지지를

받은 오스만 투르크는 10월 러시아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나는데

1853년 11월 나히모프 제독의 함대가 소아시아의 시노페만에서 투르크 함대를 전멸 시킵니다!

 

 

이에 놀란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는 오스만 투르크를 지지했고 오스트리아 는

최후 통첩을 보내 몰다비아등 양도를 요구하자 니콜라이 1세는 요구에

응하였으나... 사태의 악화를 두려워해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에 대군을 배치합니다.

 

 

1854년 9월 영국· 프랑스· 투르크군은 6만을 크림 반도 에 상륙시키고 세바스토폴 을

포위하는데 콜레라가 창궐 하고 폭풍우가 심한 흑해에 대한 사전 지식은 물론 지도

한 장 갖지 않고 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그 사이 러시아군은 축성물들을 구축해 요새 방어를 강화 시키는데

연합군은 공성포가 도달할 때까지 한달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세바스토폴의 보루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그러자 반대로 러시아군이 반격을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했는데 발라클라바 에서는

영국 근위기병 이 러시아 포병부대를 정면공격하다가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이후 러시아 함대는 함정을 침몰시켜 세바스토폴 항구를 폐쇄 하였고 러시아 육군은

주민들의 지원아래 진지를 구축하고 포격에 맞서 11개월간이나 요새를

지켜냈으나 1855년 8월말 연합군에게 세바스토폴 남쪽을 점거당하고 북방으로 퇴각합니다.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해군기지가 점령되어 파괴되었으므로 흑해의 러시아

해군력은 위축되었지만 전쟁은 카프카스 부근 지역에서 평화협상이 체결되기

불과 몇달 전까지 계속되었으니 러시아는 11월 26일 카르스(Kars) 성채를 함락 시킵니다.

 

 

크림 전쟁은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로 꼽히는데 니콜라스 1세 황제가 전쟁중에 사망하자

1855년 2월에 뒤를 이은 알렉산드르 2세는 러시아 개혁의 필요성 을 깨닫고 1856년 3월

파리강화조약 을 체결하니 다뉴브하구를 양도하고 흑해에 함대를 배치할 수 없게되었습니다.

 

 

전투나 질병으로 인한 전쟁의 피해를 보면 러시아는 70만명중 52만명이 전사 했으며...

연합군도 오스만 투르크 30만중 26만, 프랑스 40만중 10만 8천,

영국 25만중 3만, 사르데냐 2만중 2천 연합군 합계 97만명 중에 40만명이 전사 했습니다.

 

 

흑해는 중립 이 선언되어 해협은 통상상의 자유항행은 인정되었으나 군함의 통과는

일체 금지되었는데 러시아는 패전을 계기로 근대화를 지향하는

운동이 일어나, 1861년의 농노해방 을 비롯하여 일련의 개혁사업이 추진됩니다.

 

 

1854년 9월 영국과 프랑스 연합함대는 아시아 캄차카 반도의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를 공격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나 1855년 초에 전력을 보강해 공격해서는 요새를 점령하자

러시아는 해군력으로는 극동을 지킬수 없으니 알래스카를 헐값에 미국에 팔아 버립니다???

 

 

80년 세월이 흘러 1940년에 크림 반도 러시아의 세바스토폴 은 또다시 적군의 공격을

받게되었으니 이번에는 히틀러의 독일군 인데 제정러시아 시절 군사도시 답게

암반지대에 구축된 3겹에 걸친 탄탄한 방어선이 대구경 요새포와 함께 방어망을 구축합니다.

 

 

 소련 해군은 세바스토폴로 달려오고 크림반도에서 패한 러시아군도 세바스토폴로 집결하자

독일군 만슈타인은 포병부대들을 집결하고 600MM 박격포와 전설로 회자되는 인류역사상

가장 크고 강력한 대포인 800MM 구경의 구스타프 열차포 까지 끌어 모아 함락시키게 됩니다!

 

 

 이때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갑자기 비 가 내리기 시작하는지라 곤혹스러운데..... 어쨌든

우산이 없으니 뛰기 시작하는데 저만치 배들이 보이면서 하렘 부두 

보이기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그만 엉겁결에 터미널로 뛰어 들어갑니다.

 

 

옷에 묻은 빗방울을 털며 하늘을 보노라니 비는 그칠 기색이 없고 시간도 오후 5시 라....

 셀리미에 병영에 가 보았자 문을 닫을 시간이라 아쉽지만 그만 포기해야 하나 봅니다.

 

 

 그러고는 마침 떠나려는 배가 있어 타는데.... 차량과 사람이 함께 타는 페리 는 역시나

교통카드인 이스탄불 카드 를 이용할수 있으니 불과 3리라 싼 값으로 다시 바다를 건넙니다.

 

 

  터키인 부부가 우리에게 창가 좌석을 양보해 바다경치를 구경하며 보스포루스해협 을 

건너 금각만으로 진입해 다시 에미노뉴 Eminonu 페리 부두에 도착하는데 

부두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갈라타 다리와 이슬람 모스크 라 자못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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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마거릿 | 작성시간 21.06.10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콘스탄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6.10 나이팅게일이 탄생한 전투이지요?
    러시아와 터키 및 영국, 프랑스의 크림 전쟁은....
  • 작성자조두꺼비 | 작성시간 21.06.11 즐감하고 갑니다! 덕분에 옛 추억을 다시 되살리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콘스탄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6.11 이스탄불이야.......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도시이지요!
    오랜 역사에 볼거리도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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