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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헤2 - 구시가지에서 백만송이 장미를 생각하다!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2.09.25|조회수83 목록 댓글 2

 

벨기에 브뤼헤2 - 운하도시 브뤼헤에의 구시가지에서 백만송이 장미를 생각하다!

 

 

2022년 4월 28일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최대 도시이자 유서깊은 도시 안트베르펜

에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달려서 브루게(브뤼헤) H. S. Brugge 에 도착합니다.

 

 

도시 이름은 Brugge 인데 우리 한국인들은 알파벳 소리나는대로 “브루게” 라고 읽지만 그건 국적

불명의  콩글뤼시 이고..... 네델란드어 또는 플랑드르에서는 “브뤼헤” 또는 “브뤼허” 

하고, 프랑스어 또는 왈롱에서는 “브뤼주” 라고 하며 독일어로는 “브뤼게” 영어로는 “브루쥐” 라?

 

 

지도가 분명치 않은지라 호텔을 찾는데 엉뚱한 곳을 헤메다가 휴대폰에서 길찾기를 한 다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청년에게 물어 드디어 큰 강변에 정박한 선박 위에 지어진 우리 호텔 에 도착합니다.

 

 

Boat Hotel De Barge : Bargeweg 15 Historic Centre of Brugge 8

Phone +32 50 38 51 50 아침 포함,

 

오늘은 원래 선박 이기는 하지만 새로 리모델링한 그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 뜯어고친 덕분에

 에서 잔다는 실감은 좀 덜하지만 반면에 냄새가 나지않고 일반 호텔 객실 처럼 편안합니다.

 

 

저녁 얘기를 하기에 공짜로 주는가 싶어 반갑기에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자기 레스토랑 에서 먹으면

해준다나요? 나중에 생각해 보겠다고만 말하고는 나오는데 방 키 가 배의 닻 을 닮은 모습입니다.

 

 

 을 보니 생각나는게 칼레해전 이라 부르는 아르마다 해전 이 떠오르니 스페인은 엘리자베스여왕

의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 메디나 시도니아가 총사령관으로 무적함대를 1588년 5월 28일

발진하는데..... 132척 범선 군함, 선원 9천명, 병사 2만명에 죄수 노꾼 2천명 으로 구성 되었습니다.

 

 

스페인함대는 파르마공작 군대 를 만나기 위해 플랑드르의 브뤼헤의 외항인 오스탕드 로 오려고

했으나 모래 언덕에 배가 걸리는 위험 을 감수할수는 없었기 때문에 7월 27일 남쪽

칼레 항구 로 들어가는데 무적함대는 잉글랜드 함선들의 공격을 막기위해 백제 부흥운동때

663년 백강에서 왜선 1천척이 풍랑과 당군에 대비했 듯이 밀집 진형 으로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잉글랜드가 8척의 화공선 을 들여보내니 스페인 배들은 화공선을 피하여 닻줄을 끊고 출항 하는 

밖에 없었으니, 피하는데는 성공하였지만 일부 선박은 충돌해 피해를 입었으며 닻줄을 끊으면서

브리튼섬 해안에서 배를 정박시킬수 없는데, 잉글랜드 함선들은 바다로 나온 무적함대를 공격해

두척이 격침되고 세척이 나포당했으며 나머지 함선들도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거친 북해 로 향합니다.

 

 

북해로 밀려난 무적함대 는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군선들을 뚫고 파르마의 육군과 랑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으니 브리튼섬을 돌아 에스파냐로 돌아가는 것 뿐이었으니 스코틀랜드

와 아일랜드를 돌아 에스파냐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닻이 없는지라...... 해안에 상륙할수

없었으니 거친 바다에서 항해를 견디지 못하고 침수되거나 해안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 합니다.

 

 

1588년 9월 11일 무적함대가 브리튼섬을 한바퀴 크게 회전 해서 스페인 코루나항에 도착 하였을때

무적함대는 65척 으로 줄어 있었으니 잉글랜드 상륙은 시도도 못해보고 67척이나 되는 배와

수병, 그리고 병사들 이 사라진 것인데.... 하루에 무려 6만 듀카트의 돈을 잡아먹고 사람들이

“세상이 생겨난후 가장 컸던 함대” 라 불린 무적함대의 잉글랜드 공격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호텔을 나와 다리를 건너 풀밭을 지나 걸어서 사랑의 호수 Minne water 를 지나는데, 열차를 타고

브뤼헤 도시로 들어가면...... 백조가 떠 있는 아름다운 호수가 눈에 뛰니 바로 이곳인가 합니다.

 

 

주위에는 목가적인 분위기의 공원이 있으며 1740년에 세워진 호수의 다리에서는 브루게의 거리가 한눈

에 보이는데..... 레이에강의 강물을 끌어 들여서 만든 운하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저수지 라고 합니다.

 

 

브뤼헤 Brugge 구 시가지는 중세의 모습 을 간직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었고.... 관광지로 이름이 높아  "북부의 베네치아"  라고도 불린다는데,

중세에는 유럽에서도 가장 큰 도시 중에 하나였으나 현재 인구는 11만명 정도 입니다.

 

 

전통적인 레이스 산업 외에 조선업 도 활발하며, 세계 문화유산 으로 정해진 아름다운 거리

풍경은  많은 관광객을 모으며 40km 동쪽으로 겐트, 90km 남동쪽으로 브뤼셀,

85km 동쪽에 안트베르펜이 위치하며 65km 남쪽에는 프랑스의 항구도시  이 자리합니다.

 

 

거리의 꽃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꽃인 장미 를 보았는데 그 옆 다른 기념품 가게에서 고양이 머리위에

그려진 장미 를 보니, 문득 대중음악 평론가인 오광수 시인이 경향신문에 ‘시와 세상’ 칼럼에 쓴

100만송이 장미 라는 글이 떠오르는데.... 사진은 부천 백만송이 장미등 여러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봄꽃이 지천일 때는 꽃의 소중함을 모른다. 꽃들이 지쳐 시들었을 때 장미 는 핀다. 그래서인지

유월의 장미 는 강렬하면서도 도도하다.  그런  장미가 지천으로 등장하는 노래가 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심수봉 이  ‘백만송이 장미’  로 번안하여 부른 노래로  러시아의 가수 알라 푸가초바 

1982년에 발표했으니,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 가 조지아의 천재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 가 프랑스 출신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던 일화 를 바탕으로 가사를 썼다.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집을 팔고, 그림과 피도 팔아/

바다도 덮을 만큼 장미꽃 을 샀다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노랫말처럼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가난한 화가 피로스마니 는 여배우 마르가리타 를 위해 수만송이

장미 를 사서 바치며 사랑을 고백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잠시였고

여배우는 가난한 화가 곁을 떠났다. 결국 피로스마니가 그린 ‘여배우 마르가리타’ 만 세상에 남았다.

 

 

이 노래는 원래 1981년 소련 치하 라트비아의 한 방송사 가 주최한 가요제에 출전

하여 우승한 듀엣 가수 아이야 쿠쿨레 와 리가 크레이츠베르 가 부른 노래였다.

 

 

마라가 딸에게 준 삶  dāvāja Māriņa ’ 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독일과 러시아에

짓밟힌  라트비아의 슬픈 역사 를 모녀 관계에 빗대서 부른 곡이다.

말하자면 민중가요가 시대적 상황 때문에 사랑 노래 로 뒤바뀌어서 유행한 셈이다.

 

 

발트 3국은 위쪽에서 에스토니아 - 라트비아 - 리투아니아 로 이어지는데 라트비아아(Latvija)

는 중부에 위치한 나라로 수도는 리가(Rīga) 이며 19189년 적백내전 당시 독립 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때 소련에 병합 되었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에 분리 독립 했습니다.

 

 

2009년에 남쪽 리투아니아의 빌뉴스가, 2011년에는 북쪽 에스토니아의 탈린이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되어 이 두 나라의 중간지점에 있는 라트비아의 리가도 2014년에 유럽의 문화적 수도 

되었는데 고대 부족인 라트갈레족(latgaļi) 에서 유래하니 라트비아는 latgaļi 를 라틴어화한 것입니다.

 

 

국가는 “하느님, 라트비아를 축복하소서!)” 이니 라트비아인 작곡가 카를리스 바우마니스

가 작사, 작곡했는데 러시아 제국 지배 시기에 만들어졌기 러시아는 이 곡을

금지곡 으로 지정했으며 가사의 '라트비아' 부분이 '발트' 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느님, 라트비아를 축복하소서!

우리의 사랑스런 조국

라트비아를 축복하소서

다시 한 번 축복하소서!

라트비아의 딸들이 꽃피고

라트비아의 아들들이 노래하는 곳

모두 환희를 위해 그곳에서 춤추자

우리 라트비아에서!

 

 

소련의 가수 알라 푸가초바 가 불러 대중에게 알려졌으며 핀란드와 스웨덴, 헝가리,  한국,  일본

에서도 번안되어 널리 알려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백학과 함께 러시아 민요로 잘못

알려져 있으니 '백만송이 장미'  의 원곡인 'Dāvāja Māriņa meitiņai mūžiņu

(마라가 딸에게 준 삶)' 은 작곡은 라이몬즈 파울스, 작사는 레온스 브리에디스가 했다고 합니다.

 

1997년에 발표된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 는 제목이 같을 뿐, 화가와 여배우의 사랑 을 노래하는

러시아어와 일본어의 가사와는 다른 내용 으로 심수봉 본인이 작사 했으며, 스스로도 자신이

작업한 것 중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으며 다만 이 탓에 심수봉이 작곡한 곡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2011년 KBS “여유만만” 에 출연한 심수봉은 "'백만송이 장미' 는 원래 러시아 민요로 남편의 소개로

처음 듣게되었다" 며 "편곡도 완벽하고 멜로디도 좋아서 듣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며 " 이 노래

를 번역해서 부르자고 생각했지만,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았던 원곡 가사 때문에 고민을 했다"

며  "가장 귀한 사랑이 뭔가 찾다가 아가페적인 사랑 을 찾았다"  고 가사에 얽힌 사연을 밝혔습니다.

 

 

'백만송이의 장미' 로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물론 일본어 '百万本のバラ'  의 영향인가 합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헤어져간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수많은 세월 흐른 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를 안았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 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이인데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되어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장미꽃 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고는 예쁜 브뤼헤 구시가지

를 걸어서 운하를 한바퀴 돈다는 보트 를 타려고 매표소 건물 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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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2.09.25 인새믄한번 왔다 가는겄 후회
    없는 삶이중요함니다 욕심
    없이 과욕안코 허세없는 삶이
    진정 한도리요 참삶이 아릴까
    생각함니다 이웃을사랑하고
    인정을 베풀고 서로존중하자.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9.25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 했으니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 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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