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여행4 -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에서 이집트 5천년 찬란한 역사를 보다!
4월 5일 기자의 피라미드 를 보고 스핑크스 쪽 문 으로 나오니 한 낮이라 4월인데도
더위가 후끈하는게 예사롭지가 않은데.... 정류장에 택시가 어지럽게 7~8대
여기저기 주차해 있는데, 우리 일행 4명이 다가가니 이집션 운전수가 달려 나옵니다.
내가 “미터!” 를 외치며 검은 택시를 피하니 녀석들 사이에서는 순번이 정해져 있는양, 어느
백색 택시로 안내하여 올라 타고는 출발하는 데.... 녀석이 미터기를 꺽지
않는고로 “미터기 플리즈” 라고 말하니 무언가 대꾸하는게 고장이 났다고 말하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급히 “Stop!" 을 외쳐 차를 세우는데, 성미 급한 우리 일행들 벌써 택시
에서 내리려고 하므로 일단 제지하고는.... 비카~무 일 마트하프 일 마스리
il-Mathaf il-aaaMarsi ? 라고 말하면서.... “il-Mathaf il-aaaMarsi , 30 ٣"٠ ”
우리 발음으로 “일 마트하프 일 마스리 타라 디 인” 이라고 적힌 종이를 내보입니다.
그러자 녀석이 대뜸 “식스티 파운드” 라고 대답을 하기에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니 우리 일행들
바가지 쓴다고 생각해서인지 또 내릴려고 하네요? 급히 제지를 하고는 그럼 내리겠다고
하니 녀석이 조금 수그러들기로 결국 밀고당기는 흥정 끝에 “40 LE, 8천원" 에 가기로 합의합니다.
그러고는 모든 물가 특히 교통비에는 정가가 있고 택시는 미터기 요금대로 주면 되며
현지인들 보다 단 한푼이래도 더 주면 바가지를 쓴다고 생각하는 마눌에게,
여기는 한국이나 일본, 유럽이 아니고 이집트 이거든!!!! 여기서는 “물건에
정가가 없으니 모든게 흥정” 인 데.... 그걸 짜증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즐기면 안될까?
그리고 국가가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세금을 쓴다고 가정할 때 현지인들이 지출하는 싼
대중적인 교통 요금을 외국 관광객이 똑같이 지불 한다면 그게 공평한 걸까?
또 우리는 택시에 네사람이나 타지 않았니? 여기 이집션들은 한국과는 달리 한사람이
타는 것보다 네사람이 타면 똑 같은 요금이 아니라 덜 깍아 주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거든?
또 도로를 달리는 택시에 비해 저들은 손님을 태우기 위해 30분 내지 한시간
을 기다렸으니 소위 대기료 라는 것이 있고.... 또 여기 있는
7~ 8명이 담합하여 순서대로 손님을 태우니 저 카르텔을 깰수는
없거든!!! 내 생각에도 현지인 이라면 25파운드 정도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해!
하지만 우리가 이 무더위에 10여분 뙤약볕을 걸어서 큰 도로변까지 멀리 나가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고 치자! 이 염천 무더위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여 체력이 떨어지고 시간도 허비하면서 요금을 30파운드 정도로 낮추었다고 치자!
그럼 10파운드 2천원이니까.... 1인당 500원 정도 더 주는건 데.... 그 정도 할인
을 위해 이 염천 더위에 그리 피곤하게 여행해야 하겠니?
마눌과 선배님 부부를 열심히 설득해 보는 데.... 모두들 아무 응답이 없는
것이 인정한다기 보다는 설교를 듣는게 심히 못마땅한듯 모두 볼이 부어 있네요?
세상에.... 우리 한국 사람 중에 남에게 말로 설득당할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기나 할까요? 차는 30여분을 달려서 나일강 을 건너는 데,
“ The Pharahos" 라고 적힌 문을 스쳐지나 야자수 우거진 강변을 달립니다.
강변에 유람선이며 카이로 타워 등 여러 건물들이 시선을 사로 잡는데... 이윽고
내리니 날렵한 배모양만 보이는지라 어리둥절하자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데.... 골목길로 접어 드니 군인들이 바리케이드 와 초소에 총 을 휴대한
것은 물론이고.... 기관총 까지 거치하고 경계를 서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이집트 이 나라는 1798년 나폴레옹의 침략을 영국의 도움(?) 으로 물리치고 1805년
오스만 터키의 총독 알리가 자립하여 정권을 세우는데... 사실상
영국의 속국 으로 지내는 중에 1869년 수에즈운하가 개통되었으며 1922년
영국에서 독립한후 1952년 나세르 혁명 으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정은 불안하여 사다트 대통령이 중동전 패배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
을 맺어 잃어버렸던 시나이반도를 되찾았건만.... 친미정권에다가 세속화가 진행
되자 이란에서 처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나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합니다.
이후 정권을 잡은 무바라크가 독재로 내리 5선을 했고... 군을 동원해 비상계엄을 풀지
않고 있는 모양인지 곳곳에 총을 든 경찰과 군인 천지네요! 이집트 카이로
고고학박물관 은 카이로가 도심 곳곳에 쓰레기 천지에 페인트 칠을 하지 않아
건물들이 시멘트 색깔 그대로라 우중충한데 비해 밝은 주황색 으로 잘 분칠하고 있습니다.
총을 든 경비병들 사이를 지나 구름 같은 인파를 헤치고 듯던대로 카메라를 아예
입구 사무실에 보관 을 하는데, 나중에 제대로 찾을수 있을지 불안하네요!
그러고는 표를 사는데 1인당 60파운드(1만 2천원) 라 잔돈을 바꿀 욕심에
4명 모두에게 100파운드씩 주어 각자 표를 사면서 잔돈을 받으라고 일러줍니다.
사모님이 제일 앞에 섰는데 어째 표를 내주지 않고 시간이 걸리네요? 저네들이 돈을
들고 이리저리 비추어 보고 다른 직원들에게 보이며 의논을 하는 것이....
그럼 내가 환전한돈이 혹시 위폐(?) 일러나! 하여 마눌에게 표를 달라고 돈을 주며
말해보라 하니 역시 마찬가지라! 혹시 잔돈이 없어서 그런 모양인가 싶어
나는 다른 창구에 돈을 내미니... 녀석이 한참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된답니다!
이거 왜이래??? 돈을 다시 받아 살펴보니... 아뿔싸!!! 이건 러시아돈 100루불이네요!!!
그러니까 우리가 러시아항공으로 모스크바에서 환승 하는데, 올 때야 대기 시간이
3시간이니 상관 없지만 귀국할 때는 무려 13시간 을 기다려야하는 데, 예전에
스무날간 러시아 일주 배낭여행시 돌아올때 노보시비르스크 공항에서트랜스퍼하는데....
남들이 맥주를 마시는 것을 보고 타는 목마름으로 생각이 간절했으나 달러를 받지
않고 러시아 루불만 받던 생각이 나서 인천공항에서 환전을 좀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돈이 여기 이집트에서 환전한 이집트 돈과 지갑 안에서
섞인 모양이네요! 일행 3명이 모두들 이런 사실을 알고는 포복졸도 합니다!!!
모처럼 동양인 넷이서 실컷 웃는 데...... 뒷줄의 서양인들이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네요!!!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박물관으로 들어서니... 다행히도
등에 멘 자그만 가방은 휴대를 문제 삼지는 않는 대신에 보안 수색은 철저히 합니다.
1층에서는 람세스 2세 동상 만 힐끗 보고는 우선 2층부터 보려고 계단을 올라가노
라니 전시실이 100개가 넘는 큰 규모라 무엇부터 보아야 할지 망설여
지는데.... 멘카우레왕과 여신상, 조세르왕과 카프라왕의 좌상이며
서기 좌상등 여행계획서에 적어온 것들을 찾는데, 제대로 찾아지지가 않습니다?
시간도별로 없는데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이런 식이면 안될 것 같아 우선
“투탕카멘” 의 황금 마스크 부터 먼저 보자고 계획을 바꿉니다.
몇 번이나 물어서 같은 자리에 다가가도 보이지 않아 의아 했었는 데, 나중에 보니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리는 탓에 사람의 벽 너머에 있는 입구를 보지 못한 때문이라...
그간 20여차례 여행에 100여 곳이 넘는 박물관 과 미술관을 보았건만, 여기가
좁은 면적이기 때문이기도 히겠지만..... 단위 면적당 이렇게 많은 인파 는 처음 봅니다!
드디어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화려하고 섬세하며 찬란한 금과 비취, 옥으로 된
황금 목걸이등 유물들을 보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것은 전주곡에 불과하고....
그 유명한 황금마스크 를 보는 순간 온 몸이 얼어붙는듯 하여 움직일수가 없네요! 그리고
그 옆 유리상자 안에는 황금으로 감긴 미이라 관 이 있는 데 어찌나 화려하고
섬세하며 영롱이는 빛과 새깔로 눈이 부시는지 이거 하나만 보아도 본전은 뽑고도 남네요!
2층을 몇군데 더 둘러보고 1층으로 내려오니 그제야 사람들이 줄어들어 숨을 쉴
수가 있어 다행스러운데 비로소 아멘호텝 3세와 왕비의 거대한 좌상이
보이는데, 이 박물관은 좁은 면적에 엄청난 양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보니 조금은 산만한 느낌이기도 한데..... 확장하지 않는 한 별 수가 없으리라!
1층에는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연대순으로 유물들이 순서대로 전시되어 있어 관람
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내 눈을 확 잡아 끄는 것은 3실
에 있는 텔 엘 아마르나 전시실로 4개의거대한 아크엔아텐(아크나톤) 왕의 거상입니다!
이집트는 다신교의 나라로 고왕국의 발생지 나일강 삼각주, 하이집트 멤피스
와 헤리오폴리스의 태양신인 “라” 신과... 중왕국 및 신왕국의
발생지인 나일강 중류인 상이집트 테베(룩소르) 의 “아몬” 신이 중요합니다.
이집트가 통일되면서 이 둘이 합쳐져 “아몬 라” 신이 되었으며 그외에
아비도스의 저승의 신 오시리스 와 그부인 이시스 신, 아들이자 하늘
의 신인 호루스며 하토루신, 토트신, 민신, 크눔신등 셀수조차 없습니다.
신왕국 18왕조 10대 파라오 아멘호텝왕은 테베를 장악한 아몬신전의
사제 들의 영향력이 너무 증대하는데 왕은 불안을 느낍니다.
재위 6년 되는 BC 1374년 유일신 개념을 창안하여 태양신 아텐 을 모시기
위해 자신의 이름마저 아텐의 종이라는 뜻으로.....
아크엔아텐(아크나톤) 이라 개명하고는 수도를 텔 엘 아미르나로 옮깁니다.
그리하여 아몬신을 격하시키고 유일신 아텐(아톤) 을 모시는 종교개혁 을 단행
하여 자연과 진실을 중시하는 사실주의 아마르나 예술 을 탄생 시킵니다.
여기 3호실에 전시되어 있는 파라오 아크나톤의 얼굴을 보노라면 솔직히
위엄이라고는 전혀 없고 오히려 좀 못 생겼다는 생각이 드는데....
19왕조 람세스 2세가 늙어서 지은 신전에도 젊고 잘생긴 얼굴로 조각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아크나톤 왕이 15년 만에 죽고 어린 아들 투탕카멘 이 즉위하자 테베의
신관 들은 수도를 다시 테베로 옮기고 아몬신을 부활 시키는 것이니....
오시리스 신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도 아텐을 부정하고 옛날로 돌아가니
아크나톤왕의 "일신교 종교개혁" 은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내 개인 생각으로는 모세가 애굽의 고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간 것이 1446년 아멘호텝 2세 때가 아니고 13세기가 맞다면....
전자는 단지 열왕기에 나오는 솔로몬신전 건립연대를 역산한데 불과하지만,
후자는 타니스(라암셋성) 발굴과 민수기에 나오는 에돔과 모압 및
아모리 가.... 15세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13세기에야
요단강 동편에 터전을 이루었음을 생각 할때 훨씬 더 과학적 사실이니!!!
그렇다면 모세가 애굽에서 나고 자라 40세에 미디안 으로 피신할 때가 1250년
전후한 시기이니 아크나톤이 죽은 BC 1362년 부터 약 100년이 지난 시대라....
그 당시 지구상의 모든 족속과 국가들이 예외 없이 다신교 를 믿던 시기에
“아크나톤의 특이한 유일신” 사상을 보고서 영감을 얻지는 않았을까요?
고고학 박물관 건물 전면과 마당에도 이시스며 스핑크스, 람세스와 파라오들의
좌상에 그리고 자그마한 오벨리스크 등이 줄지어 서 있어 볼만합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더위에 지쳤는지 턱에 주저 앉아 쉬고들 있는데
그 표정 들이 국적 만큼이나 각각이니 무척이나 다양하네요!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캬페지기 작성시간 24.08.24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믿고 사랑하는 것이고
나에게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가치있는 인생을 살면서
사랑을 하는것이 최고의 행복 입니다.
오늘도 최고의 삶과 행복을 누리는 멋진 하루길 되세요.
🌸🌸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8.25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더불어
5천년 전에 태어난 양대 인류문명인가 합니다! -
작성자삼광빌라 작성시간 24.08.29 즐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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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8.29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사람이 너무 많은 것 빼고는 다 훌륭합니다.
한번 가서 볼 가치는 충분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