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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3 - 아타튀르크 추도원에서 터키 건국의 역사를!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2.01.09|조회수210 목록 댓글 4

앙카라 3 - 터키의 국부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 추도원에서 터키 건국의 역사를 회상하다!

 

*** 코로나 이전의 여행기 입니다 ***

 

5월 14일 아침에 터키의 수도 앙카라 의 호텔에서 주는 뷔페식 아침을 들고는 앙카라이선

(지하철) 크즐라이역 에서 20리라(8천원)에 교통카드 인 에고 카르트 를 구입합니다.

 

 

아슈티 Asti 역에 도착해 내일과 모레 샤프란블루 와 괴레메 가는 버스표 를 끊은후 다시

Besevler 역에 내려서 터키의 국부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 추도원" 에 올라갑니다.

 

 

원래는 앙카라이 (지하철) 탄도안 역에서 내려 걸어 올라 정문으로 들어

와야 하는데 우린 8리라(3천원)를 주고 택시를 타고는

후문 을 통과한지라 가파른 언덕길인 대리석을 깐 참배로 를 피한 셈이네요?

 

 

여기 아타튀르크 추도원 Anit Kabir 은 터키공화국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  영묘

로.... 산 정상부 평지에 고대 신전 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물이 보입니다!

 

 

오스만 터키 는 1,453년 비잔틴(동로마) 제국 의 수도 콘스탄피노플 을 함락한 이래

유고슬라비아와 헝가리 를 집어 삼키고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 을 포위 하였습니다.

 

 

이후 독일과 폴란드 기마군 에 의해 후방이 습격을 받아 격퇴되기는 했어도 ...

아라비아와 아프리카 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는 유럽을 위협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산업혁명 이 일어나고 근대화 와 부국강병 의 길을 치달을때 노제국

은 쇠약해져 그리스 등이 독립하고 러시아의 침공 을 받아 영토가 줄어들었습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에서 독일측 에 참전하며 패전 을 하는 바람에 이스탄불

의 술탄 은 연합국에 항복 하니.... 제국의 영토는 갈가리 찓기게 됩니다.

 

 

오스만 투르크 는 1853년에 러시아의 침략 을 받았으나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지원 덕분에 간신히 물리쳤지만 1877년에 발발한 전쟁에서는 참패 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에게 흑해 연안 을 빼앗긴 외에도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를 잃고 이집트와 아라비아 등 분리운동에

시달리던 시기인 1881년 케말 은 그리스 영토 데살로니키 에서 태어납니다.

 

 

군인을 동경한 케말 은 어머니 몰래 군사 중등학교 에 입학하는데 오스만 제국이 빈사상태

에서 벗어나려면 서구처럼 민주적이고 합리적 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사관생도 시절 반체제 신문을 발행하다가 징계 를 받고, 중위로 임관한 후에는

조국과 자유를 뜻하는 “바탄 베 휘리예트”라는 청년장교 비밀조직 에 가담해 활동합니다.

 

 

 젊은 장교들  "청년투르크 당" 을 조직했고 분리운동을 진압하면서 명성 을 얻었으며

1908년 마케도니아에 집결해 이스탄불로 진격 하니 압둘 하미드 2세가 백기 

드니 헌정이 재개 되었으나 하미드 2세 가 보수파와 헌정중단 음모 를 꾸미자 청년

투르크당 다시 이스탄불로 진격해서는 동생인 메메드 5세를 새 술탄 자리에 앉혔습니다.

 

 

이스탄불 진공 병력의 총지휘를 맡은 케말 은 최고 실권자인 엔베르 파샤 와 사이가

나빴으므로... 발칸 반도에서의 반란 진압에 힘쓰며 중앙정치와 거리 를 두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 발발하자 그는 독일 및 오스트리아 와 손을 잡는 것을

반대했지만...... 실권자 엔베르 는 정반대의 결정 을 내렸습니다.

 

 

영국 해군장관 처칠 은 고립된 채 싸우고 있던 러시아 에 물자를 보급하고

이스탄불을 점령 하기 위해... 다르다넬스 해협 돌파작전 을 세웠습니다.

 

 

부득불 케말 은 제19사단 을 지휘해 차낙칼레의 반대편으로 다르다넬스 해협이 끝나고

마르마라해 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겔리볼루 반도 로 진격했는데.... 영국과

프랑스 해군의 엄청난 함포사격 에 이어 영국, 호주, 뉴질랜드등 연합군 이 상륙합니다.

 

 

영화 “갈리폴리 전투”는 1,981년 호주에서 멜깁슨 을 주연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터키 다르다넬스 해협 의 유럽쪽 이스탄불 남쪽 도시 갈리폴리 가 전장터 입니다.

 

 

갈리폴리 는 “아름다운 도시” 라는 뜻의 그리스어 “갈리폴리스” 에서

유래했는데....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인의 식민 도시 입니다!

 

 

처칠은 강공 을 주장했으니 군함 함포의 일제 사격 이 끝나면 포연 뒤에 숨어

바로 육군이 돌격해야 하는데.... 육군과 해군의 시계가 서로 달라

육군의 시계가 늦다 보니 포연이 사라진후에 뒤늦게 공격했으므로 손실이 컸습니다.

 

 이는 19세기초에 나폴레옹 에 대해 오스트리아 와 러시아  합동작전 을 폈으나

두나라가 사용하는 달력이 서로 달라...... 성사되지 못한 것과도 같습니다.

 

 

즉 러시아 는 1,850년전인 기원전 45년 11월 1일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 만든

율리우스력 을 사용하고 있었던데 비해... 유럽 은 1582년에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십삼세 가 율리우스력을 고쳐서 만든 그레고리우스력 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호 푸쉬킨 의 출생연도  율리우스력 으로는 1,799년 5월 26일

이고...... 유럽의 그레고리우스력 으로는 1799년 6월 6일이 됩니다.

 

 

그럼 왜 서로 달력을 일치시키지 않았느냐 하면...... 리스정교 (러시아정교) 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우상숭배 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독자적인 길 을 걸었던 것이라!

그리스정교도 우상숭배를 배격하지만 철저한건 이슬람 으로 자미 내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 1,915년 4월 상륙전 에서는 터키군 이 설치한 기뢰 가 위력을 발휘했으니...

연합군 군함이 다수 침몰 했으며 터키군은 에상외로 완강하게 저항 합니다.

 

 

4월 25일 영국의 해밀턴 이 이끄는 연합군 7만 명이 겔리볼루 상륙 

강행하자... 케말 은 터키군을 진두지휘 하며 병사들을 독려했습니다.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말라!  진격을 바라지는 않는다.  오직 그 자리를

지켜달라! 전우 를 위해 장렬히 싸우다 죽는 길 을 택해 달라.” 죽어달라?

 

 

케말 은 기습적인 전술로 연합군을 혼란 스럽게 만들었으니 10월까지 무차별 공격을 가하며

돌파를 시도했으나... 연합군 은 결국 25만 명이 넘는 사상자 를 내고 부득불 퇴각합니다.

 

 

오스만 터키 군도 비슷한 사상자 를 냈으니 합계 50만명이 이 전투에서 죽은 것인데...

하지만 세계 최강 영국군 을 물리쳐 풍전등화의 투르크를 위기에서 구했습니다!

 

 

케말 은 여세를 몰아 러시아 와의 전투에서도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패하는 바람에 1918년 10월 투르크의 술탄은 항복 을 선언 합니다.

 

 

엔베르 등 정부 수뇌들은 외국으로 달아났고 1919년 5월 동쪽에서는 아르메니아,

서쪽에서는 그리스 가 침공을 준비하자 케말 파샤 는 흑해 북부 삼순 에 상륙 합니다.

 

 

“국내질서를 회복하지 못하고 외국의 침략 에 대응할 줄 모르는 정부를 불신임 한다.

이제 우리는 제국의 허울 을 벗고 터키 민족국가 를 수립해 국난을 극복 해야만 한다!”

 

 

당황한 이스탄불 정부 는 그를 직위해제하자 군복을 벗는데 1920년 8월에 맺어진

세브르 조약 으로 투르크 영토는 이스탄불 일대와 아나톨리아 반도 로 축소됩니다.

 

 

연합국은 투르크의 국정에 개입 하며..... 아나톨리아 까지 차지하려는 욕심 을

감추지 않자 케말 은 “아나톨리아-루멜리아 권리옹호 동맹”을 결성합니다. 

 

 

케말과 동료 들이 에르주름을 거쳐 시바스에서 독립을 결의 하고는....

앙카라에 수도 를 정하자... 이스탄불의 술탄 은 그를 파문 합니다.

 

 

하지만 그가 동쪽에서 아르메니아의 침공을 물리치고 서쪽에서는 “대그리스” 부활을

외치며 이즈미르에 상륙해 내륙으로 진공하던 그리스군을 앙카라 서쪽에서 격파 합니다.

 

 

이어 술탄의 정부군과 영국, 프랑스등 과의 4년간의 오랜 전투 끝에.....

마침내 1,923년 7월에 독립 에 성공해 터키 공화국 을 창건합니다. 

 

 

케말 에게는 이교도에 맞서 이슬람교를 수호한 영웅 에게 주어지는 “가지” 라는

칭호가 덧붙여졌으니...... 새 나라를 만들어갈 토대 가 마련된 셈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와 이슬람 종교의 분리" 를 선언했는데 당시까지 투르크의 술탄 

최고 종교지도자인 칼리프 를 겸하며 절대적인 지배권 을 행사 했습니다.

 

 케말 은 1922년 10월 칼리프직 만 유지해 종교적 권한만 갖도록 하고 술탄은 폐지 하는

개혁안을 통과시킨후 인민당 을 조직해 앙카라를 새 수도로 삼고 대통령 에 오릅니다.

 

 

"돌궐족의 후신인 투르크" 는 원제국을 건설한 몽골족 이나 한반도의 고조선과 삼국 처럼

이름만 있고 성은 없었으므로 모든 국민이 "성을 갖는 운동" 을 전개하게 됩니다.

 

 

1934년 케말 자신도 처음으로 성(性) 을 가졌으니 터키의 아버지 라는 뜻의

“아타튀르크” 니....“아타” 는 우리말의 “아빠” 와 어원이 같다고 하네요?

 

 

그는 그리스 영토 내의 터키계 주민 과 터키 영토 내의 그리스계 주민 을 대규모로

교환 하는 결정을 내렸으니....“민족국가 터키”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지요!

 

 

이슬람교도와 비이슬람교도 간의 차별을 금지 하고 여성에게도 교육 을 실시하며

"공휴일을 금요일 대신 일요일" 로 삼고 개혁을 혁명적 으로 실행했습니다.

 

 

최상층부 건물내에 있는 아타튀르크 영묘 를 둘러보는데 전국 각지에서 온 청년과

학생들은 엄숙한 마음으로...... 조국을 구한 "영웅을 추모" 하는 것일러나?

 

 

우리나라에도 좌파와 우파 전국민이 모두 한마음으로 추모 하는 국부 가 있으면 좋으련만!

도산 안창호 나 월남 이상재 선생이 그런 분이나 두 분은 파워가 약하고.....

김구 선생은 우파가 이승만 박사는 좌파가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지라 안타까운 마음 입니다.

 

 

경찰 이 관광객들이 옆길로 새는 것을 통제 하는 모습을 보며 되돌아 나와서는.....

시내 전경 을 내려다 보고는 기록사진실 로 들어가 당시 유물과 기록영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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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2.01.09
    오랜 시간 동안 꿈을 꾸는 사람은 결국
    그 꿈과 닮아가게 되리라.
    -니체-

    늘 즐겁고 健康 하시고 幸福 하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1.09 니체? 니체가 저런 말도 다 했군요!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2.01.09 터키
    가고싶네요 ㅎ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1.09 그렇지요? 터키.....
    3번을 갔는데도 언제
    4버째 갈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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