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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 3 - 잔다르크 성당 지나 럭비를 시청하는 군중을 보다!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4.08.08|조회수66 목록 댓글 2

 

루앙 여행3 - 루앙에서 잔다르크 성당을 구경하고 럭비경기를 시청하는 군중을 보다!

 

 

5월 26일 루앙 에서 기차를 타고 르아브르 를 거쳐서 옹플레르 Honfleur 에 도착해 엣날

항구와 생트 카트린 교회 및 외젠부댕 미술관 을 구경하고는 20번 버스를 타고

트루빌- 도빌 Trouville Deauville 에 도착해 구경하고 기차로 리시우 를 거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오후 7시 5분에 루앙 리브드로테역 Rouen-Rive- Droite 에 도착합니다.

 

 

잔다르크 탑 Tour Jeanne d'Arc 과 도자기박물관 Musee de la Ceramique 을 지나 16세기

이후 프랑스와 플랑드르 및 이탈리아의 회화와 루앙 도기를 전시한다는 루앙 미술관

 Musee des Beaux Arts de Rouen 이 있는 베로드렐 광장 을 보는데 루앙 Rouen 

노르망디 중심으로 노르만 바이킹족이 도시를 함락해 911년 노르망디공국의 수도 가 됩니다.

 

 

루앙 은 피에르 코르네유 말고도 보봐리 부인을 쓴 소설가 G.플로베르 의 출생지니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있고, 또 이 도시는 100년 전쟁 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분쟁지였으며 1431년에 성녀 잔 다르크 가 가톨릭 교회의

종교재판에서 사악한 마녀임이 들통(?) 나서 화형에 처해진 도시 이기도 합니다.

 

 

보행자전용 거리에 있는 명물인 대시계 Gros Horlage 는 16세기 르네상스양식 종탑과

시계가 걸린 아치의 천장에는 양떼의 부조가 새겨져 있으며 뒤쪽 법원 에는

요정 알레투스의 분수 가 있고 그 옆에는 관광안내소 Office de Tourisme 가 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Chdrerale Norte Dame 은 1,145년 갈로-로만 시대 교회터에 건설했는데

1200년에 불타니 사자왕 리차드가 전사해 영국 왕에 오른 노라망디공 존 이 기부해

재건해 1250년에 일부 완성되었는데... 정면 상부는 플라부아양 양식이고 그 북쪽에

생 로망 탑과 남쪽에 바타 탑이 있으며 높이 156m 중앙 첨탑은 1827년에 재건되었습니다.

 

 

좀더 내려가서는 예술극장 Theatre des Arts 을 지나 세느강 La Seine 에 이르러

잔다르크 다리 Pont Jeanne d'Arc 를 구경하고 돌아오는데 오른쪽에 보이는

생 마클루 교회 는 1437년에 기공했는데 5개의 문이 있는 플랑부아양

양식의 건물이며 생 마클 묘지는 지금은 미술학교로 16~18세기의 목조건축물 입니다.

 

 

  되돌아오다가 잔다르크 교회 Eglise Jeanne d'Arc 를 보는데 1,431년 잔다르크는 가톨릭

교회 종교재판에서 마녀로 밝혀져 루앙 시청 광장에서 화형 을 당했는데 1,920년에

이르러 바티칸은“성 잔다르크”로 시성했으며 1,979년에 썰물을 이미지화한 외관 

내부는 16세기에 13장 스테인드 글라스를 활용했는데 6월 상순에 잔다르크 축제 가 열립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백년전쟁 중 1,429년 신의 계시를 받은 18세 잔다르크 는 시농성 에

있던 샤를 왕세자 를 만난후 군대를 인솔해 영국군에 포위되어 있던 오를레앙을

해방시켜 왕세자가 랭스에서 왕위에 오를수 있도록 도왔는데, 100년 전쟁 은 1337년

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프랑스 땅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전투와 휴전을 되풀이했습니다.

 

 

 백수십년 전에 프랑스 세느강 하구에 정착한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망디공 윌리엄 

1,066년 1만 5천명 병사를 이끌고 영국으로 진격해 노르만 왕조 를 세운 이래

프랑스에도 영토를 소유 하였고 그후 노르만 왕조 마지막 왕 헨리 1세가 결혼한

딸 마틸다를 이혼시켜 프랑스 앙주 백작 에게 시집을 보내니 헨리 2세 가 태어납니다.

 

 

앙주 백작인 헨리 2세 총각 이 파리 궁정에 세배 드리러 갔다가 프랑스 왕비 엘레노어 

눈이 맞으니 엘레노어를 이혼시켜 결혼 하는데 그녀의 친정 보르도의 가스코뉴와 아키텐,

키엔느를 결혼 지참금 으로 얻고는 외가인 영국으로 진격해 왕에 올라 플랜타지넷 왕조

를 열었으니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에 3차례에 걸쳐 획득한 엄청난 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1328년 프랑스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아들이 없이 사망하자 4촌 형제인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오르니 프랑스에 발루아 왕가 가 출현하는데, 영국왕 에드워드 3세 는 그의

모친이 카페 왕가 출신(샤를 4세의 누이) 이라는 이유로 잉글랜드 왕인 자신이

“프랑스 왕위를 계승”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양국간에 심각한 대립을 빚게 됩니다.

 

 

에드워드 3세 는 프랑스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하여 프랑스가 지배하던 플랑드르에

수출하던 양모 공급을 중단 하자 그 보복으로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인 키엔느와 가스코뉴의 몰수 를 선언하니 마침내 1337년에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에게 공식 도전장을 띄우게 되니 100년 전쟁의 시작 입니다!

 

 

 프랑스 서북부는 영국군과 부르고뉴공국 군대가 점령했고 프랑스 왕위도 1420년 트루아

조약에 따라 프랑스 샤를 6세 사후 영국왕 헨리 5세가 계승 하도록 되었으니...

1429년 오를레앙을 구한 잔다르크 는 이후 전투에서도 영국군을 공포에 떨게했는데

내친김에 랭스 까지 진격하고는 랭스 대성당에서 샤를 7세의 대관식 을 거행토록 도웁니다.

 

 

잔 다르크 는 왕의 측근들의 질시와 선망속에 전투에 전념하다가 1430년 5월 콩피에뉴

전투에서 부르고뉴공국 군대에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졌으니 1431년 교회의

종교재판에서 마녀 로 낙인 찍혀 이단 선고를 받고 루앙에서 화형 을 당하였는데

프랑스 왕실과 가톨릭 교회 는 참으로 후안무치하여 야비하게도 이에 동조 하였습니다.

 

 

전장에 나간 장수의 공 이 너무 높으면 "하늘도 시기하고 임금도 미워" 한다고 했던가요?

이순신 장군 도 노량 해전에서 죽어서 가문과 자식 및 조카 까지 구했던 것이지요?

1456년에야 샤를 7세는 유죄 판결을 파기 하여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나, 가톨릭

교회는 더 야박하고 인색한 탓인지 489년이나 지난 1920년에야 그녀를 성녀로 시성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잔다르크크 교회 앞 공터에 모여앉아 대형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스표츠 

보기에 처음에는 축구 인가 했는데 보니 럭비 입니다? 국제 럭비대회 라면 참가팀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에다가 아일랜드와 프랑스 등  6개국 입니다! 

 

 

오늘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형 텔레비전을 보며 박지감 있는 경기인듯 관중은 미친듯

열광 하는데..... 축구며 럭비등 공놀이 에 열광하는 유럽인들을 보자니 문득 동아일보

박훈상 기자까 쓴  “책의 향기, 사람들은 왜 공놀이에 미치는 걸까”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아빠.  우리는 왜 공놀이를 하는 걸까요?'  저자와 캐치볼을  즐기던 아들이 물었다.

하버드대에서 고대 마야문명 연구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우물쭈물

아무런 답도 못했다. 아들이 괜한 질문을 했나 보다. 아버지는 짐을 싸서 집을

떠났다. 4년 동안 공놀이의 발상지를 찾아다니며 직접 체험하고 연구하고 글을 썼다."

 

 

"저자가 축구의 기원 을 찾아간 곳은 마초들이 득실거리는 스코틀랜드 북부 오크니

제도의 커크월 섬. 이곳에선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과거 지배 세력이

달랐던 내륙지역과 항구지역으로 편을 나눠 톱밥 넣은 공인 바(ba) 하나를

두고 다툰다. 교회 종소리를 시작으로 남성 수백 명의 머리 위로 공이 던져진다."

 

"거구의 사나이들은 자신의 지역으로 공을 가져가려고 치열한 몸싸움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경기장은 따로 없다. 자갈 포장도로, 좁은 골목길이 전쟁터로

변한다. 두 지역이 실제로 싸움을 벌이면 섬 전체의 안전과 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거친 놀이는 갈등과 불화를 해소하는 장치 였다."

 

"‘커크월 바’의 유래를 요약하면 이렇다. 수백년 전 주민들은 앞니가 툭 튀어나온 폭군

의 압제 에 시달렸다. 폭정에 지친 주민들이 봉기하자 폭군은 다른 섬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늘 폭군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불안에 떨며 살았다. 그때 젊은 영웅 이 나섰다."

 

 

"비참한 나날이 끝났다는 증거로 폭군의 머리를 잘라 오겠다며 떠났다. 목을 자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폭군의 앞니에 다리가 찔려 세균 감염으로 빈사상태 에 빠졌다.

영웅이 마지막 힘을 짜내 폭군의 머리를 마을 한가운데 던지자 군중은 영웅을

잃은 안타까움과 폭군에 대한 증오에 휩싸여.... 머리를 발로 차며 거리를 누볐다."

 

 

"저자는 커크월 바가 규칙이 거의 없고 거대한 군중이 팀을 이룬다는 점에서 가장

원시적인 축구 라고 봤다. 상대를 잡아먹을 듯이 덤벼드는 커크월 사내들의

 경쟁을 보며사냥에 나섰다’‘굶주려 있다’‘싸운다’‘영토를 빼앗는다’

란 경쟁 스포츠 묘사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해묵은 기억의 흔적 이라고 풀이했다."

 

 

"축구 반대편에 테니스 가 있다. 테니스는 처음부터 계급 경계선을 그었다. 테니스는 중세

수도원 안에서 시작됐다. 수도사들은 부활절 만찬후 잠깐 즐기는 테니스 는 품위를 손상

하지 않는다고 입을 맞췄다. 테니스에 푹 빠진 수도사들은 놀이를 하며 욕설 까지 내뱉었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 왕가 도 값비싼 시설을 갖추고 품위를 지키며 작고 섬세한

공을 다루는 테니스에 탐닉 했다. 테니스의 어원은 프랑스어로‘주의하라’

는 경고의 외침이었던 ‘테네(tenez)’에서 나왔단다. 귀족 스포츠

답게 서브를 넣으면서.... 상대 선수에게 경고의 함성을 질렀던 데서 유래 했다."

 

 

"저자는 농구 를 거의 모든 스포츠 가운데 사회적 목적으로 만든 유일한 종목 으로 꼽는다.

YMCA 체육 보조교사인 제임스 네이스미스 는 1891년 청소년들이 겨울에도

실내에서 활발한 신체활동 을 즐길 수 있도록 농구를 고안 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 했다. 야구 의 기원은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

 

 

"미국은 1839년 남북전쟁 영웅 애브너 더블데이 가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최초의 경기

방식을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크리켓에서 유래했다는 설 을 잠재우려고

100주년이 되는 1939년 야구‘명예의 전당’을 설립하고 기념 우표 까지

발매한 것. 하지만 미국 역사학자들 마저‘더블데이 기원설’을 인정하지 않는단다."

 

 

"저자는 공 을 동역학적으로 가장 생기 넘치는 무정물(無情物) 로 정의했다. 공은 사회적

도구 라서 사람을 뭉치게도 하고 뭉쳐 싸우게도 만들었다. 양발로 자유롭게

공을 차거나 굴리고 양손으로 튀기거나 던질 수 있는 인류는 태초 부터 축복받은 셈."

 

 

"긴 여정을 마친 저자는 아들 앞에 섰다. 이번엔 아버지가“공놀이를 왜 하느냐”

고 묻자 아들은  “한마디로 재밌으니까”  라고 답한다.  우문현답 이다.

그래도 저자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저자는 아들과 스포츠를

즐길 때마다 자신이 연구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둘 사이가 한층 가까워졌다. "

 

 

"바야흐로 가을야구가 절정으로 치닫는 시점이다. 겨울스포츠인 농구와 배구도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다. 함께 경기장을 찾을 부자 뿐만 아니라 연인과 친구들 간에도

“우리가 왜 공놀이에 환장하는 것일까” 라는 화두를 던지고 화제를 끌어가는 데

도움을 줄 책이다. 글이 딱딱해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군데군데 보이는 점은 아쉽다."

 

 

교회 옆에 잔다르크 생애를 표현한 50개의 밀랍인형이 만들어져 있다는 잔다르크 밀랍인형

박물관 Musee de Cire Jeanne d'Arc 이 있다지만 시간이 늦은지라 볼 수는 없으니...

 

 

 잔다르크 거리 Rue Jeanne d'Arc 를 따라 올라오다가 왼쪽으로 들어가서는 한국식당

준   Restaurant Coreen Joon   :   5  Rue des Bons Enfants  을 찾아 갑니다.

 

 

그런데  장사가  잘  안되었는지  한국 식당은  없어지고.....  같은 건물에는

일본 식당 홋카이도  Hokkaido 가 들어섰기로 아쉽지만 들어가서

테이블을 차지하고는 맥주에다가 덴뿌라와 볶음소바 를 시켜서 먹습니다.

 

 

 식당에서 일본어로 주문 을 하면서 말을 하는 중에 종업원 아가씨

한사람만  일본어  가 되니.....  나머지는  중국인  인가 봅니다?

 

 

일본어가 되는 아가씨는 진짜  일본인인지 싹싹하고 나긋나긋  하기가 여간 아닌데.....

혼네가 어떻고 다테마에 가 어떻고를 떠나 간을 내 줄둣 친절하니 손님은 좋습니다? 

 

 

남자 요리사  가  바로 우리 테이블 앞  현장에서 철판에 요리  를 하고 이 아가씨

는 찌개다시와 물 등을 공짜로 연신 날라다 주기에....  기분좋게 잘

먹고는 지도 를 보이며 근처에 슈퍼미켓을 표시해 달라고 해서 식당을 나옵니다.

 

 

일본 식당을 나와  다음 블록에서 좌회전을 하니 거기에  식당 아가씨에게서 들은 큰 슈퍼 가

보이기로 들어가서 반찬 등을 구입하고는 잔다르크 대로를 걸어 루앙역 앞 우리 호텔로

돌아오는데 내일은 노르망디의 캉과 바이외 를 보고는 브르타뉴의 생 말로 까지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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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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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캬페지기 | 작성시간 24.08.08 꿀이 많을수록 벌도 많이 모이듯
    정(情)이 많을수록 사람도 많이 모인다...!
    음식(飮食)을 버리는 건 적게 버리는 것이요
    돈을 버리는 건 많이 버리는 것이고
    인연(因緣)을 버리는 건 모두 버리는 것이다...!
    건강과행운이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09 인연이라...... 졸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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