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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니 4 - 세례식을 보고는 나와 해변을 구경하다!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3.02.06|조회수70 목록 댓글 4

 

크로아티아 로비니4 - 교회에서 집단 세례식을 구경하고는 나와 해변을 구경하다!

 

 

2022년 4월 30 자그레브 에서 버스로 리예카 Rijeka 를 구경하고는 오파티야와 로브란에 라빈을 지나

풀라를  거쳐 로비니 에 도착해 호텔을 구해 1박 하고는, 다음날인 5월 1일 우리가 인터넷으로 예약한

아파트먼트 Apartments Villa Bianca 를 찾아 체크인을 하고 골목길을 올라 가서는  해변을 구경합니다.

 

 

해변을 내려다 보며 언덕길을 올라가서는 마침내 언덕 꼭대기에 도착해 정상에 자리한 성 에우 페이먀

교회 Sv. Eufemija : Church of St. Euphemie 로 들어가는데..... 이스트라 반도에서는 가장

높은 60미터 종탑은 로비니의 랜드마크 로....  전설의 성녀 에우페미아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시절 박해를 받고 투기장에서 사자에 물려죽었다는 에우페미아의 관 이

로비니의 바다에 떠올랐고 작은 교회에 안치했는데 후일 교회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하며 마침 교회 안에서는 대가족이 모인 가운데 집단 세례식 이 열리고 있는지라 구경을 합니다.

 

 

밖으로 나오니 길이 좁아 자가용을 빼는데 애를 먹는 것을 보고는 해변으로 내려가는데 1763

섬과 해안을 매립해 육지와 연결된 로비니는 이탈리아어로는 로비뇨 Rovigno 라고

하는데로마와 베네치아 그리고 오스트리아 지배를 거쳐 1차대전 후인 1918년 부터

1947년 까지는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니.... 지금도 주민의 10% 는 이탈리아계 라고 합니다.

 

 

1차 대전후 로비니는 패전국인 오스트리아 소유 에서 승전국인 이탈리아 소유 로 국경선

이 다시 그어졌다는 얘기인데.... 저 1차대전후 한국인들은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  선언도 있고 해서 일본으로 부터 독립을 위해 3.1 만세운동을 벌입니다.

 

 

만세운동을 벌인 한국인들은 3천리 방방곡곡에서 일본으로 부터 독립을 외치노라면 국제사회가 반응

할 것이고 일본도 세계 열강들의 간섭 으로 결국 예전에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차지한 만주의

요동 반도를 러시아프랑스에 독일 3국 간섭으로 내놓았 듯   한국을 내놓을 것 으로  생각 했습니다.

 

 

당시 "유교적 명분론" 에 젖어있던 한국인들의 생각이 참으로 순진한 것이었으니..... 동서

고금 인류 5천년 역사에서, 전쟁에 패하면 영토를 뺏기거나 아예 나라가 망하기도

하며 전쟁에 승리하면 새로운 영토를 취득해 강대국으로 올라서서 국위를 떨치는 것입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 영국미국과 같은 동맹국으로 승전국 이었으니 새로운 영토를 더 차지하는게 당연한

지라 독일이 차지했던 산둥반도와 남태평양 섬들을 새로 얻았는데 이런 승전국에게 마치 패전국에게나

요구하는 가진 땅을 내놓으라니... 세계 열강 중에 한국의 독립을 지지한 나라는 단 한나라도 없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1900년 중국 의화단 사건때 천진에 상륙해 육로로 진격해서는 베이징을 함락하고 점령한 8개국

중에 한 나라로 투입된 일본군 병력은 7개 서양 나라 군대를 합친 것 보다 더 많았으며 1905

러일전쟁은 영국과 동맹국이고 미국과는 준 동맹국 으로 승리했으며 1차 대전 중에 러시아

에서 공산 혁명이 발생하자 미국 등과 시베리아에 출병한 프등 연합국의 일원 이었던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시작되었고, 1918

11월까지 5년간 계속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대전으로 1918년 독일의 항복 으로 끝났는

데....  민간인을 제외한 군인 사망자만 해도  900만명 이  넘었던  미증유의 세계대전  이었습니다.

 

 

원인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국민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 당한 사건이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 최후 통첩을 하면서 7월 위기가 시작 되었고

러시아가 세르비아편을 들고  또 독일이 오스트리아편을 들면서  세계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878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 영토였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를 점령한 이후 1908년 부터 1909년까 지 보스니아 위기 가 도래하게 되는데.... 이 점령

으로 세르비아 왕국 및 후원자인 범슬라브주의 동방 정교회의 러시아 제국을 화나게 했습니다.

 

 

남유럽 지역에서 러시아의 행보는 이미 "유럽의 화약고"  로 널리 알려진 발칸반도

의 균형을 붕괴시켜 평화 협정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으니 1912년 부터

1913년까지 발칸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인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합니다.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면서 일어난  전쟁의 결과 체결된 런던조약에서 알바니아는  독립했으며불가리아,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그리고 그리스는 영토를 확대하면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토가 감소 했습니다.

 

 

1913년 6월 16,  불가리아가 세르비아 및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33일간의 제2

발칸전쟁에서는 불가리아가 패배하여 세르비아와 그리스에게 마케도니아 대부분을,

루마니아에게는 남도브루자를 빼앗기게 되었으며 발칸 반도를 불안정 하게 만들었습니다.

 

 

인류 5천년사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누구편에 서야 하는가?  당연히 이기는 편에

가담해야 승전국 이 되고 전쟁후 전리품으로 재물과 영토 를 챙길수 있으니

3국 동맹에 속했던 이탈리아는 처음에 오스트리아독일 편에 서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프랑스가 외교력을 발휘해서는 이탈리아를 설득 했으니  세르비아편에 참전한

프랑스영국편에 서면 전쟁 후에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는 크로아티아등지의

영토를 주겠다고 하니 솔깃해진 이탈리아는 세르비아(프랑스영국편에 참전합니다.

 

 

사라예보에서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 주민들에 대한 폭력을 하도록 부추기니 사라예보의 크로아티아

과 보스니아인이 세르비아인 두명을 죽이고 세르비아인 소유의 건물을 불태우는 사라예보

반세르비아 폭동이 일어났으니 이보 안드리치는 "사라예보에서 증오의 열풍이 불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통치 중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세르비아인 5,500명을 수감

했는데 그 중 700명에서 2,200명이 감옥에서 사망 했으며 세르비아인 460명은 사형

선고가 내려졌고 이슬람교가 지배적이었던 지역에서는 슈츠크롭스(Schutzkorps)

라는 민병대 집단이 형성되어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핍박을 시작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1차 대전에서 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군에게 패배 했기 때문에 이스트라 반도는 오스트리아

땅에서 이탈리아령 이 되었고 2차대전에서 이탈리아가 패하는 바람에 유고슬라비아땅 이 된 것

이니 마찬가지로 2차대전에서 일본이 승전국이 되었더라면 한국은 독립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봅니다.

 

일본은 1900년 부터 시작해 40년 동안 영국 미국과  4차례 동맹국 으로 같은편이었는데

2차대전 때도 5번째로 같은 편 이 될수도 있었으니, 미국과 협상을 벌이게 됩니다.

1940년 일본에 이토 히로부미 같은 지도자가 있었다면 미국과의 협상은 타결했을수도...

 

 

일본은 미국의 요구대로 영국프랑스 및 미국 3국의 반식민지(수출 시장였던 중국 점령지에서

철수 하고 또 북베트남에서도 철수해 미국 식민지인 필리핀프랑스의 식민지 인도차이나,

네델란드의 식민지인 인도네시아 및 영국의 식민지인 말레이버마인도령을 인정 했더라면.....

 

 

중세 이후 북이탈리아 땅을 두고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은 7차례나 큰 전쟁 을 치루었었는데....

그러면 나폴레옹이 북이탈리아를 오스트리아에서 빼앗은후 상실감에 빠진 오스트리아 를

달래려 베네치아 땅 을 주었듯미국과 영국은 일본에 약간의 보상으로 몽골 을 주었을 것입니다?

 

 

영국과 미국은 2차 대전에서는 독일의 히틀러 에 대항하기 위해 공산주의 소련과 손을 잡았지만

2차대전이 끝나면 공산주의 소련의 팽창을 일본의 힘으로 막을수 있으니 윈윈하는 것으로

미국과 신뢰만 쌓이면 사할린과 블라디보스톡 등 연해주 일부도 얻을 수도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일본은 괴뢰 정부를 수립한 만주에서 5족 협화 를 내세우고 있었는데....  미국과 오래된 동맹을 유지

하자는 온건파 들이 미국을 공격하자는 군부 강경파들을 제압했더라면 태평양전쟁은 일어

나지 않고 한국인들은 한반도는 일본인들에게 내어주고 전원 만주땅 으로 강제 이주되었을 것입니다.

 

 

강제 이주된 한국인들은   1위 일본인 밑에서   2위 한국인,   3위 만주인,   4위 몽골인 그리고 

5위 중국 한()족 으로 질서가 형성된  만주땅에서 2등 국민으로 살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니....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미국에 패하고 동서냉전 덕분에 독립 을 획득한

우리로서는 미국과 협상을 깬 일본 강경 군국주의자들에게 진정으로 감사 해야 하는 것일까요?

 

 

1940~41년 당시 일본은 군부 강경파 가 온건파를 누르고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니 도조 히데키가

총리대신에 올랐으며 미국은 일본에, 중국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하면서 석유와 철광석 등 천연

자원 금수 를 실시하자 일본은 2~3년 후에는 비축석유가 바닥나면 항곡기나 군함도 운행을

할수가 없다며.... 1941년 12월 8일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해 전쟁 을 일으켰다가 패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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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23.02.06 최고입니다
    여행시즌입니다
    올해 어디가시나요?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2.06 봄아 되면..... 규슈를 생각합니다.
    아님 여행계획서를 작성하고
    비행기며 호텔까지 예약했다가
    코로나 방역으로 2번이나 취소한 그리스 일주.....
  • 작성자나유미 | 작성시간 23.02.06 잘봤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2.07 아름다운 해변 도시....
    이스트라반도의 로비니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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