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 일찍 산악열차를 타고 융플라우에 오르는 날이다.
융플라우는 해발 3454m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스위스의 대표적 명산이다.
융플라우에 가기위해서는 물론 한발 한발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 같은 여행객들은 많이들 산악열차를 타고 간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그린델 벨트나 라이텐 부르넨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클라이네 샤이넥역에서 내려 다시 융플라우로 가는 열차를 갈아타야한다.
그래서 올라갈 때는 그린델 발트로 갔다가 내려올 때는 라이텐 부르넨 쪽으로 내려오면 갈 때 올 때 각각 다른 풍경을 구경할 수 있어 좋다. 여행사에서 예매해 할인된 가격이 왕복 120프랑 (한화15만원)이니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비싸도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우리 일행 중 대학교 일학년 남학생 한 명만 빼고 모두 융플라우로 간다.
걔는 베른으로 가서 아인슈타인 박물관엘 꼭 가봐야 한다고 빠졌다.
우리는 융플라우에 가서 오후 서너시나 되어서 내려오게 되므로 숙소에서 아침 일찍 체크아웃하고 짐들은 동역의 코인 락카에 맡겨야한다.
락카는 꼭 동전이 있어야하므로 밥 먹다가 리셉션 아가씨에게 10프랑짜리 지폐를 5프랑짜리 동전으로 교환했다.
다시 돌아와 남은 밥을 마저 먹는둥 마는둥 하고 급하게 짐을 끌고 역으로 한참 이동하다가 생각하니 손이 뭔가 허전하다.
아차차 식탁위에 동전을 그대로 두고나왔다.
다시 돌아가서 가져오기에는 기차시간이 있어서 안 될 일. 아깝지만 포기한다.
그건 그렇고 우리 짐은 우짜지? 큰 락커는 5프랑 작은 락커는 3프랑이다.
동전을 다시 바꾸려고 해도 이른 시간이라 문 연 상점도 없고 일행 중에도 동전 가진 사람들이 없다.
할 수없이 이집 저집 빈 공간 있는 곳에 우리 짐들을 쑤셔 넣는다.
벌써부터 우리 딸의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 엄마 못살아 하는 표정으로 눈짓을 준다.
가시나 지는 그럴 때 없나 뭐? 내 건망증, 내 칠칠하지 못함. 나도 안다 알아. 그러나 괜히 내가 화를 낸다.
기차가 출발하고 그것도 금방 잊고 바깥 풍경에 정신을 빼앗겨 감탄 연발이다.
하늘은 청아하게 맑고 뭉실뭉실 구름은 솜털처럼 포근하게 보인다. 기차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마디로 그림같다.
날씨마저 예술이다.
동화책에서나 보던 예쁜 통나무집들이 산자락에 드문드문 서 있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점박이 얼룩소들이 신기하기도하다. 융프라우에 오늘같이 맑은 날이 일 년에 며칠 없다고 하는데 우리들은 행운이었다.
그런데 그 높은 곳 까지 기차 레일을 어떻게 깔았을까 그 생각을 하니 정말 아득해진다.
깍아지른 절벽들 사이로 난 터널을 뚫고 드디어 Top of Europe이라는 융플라우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핑크스 전망대로 올라가서 눈 덮인 알프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얼음동굴도 구경하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컵라면을 사서 하나씩 먹는다.
우리는 준비해간 컵라면이 있으므로 끓인 물만 사서 먹는다.
끓인 물도 3프랑인가 얼마하든데 정확히 모르겠네. 국물 맛이 끝내준다는 말을 진짜로 실감하는 순간이다.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전망대 휴게소가 라면 냄새로 가득하다. 한국 사람은 유럽 어디가나 진짜 많다.
다시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보니까 하이킹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날씨도 딱이고 픙경도 죽이고. 나도 걸어서 그들과 같이 하이킹하고 싶었다.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한 시간은 3시40분.
이후의 스케줄은, 6시 35분 인터라켄을 출발해서 스피츠로 가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고, 밀라노에서 다시 로마로 가는 야간열차를 11시 20분에 타는 것이다.
그래서 기차 탈 때까지의 자유 시간 동안 COOP이란 수퍼에 가서 구경을 한다.
야간기차타고 먹을 간식거리와 다음날 아침거리까지 사두어야 하기도하다.
주부본능이랄까 며칠 만에 처음으로 수퍼에 가니까 흥분부터 된다.
다양한 빵과 과일들 샐러드류 등등 살 것들과 사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리저리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워워 꼭 필요한 먹을거리만 산다.
인터라켄을 출발해 스피츠에 도착해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려고 기다리는데 그렇게 맑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곧 바로 앞에 매고 다니던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서 옆에 있던 사람에게도 씌워줬는데 공교롭게도 그 60세 아저씨였다.
하마터면 "빗속에 둘이서" 란 영화 찍을 뻔 했는데 인솔자가 역 옆 전시관을 섭외해서 그곳으로 들어와서 비를 피하라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퇴근시간이 다되어 냉방을 꺼버려서 그런가 후끈후끈하다.
실내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어느새 비가 다시 그쳤다.
7시 5분 밀라노행 기차를 타고 짐정리를 하는데 출입문 쪽에서 한국말로 시끌시끌하다.
큰 캐리어를 끌고 온 한 여대생이 역무원에게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되냐고 하는 것이었다.
친구가 탔는지 안탔는지 확인이 안 된다고 하면서.
옆에 있던 우리들은 일단 타라고 훈수한다.
기차시간이 늦어 택시를 타고 왔고 내려선 둘이 서로 막 달려오다 친구를 놓쳤다고 한다.
기차는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일단 기차는 출발을 했고 그 여대생은 이 칸 저 칸 친구를 찾아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가 우리에게 와서 친구와 통화해본다고 휴대폰을 좀 빌려달라고 하더니 친구는 못 탔다고 한다.
그래서 한 시간 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와서 밀라노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끊었다.
어떡해야하나 많이 안타까웠는데 어쨌든 연락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이렇게 순간순간 위험이 있는데 여자들 둘이서 완전히 자유배낭여행을 떠나온 것이 대단해보였다.
우리 딸도 그렇게 보내줄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고풍스러운 밀라노역에서 두 시간 쯤 기다리다 11시 20분 로마행 야간열차를 탔다.
우리 좌석은 4인용 쿠셋이라 4명이 한 칸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좁긴 하지만 하나의 아늑한 공간이 된다.
소매치기와 도둑이 많다는 얘기들을 하도 많이 들었던터라 훈련 받은 대로 들어가자마자 이중으로 문을 꼭 잠그고 있었다.
처음 타보는 야간열차라 신기했다. 이층침대 두 대가 마주보고 있는데 우리는 아래층을, 얘들은 위층을 쓰기로 했다.
좁아서 불편하지만 다들 신기해하고 재밌어한다.
바로 앉아있지도 못해 고개를 숙이고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자연스레 눕게 되었다.
하루 종일 다니느라 피곤했던지라 눈이 저절로 감기다가도 털커덩거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영 적응이 안 된다.
밤새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다가, 물결 속으로 휩쓸리는 꿈을 꾸다가 깨다가 하였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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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애니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4.05 여행사 이름을 구체적으로 올리면 안된다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뭐 웬만한 여행사마다 단체배낭여행 가는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굳이 말하자면 전 여행은 오직 ONE이라고 하는 여행사로 다녀왔고요.
여행경비는 여행사에 낸 것이 1인당 350만원정도 그외 하루경비 10만원씩잡고 10*15일 해서 1인당150만원정도~~
500만원에서 좀 남았던것같아요. 다른 궁금한 것 있으면 멜 주세요~~~ -
작성자블루바이올렛 작성시간 12.04.06 여행일기를 잘쓰셔서 저같이 꿈꾸는 사람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애니맘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제가 지금여행을 하고있는 분도 들고요...
저도 준비잘해서 꼭 다녀오고 싶어요...다음편 기대할게요~ -
답댓글 작성자애니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4.06 감사합니다~~~ 진짜 준비를 많이해서 가면 많이 도움이 될 것같아요.
이 배길 카페는 정말 정보가 무지 풍부하더군요, 여행고수님들도 많고요.
전 좀 준비없이 갔다온 편이라 후회가 많이 되요.
그래서 열심히 준비해서 다음엔 좀 알차게 갔다오려고요.
제 희망사항입니다.~~~ -
작성자비빔만두 작성시간 12.04.08 너무 재미있네요~~^^ 마치 같이 여행하고 있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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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애니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4.09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