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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바이외2 - 노트르담 대성당 보고 정복왕 윌리엄센터!

작성자가라치코|작성시간24.09.01|조회수68 목록 댓글 2

 

프랑스 바이외2 - 바이외에 도착해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고 정복왕 윌리엄센터에 가다!

 

 

5월 27일 루앙 Rouen 역에서 10시 10분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달려 11시 43분에 노르망디

캉 Caen 에 도착해 12시 03분 기차를 갈아 타고 12시 18분에 바이외 Bayeux 

도착하는데.... 두 기차역 모두 코인 라카 Left LuggageConsignas 가 없어 당황합니다.

 

 

배낭을 메고 걸으면서 구경하며 힘을 뺄수는 없는지라..... 택시 를 타고 5~ 6분만에

바이외의 대성당 앞에서 내리니 관광객을 태운 코끼리 열차 도 방금 도착하는데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 Dame 은 노르망디공 윌리엄 이 1만 5천 병사로

영국을 정복 했던 11세기에 건설된 아름답기로 이름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입니다.

 

 

스테인드 글라스 가 예뻐 한참을 바라보다가 대성당을 나와 맞은편에 드와이앙관

을 잠시 보고는 15세기에 주교 저택을 개조해서 만든 제라르 남작 미술관

Musee Baron Cerard 을 찾아가서 다비드, 부댕, 카유보트 등 프랑스 회화 

이탈리아 회화와 플랑드르 회화 및 레이스와 도자기 를 구경하려고 했었는데.....

 

 

미술관 이야 어느 도시에도 다 있는 것이라 포기하고는.... 정복왕 윌리엄의 태피스트리

를 빨리 보고는 바이외 교외 에 있는 2차 대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 해변 을 찾아가야

하나.... 아니면 이것도 포기하고 태피스트리라도 제대로 보아야 할른지 망설이게 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D 일보 파리 특파원 전승훈 씨가 쓴, 美 역사학 교수 마리

루이즈 ‘미군 과 여성’을 언급하며 “2차 대전 佛 노르망디 상륙

D 데이 미군 독려 구호  ‘에로틱 어드벤처’” 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독일인들이 도착했을 때, 남자들이 숨었다. 그러나 미군이 도착했을

때는 여자들이 숨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유행어)”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자, 1944년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 펼쳐진지 70주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여성 들에 대한 폭넓은 조명도 이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해방군으로 왔던 미군과 프랑스 여성 의 관계를

다룬 책이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교수 마리 루이즈 가 쓴

미군과 여성 (Des GI’s et des Femmes)’이다. 프랑스 여성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1944∼46년 잡지와 편지, 일기장, 경찰조서, 재판기록등 자료를 꼼꼼히 분석해 책을 썼다” 

 

 

 

“당시 미국은 프랑스에 대해..... 와인이 넘쳐나고, 매력적인 여인들이 사는

쾌락의 천국 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라이프 잡지 에는

이런 글도 실렸다.‘프랑스는 4000만명의 쾌락주의자가 사는 거대한 ㅁㅇ굴 이다’”

 

 

“이런 판타지 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미군이 디데이를 앞두고 병사들 사기를 독려한 구호 는 ‘자유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에로틱 어드벤처’였다. 포토 저널리즘 은 그 선봉에 섰다.”

 

 

미군이 프랑스 여성에게서 열렬한 키스 세례를 받는 사진 이 전 세계로 퍼졌다. 이런

이미지 는 미군이 나치 손아귀에서 시달리는 프랑스 여성을 구하는 상륙 작전을

펼친다는 신화를 상징화 했다. 프랑스는‘ㄱㅅ된 남성’의 나라로 비쳤다. 프랑스

남성은 200만명이 독일의 포로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레지스탕스와 함께 지하로 숨었다.”

 

 

“이와 관련해 1944년 미군 신문 성조지에 실린 외국어 학습 예문이 흥미롭다. 독일어

예문은 “담배 한 대 피울래?” “일어나!”  같은 말이었지만, 프랑스어

예문은“마담,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요.”  “집에는 오늘 부모님이 계시나요?”였다.“

 

 

“‘2차대전 해방공간에서 사랑, ㅁ춘, ㄱ간’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로맨틱한 사랑, 돈에

의한 ㅁ춘을 넘어 1944년 노르망디에 대규모 ㄱ간사건 이 벌어졌다. 미군과 프랑스

사회는 미군의 영웅신화를 무너뜨리지 않아도 될 희생양 을 찾았다. 흑인 병사

였다. 1944년에 152명의 병사가 ㄱ간 사건으로 처벌을 받았는데 130명이 흑인 이었다.”

 

 

“저자는“이 재판은 흑인을 ㅅ적 충동을 주체 못하는 동물 이라고 치부함으로써

미군의 영웅화 내러티브와 분리 시켰다”고 말했다. 저자는

“역사상 여러 전쟁에서 여성의 몸은 또 다른 치열한 전쟁터 였다”고 말한다. “

 

 

점령군이든, 해방군이든, 동맹군이든 외국 군인의 ㅅ적 행동이 정치적 외교적 관계에서

상징적 역할 을 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전쟁중 ㅅ적 행동 이 전쟁사 연구의

주석이 아니라 ‘중심 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주장 처럼 위안부 문제가 이미 해결된 사안이라고 넘어가선 안 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정복왕 윌리엄의 태피스트리 를 보고 싶은 마음이 워낙 강했기에 저건 나중에 보기로 하고

행인에게 물어 노르만 바이킹 으로 프랑스 파리를 공격했던 노르망디 백작 롤로의 5대손

으로 영국을 정복한 정복왕 윌리엄 센터 Centre Cuillaume le Conquerant 를 찾아 갑니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강이 나와야 하고 거리도 제법 먼 것으로 보이는데, 어찌된 셈인지 강도

보이지 않는데다가 바로 앞에 건물이 보이는지라 긴가민가 하며 둘러보니 여긴 그냥

간단히 Tapisserie Bayeux 라고만 적혀있는데, 몇발자국 걸으니 집들 아래로 강이 보입니다.

 

 

 

건물로 들어가서 살펴보니 장군이 언덕에 서서 바다를 뒤덮은 배 들을 바라보는 장면

그림 이며 말을 타고 방패를 들고 도열한 보병대열 앞을 사열 하는 등.... 정복왕

윌리엄 센터 Centre Cuillaume le Conquerant 가 맞는데, 정원 한켠에 여인의

조각상이 보이니 그럼 왕비 플랜더스의 마틸다 (Matilda of Flanders) 인 모양입니다?

 

 

 

 

여기 성(城) 처럼 생긴 건물인 정복왕 윌리엄 센터 에 딸린 정원 에는 초록색 잔디 사이로

자그만 흰 야생화 가 피어있는게.... 예전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본 야생화 모습이 연상됩니다. 야생화를 구경하다 보니 문득 황인숙 씨의 행복한

시 읽기에 나오는 장정일 씨의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이란 시 가 떠오릅니다.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때는

게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우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 등걸아래 앉아 억만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수 있을때

그늘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 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할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 밖에 될수 없을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여

스물두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준다면

좋을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켠에서 되게 낮잠 자버린 사람들이 나지막이 노래불러

유행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을 흘렸지요.

 

 

그러고는 이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게 여기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 

그린 저 두루마리 그림 을 보는 것인지라..... 급한 마음에 정원을 더 둘러

보지는 못하고 9.5 유로 입장료를 내고 정복왕 윌리엄 센터 에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1층 안쪽에 보이는건 길게 벽을 만들고 양쪽 벽 에 왕비 마틸드의 태피스트리 란 별칭으로

불리는 11세기에 제작되었다는 길이 70m, 폭 50Cm 아마포 채색 태피스트리 가 전시되어

있는데 유물은 유리 안에 들어있음에도 한번 더 보호하려는지 조명을 어둡게 해 놓았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는데 이 위대한 두루마리 유물의 가치 에 주눅이

들었는지 모두들 숨소리 하나 발자국 소리마저 일체 내지않고 마치 그림자 처럼

아님 유령 처럼 천천히 미끄르져 흘러가니, 여긴 죽음과 고요의 바다인양 적막강산 입니다.

 

 

태피스트리 두루마리에는 노르망디공 윌리엄 이 5천명의 기병과 1만명의 보병등 1만 5천의

병사를 이끌고 프랑스 노르망디 에서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를 정복 하는 1,066년의

헤이스팅스전투 장면 이 바이킹 풍 배와 병사들 갑옷과 투구등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나야 내용은 아는 것이고 시간이 바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원래 빨리빨리 한국인 습성 

몸에 밴지라 대충, 대충 둘러보며 사진만 몇장을 찍고는 10여분만에 나오는데....

서양인 관람자들은 카메라는 꺼낼 생각조차 하지않고 귀에 녹음기를 대고는 

그림에서 10여분 이상씩을 보고 들으니 아마 다 보려면 3~4시간은 족히 걸릴듯 싶습니다!

 

 

그런데.... C 일보 이철민 기자가 쓴 기사에 의하면 “마크롱 “바이외 태피스트리

빌려 주겠다” 한마디에 ... 영국 들썩“ 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英 이 유럽대륙에 정복당한 사건, 70m 길이 천에 '자수' 로 담아 여왕

대관식 때 대여 요청에도 절대 내주지 않았던 보물 영국 '마크롱의 선물' 에 보답!"

 

 

"18일 영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샌드허스트 육사에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 프랑스의 11세기 유물인 '바이외 태피스트리 (Bayeux Tapestry)' 를

영국에 대여 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역사학자들과 언론은 크게 반겼다. 브리티시

박물관 "프랑스가 지금 까지 대여한 것 중 최고이며 극도로 관대한 조치 "라고 밝혔다."

 

 

 

"영국이 흥분 하는 이유는 자수 (刺繡) 제품인 '바이외 태피스트리' 가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 때문.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바이외 성당에 보존된 이 태피스트리는

영국의 중요 역사를 담고 있다. 1066년 앵글로 색슨계 영국 왕 이었던

'참회왕 에드워드' 가 후계자 없이 죽자 처남 해럴드가 일방적으로 왕위에 올랐다."

 

 

"해럴드로 부터 '신하의 예(禮)' 를 받았던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공작 (정복왕 윌리엄)

은 이에 분노해.... 잉글랜드로 쳐들어 갔다. 결국 그해 10월 14일

잉글랜드 남단의 헤이스팅스 전투 에서 영국왕 해럴드 를 죽이고 영국을 정복 했다."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 장면을 보여주는 ‘바이외 태피스트리’에서 당시 잉글랜드

왕 해럴드가 프랑스에서 쳐들어온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의 군사가 쏜 화살에 눈을 맞아

죽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 위에 라틴어로 ‘여기서 해럴드 왕이 살해됐다’고 쓰여 있다."

 

 

 "자수(刺繡) 로 꾸민 그림 이야기 형태인 이 태피스트리 는 전체 길이 70m,

폭 50㎝ 에 당시 중세의 전투 방식과 무기, 복장 등을 상세히 담았다. "

 

 

"바이외 태피스트리 는 정복왕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하기 까지 사건을 50개 장면으로 나눠

70m 길이에 '그림 이야기' 로 엮은 것이다. 학자들은 윌리엄의 이복동생 이 1070년쯤

제작을 주도해 '뛰어난 자수 솜씨를 지닌 전문가들이 한 곳에서 제작을 한 것' 으로 봤다"

 

 

"이 태피스트리 에는 잉글랜드 왕 해럴드가 눈에 화살을 맞아 죽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여러 사료에 따르면 해럴드 왕은 '정복왕 윌리엄' 을 포함한 4명의

노르만족에게 목과 다리가 잘려 죽었다. 이를 '신(神)이 쏜 화살' 로 꾸민 것이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바이외 성당에 걸린 바이외 태피스트리 를 관람객이

감상하고 있다. 이 유물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으로 지정됐다."

 

 

"1066년 앵글로 색슨계의 600년 영국 지배 가 끝나고 대륙에서 온 '노르만 왕조(1066~1154)'

가 들어섰다. 가디언은 "이때 영국은 유럽 대륙의 여러 민족과 섞이면서 '진정한

유럽 국가' 가 됐다" 고 밝혔다. 따라서 영국은 결코 앵글로 색슨계만의 나라가 아니다"

 

 

" 그런데도 오늘날 프랑스 노르망디의 2차 대전 영국군 묘지 에는 '우리는

한때 윌리엄에게 정복 당했지만 이제 정복자의 고향을

해방했다' 라고 쓰여 있다. 그만큼 1066년은 영국 역사 에서 중요하다."

 

 

"또 노르만 왕조 때 1만개의 단어가 영어에 추가됐다의회 (parliament)·군주

(sovereign)·하인(servant)·판사(judge)·적(enemy) 등이다. 더 타임스는

 "영국 인구의 20% 를 차지했던 '노예' 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항복한 상대는

죽이지 않는 중세 '기사도 정신(chivalry)'이 피어난 것도 노르만 왕조" 라고 전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이 있었던 1953년과 '헤이스팅스 전투' 900주년

이었던 1966년에도 바이외 태피스트리 대여 를 요청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거절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프랑스에서 1804년 영국 침공을 꿈꾸던 나폴레옹이 파리로

옮기고, 1945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잠시 전시한 것 외에는 성당을 떠난 적이 없다."

 

 

"메이 영국 총리는 "최대한의 사람이 볼 수 있게 하겠다" 고 밝혔다. 벌써 70m 의

전시실이 있는 브리티시 박물관 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성당·

캔터베리성당, 1066년 전투 현장 '배틀사원' 도 이 태피스트리 전시에 눈독을 들인다."

 

 

"그러나 이 유물이 안전하게 옮겨질 수 있기 까지 여러 테스트 가 필요해 바이외 성당이

수리를 위해 문을 닫는 2022년쯤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더 타임스 는 내다봤다."

 

 

"'950년 만의 첫 나라 밖 행차' 에는 당연히 '가격표' 가 붙는다. 마크롱 대통령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테러 집단 소탕을 위해 영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영국 입국만 기다리며 프랑스 칼레에 머무는

아프리카·중동계 난민 들에 대한 영국 정부의 신속한 난민 절차 를 요청 했다."

 

 

"메이 총리가 프랑스군의 북아프리카 작전에 군(軍) 헬기 지원을 약속하고 칼레

지역의 보안장벽 설치 등을 위해 4450만파운드(660억원)를 제공할 것

이라고 전했다.  보답 차원에서 1801년 이집트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 

을 격퇴하면서 획득한 '로제타스톤' 을 프랑스에 대여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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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인사동. | 작성시간 24.09.02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 Dame 은 2014년에 그 당시 민박을 하시는
    회원님이 계셔서 구경 하고 다녀온지 얼마 안되여 화재가 발생 하여 엄청 놀래고
    안까웠는데 .. 이번 올림픽때 보니 다시금 가고푼 마음에 설레였습니다.
    내년 가을에 이태리 가면서 불란서에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 Dame을 다녀 오려 합니다
    노르망디도 그 민박집 주인이 밴스로 다녀 오면서 덕분에 구경 잘 했지요.
    쉽게 방문 할수 없는 곳인데 귀한 사진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가라치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9.02 하아.... 이 머나먼 곳 까지 다녀 오셨군요?
    영국을 정복해 왕조를 세운 노르망디공
    윌리엄의 태피스트리를 보려고 들렀지요!

    기독교 세계에서 보면 이교도 바이킹이었지만
    롤로는 무력으로 파리를 침공해 위협한 결과
    노르망디의 지배자가 된 이후로는 참 어진 정사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백수십년 세월이 흐른후 오나전한 기독교도가 된
    바이킹의 후손으로 프랑스화된 기사들은 영국을 정복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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