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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파리 여행2 - 태양왕 루이 14세의 영광 그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다!!!

작성자로스킬레|작성시간13.01.11|조회수747 목록 댓글 4

 

 

파리 여행2 - 태양왕 루이 14세의 영광 그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다!!!

 

 

 

  우리는 드디어 베르사이유 궁전 에 입장하여 조각상이 열지어 선 긴 회랑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큰 홀이 나온다.

 

 

   2~ 3층까지 이어 지는 듯 천장이 무척 높은 것을 보니 아마도 여기가 채플실

모양이다.

  나선형으로 생긴 계단을 올라가니 망사르가 설계 했다는 왕실예배당 이 나온다!

 

 

  천장의 그림은 삼위일체 나타낸다는 데.... 1770년 루이 16세 오스리아

황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이 열렸던 곳이라...

 

 

   역사적 사실이 그러한지라..... 관광객들이 좌석에 앉아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드디어 베르네세의 대형 회화와 천장화 가 볼만하다는 헤라클레스의

나타나는 데.....

 

 

  오늘도 여기 베르사이유 궁전 안에는 관광객들이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2000년에

처음 왔을 때에 인파에 떠밀려 다니던 때 보담 낫네!!!

 



   풍요, 비너스, 다이아나, 마르스, 머큐리, 아폴론의 방을 거쳐서.... 드디어

"거울의 방" 에 들어 선다.

   2000년에 처음 보았을 때에는 하도 충격을 받고 감동을 느꼈었기에 처음엔

여기 이 방이 아닌줄 알았네.....

 

 

   그러나 왕의 침실을 둘러 나와 안내도를 봐도 역시 이곳이라 잠시 당황스럽다?

2000년의 그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 이유는 무었일까?

 

 

   루브르며 터키의 돌마바흐체,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여름궁전, 겨울궁전 및

예카 테리나 여제의 궁전을 섭렵하면서....

   하도 눈부신 곳을 많이 보다 보니.... 이제 면역 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양켠으로 줄을 치고 의자를 놓아 면적이 줄어 협소해진 배치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휘황찬란하던 금박도 색이 바랜게 한몫하는 모양이다. 선남선녀들이

모차르트의 선율에 맞추어 춤추며 돌아갔을 옛날은 이제 한갓 꿈으로 남았네!!!!

  그럼 이 궁전을 지은 루이 14세의 조상들 은 누구였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는 데......

 

 

    칼(샤를) 마르텔 대제는 프랑스 인의 조상 인가? 아님 독일인의 조상 인가?

원래 프랑스에는 켈트족 이 살았는 데....

   "켈트" 라고 하는 부족의 이름은 바지를 입은 사람들 이라뜻이라고 하네!

 

 

   켈트족은 전차 를 부릴줄 알았던 민족으로 영국과 아일랜드, 북이탈리아 및

프랑스에 살았는 데 이중에서도 프랑스 거주자를 갈리아인 이라고 불렀다.

   BC 52년 카이사르 가 갈리아 전 부족을 궐기시킨 베르킹게토릭스를 알레시아

전투 에서 격파하면서 갈리아는 로마땅으로 편입되어 라틴화의 길 을 걸었다.

 

 

   이후 게르만족의 대이동(침입)과 훈족의 왕 아틸라의 기습을 받은후, 게르만족

의 일파인 프랑크족 메로비스의 손자 클로비스 는....

   서고트와 작센 및 로마를 몰아내고 메로빙거 왕조 를 열었으며... 이 과정에서

기독교로 개종 한다.

 

 

  711년에 이슬람을 믿는 사라센인 들이 아프리카에서 바다를 건너 스페인을 침략

해 게르만족인 서고트왕국 을 멸망시키고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침입하자...

  732년 메로빙거 왕국의 궁재 칼(샤를) 마르텔 투르- 프와티에 전투 에서

옴미아드 왕조의 사라센군을 격파 하고 프랑스를 지켜냄으로써 중세 유럽을 연다!

 

 

   이후 737년에 메로빙거 왕조의 대가 끊기자 칼 마르텔의 아들 피핀 은 왕이

되어 카롤링거 왕조 를 여는데 그 아들이 샤를 마뉴(칼 마르텔) 대제 로....

   피핀이 이탈리아 까지 손에 넣은후 일부인 중부지방을 교황령으로 기증함으로

써 이후 그 아들 샤를마뉴가 교황으로부터 서로마제국의 황제관 을 받는다.

 

 

   하지만 그 아들들이 나라를 쪼개어 각기 왕위에 오르니 바로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및 이탈리아 이다!

   세월이 흘러 파리지방의 귀족 위그 가 독일 하인리히 왕의 딸과 결혼해 낳은

아들 위그 카페 는....

 

 

  카롤링거왕조의 마지막 왕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987년

에 프랑스 왕이 되니 카페왕조 이다!

  하지만 군사력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고 귀족의 지지로 왕이 되다 보니 직할지

파리, 부르주, 상스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여러 공국 으로 왕의 지배가 미치못하는 지역이라!!!

 

 

  그 선조가 노르만 바이킹 으로 노르망디 에 정착한지 150 여년만에 후손 윌리엄

이 1,066년 기사 5천명을 이끌고 영국을 정복해 노르만왕조 를 열는 데....

  그후 후손인 헨리 1세는 공주 마틸다를 프랑스 앙주백작 에게 시집보내어 태어

아들(외손주)헨리 2세 라....

 

 

   그는 파리 궁전에 루이7세 왕 을 알현하러 갔다가 왕비 엘레오노르 와 눈이

아, 왕비를 꼬셔서 이혼시킨후 1152년에 결혼 하니....

   노르망디, 앙주 외에 부인인 엘레오노르의 영토인 푸아투, 아키텐, 가스코뉴

를 차지하고 왕에게 달려들어 브르타뉴 까지 빼앗았으니...

   왕의 신하인 주제에 프랑스 왕보다 훨씬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였다.

 

 

   헨리 2세는 1154년 영국으로 건너가 외손주 자격으로 잉글랜드 왕위를 빼앗아

플랜타지네트 왕조 를 열고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를 복속시켜.....

   프랑스 와 영국에 이르는 대왕국을 건설 하였지만, 만년에 아들 리차드와 존이

반란 을 일으켜 군사들이 쳐들어오자 실의에 비참하게 죽는다.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 헨리 2세를 죽이고 영국 왕위에 오른 사자왕 리차드

하나님의 거룩한 영토를 되찾는 정의로운 3차 십자군 전쟁 에 참전해....

  예루살렘 으로 진격하였던 것이다!!! 이후 1328년 카페왕조의 샤를 4세가 죽고

사촌 발루아가 필립6세 로 즉위하자.....

  영국왕 에드워드 3세 는 자신의 어머니가 샤를4세의 누이 이니 3촌이라 왕위계승

을 주장하여 1,337년에 프랑스에 침입함으로써 100년 전쟁 이 벌어지게 된다.

 

 

   그후 샤를6세가 죽자 아들인 샤를7세가 프랑스왕에 올라야 하는 데, 영국왕

헨리 5세는 샤를 7세의 어머니가 삼촌 오를레앙공과 사통 한 적이 있으니....

   그 출생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하여 프랑스 왕위를 가로채니 태자(샤를7세)

낙담하여 1,402년 시농성으로 도피 한다.

 

 

   이후 프랑스땅의 60~70%는 영국이 차지한 가운데 처녀 잔다르크 가 신의 계시

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왕을 설득한후 오를레앙 전투에서 영국군을 격파 하니....

   1,422년 비로소 태자는 카페왕조의 오랜 전통대로 랭스에서 대관식 을 올리고

샤를 7세로 프랑스 왕 에 등극한다.

 

 

   그러고는 "토사구팽" 이라고 영국군이 재판을 거쳐 잔다르크를 마녀로 처형

하는데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는 것이니!!!!

   하지만 샤를 7세는 이후 수십년간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거쳐 1,453년 카스

티용 전투를 끝으로 영국군을 완전히 몰아내고 오늘의 프랑스를 이루는 것이다!

 

 

   1272년 프랑스왕 루이 9세의 6번째 아들 로베르 와 부르봉가()의 베아트리스

가 결혼해서 태어난 아들 루이 1세가 공작 이 되었는 데....

  직계는 단절되고 방계 후손 앙트완이 프랑수아 1세의 누이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

의 아들 잔 달브레와 결혼함으로써 부르봉가를 부흥 케 하였다.

 

 

   이들의 아들인 앙리 드 나바르 신교도 위그노의 수령 으로서 신구교도간

의 극심한 내란을 봉합하기 위해 1589년 프랑스의 왕위에 오른 앙리 4세 이다.

   즉 신교도인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는 보장하되 왕은 가톨릭으로 개종한다는

것인 데.....

 

 

   후일 바르톨로메뉴의 대학살 에서 보듯이, 구교인 가톨릭교도는 신교도를 습격

하여 재산을 몰수하고 애, 어른 할것없이 무참하게 죽이니 ....

   살아남은 신교도는 모두 네델란드 등지로 달아나고 프랑스는 순수한 가톨릭국가

로 되는 것이다!

 

 

   이후 부르봉 왕조 는 루이13세를 거쳐 루이 14세 이르렀던 것이니.... 루이14

세의 손자는 스페인과 나폴리왕국의 왕이 되었으나 또다른 손자인.....

   프랑스 왕 루이 16세 는 프랑스 대혁명의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출신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 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 로 사라지는 것이니!!!!!

 

 

   루이14세는 절대왕정의 상징 이나, 에스파니아 왕위 계승전쟁의 장기화로 백성

들의 신망을 잃어 일어난 프롱드의 난 을 당해 파리에서 피신하여 전전하다가...

   후일 그 고통이 생각나 파리로 돌아오지는 않고 1,682년에 여기 베르사이유에

궁전 을 짓고 왕궁을 아예 옮기는 것이다.

 

 

   마리 앙뜨와네뜨 왕비의 처소와 대집무실을 둘러 보면서 그 화려함 에 기가

질린다기 보다는...

   프랑스 대혁명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이 궁전 외에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건물은 로마의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아닐까 싶은 데......

   그 웅장하고 섬세하며 화려하고 눈부신 건축물에 기가 질려 주술에 걸린 듯

한동안 발을 움직 이지 못하고 서 있다가.....

  문득 종교개혁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을 때와 같은 심정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백성의 고혈을 짜는 절대 군주정 덕분으로 우리가 오늘

이런 찬란한 문화유산 을 볼 수 있는 것이라....

   그러니 이 세상에는 절대선이나 절대악 이라는 것은 없는 법 아닐까?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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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devilangel | 작성시간 13.01.11 오~ 대단하십니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네요. 개인적으로 베르사이유 궁전을 매우 좋아합니다. 루이14세 시기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베르사이유.. 완전 제 스타일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길...
  • 답댓글 작성자로스킬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12 그렇지요? 베르사이유는 프랑스의 영광이니까요!
  • 작성자파리 전망좋은 방 | 작성시간 13.01.12 익숙한 풍경의 사진들과 상세한 프랑스 역사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
    가문이 뭔지, 나라가 뭔지, 종교가 뭔지......
    저마다 이렇다할 명분을 내세우긴 하지만 서도, 인간의 역사는 결국 살육과 전쟁의 역사라 보아도 과언이 아닐것 같습니다. ㅠ.ㅠ
  • 답댓글 작성자로스킬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12 그렇네요? 다 욕심이 지나친 결과 이었을테지요?
    중세 시대의 왕과 영주들은 전쟁을 참 쉽게 생각했던 것 같네요?
    하기사 돈만 있으면 용병을 고용해 내보내면 되는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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