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zecho,Prague,CityTour,체코,프라하,석송조재훈,I Understand,G Clefs,20120624
프라하 거리를 쏘다니면서 ... 음악: " I Understand" [체코, 프라하, 시티투어]
MUsic: I understand
프라하의 봄 [Prague Spring]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당 제1서기 두프체크에 의해 시발된 자유화 운동.
1968년 두브체크 주도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화운동으로 이 운동을 막기 위하여 침략한 소련군의 군사개입사건을 포함하여 '체코사태'라고 하기도 한다. 1956년 소련 내에서 흐루시초프에 의한 스탈린 격하운동은 1956년 폴란드, 헝가리에서 수정주의운동을 일으켰으며, 이들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민족전통과 민족의식에 대한 각성을 수반하였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친러시아적인 전통으로 스탈린주의자인 노보트니 정권의 보수 정책이 계속되었다.그러다가 60년대부터 탈(脫)스탈린화가 점차적으로 진행되면서 국민들의 민주, 자유화의 열망은 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조직적인 운동을 펴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68년 1월 총회에서 노보트니가 당 제1서기를 사임하고 개혁파의 두브체크가 당 제1서기를, 체르니크가 수상을, 온건파 스보보다가 대통령직을 각각 맡았다. 이들 개혁파는 68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 중앙위 총회에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화, 즉 민주·자유화 노선을 제창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재판의 독립, 의회제도의 확립, 사전검열제의 폐지, 민주적인 선거법 제도의 창설,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보장, 국외여행·이주의 자유보장, 경찰정치의 종식, 공업·농업 부문의 개혁 체코슬로바키아의 동등한 권리에 의한 연방제 이행, 자주독립에 대한 대외정책 추진, 과거에 권리를 박탈당한 모든 시민의 완전한 복권 등을 내용으로 하는 개혁조치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잠시 동안의 '프라하의 봄'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코 사태가 동유럽으로 파급될 것을 우려한 소련은 1968년 8월 20일 브레주네프 독트린을 앞세우고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5개국군 약 20만 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침공하여 두프체크를 비롯한 개혁파 지도자들을 숙청하였다. '프라하의 봄'은 이렇게 좌절되었고, 슬로바키아인 후사크(Husak)가 두브체크 이후 당 제1서기에 취임하였다. 원래 '프라하의 봄'은 체코 필하모니 결성 50주년을 기념해 46년부터 매년 5월에 프라하에서 열려온 음악제 이름이었다. 전통적으로 개막일에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폐막일에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연주된다. 그런데 1968년 체코사태 당시 한 외신기자가 "프라하의 봄은 과연 언제 올 것인가"라고 타전한 이후 '봄'이라 는 단어가 주는 자유의 이미지와 겹쳐 '프라하의 봄'이 체코 자유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 후 세계각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 지명에 '봄'을 붙여 부르는 하나의 관례가 생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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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혁명 [velvet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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