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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6 - 2천년을 견뎌온 올드 카이로의 기독교 콥틱교회!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4.09.15|조회수104 목록 댓글 2

 

카이로 여행6 - 2천년 세월을 견뎌온 올드 카이로의 기독교 콥틱교회를 가다!  

 

 

     카이로 신시가지 타흐리르 광장 에 있는 아랍 음식점 에서 이집트식 점심을 먹고는

검은색 택시를 잡는데   비카~무 마스루 일 아디마? ( 올드 카이로 얼마냐? )

종이에 “10LE ١٠라고 적힌걸 보이며 ”아샤라(10파운드)?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운전수는 고개를 흔들며 '쓰티파운드' 라고 말하는 데.... 그건 녀석도

심했다 싶은지..... 내가 투웨니파운드 라고 반문하니 바로 반색을 합니다.   

 

이런?  또 흥정에 실패했네!!! 우리 일행이 나이든 사람도 있고 또 4명 이라

대학생들 2명이 타는 것 보다는 절반 정도 더 주는게 맞다고는 보지만...

   그래도 이 경우에는 피브틴파운드  라고 불러 흥정을 마무리해야 할 것을!!!  

 

  

이 검은 택시는 세상에!!!  오른쪽 사이드밀러가 없네요.... 그러니까 백밀러를 보며 운전

하는데,  카이로 도로는 대개 일방통행이라 신호등 이 거의 없고 횡단보도나 육교

지하도 없으니 차들은 멈추는 법이 없고,  차선 도 잘 보이지 않으니 무용지물 입니다!  

 

  

    어쩌다 만나는 네거리에서 신호를 받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모두

무단황단 이고 그렇다고 차들이 절대로 서는 법이 없으니....

   사람이 길을 건너다 멈추면 차들은 사람들의 앞으로, 또 뒤로 쏜살같이 지나가네요?  

 

  

올드 카이로 Old Cairo 마스루 일 아디마 는 카이로의 발상지로 지하철로 갈 때는

마르기스역 에 내리면 로마시대의 탑과 벽이 보이는 데....

    이슬람 천하이지 싶은 이집트에서 2천년 전부터 기독교도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한 종파인 콥트교도 가 살며 기독교 교회와 곱트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은 곳

이니,  콥트교 는 예수님 승천(부활)후 얼마 되지 않은 AD 42년에 마가복음의 저자 

사도 마가 (마르코)  가 와서 그리스도교 포교를 시작한 것을 그 유래로 삼는다고 합니다.

  

  

마가는  “최후의 만찬” 장소를 빌려 주어서  “마가의 다락방”  이라는 용어가

전해지는데 바울과 선교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네로 황제 시대

(AD 54~68) 에 로마에 가서 베드로의 설교를 받아적은게 “마가복음” 입니다.

 

후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이 마가복음을 참고하게 되었다는데.... 그럼

연대로 보건대 마가가 바울과 불화를 겪어 바울로 부터 배척당한

부터 로마에 가기 전 까지 어느 시점에 여기 이집트에 왔던 것일까요?  

 

  

마가의 전도후 다신교 이집트에서 재래의 여러 신들을 몰아내고 기독교가 이집트 전역

으로 확산되어 AD 2세기 경에는 테베등 상이집트 에도 퍼져 한때 기세를 떨칩니다!

 

훗날 AD 828년 중세 이슬람시대에 베니스인들이 이 마가(마르코) 의 시체 를 파내어

통에다 담고 그 위에 돼지고기 를 덮어서 이슬람인들의 눈을 속이고는 베니스

로 가져와서.....  마르코 성당 을 세우고 "베니스의 수호 성인" 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하여 성 마르코는 또 날개달린 사자 로 표현되어서는  베니스의 마르코 성당 정면에 세워지고

“베니스 영화제” 의 심볼로 행세하고 있는데....   AD 3세기에 접어들어 기독교 4대

도시는 시리아 안티오크,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로마그리고 후일 콘스탄티노플이 추가됩니다.  

 

  

   알렉산드리아 는 BC 322년에 알렉산더 황제가 건설한 도시로 그리스 헬라철학, 애굽

전통 신들, 동방의 여러 토속종교 및 유대교가 교류하는 종교의 도가니였는 데....

 

세베루스황제가 기독교를 탄압하던 때 스토아 철학의 은유적 해설법 을 터득한 클레멘트

와 헬라철학 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의 기초를 세운 오리게네스 등이 활약하였으며

   이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 으로 기독교를 용인하고 그 아들

스탄티우스 2세가 기독교를 후원하면서 기독교는 점차 이집트의 국교가 되어 갔습니다! 

 

  

그러자 아스완이며 룩소르 전역에서 우상파괴를 외치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집트 전통 신들의 조각상을 파괴 하는 광풍이 불게 되는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용인하는 과정이 참 재미가 있는데....  3세기에 로마

제국에서는 군인들이 자기 사령관을 방패에 태워 황제로 추대하는 바람이 일어

   50년간 무려 26명의 군인황제가 등극 했다가 칼바람에 죽는 혼란스러운 시대 였습니다.  

 

   

AD 284년에 페르시아 원정에 출전한 카루스황제가 벼락에 맞아죽자 경호

대장이 황제의 둘째 아들을 죽이고 로마로 진군하여 첫째 아들

마저 암살하고는 로마 황위를 차지하니....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입니다!  

 

황위를 굳히는데 성공한후 광대한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동서 로마로 나누어 정제

2명과 부제 2명을 두니 로마는 4 명의황제가 분할통치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로마군

장교 콘스탄우스 는 동방에서 여관집 딸 헬레나와 결혼하여 아들 콘스탄티누스 를 두었습니다.

 

   

콘스탄티우스는 후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게 발탁되어 서로마 부제 ( 프랑스, 영국,

스페인, 라인강 황제 ) 로 부임하게 되었으니...  출세를 하자면 문벌 이 있어야 하니

천한 신분의 헬레나와 이혼 하고는 그 아들 콘스탄티누스도 멀리 동방으로 쫓아 버립니다.  

 

   

그리고는 서로마 정제(황제) 인 막시미아누스의 의붓딸과 결혼 하는 데 디오클

티아누스는 참으로 이상적인 군주인지.... 자기가 동로마 정제(황제) 에서

은퇴를 하면서서..... 서로마 황제인 막시미아누스도 덩달아 끌고 함께 은퇴를 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에 성을 쌓고 은퇴하는

데.... 후일 그의 아내와 딸은 금은 보화를 많이 소지한 때문인지...  

자기가 황제에 앉혀준 동로마 황제에게 살해 당했으니 권력의 무상함이여!!! 

 

  

졸지에 서로마 정제가 되어 실권을 장악한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아들을 불러들여 함께

잉글랜드 전선에서 싸우다가 전사하니....  동방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서러운 세월

을 한탄하던  젊은이 콘스탄티누스 는 졸지에 서로마 정제(황제) 에 등극하는 것이지요? 

 

  

하여 서로마의 패권을 놓고 로마로 진격하여 테베레 강 밀비오 전투 에서 막센티우스와 운명

의 결전 을 하게되는 데.....  꿈에 그리스도 가 나타나서 “엔 투토이 니카 (이 증표

안에서 승리 하리라!)” 라고 쓰인 깃발을 주니,  “키(그리스도의 그) + 로(그리스도의 리)” 라!

 

  

 

 

 

  

콘스탄티누스는  그간 혼란스러웠던 이유로  황제( 옛날 집정관) 는 로마 시민이 뽑는다 

천년을 이어온 오랜 공화정 전통에 군 사령관이라면 누구나 황제자리를 탐하기 때문이라!

 

  동방의 여러 나라 처럼 자식에게 안전하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는 방법 을 연구했기 때문

이었을라나!!!   황제는 하나님의 뜻을 받은 자 ( 대주교가 중간역 ) 가 오르는 것

이니 일반 시민과 군인들은 이제 황제 자리에는 미련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하늘에 태양이 하나요, 제국에는 황제가 하나니 우선은 제국내의 혼란스러운

사상통일을 기하기 위해 기독교 를 택했는 데, 그 기독교 교리가 가지

각색이라!  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 는 325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가까운

니케아에서 친히 “니케아 공의회” 를 열고  “기독교 교리를 통일” 하게 됩니다.

  

 

로마,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교회를  모두 제치고 여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인물 이 토론에서 양대 학설로 날카롭게 대립했으니....

    알렉산드리아 교구 부제 아타나시우스는 “삼위일체설” 을 주장한데 비해

역시 알렉산드리아 교구 사제 아리우스는 이에 반대 함으로써 격돌했던 것이지요!  

 

  

삼위일체설 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그리스도 및 성령인 하나님  3가지 위격은 하나

의 신을 나타내며 그 본성은 분리할 수 없다 고 주장한 데 비해.....

   아리우스 는 에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존재하는(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주장 함으로써 대립했으나 결국은 아타나시우스파가 승리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후진지역인 로마등 서방에 비해 기독교도가 월등히 많았던 동방 

터키, 시리아 및 이집트등 평범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으로는....

  아리우스의 주장 이 구름 잡는 아타나시우스의 이론 보다 설득력 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이후 로마 황제 들의 생각도 이와 같아서 콘스탄티노플 궁정

교구를 아리우스파 장악 하면서 반전을 하기에 이릅니다!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몰아 격렬하게 배척하던 아타나시우스는 티레로 추방 되는 등 이후

5차례나 쫃겨 났다가 로마교회 와 콘스탄스 황제의 지지로 복귀를 되풀이 했습니다.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시리아의 네스토리우스파 는 초원과

중국으로 전도의 길을 떠나고,  아리우스파는 야만족  게르만족의 전도 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후 알렉산드리아에 설치된 이집트 교황 은 아타나시우스에서 더 나아가 로마 와 비잔틴

(콘스탄티노풀) 에 대항하여 단성론 (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을 주장 ) 을

외치다가  451년 카르케든 공의회에서 이단 선고 를 받고 갈라져서 독자적인 길을 걷습니다.

 

이후 이슬람의 전파로 교세가 급격히 약화되어 지금 교인은 이집트 인구의 10% 인 400만명

으로 추정되는데...... 교회에서는 콥트어를 사용 하나 일상생활에서는 아랍어를 쓴다네요!!!

  

  

20여분을 달려 이윽고 커다란 성벽이 나타나는 데....  그러니까 올드카이로

는 말 그대로 옛날부터 내려오는 원 카이로로 성벽안의 도시 

가리키는 말인데.... 택시에서 내리니 바리케이트 앞에 경찰과

군인들이 총 을 들고 삼엄한 경계를 펴고어 여행자는 괜스레 위축이 됩니다.  

 

  

마침 관광 버스 한 대가 도착하니  전면 유리창에 한글이 보여서 참으로

반가운데, 아니 저건 "노랑 풍선"  이니....  그럼 인천에서

러시아 항공으로 모스크바를 거쳐 우리와 함께 타고 온 사람들이네요!

  

 

교회 입구에는 시멘트 색깔로 우중충한 느낌을 주는 이집트식 아랍 건물이 버티고

있고 담장을 따라 화려한 색깔의 바닥에 까는 천이며 가방 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러고는 드물게도 시멘트색이 아닌 기하학적 무늬 가 화려한 노랑색 담장을

두르고 둥근 돔형 천장 위에 십자가 가 세워진 교회 건물이 보입니다.

  

   

온갖 잡동사니가 늘어선 담벼락 앞 잡화들을 구경하는데  문득 뒤돌아

보니 저만치 이집트 인 가이드를 앞세운.....

    한국 여성 관광객 ( 성지 순례단? ) 들이 무리지어 걸어오는 모습이라니....

  

   

진열품 중에 특히나 우리 눈길을 그는 것은 물담배 시샤 인 데, 구리로 된 통모양이

특이한데, 과일향을 물을 통과해 들이 마시는데 연기는 나지만 순한 모양입니다!  

 

  

길가에 서있던 사내 녀석이 “ 코리안! 볼펜” 하고 외치는걸 보고는 마눌을 찾으니

저 멀리 가고 있어.... 가방에서 꺼낼 수가 없으니 나중에 보자 하고 지나칩니다.  

 

  

그리하여 골목 왼쪽에 있는 정원이 예쁜 교회를 지나치고 오래된 대문을

지나서  이어 오른쪽에 지하 교회 로 내려가는 마눌을 불러 세웁니다.

  

 

  골목 제일 안쪽에 있는 교회 부터 보고 나오면서 다른 교회를 보자고... 그나저나

한국 단체는 어디로 갔나?  틀림없이 아기예수 피난 교회 부터 갔을텐 데....

  

  

하여 들어간 곳이 성 바바라교회 Saint Barpara Church 인가 본데, 예수님

과  성인들의 초상화에 십자가 처형장면이며......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용을 퇴치하는 백마 탄 기사의 그림 을 구경합니다.  

 

 

   그런데 기사의 말 뒤에 공주 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저 기사가 그럼 성 게오르기우스 인 모양이네요?

  

 

서양에서 용 Dragon 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대지의 신으로, 그리스를

거쳐 중세에는 보물을 지키지만 사악한 존재 로....

     이후에는 백마를 탄 지그프리트나 아서왕에 의해 퇴치당하는 존재입니다!  

 

 

 십수년 전에 루마니아 산속 동굴에서 15세기까지 살며 가축을 물어 죽이는 큰 발톱

입에서 불을 뿜었던 괴수의 시체가 발굴되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 입니다.

  

 

  

 하지만 우리 동양에서는 인도에서 그 개념이 처음으로 형성되어 중국에 전해져서는,

용(龍) 은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 하는 상서로운 존재로 왕의 상징 입니다.  

 

  

주역(周易) 64괘 중에 첫 번째 건괘(乾卦) 에 보면 잠용(潛龍) 은 물용(勿用)

이다 라고 시작하는 데.... 건괘는 용으로 시작해서 용으로 끝납니다.  

 

 

이 교회 이집트 콥틱교도들은 벽을 따라 드리워진  성화에 손을 갖다댄 후 입에

맞추는 식 으로 참배를 하는데....  러시아 정교회 만큼이나 엄숙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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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캬페지기 | 작성시간 24.09.15
    나무는 가을이 되어 잎이 떨어진 뒤라야
    꽃피던 가지와 무성하던 잎이 다 헛된 영화였음을 알고
    사람은 죽어서 관뚜껑을 닫기에 이르러서야
    자손과 재화가 쓸 데 없음을 안다
    -"채근담"에서-
    늘 즐겁고 健康 하시고 幸福 하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바이칼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9.15 채근담.... 언제 읽어도 좋은 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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