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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카르카손 - 나르본에서 성채도시 카르카손에!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1.12.31|조회수477 목록 댓글 2

 

프랑스 카르카손 - 나르본에서 버스를 타고는 옛날 성채 도시인 카르카손에 가다!

 

 

2018년 5월 18일 바르셀로나 에서 대성당과 왕의광장 및 역사박물관을 보고 람블라스 대로

걸어 레이알 광장과 구엘 저택 및 콜럼버스탑을 구경하고는 프랑스 툴루즈 로 

가려고 배낭을 메고 산츠역  Barcelona Sants 에서 13시 20분에 파리행 떼제베 에 오릅니다.

 

 

  기차는 지중해를 끼고 북상해 헤로나를 지나고 피레네산맥을 넘어 페르피낭을 거쳐

15시 24분 프랑스 나르본 Narbonne 역에 도착하는데... 평상시라면 16시에

로컬 기차를 타면 카르카손 Carcassonne 을 거쳐 17시 45분  툴루즈

Toulouse- Matabiau 에 도착하지만 지금은 프랑스 철도가 파업 Strike 중입니다.

 

 

기차역사내에서 모니터를 보니  프랑스 국영철도 SNCF 가 파업  중이라 기차 편수가 

적은데 툴루즈 Toulouse 로 가는 기차는 없고...  17시 15분에 중간 도시인

카르카손 Carcassonne 행 버스  가 있는데, 국영철도에서 운영하니 유레일

패스로 탈수 있고 비록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하지만 더운밥 찬밥 가릴 처지가 아니네요?

 

 

걸어서 나르본 시내를 구경하고 역으로 돌아와 모니터를 보니 님 Nimes 으로 가는 기차는

플랫폼이 A 라고 나오고 좀 더 기다리니 카르카손 가는 차는 Bienvenue 라는 글자와

그 아래 버스 표시 가 함께 나오니 안심하고는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가 버스를 기다립니다.

 

 

17시 15분에 나르본역 광장에 버스가 들어오는데 전면에 보통기차(로컬) 를 뜻하는 “Ter”

라는 표시가 뜨기로 카르카손 Carcassonne 으로 가는지 확인하고 버스에 오르니 차는

시내를 빠져나가서 나르본성 을 지나는데 근처에 대학이 있는지 학생들이 많이 보입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보니 오늘처럼 철도가 파업하기 때문에 기차 대신에 버스 가 운행

되는 경우도 있고 또 평소에 파업이 아닌 정상 운행일 경우에도 손님이 적은

날자나 시간대 에는 기차 대신에 버스를 운행하는데 아마도 비용절감 때문인가 봅니다?

 

 

나르본 교외에 1층 짜리 큰 건물이 보이고 붉은 큰 글씨로 “Casino"  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저 카지노 라는 말은 보통의 경우에는

동네 슈퍼 를 뜻하는데 이런 큰 마켓 에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가 봅니다?

 

 

우리 버스가 로터리를 도는데 보니 소형 승용차의 딋 부분에  자전거를 무려 2대나 달고

가는데..... 서양인들은 캠핑카 외에도 승용차에 작은 수레 를 달거나 혹은 자전거를

달고 교외로 나가 캠핑하거나 또는 자전거를 타면서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흔한가 봅니다.

 

 

교외로 나가니 온통 포도밭 인데 한참이나 달리다가 뜬금없이 큰 건물에 맥도널드 가 보여

의아한데 주변에 큰 마을도 없는데 저게 장사가 되는지 남의 일이지만 걱정 됩니다?

그럼 근처에 공장이 있나?  아님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멈추어서  사 먹나 보네요?

 

 

그러고는 들판에는 또 포도밭 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러다가 산 등성이에 풍력발전기

가 수없이 나타나는 모습을 구경하는데..... 잊을만 하면 또  포도밭 이 이어집니다!

 

 

그러고는 드디어 나르본을 출발한지 40분만인 오후 5시 55분에 버스는 카르카손 

 Carcassonne 역에 도착하는지라 내려서 기차역으로 들어가 모니터를 보니

오후 7시 29분에 보르도 생장 Bordeaux St. Jean 가는 기차가 있는데

그 아래쪽에 경유지로 Toulouse matabiau  라고 적혀 있어  적이 안심이 됩니다.

 

 

보르도 생장 Bordeaux St. Jean 역이라면...... 프랑스 서남부 와인의 생산지 가스코뉴 

보르도는 몇년 전에 우리 부부가 들른적이 있는 도시이니, 와인 수출 로 벌어들인

돈으로 번영을 구가했던 탓에 시가지 건물들이 참 우아하고 고풍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우린 리스본 에서 부터 포르투갈을 북상해 스페인 서북부 산티아고 에 도착해 순례자의

목표인 콤포스텔라 성당을 보고는 밤기차를 타고 카스티야의 옛 수도 부르고스 를

구경한 후에 다시 기차를 타고 바스크족의 땅 게르니카를 지나 빌바오 에서

1박한후 피레네산맥 을 지나 대서양을 끼고 북상해 보르도 에 갔던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이제 툴루즈로 가는 기차 즉 보르도행 기차는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남은지라

나르본에서 처럼 마눌에게 배낭을 지키며 쉬라 이르고는 역사 밖으로

나가니..... 작은  운하  인데 생각외로  배들이 많이 정박  해 있는 모습을 봅니다.

 

 

도시를 관통하는 운하에 정박중인 배들을 구경하고는... 다리 건너 작은 공원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니 깨끗하면서도 아담한 동네로 조용하고 한적한게 마음이 다 편해지는 곳 입니다.

 

 

카르카손 Carcassonne  은 옥시타니 레지옹 오드 데파르트망의 주도로 BC 27년

로마 제국의 식민시 가 되어 라틴 콜로니아 룰리아 카르카소로

불렸는데 3세기 말부터 4세기 초에 1,200m의 이중 성벽 이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5세기에 게르만 서고트족 이 세운 시가지 카르카손 시테 Cite 는 천연 요새에 의지한 성벽

2개와 성 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오드강 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는 13세기에 건설한

바둑판 모양의 상업 시가지 가 있으며..... 6월 하순에는 카르카손 축제 가 열린다고 합니다.

 

 

여행전에 여기 카르카손 에 가면 남쪽 교외에 자리한 생틸레르 수도원 을 한번 가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2년 전인 2016년 9월 12일에 카르카손의 일간

신문  “망쉬(La Manche)” 의 생틸레르 지역 소식란에 기사가 실렸으니

 “설립자의 발자취를 따라  ‘생틸레르를 방문한’  15명의 수녀들” 이란 제목 입니다.

 

 

“9월 12일 월요일, 생틸레르 성당은 아주 특별한 방문을 받았다. 한국의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들 15명 이 빠리니 로 떠나기 전에 생틸레르 성당을 방문한 것 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도회 설립자인  루이 델랑드  신부의 발자취 를  따라 여기에 왔다.”

 

 

루이 델랑드 신부 는 1895년 프랑스 남부 빠리니 에서 태어났으며 1935년 한국

에서 수도회를 설립 하였다. 이 수도회에는 오늘날 600명 이상의 수녀 들이

있다. 이 순례단을 동반한 가르멜산의 성모 수녀회의 헤이몽드 수녀의

설명에 의하면  이 수녀들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와 복음화  에 힘쓴다. ”

 

 

“그들은 현재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베트남 그리고 볼리비아 까지 퍼져 나가있다.

20세기에 한국이 당한 전쟁들을 헤쳐 나가는데 도움을 준 많은 은인

들이나 가르멜산의 성모 수녀회 수녀 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생틸레르 성당 방문후 루이 델랑드 신부가 태어난 곳인 빠리니의 발토리느 (Valtorine)

마을까지 도보 를 했다. 그후 델랑드 신부가 세례(1895년 6월 14일) 를

받았던 빠리니의 성당 에 이어 신부의 어머니의 묘가 있는 생틸레르 묘지 

이동했다.  그들의 방문은 파리의 중요한 곳과  리지외, 뽕맹,  루르드로 이어질 것이다.“

 

 

이 신문은 순례단에 대한 방문 기사 끝에 간단한 남 신부님의 약력을 통해

자신들의 고향 출신인 루이 델랑드 신부 가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711년에 북아프리카에서 바다를 건너와 과달레테전투에서 게르만 서고트왕 로드리고 

죽이고 서고트왕국을 멸망시킨 다마스크스의 이슬람 옴미아드왕조 는 스페인을 북상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 지역을 침략해서는 초토화 시킨후 북진합니다.

 

당시 여기 카르카손 은 스페인 처럼 게르만 서고트족 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슬람

사라센인 들은 아를과 로데즈, 카스트르를 점령하고 서쪽 아키텐의 보르도

까지 손에 넣었으며... 그 와중에 카르카손 남쪽에 유럽인들이 숭배하던

여기 생틸레르 성당 Saint-Hilaire 를 불태웠던  것인데....  이후에 재건했나 봅니다.

 

 

당시 대부분 프랑스 땅은 게르만족인 프랑크족 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프랑크국의 궁재(총리) 샤를 마르텔 은 네우스트리아(프랑스 서부) 와

아우스트라시아(프랑스 동부) 연합군을 이끌고 파리 서쪽 투르와 푸아티에

중간 들판의 언덕에 바로 구축한 진지에서 이슬람 사라센 기마대를 맞아 대파 합니다.

 

 

양쪽의 병력은 각기 3만 정도였다고 보는데 만약 이 투르-푸아티에 전투 에서 이슬람

옴미아드(우마이야) 왕조의 사라센군이 승리 했다면.... 오늘날 프랑스인

들의 종교는 "가톨릭이 아니라 이슬람교"  일지도 모르는 매우 중대한 전투 였습니다. 

 

샤를 마르텔 이 아브드 알 라흐만을 죽이자 기가 꺽인 사라센군은 그동안 모아 두었던

엄청난 전리품도 버리고 남쪽으로 도망치는데, 샤를이 “망치”라는 의미를 가진

“마르텔”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게 이슬람군을 망치로 두들겨패듯 했기 때문이라나요? 

 

 

 이후 궁재 샤를 마르텔 은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부르고뉴와 프리슬란트의 공작 포포,

보르도의 아키텐공작, 프로방스의 아를과 마르세유를 격파하고 작센 을 정복했으며

다시 사라센 군대가 프랑스 남부 아비뇽 을 점령하자 이슬람 진지를 급습해 불태웁니다.

 

 

그러자 스페인의 이슬람 사라센군은 아비뇽의 동료 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으나

샤를 마르텔은 베르와 코르비에에서 이들을 물리치고 사라센의 배들을 나포해

불태운후 포위 섬멸하고는... 북이탈리아 롬바르드족 까지 격파하니 아들 피핀 

751년 운이 다한 메로빙거왕조 를 대신해 카롤링거왕조 프랑크왕국 을 건설했던 것입니다. 

 

 

이런 저런 옛날일을 회상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시내를 내처 걸어서 시내를 

가르는 강을 건너서...... 시테 쪽에 자리한카르카손성 으로 찾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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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1.12.31 새해에는 
    더 좋은 건강,
    더 많은 행복,
    더 깊은 사랑,
    많이 만나고 누리시길 소망드리며
    날마다 새로운 웃음짓는 
    행복한 2022 임인년 새해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福) 많이 받으세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2.31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제야이군요?
    새로운 해 2022년 임인년은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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