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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4- 영광과 한탄의 예루살렘성 통곡의벽과 성분묘교회!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4.08.26|조회수70 목록 댓글 4

 

이스라엘4-  영광과 한탄의고도 예루살렘성 통곡의벽과 성분묘교회에 가다!

  

1월 20일 (일) : 구시가지:  다윗무덤 - 통곡의벽 - 성분묘교회 - 홀로코스트

 

 

   1월 20일 예루살렘 신시가지에 있는 메노라 호텔을 나와 걸어서 야파문을 지나 예루살렘성

안으로  들어가는 데..... 겨울철이 우기인 이곳에서 처음으로 가는 비가 내립니다.

 

 

3천여년 전에 모세에 의해 탈애굽한 사람들이 시나이 반도를 떠돌면서

형상을 만들어 섬긴 것은 아마도 이집트의 영향이라고 보는데....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과 유다 양 왕국으로 분열된 후대 선지자 엘리야

시기에 이르기 까지 야훼신을 잊어버리고.....  현지 가나안 인

들의 신인 폭풍의 신 "바알"  을 줄기차게 받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애굽(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이 홍수가 나서 범람해야 상류에서 떠내려온

비옥한  흙으로 인해 풍년이 드는고로 나일강을 신성시 했듯이.....

 

 

  가나안(팔레스타인) 에서는 여름은 살인적인 더위에 건기에 해당돼 비가오지 않으므로

생산활동 없이 창도 없이 바위로 된 어두컴컴한 집안에 더위를 피해 갇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겨울이 되어 폭풍의 신 바알이 드디어

비를 내려 주어야 비로소 주식인 밀 농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들 가나안인들에게는 비와 물은 생명 그 자체이니...... 이 비의신 ‘바알’ 이야 말로 사람

들이  애타게 목말라 기다리는  아주 자연스러운 믿음인 것이지요?    삼엄한

검문 을 거쳐  ‘통곡의 벽 ’ 에 들어가니 듣던대로 남녀가 기도하는 장소가구분되어 있습니다.

 

 

  세속파에 대비되는 유대교 정통파의 옷차림은 모자부터 신까지가 새까만 색

인데,  남자들이 여학생 처럼 옆머리를 두갈래로 땋아 늘어뜨리고.....

  상의에는 실들이 엉덩이까지 내려오며 나이든 사람들은 긴 수염을 자랑합니다.

 

 

들어가는데 손으로 저지하는 모습에, 머리에 동그란 화병 받침처럼 생긴 모자인 카파쓰라는

것으로 눈치로 알아듣고 입구에서 하나를 머리에 얹었는데...    울 마눌은 이게

흘러내리지 않고 머리에 붙어 있는게 내내 신기한 모양인데  성경을 펼쳐들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끊임없이 외우는 유대인들을 보니 성벽 틈에 소원을 적은 종이가 가득합니다.

 

   

이곳 통곡의 벽은 솔로몬왕이 세운 신전인 성전으로 왕의 사후 나라는 2개로 분리되어

이스라엘앗시리아에, 그리고 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 멸망되면서 성전은 파괴

되었고 그후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온 유대인에 의해 성전이 재건되니 제2성전 입니다.

 

  그러나 희랍인들의 통치를 받던중  하스몬가의 지도로 독립한 이후 헤롯왕 시대에 개축이 

있었 서기 73년의 제1차 유대인의 궐기로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 훼손 된

성전과 성벽은 131년 하드리안 황제의 순행으로 더욱 위기를 맞는데....  예루살렘

성전 터에 쥬피터 신전 을 세우고,  유대인들의 할례를 금지 시키라는 지시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분노한 유대인들은 랍비 아키바 (Aqiba) 를 메시아의 도래로 보고는   예루살렘을 기습

점령하여 성전에서 다시 제사를 드리고 동전을 주조하였지만  그러나 로마군의 공격에

유대인들은 무너지고, 성전에는  쥬피터 신전이 세워졌으며 유대인들의 출입마저 금지 됩니다.

 

 

그 당시 로마군에 의해 죽어가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본 성벽이 밤이면 눈물을 흘렸다나요!

 그러고는 로마군에 의해 전세계로 추방되니 유대인의 유랑이 시작되는데

이를 디아스포라 라고하며....  그후 4세기에 이르러서 성전이 파괴된 날인 아브월

(7-8월)  9일에 성전 가운데 남아 있는 한 쪽 벽에서 통곡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여기 예루살렘 성벽에서 통곡하면서 성전이 파괴 되고 유대 민족이 수난을 당하게 된

것을 슬퍼하는 것인데 이후 예루살렘은 마호멧의 후손들인 이슬람교도들에게 점령

되면서 1,300년간  팔레스타인인의 거처가 되었으며 성전산에는 이슬람의 사원이 들어섭니다.

 

 

이후 오스만 터키를 몰아낸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유대인들이 모여들고 마침내

1948년 유엔에서 팔레스타인 땅을 분할하니 동(구)예루살렘은 요르단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67년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 함으로써

이곳 예루살렘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대립의 최전선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예루살렘 성벽은 헤롯왕의 제2성전 성벽 위에  로마인이 4단을 증축하고 이후 터키가 잔돌로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옆 문을 밀고 들어가니 숨이 막힐 것 같아 멈춥니다.

 

 

 수천년은 됨직한 두루말이 토라들이 즐비한데 정통파 노인들이 그 앞에서 묵도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엄숙해서 말입니다.   시나고그

라기 보다는..... 도서관이라고 할만한데 엄숙한 분위기에 절로 옷깃을 여밉니다. 

 

 

 그러고는  옛 성전인 황금돔 사원을 들어가려해도 도대체 입구를 찾을수가 없으니....

그럴수 밖에 는 것이 이곳이 무슬림을 제외하고는 폐쇄되어버린 것이네요?

   그러고 보니 이곳이 천년전 부터 이슬람 사원으로 변해버렸음을

비로소 깨닫고는 쓴웃음을 짓습니다.  입구도 라이온문 근처에 있는게 생각납니다. 

 

  *** 비아돌로로사 ***
 

그러고는 성벽을 나와 걸어서 비아돌로로사의 골고다 언덕을 채찍질교회를 시작으로

천천히 더듬어 가는데...  원색 옷 차림의  아프리카단체 순례객을 만나니

생경스런 느낌이 듭니다. 아프리카 라고기독교도가 없을리가 없는데.... 편견 일러나?

 

 

궂이 이디오피아의 오래된 기독교도들을 생각하지 않더래도  

서양인 선교사들이 근세에 얼마나 파견되었었는 데...  

 

 

 비아돌로로사 4처의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잠시 참배하고는  아랍인 지구의

좁은 골목길 계단을 올라 헤메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눈치로

내가 찾는곳을 짐작하고는 뒤돌아 오른쪽으로 가야한다고  일러

주는데 골목에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데다 온통 시장골목에서 들어가야 하니.... 

 

 

간신히 찾은 성분묘 교회 는 베들레헴의 성탄 교회 만큼이나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335년에 예수의 무덤인 동굴 위에 최초로 건립했답니다? 


 

614년 페르시아 군대가 파괴한 것을 십자군 시대에 재건했는데 이후 아랍인들은

다행히도 이 교회를  파괴하지는 않고 문만 하나 막는 것으로 그쳤다고 합니다.

 

 

구시가지인 예루살렘성 안은 6개의 기독교 종파가 각기 자기 구역을 나누어 관리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나무관이 엄청크며.... 물론 역사가 짧은 개신교 구역은 없습니다. 

 

 

성안에 있는 아랍인 가게들이 좁고 낡은데 비해서 유대인 상점들의

현대적 시설과 고급 상품들이 너무나도 생경하게 느껴 집니다.

 

 

더욱 옛 로마 대로인 카르도에 이어져 있기에... 그리고 카르도에 여군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병사 서른명이 정열하는 모습이라니....  

 

  

 고고학 박물관에서 옛 집터를 둘러보고는 시온문을 나와서

성모 마리아교회를 둘러보고는 홀로코스트 에 들릅니다! 

 

 

독일 나찌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야 들어서 익히 아는바이지만

여기에 있는 두루말이 성경 을보고 새삼스레 놀랐는데.....

 

 

  양피지인 듯 한데 처음에는 글씨들이 인쇄된줄 알았으니, 몇번이나 확인하고서야 수만자

의 글씨가 한글씨 인양 보이는 것은 그 지극 정성을 말해주는게 아닐른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시온산이라 다윗왕의 무덤 이라고 불리는 곳을 거쳐 2층으로 올라

가는데 하프를 켜는 다윗의 동상 안쪽에는 그의 지하 무덤이 있습니다! 

 

 

이른바  ‘최후의만찬 다락방’  을 찾으니..... 생각하던 것 하고는 너무나

딴판이라 잘못 찾아온게 아닌가 하고 몇번이나 뒤돌아 봅니다.

 

 

그래 2천년 전의 건물이 지금껏 남아 있을리 없으니... 이 건물은 화려한 고딕

양식이니 중세에 재건축 되었을 것이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데 실제로는 예수님의 위치를 잘못그렸다고 합니다.

 

  

로마 시대에는 영화에서도 보듯이 식사를 비스듬히 누워서 했고  상위자의 위치는 긴

상의 한복판 중앙이 아니라 작게되어 있는 옆부분이었고 보면,  당시의

성경구절을 읽어봐도 이런 위치가 되어야 당시의 정황이 자연스럽다고 하는데,

  다빈치도 르네상스시대 사람이니 그 시대의 관습에 따라 예수님을 중앙에 그렸던 것이라? 

 

   

‘웟쥬네임’ 을 외치며 졸졸 따라 다니는 호기심 많은 팔레스타인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는 비를

왕창 맞으며 돌아와 텔레비젼도 없는 호텔 방에 누웠으니  춥기도 하여

처량하기까지해 집생각이 나는데.... 마눌이라도 옆에 없었더라면 영판 홈씨크에 걸릴뻔 합니다. 

 

 

야파 거리를 지나 노천 야채시장을 찾아가는데 사람들은 억센 비를 서둘지도 않고 맞으면서

 태연히 걸어가는 모습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는데  아마도 사막지대라 비가 반가운 때문

일까? 이곳 물가는 우리 보다 좀 비싼 편인데 빵이나 과일등 생필품만은 우리보다도 쌉니다.

 

    비도 맞았고하여 일본인 식당에 들렀더니 메뉴에 우동이 없는게 아닌가요?  주인은 현지인

이나 다행히 주방장은 일본인이라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되어 우동을

켰더니 기존메뉴에 우동이 첨가되어 값이 더 비싸져서 바가지 쓴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중국집에 짜장면이나 짬뽕이 없고, 일본 음식점에 우동이 없기 마련

인데.....  중국집은 값이라도 싸지만 일본음식점은 레스토랑보다 비싼편인데 반찬

으로는 단무지 하나도 주지 않는구나....   달래면 그만큼 또 돈을 더 주어야 하겠지요?   

 

 

  1월 21일(월) : 예루살렘 신시가지 - 제2성전- 박물관 - 시나고그

 

   여기는 시내 버스라도 앞문에서 기사가 4.9셰켈 (1500원) 현금을 받고 거스름돈

외에 반드시 영수증을 발급해 주며  관광안내소에서 3세켤짜리 엽서

한 장을 사더라도 어김이 없으니 영수증 주고받기가 생활해 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과일 등은 반드시 저울에 무게를 달아 1킬로그램에 얼마하는 식으로 파니

어림짐작이나 대충대충은 통하지 않으며 아무리 바빠도 서둘지 않으며.....

   물론 길에서 뛰는 사람도 없는데 이제버벼스를 타고 신시가지 홀리랜드 호텔로 갑니다!

 

 

  홀리랜드 호텔 뒷마당에는 헤롯왕이 건설한 ‘제2신전시대의 모형’ 이 전시되어 있는

30셰켈(1만원) 이나 받아 비싸지만 그만한 값어치는 있으며 야파문 안에

다비드의탑 지하에서 시대에 따라 확장된 예루살렘성 지도를 보았거니와,

다윗시대의 예루살렘은 그러고 보니 언덕 한켠에 아주 작은데 시대에 따라  확대됩니다. 

 

 

 처음 여행안내 책자에 기혼샘과 실로암 연못이 성밖에 있어서 당황했는데 후세에 예루살렘

성을 들여 쌓은 때문이며,  예수를 성밖 동굴에다 장사지냈는데, 오늘날 성분묘

회가 다마스커스문에서도 한참 안에 있는 것도 오스만시대에 성을 늘려 쌓은 때문이리라?

 

 

  예수님 처형장소가 신전옆 라이온문 근처인 이유를 몰랐더니 오늘 이 모형을 보니....

  신전 옆에 로마가 대형 요새를 쌓았는데 로마군대가 주둔한 곳으로 총독 빌라도

 가 평소 주둔지인 카이사리아 에서 이곳 예루살렘에 오면 머무는 요새라?

  여기서 예수님을 재판하였고 그래서 비아돌로로사의 시작이 이곳임을 알겠습니다.

  

 

헤롯왕의 궁전 또한 웅장하지만 제사장 가야바의 대저택도 그에 못지 않으며 그중에도

신전은 기형적으로 커 보이는 것이 종교가 생활의 중심임을 알겠으며

  성바깥과는 물론 내부도 경사가 심한데 실로암 연못의 비중이 컸음을 짐작케 합니다.  

 

  자스민 향기 가득한 거리를 걸어서 국회의사당 크네세트를 지나 이스라엘 박물관 에

들렀더니  배낭검사야 이골이 났는데 한국어로 된 안내장을 받으니 반갑네요.

  이스라엘 역사와 2천년전 당시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형이 많은데 당시에 직조

기술이 발달했음을 보는데 장신구며 도자기, 무기류까지 잘 갖추어져 있어 볼만합니다.

 

 

 입구에는 원뿔 모양으로 생긴 지붕이 책의 전당인데 쿰란동굴에서 발굴된 항아리며

머리카락, 동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뮈니뮈니 해도 압권은 이른바 ‘사해문서’

라 불리우는 두루말이 성경 일 것이니,  2천년 전의 이 두루말이는 참으로

값진 유산인 것이니....... 당시 엣세네파의 신앙 생활을미루어 짐작하게 해 준답니다.

 

  *** 아랍 소년이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발견했다는 쿰란 동굴 ***

 

버스에서 내려 킹조지 거리에 있는 그레이트 시나고그에 들르니   길게 휘장을 둘러쳐

엄숙히 정렬된 비품들이며  진열된 전시물들이 마치 제사집기들을 연상시키는데

오늘밤 파티라도 있는걸까?  나이프, 포크며 잔이랑 그릇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나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벤야후다 거리 에 이르러니 조그만 맥주집에 가라오케 기계 1대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돌아가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는데.....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유럽처럼 남녀구분 없이 어디서나 담배를 즐겨 피우는데

길거리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는 여자를 보니 아라비안나이트 를 보는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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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덴드롱 | 작성시간 24.08.26 다시 간곳처럼 설명 잘 읽었습니다
    보는 눈과 생각이 다르내요 화병받침
    더 멋진표현 이내요 저희는 햇반그릇
    같은걸 머리에 쓴다고 했는데 ㅎ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27 하아.....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은 2번을 갔었는데.....
    언제 3번째 다시 갈수 있을지......
  • 작성자삼광빌라 | 작성시간 24.08.27 굉장해요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28 이스라엘은 나라가 생길 무렵부터
    언제나 전쟁상태가 아니면 준 전쟁상태라....

    인류 역사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의 비중은
    엄청난지라.... 저 땅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성경에서 길을 가다가 올라간다는 말과
    내려간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스라엘 국토는 언덕과 계곡이 많은지라
    현지에 가 보고서야 실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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