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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가라치코2 - 가라치코 박물관에서 옛일을 회상하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1.08.03|조회수265 목록 댓글 4

스페인 가라치코2 - 버스로 가라치코 마을에 도착해 박물관에서 옛일을 회상하다!

 

 

2018년 5월 11일 파리 오를리 공항 에서 이베리아 항공기를 타고는 마드리드 를 거쳐

카나리아제도의 테네리페섬 테네리페 북공항 에 내려 버스를 타고 테네리페섬의

주도인 산타 크루스 데 테네리페 Santa Cruz de Tenerife 에 도착해서는 1박을 합니다.

 

 

다음날 5월 12일 시내 버스로 시외버스 터미널 인 Inter Cambiador Santa Cruz 에 가서...

토요일 인지라 가라치코 Garachico 행 107번 버스가 없어, 108번 버스 를 타고 종점인 

Icod de los Vinos 에 내려 363번을 타고 15분간 해변가를 달려서 가라치코 에 도착합니다.

  

 

 원래 여행 계획은 프랑스를 일주한후 플랑드르 지방을 찾아 벨기에 를 볼 생각이었는데

"tv N 의 윤식당 2" 에 푹 빠져있던 마눌이 "저기 한번 가보고 싶다" 라는 말에...

여행 일정을 바꾸어 가라치코 마을을 보기 위해 카나리아제도 테네리페섬 에 온 것입니다.

  

 

골목길을 걸어서 중앙광장 에 이르러 옛날 교회 옆에 자리한 아주 오래된 고풍스러운

건물로 들어가는데, 2유로를 받으니 이른바 가라치코 박물관 으로 엣날 암석 으로

부터 시작해 조개 와 바다 생물이며 중세에 가라치코 마을의 모습 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긴 스페인 으로 부터는 엄청 멀리 떨어져 있고 오히려 아프리카의 모로코

최남단 국경인 사하라 에서 서쪽 바다 한 가운데에 자리하니....

옛날에는 다른 지역으로 부터 독립되어 고립된 섬 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카나리아 제도 는 BC 40년경 부터 로마인 들에게 알려져 있었다지만 그렇다고

로마인들이 이주했던 것 같지는 않고 13∼14세기에 들어서야

유럽 항해자의 쟁탈 표적이 되어 15세기 부터 에스파냐인들이 지배 하게 됩니다.

 

 

중세 천년간은 기독교세력이 유럽인들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던 문명의 암흑시대 였으니...

유일신 사상으로 그리스-로마 문명을 이교도의 문명 이라고 천년을 이어 내려온

그리스 올림픽을 폐지 하고 두 문명을 배척하며 동상을 파괴하고 서적을 불태웠습니다.

 

 

 십자군운동이 실패 하면서 이탈리아 북부에서 시작된 문예부흥으로 과학 이 태동했으니

지구는 우주 중심으로 태양이 지구를 돌며 지구는 네모졌고 멀리 나가면 바닷물이

폭포 처럼 떨어져 죽는다”라고 가르친 로마 교황청에 회의를 가진 사람 들이 나타납니다.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 는 죽으며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 을 유작으로 남겼는데

살아 생전에 발표했으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정반대 되는 주장을 펼쳤으니...

마귀로 의심받아 종교 재판 에 회부되어 잔인한 고문을 받은후 화형을 당했을 것입니다?

  

 

 지동설을 접한 괴테 는 말하기를....“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인간은 위기에 봉착했다. 낙원으로의 복귀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 거룩함,

죄없는 세상, 이런게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 에 놓인 것이다. 새로운 우주관을

받아들이는건 사상 유례가 없는 사고의 자유와 감성의 위대함을 일깨워야 하는 일이다.”

 

 

갈릴레이 는 1609년 망원경 을 제작해 목성 위성, 토성 띠, 달 표면 요철, 태양의 흑점을

발견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근거를 높였는데 이 때문에 1616년 로마 교황청에

소환되어 변명을 시도하였지만 결국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의 포기 를 명령받습니다.

 

 

 이후 천문대화를 저술한 이유로... 검열을 받아 책을 출판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로마에

소환되어 유폐되자 살기 위해 지동설의 포기를 언약하고 사면 되었는데...

감옥을 나오면서 그는“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중얼거렸다고 전해 내려 옵니다.

  

 

오스만터키가 향료가 유입되는 중동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후추등 향료가격이 폭등 하는데

중국에서 건너온 나침반과 항해술 의 발달에다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의 영향에

기독교 로마 교황청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먼저 바다로 나가게 됩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에 감화를 받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을 믿게된 이탈리아

제노바 태생인 콜럼부스  "인도로 가는 서쪽 항로" 를 찾으려고 하나....

고향인 가톨릭 세력이 강한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해서 포르투갈 로 건너가 노력하던 중에 결혼을 하고 선장인 장인으로 부터 항해에 관한

지식까지 습득하지만 동방항로 를 찾아 아프리카 남단을 도는 항로를 찾던 포르투갈이

외면하고는 스파이로 몰리게되자 스페인으로 피신하나 항해를 도와줄 후원자는 없었습니다.

  

 

기독교 카스틸랴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이 아라곤왕국 페르디난도와 결혼해 탄생한 에스파냐

왕국은 레콩키스타 운동 으로 남쪽으로 진격해 700년간이나 스페인을 지배하던 이슬람

무어인들의 왕국 그나나다를 1492년 1월에 정복하고 나라를 통일하는 대 사건이 일어납니다.

 

 

콜럼버스에게 행운이 열린 것이니... 그해 4월 17일 이사벨라 여왕은 콜럼버스와 협약 

체결하니, 콜럼버스는 후추등 향료가 나는 인도 와 중국 에 황금의 나라 지팡구(일본)

로 가는 새로운 무역 항로 를 찾으려고 1492년 8월 스페인 남부 카디스 를 출항하게 됩니다.

 

 

 남쪽으로 항해를 계속한 콜럼버스 선단 3척은 이윽고 여기 카나리아 제도 에 들러서 숨을

고른 후에 다시 서쪽으로 미지의 바다를 횡단해서는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 했던 것인데,

콜럼버스가 스페인에 귀국한후 여기 카나리아 제도의 여러 섬들은 바로 스페인령 이 됩니다.

 

 

콜럼버스가 쓴  “항해일지”에...“  1492년 8월 3일 살테스 강어귀에서 모래톱을 가로질러

항해를 시작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풍향이 자주 바뀌는 바람을 타고 해질 무렵까지

48마일을 항해한후 카나리아 제도 쪽으로 항로를 잡고서 남서쪽과 남남서쪽으로 항해했다.”

  

 

콜럼버스는 이 항해에서 결국 신대륙 을 발견했고 탐험을 꼼꼼히 기록한 첫 번째

항해일지를 후원자인 이사벨라 여왕 과 페르디나도왕 두 왕에게

바쳤지만 사실은 콜럼버스가 발견했다는 그 신대륙은 그가 발견한 것이 아니었으니....

  

 

 '신대륙’  이란 표현은 유럽인 들이 사용했던 표현이었고 아메리카에 속한 서반구는

이미 몇천년 전부터 조상 대대로 살고 있던 "인디언들의 땅" 이었기 때문입니다.

 

 

 1936년에는 에스파냐의 프랑코 장군 이 이곳 카나리아제도 에서 선거에 의해 집권한 

좌파 인민전선 정부에 대해 반란 을 일으켰는데.... 당시만 해도 섬 주민의  60 % 

문맹자였으나 지금은 교육이 보급되어 테네리페섬라라그나 종합대학 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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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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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여행스토리 | 작성시간 21.08.04 여행기 사진 잘 정래해서 올려주셨네요.
    스페인은 잠간 다녀와서 구석구석 보지는 못했습니다.
    멋진곳들을 많이 다녀오셨네요.
    여행기 사진 잘 보고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8.04 여기 가라치코는 작은 어촌 마을인데.....
    관광객들이 워낙 많이 오다 보니
    테네리페섬의 역사유적을 보여주기 위해
    박물관까지 만들었는가 합니다.
  • 작성자연두치레 | 작성시간 21.08.04 저도 가고 싶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8.04 마눌이...... "tv N 의 윤식당 2" 에 푹 빠져있던지라
    어느날 저기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한달간 유럽 여행 일정에서 급하게
    벨기에를 빼고 대신 테네리페섬을 넣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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