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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신시가지를 구경하고 조각 공원 분수대에 가다!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2.03.20|조회수149 목록 댓글 7

 

앙카라 괴레메1 - 걸어서 앙카라 신시가지를 구경하고는 조각 공원 분수대에 가다!

 

 

5월 13일 인천에서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는 12시간만에 터키 이스탄불 

내려서 다시 터키 항공 으로 갈아 타고는 밤늦게 앙카라 에 도착합니다.

 

 

14일에는 앙카라 시내 구시가지 를 둘러 보고 다음날인 15일은 시외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서 샤프란볼루 에 가서는 오래된 옛 주택들 을 구경했습니다.

 

  

여행 나흘째인 오늘 5월 16일은 멀리 카파도키아 로 가야하는데 버스 

 11시에 출발하는지라.... 아침에 앙카라 신시가지 를 보기로 합니다.

 

 

일찍 아침을 먹고는 크즐라이 Selanik 거리에 있는 Ankara Regency Hotel 

 나와 언덕을 올라가 우회전을 해서는 큰 대로에서 왼쪽으로 따라 걷습니다.

 

  

그러고는 육교 로 올라가는데.... 예전에 일본과 유럽 여행 을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육교 가 아닌 횡단보도 로 도로를 건너는 모습이었지요?

 

 

지금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 GDP 는 30,000 달러 에 이르지만 박정희 대통령 

 경제개발 을 시작하던 시절인 1960년대 중반에는 100 달러 에 불과 했습니다.

 

  

한국 인구의 대부분은 농어민 이고 대학을 졸업한 얼마 안되는 사람들도

기업이 없으니 취직 자리 가 없는지라... 룸펜 으로 불리던 시절이지요?

 

 

농업 국가  에서  공업화  경제개발  을 하자면 문제는  "돈과 기술"  인데

박대통령은 미국 을 찾아가 간절하게 호소해 보지만.....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은 대주겠지만 차관은 냉정하게 거절 하네요?

 

  

독일 도 가보았지만 광부와 간호사 를 보내 그 임금으로 받는 돈 도

5천만불 푼돈 이라 이제 기댈곳은 "원수의 나라 일본"  뿐이네요?

 

 

하지만 굴욕외교 라고 반대 데모 를 하는 야당과 대학에 대해서는 대학교에 탱크를 진주

시켜 강제로 휴교시키는 등..... 데모를 무력진압 하고는  "6억불 돈"  을 들여 옵니다.

 

 

 울산공업단지 와 포항제철 에 경부고속도로 와 소양강댐 그리고 부두항만시설을 건설

하고 석유와 철광석이며 고무, 목재 등 원자재 를 들여와서는 공업화에 성공 합니다.

 

 

포항제철 은 일본 와세다대학을 다닌 박태준 이 일본인 스승 을 찾아가 읍소하니

감동한 스승이 일본 정재계를 움직여 일본 기술자들 이 일본 제철 의 

기계설비를 뜯어와 조립 하고 한국인 기술자들을 훈련 시켜 쇳물 까지 뽑아줍니다.

 

  

이렇게 급속한 공업화 를 하다보니 자연히 "효율성과 속도" 를 중시하는지라

 도로 도 사람 보다는....... 자동차 운행이 더 중요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해서 자동차들이 붉은불에 서지않고 씽씽 달리도록 하기위해 사람은 도로를 건너면

 안되고 자동차 통행이 지장주지 않도록 육교나 지하도 로 건너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경제가 발전하고 먹고살만해지자 저 같은 장삼이사도 해외여행 을 하는 시대를

 맞아.... 외국에서는 보행자를 불편하게 하는 육교 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외국 처럼 육교를 없애고 횡단보도 를 많이 만들었는데

이 나라 터키 는 유럽이나 일본 에 비해서는 육교가 많은 편에 속하네요?

 

  

신시가지에서도 관청가인 아타튀르크 광장 에 도착해 터키의 국부인 케말 파샤 

초상화 를 보는데..... 이 사람을 빼고는 터키 공화국 을 생각할 수 없지요?

 

  오스만 터키 는 1453년 비잔틴(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피노플을 함락한 이래

발칸반도를 휩쓸고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포위 하는등 위세를 떨치며

아라비아와 아프리카 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는.... 유럽을 위협하는 존재 였습니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산업혁명 이 일어나니  노제국은 쇠약해져  그리스등이 독립하고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영토가 줄어들던 중에 1914년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측에 참전해 패전하는 바람에 술탄은 항복하니 제국 영토는 갈가리 찓기게 됩니다.

 

  

오스만 투르크 는 1877년에 발발한 러시아와 전쟁에 참패해 흑해 연안과 불가리아,

루마니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잃고 이집트와 아라비아 등 분리

운동에 시달리던 시기인 1881년에 케말 은 그리스 영토 데살로니키에서 태어납니다.

 

 

  군인을 동경한 케말은 오스만 제국이 빈사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민주적이고 합리적 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사관생도 시절 반체제 신문을 발행하고 임관한후

조국과 자유를 뜻하는 바탄 베 휘리예트” 라는 청년장교 비밀조직에 가담해 활동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해군장관 처칠 은 터키 이스탄불을 점령하려고 하니

 케말 은 제19사단을 지휘해 다르다넬스해협의 겔리볼루 반도 로 진격하는데

 영국과 프랑스 해군의 함포사격 에 이어 영국, 호주뉴질랜드등 연합군이 상륙 합니다.

 

  

영화 갈리폴리 전투” 는 1981년 호주에서 멜깁슨을 주연 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터키 다르다넬스 해협의 유럽쪽 도시 갈리폴리는 원래 아름다운 도시 라는

뜻의 그리스어 갈리폴리스 에서 유래했으니 고대 그리스인의 식민 도시 입니다!

 

 

1915년 4월 25일 해밀턴이 이끄는 연합군 7만 명이 겔리볼루 상륙을 강행하자

케말 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말라! 진격을 바라지는 않는다오직

그 자리를 지켜달라. 전우를 위해 장렬히 싸우다 죽는길을 택해달라.” 독려합니다.

 

  

케말은 기습적인 전술로 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니 연합군은 공격 6개월

후에는 무려 25만 명이 넘는 사상자 를 내고 퇴각하는지라..... 그는

세계 최강 영국군 을 물리쳐 풍전등화의 터키 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입니다!

 

  

이후 케말은 러시아군도 물리치지만 동맹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패하는 바람에

 1918년 10월 투르크의 술탄은 항복 을 선언하고 이후 1919년 5월 동쪽에서는

 아르메니아서쪽에서 그리스 가 침공을 준비하자 케말은 흑해 북부 삼순에 상륙합니다.

 

 

    1920년 8월 맺어진 세브르 조약으로 투르크 영토는 이스탄불 일대와 아나톨리아 반도로

축소되자 그는 국내질서를 회복하지 못하고  외국의 침략에 대응할 줄 모르는

정부를 불신임 하니 터키 민족국가 를 수립해 국난을 극복해야만 한다!”고 선언 합니다.

 

 

케말 이 동쪽 아르메니아의 침공을 물리치고 서쪽에서는 대그리스 부활을 외치며

 이즈미르에 상륙해 내륙으로 진공하던 그리스군 을 앙카라 서쪽에서 격파하고

   영국프랑스와 4년 전투 끝에 1923년 7월에 독립에 성공해 터키공화국 을 창건하지요! 

 

  

그는 정치와 이슬람 종교의 분리 를 선언했는데..... 1922년 10월 칼리프만 유지해

종교적 권한만 갖도록 하고 술탄은 폐지하는 개혁안을 통과 시킨후

인민당을 조직해 앙카라를 새 수도로 삼고 터키공화국 대통령 에 올랐던 것입니다.

 

  

돌궐족의 후신인 투르크는 원제국을 건설한 몽골족 처럼 이름만 있고 성은 없었으므로

모든 국민이 성을 갖는 운동 을 전개하고 케말도 1,934년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 라는 성을 가지니.... 아타” 는 우리말의 아빠” 와 어원이 같다고 하네요?

 

  

 그리스 영토 내 터키계 주민과 터키 영토 내의 그리스계 주민을 교환하는 결정을 내렸으니

 민족국가 터키를 만들고자 했으며 이슬람교도와 비이슬람교도 차별을 금지하고

 여성 교육 을 실시하며 공휴일을 금요일 대신 일요일로 하고 개혁을 혁명적으로 실행합니다.

 

 

이때의 인구교환은 전쟁에 승리한후 그리스와 영토를 나누고는 상대 지역에 사는 자국민을

불러들인 것인데 150만의 그리스인과 50만의 터키인 이 고향을 등지니 이때 소아시아

 서부 이즈미르에 살던 17살 소년 오나시스 는 그리스로 이주해서는 선박왕으로 성공하지요?

 

  

우린 국회의사당이며 관공서와 경찰청에 법원 등 건물을 두루 구경 하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군인들의 쿠데타 가 일어났으니,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대교와 탁심광장 아타튀르크 공항에 여기 앙카라 신시가지 입니다.

 

 

앙카라 국회의사당에 쿠데타군이 들이닥쳐 그 너머에 있는 대통령궁과 군사본부를 점령

했다는데,  6시간만에 막을 내린 쿠데타 진압의 1등 공신은 에르두안 대통령 

보낸 SNS 를 통해 모인 시민 이고..... 다음은 무장 경찰과 정부군 이라고 하니 놀랍네요? 

 

 

에르두안 대통령 은 휴가중인 마르마리스에서 스마트폰 영상통화 에플리케이션 페이스타임

을 통한 대국민 메시지를 발송해 시민들을 불러모아 쿠데타군의 앞을 막게한후

이스탄불 공항 에 도착해 쿠데타 실패를 선언하는데....... 쿠데타 모의가 미리 샌 것 일까요? 

 

 

1961년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켰을때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은 사단장에게 전화해 출동

을 저지시킨후 박소장에게 전화로 포기를 종용하는데 육군은 포병단 일부만 참가했으나

해병대가 출동하니.... 장도영  탱크를 앞세운 3천명 쿠데타군  헌병 1개소대 로 저지(?)...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은 최고 통치자인 총리에게 보고조차 하지않고 전화로만 설득

하다가 실패하니 쿠데타군 진압 에 고작 헌병 1개 소대만 출동 시키고... 장면

총리 는 카르멜 수도원 으로 피신해서 외부연락을 두절한채 수녀 치마폭에 숨었네요?

 

1980년 전두환 소장은 수경사령관과 특전사령관을 요정에 유인하고..... 육군참모총장 을

납치하여 변란을 일으키니 요란한 총소리가 들리자 노재현 국방부장관 은

공비가 내려왔나 하고 겁에질려 처와 자식을 민간 차량에 태우고 서울시내를 전전 합니다.

 

 

참모차장과 장태완 수경사령관 및 군사령관들은 명령권자인 국방부장관 을 애타게 찾는데

과거 장면 총리 처럼  "행방불명 연락두절"  로 전두환측이 병력을 출동시키자

뒤늦게 미군부대를 거쳐 국방부 지하실에 숨어있다가 체포 된 것과 에르두안 이 비교됩니다.

 

 

서울에  공비  가 내려왔다고 생각했다면.....  노재현 장관  은 국방부로 돌아가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도 겁에 질려 본인과 부인 그리고 자식 

안위만을 생각해 서울시내로 도망 다녔으니... 임진왜란때 경상좌수사 박홍 과 같네요?

 

 

부임 13개월 여수 전라좌수영 이순신은 판옥선이 30척 이고 통영 경상우수영

원균은 부임 3개월에 판옥선이 55척 인데 비해 부산의 경상좌수영

"박홍은 재임 4년차에 판옥선 40척" 으로 조선의 관문 부산을 책임지고 있었지요?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영도에 도착해 다음날 새벽에 부산진에 상륙하는데 조선 수군의

판옥선 은 대포를 실은 130명이 타는 전투함 인데, 일본 세키부네 는 70명이 타는 수송선

인데도... 겁에질린 박홍은 "서울의 부모처자" 만을 생각했으니 단 한척의 전선도 띄우지

않고 모조리 불질러 바다에 처넣고 병사들은 해산 시킨후 홀로 말을 타고 서울로 달아납니다.

 

 

한산도 해전 에서 적선 47척을 격침하고 12척을 나포할 때 아군 피해는 전사자 3명 이며

명량 해전 에서 적선 31척을 부술때 아군은 배는 피해가 없고 전사자 2명 인 것은...

조총은 사거리가 100미터 에 불과하지만 조선 대포는 평균 8백미터  300미터 떨어져

적선을 대포로 격침한 것이니 박홍이 대포를 쏘았으면 왜군의 부산 상륙은 불가능 했지요?

 

 

원균은 부임 3개월에 예하 20군데 여러 진과 포를 찾아다니면서 현장점검 을 하다가 왜란을

맞았으니, 장부와는 달리 배와 무기가 없거나 썩어버린 상황에서도 3척을 몰고 왜군과

싸웠으며, 7월 12일 한산도 해전은 판옥선 3척에 협선 2척 으로 이순신, 이억기와 함께

싸웠는데도 이순신을 띄우기 위함인지 달아난 4년차 박홍은 말이 없고 원균만 비난 합니다?

 

 

  되돌아오다가 크즐라이 5거리 에서 조각 공원 을 보는데 비둘기가 유난히

많은 공원에 늘어선 여러 종류의 조각들은

터키 역사  상징하는 모양인데 분수대에 솟는 물을 무심히 바라 봅니다.

 

 

  그러고는 이제 아슈티의 오토가르 로 가서는 시외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멀리 "카파도키아" 로 가야할 시간이라 서둘러 호텔로 돌아옵니다.

 

 

호텔에 체크아웃을 하니 첫날 이마를 문에 부딪쳐 1센티이상 터져 피가 많이 흘러

 아직도 반창고 를 붙인걸 보고는 리셉션의 지배인 이 괜찮은지 물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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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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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2.03.20 죽음 앞에서 "황금" 은 그저 돌 덩이에 불과하고 "소금"은 언제 든지 황금으로 살수 있고
    "지금"은 탄생과 죽음의 순간 까지 함께 한다. 진짜 내 인생네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가끔 지금 처지의 자신을 모르고 살아갈때가 많다. "지금의 너 자신을 알라!."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3.21 참으로 긴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춘래불사춘" 이었구요!
    하지만 이제 춘분이라는......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2.03.20
    주름이 생기지 않는 마음, 희망에 넘치는 친절한
    마음과 늘 명랑하고 경건한 마음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갖는 것이야말로 노령을 극복하는 힘이다.
    -토마스 베일리-

    늘 즐겁고 健康 하시고 幸福 하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3.21 이제 완연한 봄 기운을 느낍니다.
    떨치고 일어나 앞을 보고 걸어야........
  • 작성자클놈인줄 | 작성시간 22.04.03 즐거운 시간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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