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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빌-도빌2 - 트루빌을 보고는 다리를 건너 도빌을 구경하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4.06.25|조회수78 목록 댓글 2

 

트루빌-도빌2 - 트루빌 구시자지를 보고 다리를 건너 도빌 시가지를 구경하다!

 

 

5월 26일  루앙 에서 기차를 타고 르아브르 를 거쳐 옹플뢰르 Honfleur 에 도착해 항구와

해양박물관에 생트 카트린 교회와 외젠부댕 미술관 을 구경하고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20번 버스 를 타고 40분만인 2시에  트루빌- 도빌르  Trouville Deauville 에 도착 합니다.

 

 

리시우 Lisieux  로 가는 기차가 오후 3시 59분 에 있는걸 확인하고는....  투크강

La Touques 에 놓인 벨주 다리 Pont des Belges 를 건너 트루빌 쉬르 메르

Trouville Sur Mer 에 도착해 집과 강에 보트며 요트들을 구경하고 어시장과

해수욕장 을 보고 나와 구시가지 로 들어가서 걷는데 여긴 아기자기한게 볼만합니다.

 

 

명품 숍 이며 예쁘고 개성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들을 구경하고 구시가지를

빠져나오니 인포메이션센타 Office de Tourisme 인데... 도시로

들어갈 때 들를걸 강변길로 가다보니 나올 때에야 보는지라 그냥 지나칩니다.

 

 

그러고는 다시 투크강 La Touques 에 놓인 벨주 다리 Pont des Belges 를

건너와서 기차역을 지나 조금더 걸으니 여긴 도빌  Deauville

인데 항구에는 수많은 보트와 요트 가 빽빽이 들어찬 모습을 구경합니다.

 

 

이 도시 도빌 Deauville 은 나폴레옹 3세의 동생 모르니 공작 

1,861년에 개발해 경마장 을 건설한 것이 시초로 경마와

카지노 및 해양스포츠 도시 로 예쁜 해수욕장 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하프팀버  양식 시청을 지나 플랑슈 산책로  Promenade des Planches  너머 해변은

“꽃으로 수놓은 해변” 이라고도 불리니... 1,966년에 촬영된 영화 “남 과 여”의 무대

인데 영화 “남과여” 는 칸 영화제 대상아카데미 최우수 외국 영화상 을 수상 했습니다.

 

 

도빌  Deauville  은  여름에는  파리의  사교계가  옮겨왔다고  할 만큼

상류층 사람 들이 많이 모이는데 고급 휴양 건축물인 빌라

스트라스뷔르제 (Villa Strassburger) 를 볼 수 있는 도시 이기도 합니다.

 

 

매년 3월  도빌 아시아 영화제 가 열리는데 2001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대상 을 받았으며 2,014년에는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가 심사위원상 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시청등 주택과 거리가 예뻐서...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 이 사랑한 도시로

에버랜드 로 불릴 정도로 예쁜 도시인데..... 이 도시에

Restaurant l'essentiel 는 한국 여인과 프랑스인 남자 부부 가 운영한답니다.

 

 

두 부부 를 생각하다가 문득 하비에르 국제학교 한국어 및 프랑스어 교사

임정원 씨가 떠오르는데..... 그녀는 프랑스의 학교 교육 

설명하면서 “ 佛 학교 성적에 이의가 없는 이유 ”  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대학입학 전형에 지원하기 위한 학교생활기록부의 공정성 에 대한

논란 이 일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학교생활기록부 는 상급학교에 진학

하는데 무척 중요한 자료 다.  그러나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프랑스 학교의 생활기록부는 성적표에 포함 되어 있다. 성적표에

각 교사가 자신의 과목에 대한 점수 뿐 아니라 간단한

문장으로  그 과목에 대한  ‘평가글(appr´eciation)’  을 입력한다."

 

 

"이를 바탕으로  학급 평가회의  에서 결정된  ‘종합 평점  (mention)’ 과  전체적인

‘평가글’을 교장이나 교감 이 써주기 때문이다. 그랑제콜 로 불리는 엘리트

대학 입학준비반에 지원할 때는 점수 못지않게 종합평점과 평가글 이 아주 중요하다 "

 

 

"종합 평점  은  전 과목  평균  점수에  따라  5단계로 매겨진다.   프랑스 학교는

20점 만점이므로 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말하자면 ①칭찬(90점 이상)

②아주 잘함(80점 이상) ③잘함(70점 이상) ④격려(60점 이상)

⑤ 경고(50점 이하) 로 표시된다. 그런데 이 기준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수학은 늘 만점이고 전 과목 평균이 90점 이었던 마티아스는 ‘수업

태도가 나쁘다’  는 이유로 최고의 종합평점인  ‘칭찬(f´elicitation)’

을 받지 못했다.  반대로 레아는 평균 80점 이었지만  ‘성실하다’ 

평가글과 함께 최고의 종합평점을 받았다. 레아 같은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내 친구는 “말도 안 된다” 며, 우리나라 같으면 공정성

문제 때문에 난리가 날 거라고 반박 했다.  그런데 내가 프랑스

중· 고등학교에서 일한 5년 동안, 나는 물론이고 동료 교사들도

종합 평점과 평가글 에 대한 공정성 시비나 학부모 간섭을 겪은 적이 없었다."

 

 

"이  종합 평점과 평가글  을 바로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학급 평가회의

(conseil de classe)’ 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중·고교는 1년에 3학기 인데,

학기마다 담임과 교장 선생님의 주재 아래, 반별로 모든 교과목 교사 들과 생활지도

담당은 물론 학생대표(반장, 부반장), 학부모 대표 까지 참여하는 학급 평가회의가 열린다"

 

 

"모든 학생의  전 과목 점수 와 각 교사의 평가글 이 적힌  1차 성적표를 다 같이 보면서,

각 학생들을 차례로 검토한 후, 종합 평점과 평가글을 함께 결정해 최종 성적표가

완성 된다. 대체로 교사들의 의견은 일치하지만, 때로는 의견이 달라 격렬하게

논쟁 하기도 한다. 그때는 교장의 중재 아래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프랑스 교사들이 특별히 더 공정한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 학부모나 학생들도

성적에 민감하고 불평불만을 가지고 ‘뒷담화’ 를 한다. 그러나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반발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모두 함께 모여 전체

성적을 보면서 ‘토론’ 을 거쳐 투명하게 결정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학급 평가회의 날은 교사에게도 아주 중요한 날이다.  다른 교사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학생을 평가하거나 칭찬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수업 시간에는 몰랐던

그 학생 의 장단점을 발견하며 편견을 깰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날이 단순한

평가의 시간이 아니라 교사로서의 내 의무를 다하며 성장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겨졌다"

 

 

 평가 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게 있으니....  동아일보 권재현 기자까 쓴

“투탕카멘 묘에 비밀의 방...  주인은 ‘전설의 미녀’?”  가 떠오릅니다.

묘실서 숨겨진 문의 흔적 발견.… 이집트 “비밀의 방 존재 가능성

 90%”“미녀 왕비 네페르티티가 원래 주인… 아들에게 자리 내주고 셋방 신세”

 

 

이집트 정부가 28일 “1922년 발굴된 투탕카멘 묘 에  ‘비밀의 방’ 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90%” 라며 발표를 했다. 맘두 알다마티 고대유물부

장관은 이날 기자 회견에서 “투탕카멘 왕의 묘실 뒤에 있는 다른

묘실, 다른 무덤을 발견해야 할 때  라고 이제 말할 수 있게 됐다” 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올 8월 투탕카멘의 묘실을 촬영한 고해상도 디지털 영상 에서 숨겨진 문의

흔적을 발견 하고 그 문 뒤에 “무덤의 원래 주인인 네페르티티가 묻혀 있을 것”

이라고 주장한 영국인 고고학자  니컬러스 리브스의 주장  을 확인하기 위해 이뤄졌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에 따르면.....  리브스  는 또 다른  증거를  제시했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에는 원래 네페르티티의 칭호 가 새겨

졌는데 그 위에 다시 투탕카멘의 칭호가 새겨졌음을 발견한 것이다.

투탕카멘의 무덤뿐 아니라 황금 마스크도 원래는 네페르티티의 것 이었다는 것이다 "

 

 

"기원전 14세기 투탕카멘의 선왕 아케나텐의 왕비 였던 네페르티티 는 그 이름의

뜻이 “미녀가 왔도다”일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세계 최초로 유일신 신앙체계를 세웠다. 이집트의 다양한 

중에서 태양 원반의 신 아텐만을 유일신 으로 인정한 종교혁명  을 단행한 것이다."

 

 

"네페르티티는 남편의 말년에 유일신 체계를 지키기 위해 공동 통치자 로 임명됐고 남편의

사후 투탕카멘이 여덟살에 파라오 가 되자 3년간 대리통치를 하다 40세에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네페르티티가 세상을 떠나자 이집트는 다시 다신교 체제로 돌아갔다."

 

 

"이단적 존재가 된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의 흔적이 지워지고 남겨진 어린 왕의

이름도‘아텐의 살아 있는 이미지’라는 뜻의 투탕카텐 에서  ‘아멘 (원래

이집트 왕실의 주신·아몬)의 살아 있는 이미지’라는 뜻의 투탕카멘 으로 바뀌었다 "

 

 

"그와 함께 원래 파라오였던 네페르티티의 무덤 이 어린 파라오의 무덤으로 바뀌면서

원래의 주인이 셋방살이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이  리브스의 가설  이다."

 

 

"어린 파라오의 무덤 은 훗날 ‘투탕카멘의 저주’ 라는 말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의 무덤을 발굴한 사람들이 잇달아 죽음을 맞는 현상을 두고 호사가

들이 붙인 이름이다. 일각에서는 “전설적 미녀의 존재를 3400년간

감춰 두는 것이 진짜 투탕카멘의 저주로 볼 수 있다”  라는 말이 나온다. "

 

 

그런데 도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리무쟁의 쿠르베피 를 우리나라 사람인 세모그룹

유병언씨가 마을을 통째로 사들였다는데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전승훈씨는 

아해측  ”가격 상관없이 무조건 사라“  라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프랑스 마을

통째 매입때 지시 쿠르베피市 시장 인터뷰서 밝혀  “최종경매서 아해측  값  계속  올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73) 이

2012년 프랑스 중서부 리무쟁 지방의 산골 마을 쿠르베피 

통째로 매입할 당시“가격에 상관없이 사들여라”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2년 5월 이 마을을 경매에 넘겼던 ‘생 니콜라 쿠르베피’  시의 베르나르 길렘

시장(68·사진) 은 23일 동아일보 취재팀과 만나 “초기에는 수많은 구매

희망자가 몰려들었지만 법원의 최종 경매에 남은 입찰자는 4명 이었다” 고 말했다."

 

 

"길렘 시장은 4명 모두 전 세계에서 온 쟁쟁한 사업가들 이었고 그들이

가격을 올릴 때마다  유 전 회장 측도  가격을  계속  올렸다."

 

 

"결국 다른 경쟁자들은 아해(유 전 회장)가 어떤 가격이든 결코 이 땅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더이상의 싸움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포기했다”

설명했다. 파리 시내라면 침실 하나 짜리 주택 가격에 불과한 33만

유로 (약 4억7472만 원)  에서 시작한  당시 경매의 낙찰가는  52만 유로  였다."

 

 

그는 “이 마을을 내년 까지 개보수 공사를 마치고 전 세계의 사진작가, 조각가,

 화가 등이 상주하는 창작공간 으로 만든 뒤 관광객들이

찾는 전시공간 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유 씨 측에서 들었다”  라고 말했다.

 

 

길렘 시장은  “지난해 여름 아해의  두 아들인 유대균,  유혁기 씨가 이곳을 방문했었고

독일 건축가 스테파노프 가 한 달에 한번씩 들러 리노베이션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아해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인물” 이라며“시장인 나로서도 그를 한번 만나면 영광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 아해는 영국의 홍차 무역  전문가이자 글로벌 비즈니스맨으로 알고 있다.  그는 또

유명한 사진작가 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을 비롯해 곳곳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전시회 도록에도 등 뒤에서 찍은 사진만 넣어 실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다” 고 덧붙였다.

 

 

길렘 시장 은 “그가 해운업 을 했다거나 한국에서 해상 사고를 낸 세월호

선사의 실소유주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참사의 고통  을 겪은 한국인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한다”  고 말했다.

 

 

도빌 하면 떠오르는 여인 샤넬 은 가수 시절 재력가인 발상  (Étienne Balsan) 을 만나

그의 정부(mistress) 가 되고, 재정적 후원 으로 1910년 모자 가게 를 열게 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정부에게 모자 가게를 열어주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샤넬 은 이 모자 가게를 시작 으로 1913년 그녀의 두 번째 애인인 영국인 사업가

카펠 (Arthur Capel) 의 도움으로 프랑스의 휴양지인 이 도시

도빌(Deauville)  에 모자와 함께 단순한 스포츠웨어를 취급하는 상점 을 엽니다.

 

 

샤넬 은 이때 부터 당시 주로 남성의 속옷용 으로나 쓰여 보잘것 없는 소재 로 취급되던

편물의 일종인 저지(jersey) 를 이용해  의상을 제작하는 실험 정신 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후 스웨터 나 세일러 블라우스 (sailor blouse) 같은 편안한 의상을 디자인 하기 시작

하였는데.... 당시 스웨터는 남성들이 스포츠웨어 로 착용하던 것으로, 여성복에

이를 도입한 신선한 시도  "스포츠광이었던 카펠"  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세일러 블라우스  어부들이 착용했던 작업복 이 여성 의상으로 재탄생한 결과물 

이었다고 하는데.... 또한, 여성의 손을 자유롭게 한 샤넬 의상의 패치

포켓 (patch pocket)  은  남성  노동자  복식에서 아이디어  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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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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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여행 | 작성시간 24.06.25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은 아름다운 추억을 줍니다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6 트루빌과 도빌은 참.....
    평화로운 항구 도시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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