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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피란4 - 해변을 걸으며 달마티아를 생각하다!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3.03.31|조회수82 목록 댓글 0

 

슬로베니아 피란4 - 해양박물관을 나와 해변과 항구를 걸으며 달마티아를 생각하다!

 

 

2022년 5월 4일 슬로베니아의 코페르 Koper 에서 이졸라 Izola를 거쳐 피란 Piran 에 도착해 점심

을 먹고는 3시가 되어 호텔로 찾아가 체크인을 한 후에 나와 항구를 보는데.... 피란 Piran 

아드리아해 트리에스테만 건너편에 돌출된 반도로 13~18세기에는 베네치아의 지배 를 받았습니다.

 

 

구시가지는 돌이 깔린 골목과 역사적 건축물이 해안선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며, 해양박물관

Pomorski Muzej 을 보는데....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아래 항구 도시로 발전해온 피란의 해양역사를

돌아 보니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등 서부 해안지대인 달마티아 는 베네치아가 오래 지배했던 지역 입니다.

 

 

달마티아 는 아드리아해의 동부 해안지방의 지명으로  크로아티아 해안 의 대부분을 차지

하는데  광의의 의미로서 북쪽으로는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 와 슬로베니아의 피란,

남쪽으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과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일대까지 포함됩니다.

 

 

주요  휴양 도시들로는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  자다르,  두브로브니크 등이 있으며 지역의 명칭은

일리리아 지역의 부족이었던 달마테 에서 유래되었고이후 로마 제국의 일리리쿰 속주에서

달마티아 속주 가 분리되며 굳어졌으니 주도 살로나는 현대 스플리트 근교에  솔린에 있었습니다.

 

 

슬라브계 크로아티아인이 주를 이루는 크로아티아에서도 달마티아 해안은 라틴계 혈통이 주를 이루니

역사적으로는 이탈리아 반도에 기반했던 로마 제국에서 처음에는  '일리리쿰 속주 였다가

아우구스투스가 일리리쿰을 판노니아 속주와 달마티아 속주로 분할하면서 달마티아 속주 가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동서 분열후 10세기에 베네치아 공화국 도제 피에트로 오르세올로 2세 가 해적 퇴치의 공 으

동로마제국에서  '달마티아 공작직위를 받으면서 달마티아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 하에 들어갔습니다.

 

 

이탈리아어와 동부 로망스어군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달마티아어 가 아드리아 해안지대

를 중심으로 쓰였으며.... 서기 6세기 이후 슬라브족의 이동 으로 인한 슬라브인과의

통혼으로 축소된 상태에서 베네치아 공화국 정부의 베네치아어 획일화 정책이 실시됩니다.

 

 

이 때문에 16세기 부터 달마티아어 사용 인구가 더욱 축소되어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겨우 몇명만이

쓰는 언어가 되었고, 1898년에 마지막 화자인 Tuone Udaina 가 폭파사고에 휘말려 사망하면서

달마티아어는 사멸 했으니.... 현재는 언어학자와 역사학자들이나 공부하는 수준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지배자였던 베네치아 공화국 멸망 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치하에서  달마티아

왕국 자체는 오스트리아 제국 직할령이었으나 달마티아 북부는 크로아티아-

슬라보니아 왕국 이 지배하면서 달마티아인은 점차 크로아티아인에게 동화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이 지방을 미수복 이탈리아 (Italia irredenta) 라고 주장하면서 달마티아를 집어

삼키려고 획책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후 해체되면서

달마티아 지방은 유고슬라비아 왕국 이 지배했지만 1920년 자다르를 이탈리아에 할양 했습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인 1941나치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의 침공으로 정부와 왕실은

영국으로 망명하고 이탈리아는 이를 틈타 달마티아 주로 일시적으로 병합 했지만

그후 이탈리아는 2차세계대전에 패전해서 자다르이스트리아 반도까지 유고슬라비아 

내주고 쫓겨났으며... 이후 달마티아는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크로아티아의 영토로 이어집니다.

 

 

달마티아는 복잡한 해안선과 수많은 섬이 있어서 리아스식 해안의 좋은 예시이니 자다르스플리트 근해

의 섬이 유명한데 중세에는 베네치아 상선뿐만 아니라 해적들이 출몰 하던 지역이기도 하며

이런 역사 덕분에 캐리비안의 해적 에 나오는 인물 티아 달마의 이름을 바로 달마티아 에서 따왔습니다.

 

 

그리고 개의 품종 중에 그 유명한 달마시안 이 바로 이 곳에서 살던 견종이었다는데 오늘날에는 자연환경이

빚어낸 천혜의 경관과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가 어우러져서 여름만 되면 휴양객들로 호텔들이

모두 매진 되는 지역이고 지중해 특유의 붉은 지붕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경관이 모든 지역에서 펼쳐집니다.

 

 

해양박물관을 나와 해안을 따라 걸어서 해양활동박물관을 지나 타르티니예브광장 Tartinijev Trg. 

도착하는데..... 여기 피란(피라노출신으로 18세기에 바이얼니스트 로 활약한 바로크 음악의

작곡가 주세페 타르티니 Giuseppe Tartini 의 동상 이 서 있으며 근처에는 그의 생가도 있다고 합니다.

 

 

주세페 타르티니 (Giuseppe Tartini, 1692~ 1770)는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 로 아버지

는 피렌체의 귀족 출신이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1709년 17세로 북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에

입학하여 법률학을 전공했으나 곧 음악과 펜싱에 열중하였고 특히 펜싱 명수로 이탈리아에서 유명해졌습니다.

 

 

1713년에 21세 때 엘리자베타 프레마초레와 사랑에 빠져 결혼 했지만 이 일이 프레마초레의

보호자였던 유력한 추기경의 노여움을 사서 체포 명령 이 내려져 파도바를 떠나 각지를

방랑하다가 중부 이탈리아 아시시에 주거를 정하고 바이올린과 작곡 공부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법을 연구했고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 을 작곡하는 등 현저한 진보를 보였으니

1715년 23세 때 부인이 기다리는 파도바로 돌아와 음악가로 활약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1721

4,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예배당의 수석 바이올린 주자가 되어 예배당 합주단· 합창단을 지도하였습니다.

 

 

1728년 파도바에 바이올린 학교 를 설립하여 바이올리니스트의 조직적인 양성에 나섰으니 교육

활동을 하는 한편 이탈리아 각지를 연주 여행했으며 그의 명기를 피로(披露)

하였고 1755년 63세 때는 간절한 요망으로 파리와 런던을 방문하여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작곡가로 타르티니는 이탈리아 바로크 최후의 바이올린 음악의 대가 이니 바이올린 소나타는

형식이나 양식적인 면에서 새로운 맛은 보이지 않지만 우아한 멜로디와 간결한 화성에

독특하고 유화한 분위기가 있고 신선한 매력이 넘치고 있으니 교육자로서는 음악학교

를 설립하여 후진지도에 임한 외에 "화성론"  등의 저서를 출판하여 후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악마의 트릴 은 1749년 작곡한 그의 대표작으로 아시시에서 새로운 바이올린 주법의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때 한밤의 꿈에 악마가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들었으니 잠에서 깬 타르티니는 기억을 더듬어 소나타

를 악보에 기록했는데  "악마의 트릴" 이니 그 호칭은 마지막 제3악장에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기 매우

어려운 트릴이 나오기 때문이며 그뿐 아니라 꿈속에서 악마에게 배웠다고 하여 작가 자신이 붙인 이름입니다.

 

 

“ 때는 1713년의 어느 날 밤이었다잠들어 있던 나는 문득 눈을 떴고웬 악마 가 내 곁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일어났다악마는 내게 거래를 제안했고나는 악마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어떨지

궁금해졌다나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내 영혼을 팔았고악마에게 내 바이올린 을 건넸다.

그리고 이럴수가악마는 너무나도 황홀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신들린 듯한 기교로 연주해 보이는 것이었다

 

 

눈을 뜨니 꿈 이었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꿈 속에서 들었던 선율  이 머리에서 사라지기 전에악보에다

되는 대로 그 악상을 옮겨적었다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내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 (Il Trillo

del Diavolo) 이다하지만 나는 꿈 속에서 들었던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울 마눌이 부산의 그레이스 쳄버 오케스트라 GCO (옛 BMO) 의 바이얼린 연주자인 탓인지 저 주세페

타르티니 (Giuseppe Tartini) 동상을 보고 기뻐하는지라.... 관심이 많으니 조금 더 적어 볼까 합니다.

 

 

1악장  :  라르게토 아페투오조로 잔잔한 반주 위에서 다소 우울하고 차분하지만

깊고 유려한 바이올린 선율 이 등장하니 두도막 형식으로 바로크 시대의 주법에 따라

건조하게 연주할수도 있지만,  비브라토를 섞고 감정표현 도 넣어주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2악장 :  알레그로 (템포 주스토)로 빠른 악장에서 16분음표가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음표 중 절반은 꾸밈음 과

트릴을 매달고 온다역시 두도막 형식듣기에는 정열적이고 아름답지만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정말 일말의

쉴 새도 없다속도는 4분의 2, 4분음표=88. 템포 주스토이므로 정확한 알레그로 박자를 지켜 연주해야 한다.

 

 

3악장 안단테 알레그로로 서두에서 다시 바이올린이 7마디 동안 유려한 선율을 읊조린후본격적

으로  "악마의 트릴이 시작된다분위기는 급격히 바뀌어서 빠르고 격렬한 패시지로

돌입하며스타카토가 날카롭게 튀기고 3화음 더블스톱이 거칠게 긁어대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낮은 음역에서 한바탕 휘몰아치고 난 후에..... 분위기가 잠시 잦아들 무렵 바이올린

이 악마의 트릴을 연주하기 시작하는데더블스톱과 트릴이 동시에

엮여지는..... 현란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괴이하다고 할 기교 를 요구하는 부분이다.

 

 

이런저런 회상에서 벗어니서는 타르티니예브 광장 을 뒤로 하고 피란 구시가지

골목길을 걸어 언덕을 올라가니... 성벽이며 오래된 성당이 보이기로

들어서니 성페테로 교회 인가 봅니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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