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물의 도시 -베네치아(Venice)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한다.
베네치아만(灣) 안쪽의 석호(潟湖:라군) 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독특한 시가지를 이루며,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
대안의 메스테르와는 철교·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나, 철도역은 철교가 와 닿는 섬 어귀에 있다.
다리를 왕래하는 자동차도 시내에는 들어올 수 없다.
시가지는 본래 석호의 사주(砂洲)였던 곳에 들어섰기 때문에 지반이 약하다.
따라서 근래 지반침하와 석호의 오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567년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만(灣) 기슭에 마을을 만든 데서 시작된다.
6세기 말에는 12개의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섬이 그 중심이 되고, 이후 리알토가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하였다.
처음 비잔틴의 지배를 받으면서 급속히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성장하여 7세기 말에는 무역의 중심지로 알려졌다.
도시공화제(都市共和制) 아래 독립적 특권을 행사하였다.
10세기 말에는 동부지중해 지역과의 무역으로 얻은 경제적 번영으로 이탈리아의 자유도시들 중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S자형의 대운하가 시가지 중앙을 관통하고있다,
출구쪽의 운하 기슭에 장대한 산마르코 광장(廣場)이 자리한다.
기본적인 도시형태는 산마르코 대성당을 비롯한 교회·궁전 등과 더불어 13세기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5개의 원형 지붕에서 볼 수 있다.
베네치아의 몇몇 건축물에서는 동방의 영향을 반영하는 비잔틴양식 또는 오리엔트풍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베네치아는 십자군(十字軍) 원정에 힘입어서 동방무역을 확대하였다.
나아가서 현재 그리스의 여러 섬들을 비롯한 동부지중해 지역에 영토를 확대하였다.
14~15세기 초에 해상무역공화국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 무렵의 베네치아 인구는 약 20만으로 추정된다.
공화국의 정치 중심이었던 두칼레 궁전이 완성된 것도 15세기였다.
16세기 이후, 투르크인에 의해 동부 지중해에서 세력이 약화되었다.
따라서 베네치아는 점차 오늘날의 베네토주의 풍요한 농업지대의 중심 도시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도시경제의 쇠퇴와 페스트의 유행으로 16세기에는 인구가 10만으로 감소하였다.
1866년에 이탈리아 왕국군에 점령되기까지 반 세기 이상은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인 북부평야를 배후지로 하는 항구도시로 발전하였다.
상항(商港)은 서부의 철도역에 인접한 스타치오네 마리티마이나, 20세기에 들어와 대안에
공업항(工業港)으로 마르게라가 건설됨으로써, 마르게라·메스트레 등 대안(對岸) 지역이 근대공업지대로 발전하였다.
대안의 공업지구는 현재 행정적으로는 베네치아시에 포함되어 있다.
유리세공업(細工業)으로 유명한 무라노섬, 국제영화제 개최지 및 해수욕장, 카지노 등으로 유명한 리도 등도 베네치아시에 포함된다.
베네치아의 구시가지는 지난날의 공화국 번영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산마르코대성당·두칼레궁전·아카데미아미술관 등은 미술·건축예술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다.
베네치아는 로마·피렌체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중요한 관광지이다.
대학 및 시(市) 동부의 현대미술전시장에서의 국제비엔날레, 리도의 국제영화제, 페니체극장에서의 음악 등 문화활동도 활발하다.
그러나 구시가지는 면적이 한정되어 있고, 현대생활에는 편리한 환경이 될 수 없으므로 대안부의 도시화가 현저하다.
대안부의 공업은 화학·기계공업이 중심이며, 공업항을 포함한 베네치아항의 취급물량은 이탈리아 제3위를 차지한다.
산마르코대성당·두칼레궁전·아카데미아미술관 등은 미술·건축예술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다.
베네치아 카니발(Venezia Carnival)
1268년 처음 시작되었으며, 사순절의 2주 전부터 열린다.
카니발 기간에는 민속놀이, 황소 사냥, 곡예사의 가장 무도회가 진행된다. 이를 보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과 형형색색의 고깔모자와 가면들로 도시의 좁은 골목마다 가득 찬다. 베네치아 카니발의 가장 오래된 의식은 사순절 전 목요일에 행해졌다.
이날은 일종의 전쟁을 위한 공물인 황소 1마리와 12마리의 돼지가
아퀼레이아 총대주교에 의해 준비되었고 잔인한 의식이 끝난 뒤 대중 앞에서 그 동물들을 죽였다.
이 의식은 12세기에 있었던 베네치아공화국과 아퀼레이아 총대주교 관할국의 대결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고관들 앞에서 행해졌으며 칙명에 의해 1525년 중단되었고 황소 한 마리의 목을 자르는 단순한 행사로 바뀌었다.
카니발 기간 동안에는 아퀼레이아에게 승리한 날을 기념하는 경축 행사 등
많은 행사와 말을 이용한 스포츠, 공중곡예, 민속전시회가 벌어지는데.....
이것들은 숙련된 광대와 ''콤파니 델라 칼자''라는 단체에 의해 진행된다.
이들은 여러 개의 축제행사를 계획하고 공연하는 활동을 하며, 각 ''콤파니아''는 귀족 혈통의 회원 20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베네치아 카니발은 이탈리아 최대 축제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축제에 속한다.
이 기간 동안 시 당국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한다.
그중 산마르코 광장에서 펼쳐지는 가면과 의상대회에서는
베네치아의 옛날 가면과 의상, 현재의 가면과 의상이 출품되어 현재와 과거가 만나는 장을 이룬다.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 )
2명의 상인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성마르코 유골의 납골당(納骨堂)으로 세워진 것(829~832)이다.
그 후 성마르코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이 되었다.
11세기 말에 현재의 산마르코성당이 재건되었는데 이 재건공사에 롬바르디아의 건축가와 석공(石工)이 상부구조(上部構造) 건축에 참가했다.
산마르코성당의 건축양식은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십자형(十字形)의 바실리카로 다섯 개의 동방적(東方的)인 돔을 받치고 있다.
파꽃형[蔥花形]의 아치와 고딕풍의 천개(天蓋)가 이어진 정면(파사드)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대리석 건축으로 황금빛의 배경을 지닌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산마르코성당이 재건되면서부터 도제(총독)를 비롯한 베네치아 시민(市民)은 동방을 침략할 때마다
이 건축을 장식할 여러 가지 물건과 조상(彫像)·부조(浮彫) 등을 가져오는 습관이 생겨 이 건물은 그런 것들로 장식되었다.
예컨대 정면 위의 회랑(回廊)에 놓여 있는 네 개의 브론즈 말(높이 1.6m)은 고대 그리스시대의 것으로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에 옮겨놓은 것을
1204년에 도제가 베네치아로 가져온 것인데 이런 조상이나 부조들은 수없이 많다.
또 외부와 내부를 뒤덮듯 장식된 모자이크 벽화는
12~17세기에 계속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미술사적(美術史的)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되어 있다.
내부는 그리스 십자형 위의 다섯 개의 큰 원천정(圓天井)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 성마르코의 업적을 말해주는 12~13세기의 그림을 비롯하여 티치아노의 바탕그림에 의한 모자이크 등이 장식되어 있다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9세기에 처음 건설되었고, 현재의 외관은 14~15세기에 형성되었다.
최초의 건물은 마치 요새 같은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
북방의 고딕 양식과 베네치아의 동방적 양식와 장식이 어우러진 모습을 베네치아 고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궁전은 베네치아 고딕의 조형미가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건물은 흰색과 분홍빛의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회랑은 36개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칼레 궁전에는 두 개의 정문이 있다.
내부에는 총독의 방과 접견실, 투표실, 재판실 등이 있다.
가장 볼 만한 곳은 재판을 담당하던 ''10인 평의회의 방''이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 중 하나로 유명한 틴토레토의 대벽화 《천》, 베네치아의 주요 역사를 그린 그림이다.
76인 총독의 초상화 등이 있다.
또 궁전 재판실에서 소운하를 사이에 두고 ''탄식의 다리''라고 불리는 다리를 건너면 감옥이 있다.
이곳의 감옥은 카사노바가 갇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궁전에서 감옥으로 넘어가는 다리에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의 다리이다.
이유는 다리에 난 창으로 죄수들이 감옥으로 옮겨지면서....
다시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쉬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베네치아의 총독은 선출되기가 힘들었던 데 비해....
평의회 의원의 참석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고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의원이 동행해야만 베니치아를 벗어날 수 있었다한다,
그의 궁전에서 열리는 모든 공식적인 축제의 비용을 시의 도움 없이 혼자서 지불해야만 했다.
곤돌라 외에도 대중 교통수단으로 바포레토라는 수상버스, 모터보트인 수상택시가 있다.
베네치아만의 특징적인 현상은 어느 도시에서나 흔한 자동차가 없다는 사실이다.
온통 수로로 되어 있으니 자동차가 쓸모가 없다.
베네치아 곤돌라(Venezia Gondola)
곤돌라는 이탈리아말로 ‘흔들리다’라는 뜻을 가진다.
길이 10m 이내, 너비 1.2∼1.6m이다.
관광객 유람용으로 이용되는 곤돌라는 고대의 배 모양을 본떠 만들었는데, 선수(船首)와 선미(船尾)가 휘어져 올라가 있다.
중앙의 지붕이 낮은 객실에 5∼6명을 태우고, 선수와 선미에서 두 사람의 뱃사공이 3m 정도의 긴 노를 젓는다.
베네치아시는 운하가 도로의 역할을 하는 수상도시이어서 곤돌라는 11세기경부터 시내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배의 색채는 1562년 베네치아 시령(市令)에 따라 검은색으로 통일되었다.
오늘날은 모터 보트의 보급으로 겨우 수백 척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베네치아를 여행한 많은 사람들이 후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곤돌라를 탄 것이라 한다.
곤돌라는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만하다.
겨울에는 추운 바닷바람과 짙은 안개로 운행되지 않고 3월이 돼야 승선할 수 있다.
유선형 길쭉한 배인 곤돌라의 사공을 곤돌리에레라고 부른다.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
예전부터 리알토 다리 주변은 상권의 중심가였다.
12세기 경, 넘쳐나는 상품들과 한쪽 둑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를 배가 감당하지 못하자 다리 건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1854년 아카데미아 다리가 지어지기 전까지 대운하를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다.
이 다리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베네치아의 첫 번째 다리라는 사실, 아치 모양의 아름다움, 다리 위에 화려하게 장식된 아케이드 점포들이다.
대운하에서 곤돌라를 타고 보는 모습이 아름답고 계단식 다리 위는 귀금속과 가죽 제품 등을 파는 점포들과 그것을 구경하는 관광객...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농수산물 시장이다
시내버스격인 대중인 시민과 여행객이 이용하는 배이다
베네치아는 슬픈 운명에 처한 도시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석호(潟湖) 위에 세워진 도시라서 지반(地盤)이 약해 오랜 기간 도시 전체가 계속 가라앉고 있었다.
현재 산 마르코 광장까지 물이 올라온다고 한다.
언젠가는 이 도시 전체가 물속에 잠겨 지구상에서 몇 안되는 고건축물의 보고가 우리 눈에서 사라질 것이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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