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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노스11 - 리틀 베니스에서 걸어서 해양 박물관을 구경하다!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4.08.22|조회수52 목록 댓글 2

 

미코노스 11 - 리틀 베니스에서 점심후 골목길을 걸어서 해양 박물관을 구경하다!

 

 

2024년 4월 25일 구항구 Old Port 에서 버스를 타고 아기오스 스테파노스 비치 Agios Stefanos Beach

에 가니 비수기라 멍때리기를 하고는 걸어서 언덕을 넘어 신항구 New Port of Mykonos

서 2유로 하는SEA BUS 배를 타고 10분 만에 구항구 Old Port((Delos tours/CHORA) 에 도착합니다.

 

 

마침 점심시간인지라 구항구에 수많은 식등들이 관광객들로 붐비는지라 밖에서

메뉴들을  구경하고는 골목길을 걸어서 리틀 베니스 Little Venice  

도착해 파스타에 오징어 튀김 칼라마리 Kalamari 에다가 맥주를 시켜 먹습니다.

 

 

내가 작성한 여행계획서에는 이제 택시를 잡아 타고 코르포스 비치 Korfos Beach

에 가는 것인데 윈드서핑의 천국이라고 하지만 아직 비수기인지라

포기하고는....  다시 구항구를 지나 마을 중심부로 들어가 해양박물관을 찾아갑니다.

 

 

에게안 해양박물관 Aegean Maritime Museum 은 트리그 피가디아 거리에는

미노안시대 부터 19세기 까지 배와 관련된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답니다.

 

 

저 해양박물관에서는 미코노스 해양 역사와 관련된 항해 자료등을 전시하며.....

10시 30분 ~ 13,  점심 후에 18시 30분 ~ 21시 까지 개관한답니다.

 

 

4유로를 내고 해양박물관으로 들어가서는 전시물들을 둘러보는데 그리스와 미코노스

인근의 지도와 배 모형이 많이 만들어져 있는데..... 옛날 배들이 엄청 많습니다.

 

 

조금전에 점심을 먹은 마을이 리틀 베니스 Little Venice 인 것은 중세에 베네치아가 동방 무역에

종사하면서 무역 항로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도시와 섬을 지배했으니

15세기 까지 미코노스도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은지라 베니스 양식의 건물들이 많은 것인가 봅니다?

 

 

그런데 여기 전시된 많은 배들 가운데는 중세에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던 당시의 배도 많지만

그 외에 아주 오래전인 고대에 노를 젓던 배들이 많으니 문득 고대의 해전이 떠오릅니다.

 

 

바다를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이니 옛날 부터 해전으로

국가의 운명이 판가름난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해전(海戰은 선박 위에

탑승하여 치러야 하니 육상전 보다는 늦게 출현했으니 최초의 해전 은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해군과 페르시아 해군이 격돌한  살라미스 해전”  일 것입니다.

 

 

그리스 부터 로마 시대 까지 벌어진 고대 해전 의 경우에는 원거리 전투가 근본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대부분  "근접하여 갑판전"  을 벌이는 형태가 주류였습니다.

 

 

이른바 충각전술 인데.... 함선들의 다량의 노 를 가지고 흘수가 얕고 길이가 긴 갤리선 계열

이라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으니 속도나 조향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편 함선에 올라타기 전에 충각을 이용한 충격으로 적 함선에 피해를 입히는 것만으로 상대

함선에 큰 피해 를 줄수 있었고 충격시 요동으로 탑승 전투원을 줄이는

부수효과도 얻을수 있었으니 대표적 해전은 기원전 480년 9월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 입니다.

 

 

다리우스가 죽고 페르시아 왕위에 오른 아들 크세르크세 는 부왕의 유언을 받들어 제3

그리스 원정을 준비했으니 BC 480년 봄 크세르크세스는 16만명의 병력과 1,200

함선을 끌고 그리스 북부로 진격했는데 그 전에 4년에 걸쳐 노예들을 동원해

헬레스폰토스 다르다넬스해협에 선박을 수백척 연결시켜 만들은 다리를 건넜습니다.

 

 

이후 페르시아군은 테르모필레와 아르테미시온의 방위선을 돌파하게 되는데....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1세의 대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했으나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 가

테르모필레에서 7일 동안 페르시아 군을 막아내며 그리스 해군의 퇴각 시간 을

벌어준 덕분에..... 아테네인들은 아티카를 포기 하고는 살라미스 섬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페르시아군은  아테네시 는 점령했으나 살라미스섬에 대한 공격 이 여의치 않으니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는데 아테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 는 거짓 정보를 보내 페르시아

군을 폭이 좁은 살라미스만으로 유인 하니 BC 480년 9월 23일 아테네 함대를 주력

으로 한 그리스 연합해군은 살라미스 해협에서 우세한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 하게 됩니다.

 

 

그 전에 테미스토클레스의  호소로 아테네는  3단 노함선 을  건조했는데  170명까지 노를

저을수 있는 배는 1인당 하나의 노를 맡도록 했으며, "노는 3단" 으로 배열되었습니다.

중국과 조선에 일본은 19세기말 까지도 "1단 노" 밖에 갖추지 못한 것과 대비가 됩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모두 총 380척의 함대 를 확보했는데....  1,200척의 페르시아 함선

과는 비교가 안되는 숫자지만 그리스 3단 노함선이 질적으로는 더 우수 했다고 합니다.

 

 

전술적 이점은 그리스 쪽에 있었으니 페르시아 함대는 명량 해전 처럼 좁은 살라미스해협

때문에 모든 배가 동시에 싸울수 없었는데다가 대형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페르시아는 무질서 하게 공격하는데 비해 그리스군은 준비된 장소 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격을

취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또한 빠른 속도와 단단한 충각 을 이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일순간에 공격명령을 내림으로써 격전이 벌어지는데 그리스 3단노 함선은 적선

의 노를 부러뜨리고 적선 좌우 측면을 들이받는등 의 기술적 이점을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삼라미스 해전은 양 함대가 7시간의 격전을 치른 결과 페르시아 함때는 200척의 함선이 격침

당하고 200척이 그리스군에 포획 당했는데 그리스 함대는 40척을 잃었을 뿐 이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해전에 패해 보급마저 끊길 위험에 처하게 되자 서둘러 회군하고 말았으니

그리스 해군은 여세를 몰아 이듬해 여름 소아시아 지역으로 출동하여 페르시아의

나머지 함대를 모조리 쳐부수었는데 이후 두번 다시 페르시아의 침공을 받지

않았으며 막강한 해군력을 가진 아테네는 오랫동안 지중해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옛날에 페르시아를 맞아 치룬 살라미스 해전을 떠올리고는

해양박물관 을 나와 미코노스 타운의 예쁜 골목길을 걸어서...... 이제 일몰을

보기 위해 풍차가 있는 언덕을 찾아갑니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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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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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캬페지기 | 작성시간 24.08.22 얼굴에서 웃는 모습이 떠나지 않아야 한다.
    항상 마음에 여유(餘裕)를 가져라!
    품격(品格)을 지켜라!
    자신의 마음 마당을 항상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사랑으로 충만(充滿)한 삶을 향유(享有)하시라!
    오늘 하루를 만끽하며 살아야 한다.
    건강과 행운이 있는 행복한 시간 되세요.
    👌👌👌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23 늘 웃을수 있다면.....
    그럴려면 마음을 비우고 여유를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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