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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에서 버밍엄에 도착해서 시내를 구경하다!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2.06.27|조회수114 목록 댓글 2

 

웨일즈의 카디프를 보고는 기차를 타고 북상해 버밍엄에 도착해 시내를 구경하다!

 

 

2022년 4월 23일 기차를 타고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 에 도착해 거리를 걸어 카디프성 을 구경하는데

고대에 프랑스와 영국과 아일랜드에는 남자는 바지를 입고 전투시 전차 를 사용하는 켈트족 이

살았는데 로마군의 침략에 굴복해 라틴화된 지역이 잉글랜드 이고 북쪽으로 도망쳐 저항한 켈트인

 스코틀랜드 라고 하고 서쪽 산악지대 켈트족을 웨일즈 라 하며 바다 건너 섬을 아일랜드 라고 합니다.

 

 

로마군의 침략은 2차례니 첫 번째 카이사르 는 북부 갈리아인(켈트족) 들을 BC 57년에 사비스

전투 에서 쳐부수고는 브리튼인들이 갈리아인들과 연합 할 것에 대비해 BC 55년 영국 에

침략해 인질 잡아 회군하니 윈스턴 처칠 은 대영제국의 역사는 이때 시작 되었다고 말하는

데... 자기나라 역사가 침략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영국인들이 침략자의 후손" 이기 때문입니다?

 

 

갈리아 전쟁 5년째인 BC 54년 카이사르 는 또 브리타니아 원정을 떠났으니 로마군은 800척의 배에 타고

영국에 상륙한후 모든 배는 밧줄로 연결하여 모래밭에 끌어 올려 두고는 배를 지키도록 10개 대대

6천명 보병과 300명 기병대를 남겨둔 다음 내륙으로 진군해 7군단은 브리타니아 대군을 패주 시킵니다.

 

 

브리타니아인 들은 평원에서 진을 치고 대결하는 회전은 피하고 게릴라전 으로 돌입했으니 숲과 늪

에 강으로 뒤덮인 자연환경을 이용했는데 로마군은 식량을 구하러(약탈) 나갔다가 숲속에서

나타나는 적에게 시달렸지만 브리타니아군 전차부대를 보병과 기병이 연합해 격파한후 타메시스

(템즈강) 북쪽에 총대장 카시벨라우누스의 영토로 진격해서 런던을 도하해 항복을 받고 철군 합니다.

 

 

2차는 AD 4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 가 브리튼을 침공해 카라타쿠스를 굴복시키고 로마로 개선했으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재정복으로 웨일스 지역까지 정복했고 그후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와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에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 의 잦은 침입을 막기 위한 두겹의 방벽 을 세웁니다.

 

로마의 브리튼 정복은 영국 문화에 영향 을 끼쳤는데 영미권 성씨와 지명은 로마 제국의 영향을 받았으니

이 문화를 로마노-브리튼 문화 라고 부르며 또한 이 시기 들어온 라틴어 어휘가 웨일스어와 콘월어

남아 있으며 카이사르의 브리튼 침공 으로 로마 제국의 화폐 가 통용되었고 로마와 교류도 활발해졌습니다.

 

 

클라우디우스 는 제위에 올라 영국 원정을 감행하니 1년전인 기원후 42년에 브리타니아의 강력한 왕인

카물로두눔(콜체스터)의 크노벨리누스가 죽었으니 동생과 아들이 왕위 쟁탈 내전 이 일어났기 때문

으로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는 4개 군단 2만 4천명에 갈리아와 게르마니아인 보조병 합쳐 4만명 입니다.

서기 43년 클라우디우스 는 차근차근 전진했으니 브리타니아(영국) 정복 에는 무려 20년이

걸리는데 도나우전선에서 1개 군단을 차출하고 라인강 전선에서 3개 군단을 빼내

왔으니... 브리타니아를 침공한 4개군단은 로마가 동원할수 있는 최대한의 병력

이지만 카이사르가  동원한 6개 군단 에 비해 병력수가 적은지라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플라우티우스 가 이끄는 4만 로마군은 서기 43년에 도버해협을 건너 브리타니아에 상륙해 카물로두눔

(콜체스터)로 진격하니 첫번째 전투는 템즈강 남쪽에서 벌어져 로마군이 승리하고는 카물로두눔

에 입성해 11명의 부족 왕들로 부터 항복 을 받은후 속주화 방침을 결정하니 만기제대한 병사들

(군복무 25년간은  결혼 금지) 을 이주시켜 식민도시를 건설 하고 원주민 도시에는 지방자치권

을 주며 이 핵과 로마식 도로망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만드는게 로마식 속주 통치 의 기본입니다.

 

 

로마로 돌아간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원로원의 허락 하에 개선식 을 거행하는데 네필의 백마가 끄는 전차

 몰았으니 원로원은 3살 짜리 황제의 아들에게는 브리타니아를 제패했다는 뜻인 “브리타니쿠스”

이름을 주었으며 플라우티우스 는 정복사업을 계속하는데 휘하에는 훗날 황제가 되는 베스파시아누스

있었으니 에식스를 떠나 북쪽 노퍽으로 진군했으며 이후 남쪽으로 내려와 켄터베리-런던-바스를 잇는

선에서 공격을 개시하니 아콰이 솔리스라는  바스에서 온천 을 발견한 로마군의 사기는 엄청 높아집니다!

 

 

클라우디우스의 침공으로 도시와 도로등 기반 시설이 갖추어졌으니 황제는 해군 기지를 세운

후에는 로마인이 이주하면서 세워진 도시 중에 가장 번성한 도시가 런던(론디니움)

Londonium 인데 윈체스터, 맨체스터, 울체스터 등의 이름에 체스터(chester) 가 들어가는

지명은 라틴어로 요새를 뜻하는 카스트룸 (castrum)이 어원으로 로마군의 전진 기지였습니다.

 

 

런던과 군사기지를 이어주던 길은 웰링턴 거리가 되었으며 로마 제대군인들이 건설한 콜로이, 무니키

비움 에  브리튼 부족들을 집결시켜 만든 칸톤과 수도 키비타스가 있었는데..... 이 도시들의 외관은

전형적인 로마 도시들 같은 모습이었으며 정복후 브리튼인들에게 로마에 납세 의무 가 부과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브리튼인들은 로마 도시에 거주하지 않았고 갈리아나 히스파니아와는

다르게 일부 식민 도시들을 둘러싸고 켈트 문화를 유지한 채 자치 독립을 공인

받은 부족들의 부락이나 마을에서 거주하는 농민들이 훨씬 많았는데 로마화가

이루어진 동남부 지방에서는 두 속주들과 같이 농민들이 로마식 빌라에 귀속되었습니다.

 

 

AD 5세기에 게르만족의 남하로 로마군이 철수 하자 앵글로 색슨족의 침략 을 받아 점령을 당했으며 이후

바이킹의 침략 에 노르만족이 영국을 점령 했으며 프랑스인 앙 주백작이 침략해 플랜타지네트 왕조

를 세우니 지배자는 프랑스어, 백성들은 영어 를 썼으며...  웨일즈 는 13세기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때 지배하에 들어가 16세기에 합병되는데 이후 잉글랜드 왕자를  The Prince of Wales  라 부르게 됩니다.

 

 

원주민은 켈트족 브리튼인 이고 침략자는 로마 - 게르만 앵글로색슨 - 바이킹 - 노르만인 - 프랑스인

으로 바뀐 것으로, 인류 5천년 역사는 전쟁의 역사 이고 침략자인 승자가 역사를 쓰는 것이니

"침략당한 자들은 농노" 로 사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이거늘.....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침략당해 지배를 받고 침략자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세계인들의 비웃음만 살 뿐인가 합니다?

 

 

카디프성 주변에는 네오 클래식 양식의 석조건물이 늘어선 시빅센터 Civic Center 에 시청

인 시티 홀 City Hall 이 있고 반대편에는 밀레니엄 스타디움 Millennium

Stadium 도 한번은 볼만하며 바닷가에 가면 노르웨이인 교회 가 구경할만 하다고 합니다.

 

 

또 Cardif Bay 라고 해서 바다 산책길의 조각이 볼만하며 카디프에서 좀더 서쪽으로 가면

잉글랜드 남쪽 바닷가 절경의 절벽과 빅토리아 시절 신혼여행지 브라이턴에다가

영국의 정원인 홈 카운티 마을이며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마을 을 볼수 있다고 합니다.

 

 

웨일즈 수도 카디프에서 국제 럭비 대회 가 개최되면 웨일즈,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및 프랑스

팀이 참석해 열기로 도시가 끓어오른다는데 영국 지방팀이 참전하는 대회를 왠 국제대회 냐고 하겠지만

FIFA 월드컵에도 미국이나 중국, 소련은 당연히 한 팀이 예선전에 출전하지만 영국은 국가대항 예선전

에 위 4개팀이 모두 출전하는 것이니, 축구의 발상지로서 축구 종주국의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는 것일러나?

 

 

여기 카디프의 밀레니엄 구장 에서 2012년 8월에 런던 올림픽 축구 3~ 4위전으로 한국과 일본 의 대결이

펼쳐졌으니 박주영과 구자철의 활약으로 2대 0 으로 이겨 동메달의 감격 을 차지했었는데, 경기후

박종우 가 관중이 건네주는 "독도는 우리땅" 이라는 종이를 들고 운동장을 뛰는 돌발상황이 발생합니다!

 

 

올림픽의 정치화 를 염려하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 IOC 는  박종우의 동메달 수여를 금지 하고

한국팀에 올림픽을 정치 선전장 으로 만든 선수의 징계를 지 하니..... 난처해진 한국 축구

협회는 일본에 사과문 을 보내는 등.....  일본이 양해해 주어 결국은 잘 해결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버밍엄 으로 가여 하니 시간이 없는지라 걸어서 카디프 역 Cardiff Station 으로 돌아와서는

1인당 66파운드 하는 표를 사는데 버밍엄이 최종역 이 아니니 여직원에게 기차표를 보이며

Last Destination 역을 물으니 휴대용 단말기를 검색하더니 13시 08분 노팅엄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오늘 노팅엄 까지 갔다가 잠깐 보고 버밍엄으로 되돌아 오자고 일정을 추가하는데 하지만 플랫폼

의  모니터에 노팅엄 기차가 뜨지 않는지라 아래로 달려 내려가서는 밖으로 나갈수는 없으니 지나

가는 자직원에게 문의를 하니 역시 휴대용 모니터를 보더니 13시 45분 버밍엄행 기차 라고 말합니다.

 

 

다시 플랫폼으로 올라와 조금 기다리니 정시에 기차가 들어오기로 올라타는데..... 왜 여직원

휴대용 단말기에는 다르게 표시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데... 기차는 북쪽으로

풀밭에 양을 방목하는 모습을 보며 한참 달려서 15시 45분에 대도시인 버밍엄 에 도착합니다.

 

 

여기 버밍엄 뉴스트리트 New Street 역은 복합몰 역사 가 된지라 역에다가 상가

건물이 쭉 이어져 있어 복잡하기 그지없는데 그래도 10년 전에 한번 온적이

있는지라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오는데 원래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아파트 입니다.

 

 

그런데 큰 아파트도 아니고 찾기 힘든 작은 빌라 같은 곳인데다가 주인이 거주하지 않으니 전화

로 의사소통하기도 어려운지라 취소를 했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 한번 찾아나 보자고 하고

가는데..... 여긴 벽화들이 많고 이어 중국 은행이 보이니 중국인 들이 많이 거주하는 모양 입니다.

 

 

역시나 몇채 안되는 작으 건물에 입구는 번호키를 눌러야 들어갈수 있네요? 우리 부부는 영어가

약하니... 그래도 서로 마주 보고 얘기하면 종이에 단어를 쓸수도 있고 바디랭귀지 라도 할수

있지만 특히 히어링 이 안되니 전화로만 해서는 알아들을수가 없으니 불편한지라 취소한 것입니다.

 

 

건물을 보니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지라 미련없이 되돌아 서서 근처 보이는 큰 호텔인

Holiday innn Hotel  에 들어가니 손님들이 바글거리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며 호텔비를 보니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고가인 350 파운드 인지라 그만 나옵니다.

 

 

그러고는 싼 호텔 도 찾을겸 또 도시를 흐른다는 운하 도 구경할겸 작은 시내

지도를 들 나섰는데 길을 잘못 든건지 Paradise 라는 고가도로로

올라간지라 인도로 나오기 위해 한참이나 걷는데 여긴 호텔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인도로 내려와서는 운하 근처까지 가니 이비스 호텔 이 보이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는데, 예전에 이 이비스 Ibis 체인 호텔에 몇 번

묵었는데...... 시설은 아주 간단하지만 중저가 라 우리가 묵기는 좋은 호텔 입니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가 방이 있느냐고물으니 없답니다? 아마도 오늘이 토요일 이라

가장 방값이 비싼 날이기도 한데 손님도 많은 모양이라 그럼 방값은 얼마냐고

물으니 없답니다? 아니 이 사람 만약에 방이 있다고 가정하고 방값 이 얼마냐니깐?

 

 

그래도 계속 없다 기에 내일 방값을 물으니 그때서야 얼굴이 펴지면서 69파운드라며 예약하겠느냐 묻기에

좀 전의 할리데이인의 5분지 1가격이라 싸기는 하다만... 그냥 물어본 것이라면서 시내지도 를 달래서

한 장 받고는 이 근처 싼 호텔이 없느냐고 물으니 역 근처에 Ibis Budget 라고 이비스 호텔이 하나 있답니다.

 

 

그러고는 호텔을 나와 뒤로 돌아가니 거기에 운하 가 보이는데... 실망스러운 것이

물이 맑지 않고 아주 탁한데다가 여긴 카페나 레스토랑이 들어설

자리가 아닙니다?  좀 더 가그런 분위기 가 나는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Birmingham & Fazeley Canal  이라고 유명하다지만 깨끗한 운하 거리는 여기 버미엄

시내가 아니고 교외지역에 신개발지구 브린들리 플레이스 를 중심으로 운하를 따라

펼쳐지는 최고의 인기지역으로 보트를 타거나 산책을 하는데 바와 클럽 이 많다고 합니다.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데 도중에 역 근처인 New Street 거리 입구에는 젊은 애들

이 수십명씩 모여서 웅성 거리는데.... 약을 하는건지 분위기 가 좋아 보이지

않는지라...... 발걸음을 빨리 하는데 서너곳에 젊은 애들이 모여 있는 것을 봅니다.

 

 

여기 버밍엄 시는 영국 중부 웨스트 미들랜즈 주의 도시로 런던과 리버풀-맨체스터

의 중간에 위치하는데......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로 인구는 114만이며

산업 혁명의 중심지로 중공업이 발달했지만 1960년대 이후 쇠퇴하였다고 합니다.

 

 

재규어와 랜드로버 생산 공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인도, 파키스탄등 남아시아계 주민이 27% 나 차지해

영어를 못하는 주민이 5만명 에 달하고 또 헤비메탈의 탄생지 이자 '반지의 제왕' 작가 톨킨

성장했던 도시이며 애스턴대학교와 버밍엄대학교에 영국 최대의 전시장인 국립전시센터가 있습니다.

 

 

여섯 블록을 걸어서 버밍엄 뉴스트리트 New Street 역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비스 호텔

을 찾을수가 없으니 어쩐다? 원래​ 버밍엄에서 1박하려고 한 것은 세계 최대의 라파엘 전파(前波)

컬렉션이 있다는 버밍엄 미술관 을 보려고 한 것이니 예전에 3번 영국 여행때 런던에서는 대영박물관

과 내셔널갤러리 및 데이턴모던 미술관에 비틀즈의 고향 리버풀에서 데이터모던 미술관 을 보았습니다.

 

 

이번 여행은 중소 도시와 농촌 마을 들을 보는 바람에 미술관은 여기 버밍엄 이 아니면 볼수 없는지라?

영국은 미술이 약한 나라니 플랑드르 화가 반 다이크등이 활약하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라파엘

전파(前派) 사조가 나타났으니 미학에 바탕을 둔 윌리엄 모리스 가 주축이 된 미술 공예운동(Arts

& Crafts Movement) 으로 유럽으로 퍼져나가 아르누보 (Art Nouveau) 양식의 전형이 됐다고 합니다.

 

 

동아일보에 쓴 미술평론가 이은화씨의 글에 보면, 17세기 여성들은 정규 교육을 받거나 전문 직업

갖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그러나 메리 빌영국 최초의 여성 화가 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으니 독립된 화실을 운영하며 그림 판매로 가족까지 부양 했다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1633년 영국 서퍽에서 태어난 빌은 목사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던 아버지에게 그림 을 배워

화가가 되었고 18세 때 직물 상인 찰스 빌과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아 양육하면서도

계속 활동했을뿐 아니라 초상화가로 명성 도 얻었지만 화가 조합 에는 들어가지도

못했고 귀족 후원자도 없었으나 그럼에도 20년이상 개인 화실을 성공적으로 운영 했습니다.

 

 

빌이 33세 때 그린 자화상에는 화가이자 엄마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 이 잘 드러나니 벽에는 팔레트가

걸려있고, 오른손은 작은 캔버스를 잡고 있으며 두 아들의 얼굴을 연습용으로 그린 스케치인데

기혼 여성이지만 매일 치열하게 작업하는 성실한 화가 임을 보여주는 자화상이며 빌은 창작

판매에 있어서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햇으니 명성과 권위 있는 인물을 선택해 모델 로 그렸습니다.

 

 

초상화 가격은 두상 5파운드, 반신상 10파운드 로 미리 책정해 판매했다는데 초상화 제작

으로 연간 200파운드의 수익을 올렸으니 가족 모두를 충분히 부양할 수 있는

큰돈이었으며..... 빌은 자신의 유화 기법을 글로도 기록했으니 유화 기법 안내서

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던 남편은 아내가 성공하자 직업을 버리고 아내의 매니저 가 됩니다.

 

 

빌의 그림은 여성 화가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였던 ‘남성적’ 이라는 호평도 받았지만

‘무겁고 뻣뻣한 채색’ 으로 폄하 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고객은 끊이지 않았으니

당대에 그녀를 아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하니 유화를 잘 그렸고, 성실한 화가였다고.

결국 빌의 성공 비결은....... 자화상 속 모습처럼 뛰어난 재능과 성실함 이었던 것 입니다.

 

 

하지만 호텔을 찾지 못한 데다가 기대했던 운하가 물이 더러워서 실망 이 크니 내일 아침에 가려고

했던 슈루즈버리 에 빨리 가서 거기서 1박하며 여유있게 보자는 생각이 드는데 10년 전에

왔을 때는.... 근처 다른역인 무어 스트리트 Moor Street 역에서 기차를타고 세익스피어

고향 마을인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을 본 기억이 납니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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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클놈인줄 | 작성시간 22.06.28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29 제가........ 고맙지요?
    장마철에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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