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이즈닉 2 - 얄로바에서 이즈닉에 도착해 니케아성에!

작성자콘스탄츠|작성시간21.06.23|조회수173 목록 댓글 0

 

이즈닉 2 - 얄로바에 내려 돌무쉬를 타고 이즈닉에 도착해 니케아성을 찾다!

 

 

6월 4일 아침에 터키 이스탄불 메트로 종점인 예니카프 Yenikap 역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출발해 20분을 걸어 예니카프 Yenikap 부두 Feribot (Ferries) 에

도착해서는 26리라를 주고 티켓을 끊어 09시 45분에 출발하는 고속 페리 를 탑니다.

 

 

페리는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루스 해협 사이에 있는 마르마라해 Marmara Deniz 를 건너

11시에 아시아쪽 항구 얄로바 Yalova 에 도착하니 내려서 사람들에게 물어 터미널 바깥

도로변에서 시내에서 출발해서 부두를 거치는 이즈닉 Iznik (니케아) 행 돌무쉬 에 오릅니다.

 

 

 11시 10분에 도로변에서 손을 들어 돌무쉬 dolmuş 를 세워 올라타 1인당 12리라(5천원)

요금을 내는데 작은 버스 인지라 자리가 없어 앞쪽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걸치고 가는데...... 20분에 얄로바 오토가르 를 지나서는 도시 바깥으로 빠져 나갑니다.

 

 

그러고는 오렌지 밭 을 지나가는데.... 문득 2005년에 월남전 참전군인 조판철 씨가 쓴

“에이전트 오렌지” 가 생각나는데 조씨는 1970년 백마 부대로 파월되어 월남에서

22개월 복무하고 귀국 5년후에는 이가 빠지고 온몸에 여드럼 처럼 생긴게 돋기 시작합니다.

 

 

 1978년에 첫아들이 태어났으나 두개골이 없는 기형 으로 하룻만에 죽었고

2년뒤에 태어난 둘째는 배속에서 죽었으며.....

1989년 셋째는 정상인 것 처럼 보였으나 31개월후 세균성 뇌막염 으로 죽습니다.

 

 

에이전트 오렌지 는 맹독성 제초제인 고엽제의 별칭 으로 함유된 다이옥신은 청산가리

1만배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데 미군은 1962년부터 10년간 고엽제 2천만 갤런을

베트남 밀림 에 뿌렸으니 그중에 80% 인 1,600만 갤런은 한국군 작전지역에 집중됩니다!

 

 

한국군 하늘에서 비행기로 뿌리는 에이전트 오렌지  소독제 로 알고 일부러도 맞았으며

이는 2세에게도 유전 되니 2006년 베트남은 다이옥신 중독자가 400만명 이라 발표합니다.

 

 

미군은 1960년대말 한국 비무장지대에도 2만갤런을 뿌렸으니 현재 한국에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가 4만6천명 이고 고엽제 의심증 환자는 8만 8천명에 달한다는데

1만 6천500명이 미국의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한국 법원 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39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법원에서 패소했다니 그럼 어느나라 법원 인지???

 

 

 돌무쉬를 탄지 1시간만인 12시 10분에 오른쪽에 호수 가 나타나는데 어찌나 넓은지 바다 를

연상시킨다는데 바로 엣 니케아성 바깥에 일종의 해자 구실을 한 그 호수인데 급히

디카를 꺼내 사진을 찍으니... 창가에 앉은 터키 처녀가 커튼을 올려주어 몇장 건집니다?

 

 

 버스는 5분여를 더 달려서는 이즈닉 Iznik 시내로 들어가 번화가 에 서기에 망설이니

좀전의 처녀가 여기가 소피아 라며 우리더러 내리라기에 오토가르 까지 가지않고

내렸는데 여긴 아타튀르크 거리 로 근처에 관광지가 있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행운입니다.

 

 

 이스탄불 예니카프 부두 에서 페리를 타고 마르마리스 바다를 건너 알로바 에 내려 돌무쉬를

타고 왔으니 3시간 이상 걸렸는데 이스탄불 에센레르 가라쥐 Esenler Garaji 에서 직행

버스는 하루 3편으로 4시간이 걸리며 아시아측 오토가르는 하렘 가라쥐 harem Garaji 입니다.

 

 

이 도시 니케아(이즈닉) Nicaea 는 BC l000년 트라키아 이민인 보이오티아인들이

건설한 고대 도시 안코레로 출발해 BC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 무장이었던 안티고노스 가 재 창건하여 안타고네이아 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BC 333년 이수스 전투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들이 안티고노스에게서 도시를 다시

빼앗았는데 리시마쿠스 가 기원전 301년 아내인 니카이아의 이름을 따서 니카이아 

개명하였고 BC 264년까지 비티니아 주도였으며 BC 74년 로마 속주 아시아주에 편입됩니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는 아리우스파의 비난에 관한 토의를 위해 제1회 종교회의 

바로 이 도시 니케아에서 소집했으니 우리가 익히 들은 그 "니케아 공의회" 입니다.

 

 

 이후 787년 성상 파괴파의 비난에 관한 제7회 공의회 가 개최되었으며 갈라티아와

프리기아를 잇는 요충지로 비티니아 왕국의 중요도시였다가 로마로

넘어가 극장과 성문, 비잔틴 시대의 성벽,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유구가 있습니다.

 

 거리에 도자기 그림  간판이 보이는데 콘스탄티노플을을 장식한 이즈닉 타일 로 유명

하지요? 아타튀르크 거리에서 두리번거리자니 지나가던 터키인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에게 맞은편 건물을 가르킵니다. 저기 너희들이 찾는(?) 유적지 가 있다고? 

 

 

이 도시를 방문한 외국인 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옛 비잔틴 제국시절에

콘스탄티누스 대제 가 니케아 공의회를 개최했던 유서깊은 교회

아야 소피아 성당 Ayasofya Kilisesi 이지만.... 저건 나중에 보기로 합니다.

 

 

 그러고는 반대편으로 난 오래된 가로수가 우거진 엣스런 클르츠 아르슬란 거리 를 따라

5분쯤 걸으니 도로 양편으로 옛 니케아 성벽 Iznik Suru 의 모습이 보이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무너지기도 했겟지만... 여긴 도로를 내느라 일부러 허문듯 합니다.

 

 

 그러고는 허물어진 서쪽 성문 굘문 Gol Kapisi 을 지나 아스카니오스 호숫가 에 도착

하니... 성벽  Iznik Suru 아래에 나무 그늘에 화단과 벤치가 있어 여기 이즈닉

시민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와 바람을 쐬며 휴식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보입니다?

 

 

동로마 제국은 한때 유럽을 호령했지만 만지케르트 전투 에서 참패로 소아시아가

멀리 몽골 고원에서 당나라에 패해 서진한 서돌궐의 후예 인 

셀주크 투르크족 에 넘어가자 비잔틴 황제는 로마 교황청에 원군 을 요청합니다.

 

 

 클레르몽에서 공의회가 열리고 은자 피에르가 인솔한 민중 십자군 이 1096년에 바다를 건너

여기 니케아성 근교에 이르러 식량을 약탈하다가 투르크 수비군에게 전멸 당합니다.

독일을 출발해 헝가리와 발칸반도로 남하하면서 기독교 도시들을 약탈하던 버릇 이 도진거라?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손에서 탈환하자는 성전인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민중 십자군 

소아시아에 들어와서도 약탈 을 계속한 것은 식량을 휴대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는 돈도 없었지만, 신심이 깊으면 "하느님이 다 마련해 주신다" 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내가 아는 성도 한분은 딸이 고신대학에 합격했는데 등록 마감 하루전 까지도 등록금 을

마련하지 못했다가 합격이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부리나케 목사님을 찾아갔는데

이는 의심치 말라! "너희 주 하나님이 다 마련해 주신다" 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네요?

 

 

해서 유럽 침략군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안심한 셀주크 투르크의 룸셀주크국 술탄 

다음해에 동쪽에 위치한 동족인 셀주크 투르크 다니멘슈드 를 공격해 전쟁중이었습니다.

 

 

하지만 1097년 5월에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제후 십자군(1차 십자군) 이 콘스탄티노플

에서 바다 를 건너와 소아시아를 침략하여......... 수도인 니케아(이즈닉)를 포위 합니다.

  

 

급보를 받은 룸셀주크국 술탄은 다니슈멘드와 휴전하고 급히 돌아왔지만 

중무장한 제1차 십자군 유럽 기사들에게 패배하고는......... 

니케아(이즈닉) 성 은 오랜 공방전을 거쳐 비잔틴 황제 가 차지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