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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2 - 엘라치치광장에서 크로아티아 초기 역사를!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2.12.14|조회수88 목록 댓글 2

자그레브 여행2 - 자그레브의 엘라치치광장에서 크로아티아 초기 역사를 생각하다!

 

 

2022년 4월 30일 아침에 자그레브 에서 원래 계획으로는 북쪽으로 옐라치치광장으로 가지 않고 서쪽

으로 가서는 그라드나강에 걸친 다리를 건너서 성 아나스타사 성당 을 구경하고 산길을

40분간 하이킹한 다음에 오래된 중세시대 고성인 스타리 그라드 Stari Grad 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버스를 타고 멀리 서북쪽 이스트라 반도 로 가야 하니 마음이 급한지라... 저기는

가지 못하고 토미슬라브 광장 Trg Kraija Tomislava 에서 사모보르스케 크렘슈니테

Samoborske Kremsnite 길을 걸어서 옐라치치 광장 Trg Bana Josipa Jelacica 으로 갑니다.

 

 

길게 이어지는 정원 같은 이 곳을 토미슬라브 광장 (Trg Tomislav)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크로아티아의 첫 번째 왕 을 기리기 위함인데....  925년을 전후하여

닌의 크네즈(Knez: 대공) 토미슬라브(Tomislav, 재위 910-928) 가 왕을 칭합니다.

 

 

 

이후로 크로아티아 왕국 이 되었으니 "대크로아티아 주의의 원조" 로 일컬어지는 군주이기도 한데

토미슬라브는 크로아티아에서 세르비아의 스테판 두샨 과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왕 입니다.

 

 

계속 걸어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렙의 메인광장 (Main Square) 인 옐라치치광장 Trg Bana Josipa

Jelacica 에 도착하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반젤라치크 광장 Trg Ban Jelacica 이라고도 불립니다.

 

 

옐라치치 광장 Trg Bana Josipa Jelacica 에는 말을 탄 반 젤라치카 Bana Jelacica 의 멋진 동상

 서있고, 카페로 둘러 싸인 장방형의 광장에는 젊은이들 로 넘쳐흐르는 모습을 구경합니다.

 

 

크로아티아는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제국 의 지배를 받았으니 일리리아 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후 로마 속주로서 달마티아(Dalmatia) 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현재 크로아티아 영토에서 지중해에

면한 지역이고 내륙지역은 달리 판노니아(Pannonia) 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니 달마시안의 원산지 입니다.

 

 

4세기에 게르만족의 거센 침공 에 시달렸으며, 378년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에서 로마 가 패배한 뒤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의 지배 를 받았으며........ 그후 여러 혼란한 상황을 거쳐 동로마

제국에 복속되었으나 8세기에 슬라브족 이 남하하여 차지한 이후 슬라브족의 영토로 계속 남았습니다.

 

 

크로아티아인의 정착 과정은 콘스탄티누스 7세 가 10세기 경에 저술한 《De Administrando Imperio

( 제국의 통치에 관하여 )》 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으니..... 그 이전 시대의

크로아티아인의 이주와 형성 과정에 관한 문헌 기록은 빈약하기 때문에 추론과 가설 에  의지합니다.

 

 

6세기 경에 아바르족의 지배 를 피해 달아난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동로마의 황제 헤라클리우스 가

사절을 보내 일리리쿰에 주거지를 제공 하였다고 하며,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의 조상 에

해당하는  슬라브족 들은 아바르인들이 몰락하자 유고슬라비아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획득합니다.

 

크로아티아인의 발칸반도 정착 이 동로마제국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 지역이 원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이래 동로마의 지배 하에 놓여있었던만큼.....

원래 크로아티아는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 교회(정교회) 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바르족 이 8세기에 게르만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에게 크게

패배하면서 내륙인 판노니아 크로아티아 공국은 프랑크 왕국 으로,

서부 아드리아해의  달마티아의 크로아티아 공국은 동로마 의 지배에 들어 갔습니다

 

 

판노니아의 크로아티아인 들은 샤를마뉴의 대대적인 기독교 정책으로 로마 교회(가톨릭) 로 귀의하게 되며

그와 더불어 닌(Nin) 에는 최초의 크로아티아 기독교 교구가 세워졌으니, 이렇게 한동안 크로아티아는

동로마가 지배하는 달마티아 크로아티아 공국  프랑크 왕국이 지배하는 내륙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823년에는 동로마가 프랑크와의 전쟁에서 패배 하면서 달마티아도 프랑크 왕국 에 복속 되고

그 후 크로아티아는 즈데슬라브 (Zdeslav, 재위 878-879) 재위기에 잠시 동로마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는 콘스탄티노플 교회 관할 에 잠시 속하기도 했지만, 즈데슬라브

사후인 브라니미르 (Branimir, 재위 879-892)  재위기에 다시 로마 교회 관할 로 되돌아옵니다.

 

 

크로아티아 공국 은 925년을 전후하여 닌의 크네즈 (Knez: 대공) 토미슬라브 (Tomislav,

재위 910-928) 가 왕을 칭하면서 크로아티아 왕국 이 되었는데, 토미슬라브는

크로아티아 내에서 세르비아의 스테판 두샨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왕입니다.

 

 

토미슬라브 는 대크로아티아주의의 원조 로 일컬어지는 군주이기도 한데, 정작 그에 대한 기록은 매우

부족해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으며..... 저 928년이란 연도도 928년에 닌 교구 폐지

회의가 있었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저 회의에 토미슬라브가 참석했을 거라고 추측 해서 정한 것입니다.

 

 

왕을 칭했다는 직접적 기록은 없고 대신에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10세 (Joannes X, ?~928)가 토미슬라브

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를 왕(Rex) 이라 칭한 대목이 있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토미슬라브가 아니라

스트예판 드르지슬라브 (Stjepan Držislav, 재위 969–997) 를 최초의 크로아티아 왕으로 보기도 합니다.

 

 

크로아티아 왕국 은 페타르 크레쉬미르 4세(재위 1058~1075) 재위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니

페타르 크레쉬미르 4세 는 1054년 동서 교회가 분열된 후인 1059년에 로마

교회에 사절을 보내 공식적으로 왕으로 인정받아 비오그라드(Biograd)에서 대관식 을 치룹니다.

 

 

크로아티아 내에서 로마 교회의 입지 를 확고히 하였으며 해안지역의 여러 도시들을 건설·육성했는데,

이 덕분에 닌 외에도 쉬베니크(Šibenik), 스크라딘 (Skradin) 등의 도시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페타르 크레쉬미르 4세 의 최대 업적은 대대적인 영토확장 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영토를 오늘날의

크로아티아 내륙지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등지 까지로 확장시켰으며....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 연안의 섬 들이 크로아티아의 영토로서 확고해진 것도 이 시기의 일입니다.

 

 

하지만 페타르 크레쉬미르 4세는 1075년 동로마 제국과 협상 을 맺은 노르만족의 침략 을 받았고,

왕 자신은 노르만족에 의해 생포 되었는데..... 야사에 의하면 그는 석방을 위해 크로아티아

해안의 여러 도시들을 포기했지만, 결국 풀려나지 못하고 노르만족의 감옥 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페타르 크레쉬미르 4세가 아들이 없이 죽자.....  포사비나 (Posavina) 지역의 반(Ban) 이었던 드미타르

즈보니미르 (Dmitar Zvonimir, 재위 1075~1089) 가 로마 교회의 지지를 등에 업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즈보니미르 재위기에는 키릴 형제가 전해준 글라골 문자 를 기반으로 한 문화가 발전했고, 중세

봉건체제가 확고하게 자리잡았지만 즈보니미르는 교황의 요청에 따라 1089년에 십자군

원정을  준비 하다가 국력 소모와 재정파탄을 이유로 원정을 반대하던 귀족들에게 시해 당합니다.

 

 

즈보니미르가 귀족들에게 시해당한 후에 스트예판 2세 (Stjepan II, 재위 1089~1091) 가 옹립되었지만 그가

후손 없이 죽자 계승 분쟁 이 발생했으니 이 광경을 보다못한 즈보니미르의 왕비 옐레나 리예파 (Jelena

Lijepa, ?~1091)는 즈보니미르의 처남이자 그녀의 오빠인 헝가리 왕국 왕 라슬로 1세 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자그렙은 로마 가톨릭 대주교 관구 로 성 스테판 성당 (St.Stephen Chapel) 으로 불리는 자그레브

대성당 (Zagreb Cathedral) 이 있으니...... 1094년 라디슬라우스 1세에 의해 건축되기

시작한 자그레브 대성당은 1242년 몽골의 침략으로 파괴 되었다가 1263년에 다시 건축되었습니다.

 

 

이른바 여기 자그렙 대성당 Zagreb Cathedral 은 광장에서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가면 오른쪽에 교회 정면

파사드 가 너무나 섬세한 건축물인데.... 오랜 세월을 견뎌온지라 한마디로 참으로 고풍스러워 보입니다!

 

 

대성당 을 구경하고는 나와 왼쪽 길로 걸어 골목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이른바 청과시장

이 보이는데... 현지인들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 도 몰려들어 북적이는 모습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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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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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2.12.14 자신을 비추려 하지 말자.
    지나침은 침묵(沈默)을 불러오고,
    설치면 이웃이 외면(外面)한다.
    자랑은 벌거벗은 나를 들어내 보이는 거다.
    우리 바위처럼 살자.
    겸손(謙遜)한 사람은 참 아름답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2.19 도심 한복판 평지에 이런
    넓은 공원은 부러움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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