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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3- 로마군에 죽음으로 항전한 사해(死海) 마사다 요새에!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4.08.14|조회수118 목록 댓글 2

 

이스라엘 3 - 로마군에 죽음으로 항전한 사해(死海) 마사다 요새에 가다!

 

1월 19일 (토) : 투어( 마사다 - 사해 엔게디 스파 ) - 독림공원 - 샤바트  

 


 

예루살렘의 야파거리 시온광장에 있는 메노라 호텔 의 주인인 할아버지에게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컵라면을 끓이고 햇반은 히터 앞에서 데워 호텔방에서 아침을 먹습니다.

 

 

그러고는 메노라 호텔 정문에서 어제 우리가 호텔 주인을 통해 예약한

유나이티드사의 버스를 타고 1일 마사다 - 사해투어에 나섭니다.

 

 

빨래를 빨리 말리느라 히터에 태운 양말을 신고서,  가이드가 예루살렘을 제루살렘

이라 발음하는 것을 들으며...... 버스는 시내를 빠져나와 요단강쪽으로 달립니다.

 

 

예루살렘 교외에  야산은 나무나 풀 한포기도 없는 준사막 돌산인데, 아랍인들의

양치기 움막이 보이니, 너무나 열악해 보이는 살림살이에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버스는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인들의 도시인  여리고를 멀리 바라보며

우회전하여 남쪽으로 달리는데. 곳곳에 키부츠가 보이고 잎이 무성한 나무며....

 

  

그리고  대추야자 나무가 빽빽히 자라는 모습을 보며 사막을

옥토로  일구웠다는 유대인들의 얘기가 생각이 납니다.

 

 

왼쪽으로는 사해가 나타나는데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위산의 여러 동굴들이 보이니

혹시나 저게 사해문서가 발경되었다는 쿰란 동굴이 아닌지 모르겠는데

 마사다는 주위가 둘러꺼진 절벽위 높은 언덕위에 독수리둥지 처럼 세워져 있습니다.

 

  

여기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마사다 요새" 는 예루살렘 동남쪽 사해(死海) 

해안에 있는 배 모양의 구릉을 이용하여 축조한천연요새 

인데 사해문서 (死海文書) 가 발견된 쿰란 남쪽 51km 지점에 위치합니다.  

 

 

동방 페르시아를 정복했던 마케도니아의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에 팔레스타인 지방은

대왕의 부하 장군 이었던 시리아의 셀레코스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착취에 허덕이던 유대인들이 그리스인들의 폭정에서 분연히 일어나 유대

부족인 하스몬가(家) 의 요나단에 의해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게 됩니다!

 

 

마사다는 이 하스몬 가에 의해 처음 축조되고  BC 35년에 유다의 헤롯왕이 개축 

했는데, 헤롯왕은 에돔인으로 로마 군대에 편승하여 하스몬가를 멸망시키고

     유대의 왕이 되어서는 비상시를 대비해 이 요새를 자신의 피난처로 개축한 것입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66∼73년 제1차 유다 전쟁이 발발하였으니

 로마 장군 베스파시안 전쟁 도중에 황제가 되어 로마로 부임한후......

  아들 티투스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 열심당은 이 요새로 도피하게 됩니다.  

 

  

유대인 벤 야이르가 거느린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967명의 열심당원이 이 요새를

거점으로 삼아서는 로마군에 저항을 하면서 민족적 항쟁을 계속하였습니다.  

 

 

끝까지 로마군에게 항복하지 않고 결국은 제비를 뽑아 전원이 집단 자결하였다는 데.... 

여자 2명과 아이 5명이 숨어 있었던 덕분에 살아 났다고 하며  1963년 이래

야딘의 지휘로  저항요새의 흔적 및 헤롯왕의 성 과 파피루스문서를 발굴하였으니

파피루스에는 신명기, 시편, 외경(구약성경에 포함 안된 경전) 들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 마사다 요새는 로마군이 마침내 성벽을  넘어오는 바람에 1천여명의 사람들이

항복보다는 자결을 선택한 곳으로.... 이스라엘 국민에게는 민족 성지인 곳입니다.  

 

 

옆으로 구멍이 꿇린 토관 (우리네 온돌을 연상) 을 이용한 목욕탕과 절벽

사면에 매달리듯 아슬아슬하게 건축된 왕궁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보다도 주위가 둘러꺼져 몇백미터나 홀로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장관인데

사막 한 가운데서 공성전을 하면서 2년이나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난공불락의 요새를  함락시킨 로마인들의 의지와 토목기술에도 경탄을 합니다.  

 

 

물론 사막 한 복판의 절벽에 가까운 언덕 위에다가 이 선채를 건축한 헤롯왕

시대의 토목기술 또한 놀라우니.... 인간에게 불가능이란없는 것일까요?  

 

 

관광을 마치고 되돌아 오는 길에 "엔게디 스파" 에 들러 온천욕을

하고는 조그만 차를 타고 해변에 가서 해수욕을 하는데...

 우리 부부는 겨울이라 수영복을 준비해 오지 않아 그림의 떡입니다.

 

 

 계절이 겨울인데도 이곳은 사막지대라 그리 춥지 않은 탓도 있지만 호텔에서

불경기라 스팀을 가동하지 않아도 이곳 사람들은 꿋꿋하게 견디는 데...

 

 

 고대로 부터 온돌 문화인 우리 한국린들은 추위가 견디기

힘드는데, 그런데 세상에나!  한겨울에 수영이라니.....  

 

 

 되돌아 오는 길에 왼쪽으로 메마른 사막의 척박한 땅에 계곡이 보이고

숲이 우거진 것을 보니 저기가 바로.....   다윗이

사울왕에게 쫃기어 숨어 지냈다는 바로 그  엔게디 공원 인 모양입니다?  

 

 

여긴 교통이 불편하여 대중 교통이 없는지라 투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보니 내려서 직접 저 계곡을 올라가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팔레스타인 인들의 도시 여리고 역시 아랍인 자치 도시라 정정관계가 불안하다 보니

라말라 등과  함께 "도시 자체가 폐쇄"  되어 들어갈수 없어 아쉬운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저녁에는 독립공원을 둘러보고 밤에 한국관에서

저녁을 먹고나오는데,  보행자의 거리인 벤야후다 거리 입구의 시온광장에 이르니...

 

 

마침 토요일 저녁이라 샤바트를 마치고 나온 유대인들이 기타 반주에 맞추어 사람들이

무리가 되어 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

(독립투쟁?) 때문 일러나?  주위에서는 이스라엘 여경들이 아랍 젊은이

들을 꼼꼼하게 검문하고 있는데, 그 한편에서는 이스라엘인들은 무리지어 춤추네요... 

 

 

세계 언론은 오랫동안 AP, UPI, 로이터등 서방 언론이 장악하고 잇는지라,  우리나라에서도 저들을 폭탄

테러범 이라고 부르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안중근이며 윤봉길과 김구는 한국 입장

에서는  독립투사인 것이나 이스라엘식이라면, 일본 입장에서는 테러범과 그 배후 사주세력인 것일까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인들에게 폭탄을 던져 많은 사람이 죽으면 우리 언론은 폭탄테러가 발생했으며

이스레엘 군경이 테러리스트들을 뒤쫓고 있다고 보도하니 우린 이스라엘및 서방세계와 인식을 같이하는

셈인데, 그럼 일제 36년 동안에도 다른 서양 사람들은 일본과 인식을 같이 했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라는... 

 

 

 그런데 한 유대인 젊은이가 유일한 동양인인 나를 손짓하는 바람에 나도 어깨동무를

하고 저 무리들과 30여분간 정신없이 춤추며 돌아가니 즐겁기 그지 없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저 광장에는 노숙자가 한사람 비닐을 덮어 쓰고 누워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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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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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여행 | 작성시간 24.08.15 즐거운 시간되세요
    넘 덥네요 ㅎ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15 하아.... 그렇네요? 하지만 결국
    더위는 물러가고 가을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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