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중부2 - 페트라에서 왕의대로로 십자군의 요새 카락성에 도착하다!
4월 12일 오전에 요르단 남부에 페트라를 구경한 뒤에 우리 부부와 선배님 부부
등 우리 일행 4명은 자가용 택시를 전세내어 수도 암만으로 가는 길에.....
3천년 된 왕의 대로 King's Highway 를 달려서 십자군의 요새 카락성으로 갑니다.
여기 왕의 대로 King's Highway 는 이름과는 달리 도로의 폭도 좁고 굴곡도 매우 심한데....
에돔과 모압 지방을 통과하며 요르단 강 동쪽에서 남북쪽으로 뻗어 있던 고대의 길 입니다.
차는 구불구불 구절양장 절벽을 내려가는 데, 여기 요르단은 고저의 차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끼는데..... 옛날 가나안에는 남북으로 통하는 길이 2개가 있었으니,
하나는 해안을 따라 이집트에서 레바논에 이르는 “바다의 길 Via Mar's" 이요.....
다른 하나는 홍해 아카바에서 사막을 통과해 페트라와 암만을 거쳐 다마스커스로 가는
내륙의 길인 왕의 대로 인 것이니, 왕의 대로는 모세가 페트라 서남쪽 가데스
에서 통행을 허용해 줄 것을 에돔 왕에게 요청했던 그 길로 구약성경 민수기에 보면.....
“청컨대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이나 포도원으로 통과하지
아니하고 우물 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대로’ 로만 통과 하려오”
그러나 결국 허락받지 못하고 와디럼 사막으로 돌아가야 했던 길인데.... 그후
로마의 트라야누스가 재건했기 때문에 한 때는 트라야누스의 길 로 불리게 되었다네요!
오늘날에는 요르단 정부가 길을 확충하여 술탄의 길이라 부른다는데, 다마스커스
와 이집트를 연결 하는 중요한 통행로이니, 지금은 더 동쪽
사막에 새로 건설된 고속도로 Desert Highway 가 암만 가는데는 훨씬 빠릅니다!
차는 얼마나 내려왔는지 다시 언덕길을 올라가더니 고개에 차를 세우고는
택시 기사가 이끄는대로 도로 옆으로 걸어나가니....
아!!!! 거기 사막류의 이 메마른 땅에서 산 아래에 푸른 호수가 보이는데....
여기가 해발 1,200미터쯤 되는 요르단 고원이라는데 사해가 해발 마이너스
수백미터 이니...... 이 나라는 땅의 고저가 심함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러고는 다시 왕의 대로를 달리노라니 이윽고 이슬람 사원이 나오고 모퉁이를
돌아가니..... 저기 산 언덕에 절벽인양 우람하게 서 있는 카락성 이 보입니다.
절벽으로 사람이나 차가 올라갈 수 없으니 한바퀴 돌아 카락 시내로 접어드는 데....
길은 좁은데 차와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흐르는 시간에 초조한 마음마저 듭니다.
페트라를 출발한지 3시간 만에 드디어 카락성에 도착해서는 기사에게 점심이나
먹으면서 기다리라 하고는..... 우리는 급히 계단을 올라 성으로 들어 갑니다.
그런데 사막 가운데 자리한 이 외진 곳까지 서양인 관광객들이 넘쳐 흐르는데,
성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지하 처럼 어두운 방들을 지나 밖으로 나가니.......
아!!!! 저 깍아지른 가파른 절벽 위에 돌로 세운 여기 카락성의 견고함이여... 이런 높고 험준
하며 튼튼한 성을 공격하려는 장수는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도요토미 히데요시
라면, 자기 병사들을 엄청 죽이게 될 성벽을 기어오르는 정공법은 절대로 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견고한 성은 어떤 장수이든 아군의 희생을 줄일 것을 생각할 것이니 그냥 포위해서
물과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옛날 가나안의 동쪽 이곳
요르단에는 남쪽으로 부터 에돔, 모압,아모리 그리고 암몬 의 4 왕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 카락 성은 옛날 성경 속의 이름이 길 하르셋 Kir-Hareseth 으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피해 급히 피신한
소알의 동굴에서 큰 딸과 근친 상감을 통해 아들 이 태어났던 것이니!
당시 롯의 아내는 도망치던 도중에 뒤돌아 보다가 소금 기둥 이 되어 죽었으므로
홀아비가 되어 딸과 그런 망측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라.... 그 아들과
후손들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해발 900m 의 고원지대에 아르논 골짜기
와 세렛강 사이에 거주하였으며 농사를 짓다가 후손들이 세운 나라가 "모압" 이라!
출애굽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기 카락성 (길하르셋) 모압에 이르렀는
데, 역시나 길을 빌려주지 않자.... '모압과 싸우지 말라' 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는 길을 돌아간 곳이기도 하다네요! 같은 후손이라는 의미 일러나?
후일 베들레헴의 엘리멜렉이 기근을 피해 모압에 와서 모압인 룻을 며느리로
맞은후 다시 돌아가는데..... 이 여인이 훗날 다윗왕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다윗 이 사울왕에게 쫃길 때는 모압으로 피신해서 왕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데, 왕이 된 후는
예전의 은혜를 잊고 모압을 쳐서 속국으로 삼고 조공을 바치게 했다네요! 모압에 피신해
있을때 "지리와 허실을 익힌" 것이 훗날 공격할 때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라....
세상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은혜는 원수로 갚는다" 더니 지 간악한 인간 다윗이 그런 사람입니다?
하기사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도덕이나 은혜에 구애받아서는 안된다고 했지만....그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모압 여인을 아내 로 맞았으니, 우상을 섬기는 신당을 짓도록 허락하였다고 합니다.
훗날 모압왕 메사는 힘이 약할 때는 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양털 10만 마리분을 조공으로
바쳤다고 하는 데..... 절치부심, 와신상담 하여 힘을 길러서는 느보 지역을 차지하여
결국 이스라엘 지배에서 벗어나는데 그 전승비가 얼마전에 디반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스라엘왕 여호람과 유다왕 여호사밧이 힘을 합쳐
모압을 침략하였는 데..... 원정 7일만에 사막에 물이 떨어지니
선지자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는 마른 개천을 파니 물이 솟아 올랐다나요?
하여 호로나임을 함락하고 길하르셋(카락) 을 포위하니 마치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자식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듯...... 모압왕인 메사는 장자를 죽여
하늘에 번제를 드리니 이스라엘 침략군이 공포로 기가 꺽여 철수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모압은 BC 8세기 아시리아에 정복당하고 또 BC 587년에는 바빌론의 속국이 되었다가
아라비아 유목민에게 멸망해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이웃의 강국들은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보는 것이니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침략 전쟁 승자의 기록인가 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보는 이 견고한 카락성 Karak 은 왕의대로 상에 있어
대상에게 통행료 를 받아 부유했던 곳으로..... 1142년에
유럽 십자군 데밀리 가문이 기존의 아랍성을 개축하여 축성했다고 합니다.
이후 십자군 성전 기사단의 간교한 기사인 레이날이 성주의 미망인 에티아네트와 결혼하여
새 성주 가 되어 실권을 쥔 뒤에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등 악정을 계속하는 중에....
예루살렘 왕국을 세운 십자군과 이집트 아이유브조를 세운 살라딘의 아랍 사이의 평화
조약을 이 견고한 성의 위세를 믿고 무시하고는.... 순례자 (살라딘 왕의 누이
포함) 와 대상을 습격해 살륙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악행을 저질렀던 것이니!!!
이에 분노한 살라딘이 떨쳐 일어나니!!! 분열되어 서로 반목을 일삼으며 십자군 퇴치
보다는 자신들 끼리 영역 싸움에 몰두하던...... 너무나도 허약했던
아랍세력은 마침내 통합되어 전투력을 모아 십자군을 모두 축출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과정을 보면...... 살라딘이 1187년 십자군 프랑크인 레몽 백작의 영지인 갈리리 호수의
티베리아를 포위 공격하여 외성을 함락하니, 예루살렘의 십자군은 노하게 됩니다.
레몽의 부인이 성안의 탑에서 결사항전하고 있다지 않은가? 거기다가 카락성의 성주
레이날이 속한 강경파인 성전기사단의 척후가 전멸 당하기 까지 하였으니.....
분노한 1만 2천의 십자군 대군이 하나님의 깃발을 치켜들고 티베리아 호수를 바라보는
언덕까지 진격하였으나, 살라딘에게 포위되어 염천 더위에 물 마저 떨어지게 됩니다.
예루살렘왕국 십자군 군대는 결국은 허망하게 패하니 이를 "하틴의 전투" 라고 하는
데..... 사기가 오른 아랍군은 남쪽으로 진격하여 십자군의 예루살렘성을 함락
하였으니, 이로인해 100년을 내려온 십자군의 성스러운 왕국(?) 은 문을 닫는 것이라!
그러니까 예루살렘 오악구의 멸망은 여기 카락성의 간악한 성주 레이날로 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라? 다음 해인 1188년 살라딘은 여세를 몰아 여기 카락성을 총공격 했으나, 가나안
에서 100년을 통치했던 십자군이 패퇴하고 소수의 사기가 떨어진 십자군만이 방어 함에도....
여기 사막 한가운데 높은 언덕에 세워진 카락성이 성이 어찌나 견고한지 고립무원의 성을
8개월여 오랜 포위 공격 끝에 식량과 물이 떨어진 카락성을 간신히 함락시켰던 것입니다!
이 소식이 유럽에 전해지자, 발칵 뒤집힌 유럽에서는 1차 십자군과는 달리 귀족이나
일개 기사들이 아닌 영국, 프랑스 및 독일 왕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참전하는 데...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 는 키프로스를 점령하고 아크레를 함락한후 예루살렘
왕이었던 기 드 뤼지냥을 키프로스왕으로 쫒아버리고 아크레성은 조카에게 맡기고는....
영국왕의 독주에 질린 프랑스 필립왕이 귀국해 버렸데도 1190년에 영국군만으로 예루살렘
으로 진격하나 사막 지대에서 공성 장비를 구하기도 어려워 성을 함락하지는 못합니다!
( 독일왕은 터키를 지나오다가 물에 빠져 죽었기로 독일군은 와해되어 철수 하였음!)
유럽 기독교도의 예루살렘 성지 순례 보장과 점령중인
이스라엘 해안영토를 보장 받는선에서 살라딘왕과 평화협정을 맺고 철수하는 것이지요.
예루살렘성 공방전은 장기전을 요하는 데, 영국에서 조카 존이 왕위를 탐낸다는
소문에 사자왕 리차드는 마음이 급해져서 서둘러 평화협정을 맺고
돌아오다가 지중해에서 풍랑으로 배가 좌초하여 이탈리아에 상륙하게 됩니다.
영국왕은 십자군 전쟁 과정에서 사이가 나빠진 프랑스 필립왕을 피해 해로를 포기
하고 변복하고는 알프스를 넘다가 정체가 탄로나서 독일 지방 제후에게 체포돼
감옥에 갇혀버렸으니, 본국에서 몸값이 부쳐져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제1차 십자군이 터키에 상륙해 셀주크 터키를 격파하고
안티오크를 함락한후 시리아와 레바논 해안의 트리폴리등 여러 성을 차례차례
함락하고... 가자에 이르러 야파성을 차지해 근거지를 확보한 후에 마침내
1099년에 예루살렘성 을함락해 예루살렘왕국 등 5개 왕국과 백국 을 세웠는데!!!
그 중에 난공불락의 험한 요새로는 시리아 홈즈 부근 크락데슈발리에, 이스라엘
북단 아크레와 여기 카락성 이니.... 십자군 카락성주 레이날이 평화
협정을 깨면서까지 왕의 길을 지나는 대상을 약탈하지 않았으면 아랍군이
뭉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니, 기독교 예루살렘 왕국은 오래토록 존재했었을 것을!!!
이후 카락성 은 13세기에 이집트 맘루크 왕조에서 증축되어 동서는 깊은 골짜기,
북쪽은 해자, 남쪽은 견고한 성벽으로 예전 보다 더 철옹성 이 되었습니다.
성채위에 서니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투 며 십자군 전투를 차례차례 떠올리는데,
근처 모타에는 아랍이 처음으로 십자군에 승리한 곳으로 아랍 사관학교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