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트라파니여행6 - 트라파니에서 에가디 제도의 파비그나나 섬에 가다!
트라파니 시내를 걸어 바로크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늘어선 구시가지에서
대성당 카테뜨랄과 와 여러 교회를 보고는....
관광객들을 태운 코끼리 열차를 비켜지나 인포메이션 센터를 바라보며 항구 Porto 로 가는데
거기 고아장에 우뚝 선 이탈리아 통일 영웅 "가리발디" 의 동상을 본다.
독일처럼 이탈리아도 수십개의 국가로 갈라져 통일이 늦어 외세의 영향을 받던중
제노바의 주세페 가리발디 Giuseppe Garibaldi 는 청년 이탈리아당의 혁명운동 에 가담한다.
1834년 관헌에 쫓겨 프랑스로 피신했다가 1848년 해방전쟁이 일어나자 귀국해서는
의용군을 조직하여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패배한다.
이후 후 로마의 혁명공화정부 에 참가하여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무력간섭에 대한
방어전을 지휘하였으나 공화주의 를 계속하는데 역부족을 느낀다.
어쩔수 없이 신념을 꺽고는 사르데냐 ( 토리노의 사보이 피에몬테 ) 왕국에 의한
이탈리아 통일주의자로 전향하여....
1859년의 해방 전쟁에서는 알프스 의용대를 지휘하여 오스트리아군과 싸운다.
이듬해 5월에는 “붉은 셔츠대”를 조직하여 여러차례 힘든 전투 끝에
시칠리아와 나폴리 등 남이탈리아 왕국 을 점령해서는.....
사르데냐 (토리노의 사보이 피에몬테) 왕에게 바침으로써 이탈리아 통일에 기여하였다!
여기 트라파니 부두에는 엄청 큰 유람선 이 있어 그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데....
우리가 가는 에가디제도로 가는 페리는 이 유람선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배이다!
보기에도 날렵하게 생긴 페리에 오르니 11시가 되어서야 트라파니 항구를 빠져나가는 데
멀리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은 트라파니 성채 Trapani Castelo Colombia 인가 보네?
이때 문득 743년 전에 이 항구에서 부리나케 배의 돛을 올렸던 시칠리아왕 샤를 1세 가
떠오르네... 그는 프랑스 왕의 동생으로 앙주 백작에 봉해져 있었는 데,
교황이 프리드리히와 그 아들 만프레디 왕을
파문에 처하자 그런 교황청의 후원을 받아 2년전에 시칠리아를 점령 했었다.
이 해 1,270년 프랑스왕 루이 9세 는 제8차 십자군 을 이끌고 7월 17일
튀니지 카르타고 폐허에 상륙했다. 동생인 샤를 왕이
병력과 식량등 보급품을 갖고 합류하면 이슬람 튀니스 를 공격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시칠리아 민중의 저항으로 샤를왕의 출발이 늦어지니....
십자군은 식량과 물 부족으로 역병 이 퍼져 루이 9세가 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샤를 왕은 8월 23일 황급히 트라파니 항구를 출발 한 것이라!
배는 30km 남쪽에 위치한 마르살라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파도가 거칠어 배멀미를 느낄 무렵에....
한 섬 에 도착하니 할머니 여승무원 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어디 가는냐고 묻는다.
우리 동양 사람들은 낯선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니 그러다간 자칫...
"뭐야, 왜 꼬나봐?" 하고 시비가 붙을 우려도 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니 "문화의 차이" 일러나?
그러고보니 손님중에 불과 20% 정도만이 내리고 나머지는
그대로 앉아있는 것이 눈치로 보아하니...
이 섬은 파비그나나 Favignana 가 아니고 그럼 레반조 Levanzo 섬인가 보네?
할머니 승무원은 말도 통하지 않고 어리숙해 보이는 우리 동양인들이...
혹시나 엉뚱한 섬에 내릴까 걱정 이 되어 한번 확인해 주려고 한 것인가 보다?
그러고는 다시 페리는 출발하고 트라파니를 출발한지 45분 만에 길게 누워있는 섬이 나타나니
바로 에가디 군도의 주 섬 파비그나나 Favignana 라 페리에서 내린다.
항구에서 지도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 보이길래 인포 직원인가 해서...
비취빛 바다 Cala Rossa 는 걸어서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으니 한시간 이라고 하네?
어느 여행기에 보니 이 섬에서 이동 방법은 오직 자전거 라!
( 나중에 길을 보니 택시도 운행 가능! )....
비포장 도로에서 시달리며 길을 잃기도 했다는 얘기가 생각이 난다.
과연 자전거 대여소 가 바로 보이는데 네사람 중에서 울 마눌과 일행인 또
한 여인은 자전거를 탈줄 모른다기에 1시간 걸린다니 그냥 걷기로 한다.
멀리 아득히 높은 산 정상에 성채를 뒤로하고 모퉁이를 돌아서니 방파제 가 나타나는데...
그 너머로 암초를 담고 있는 푸른 바닷물이 출렁이는데 보기에도 시원하다.
지금 시간이 11시 50분이니까.... 왕복 2시간 30분 잡으면 트라파니로 출항하는 배는
14시 30분이니 그럼 "10분 가량의 여유" 가 있네?
바다를 바라 보노라니 예전에 제1차 포에니 전쟁 이 벌어졌을 때에 여기서 로마와
카르타고 해군 사이에 시칠리아 근해에서 벌어진 해전 을 회상하게 한다.
BC 260년 메시나 서쪽에서 벌어진 1차 해전에서
로마가 승리 한 이래 BC 257년에는
카르타고군의 근거지인 팔레르모에서 벌어진 2차 해전에서도 로마군이 승리한다.
이후 BC 256년 5단 갤리선 230척(승선인원 12만)의 로마 함대가
카르타고 본국을 향해 출항하여
시칠리아 남부 아그리젠토 인근에서 250척으로 구성된 카르타고 함대를 격파한다.
다음해에 카르타고에서 벌어진 제4차 해전에서도 로마 함대가 승리하나
BC 249년 트라파니 앞 바다에서 200척의
로마군은 아드해발의 카르타고 함대에게 처음으로 참패를 당한다.
당시에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니 로마군은 출정하기 전에 새 점 을 치는 오랜 전통이 있는데
보통은 점쟁이가 닭을 굶겨서 모이를 잘 쪼게하는 것이 상레였다.
그런데 이 때는 왠일인지 닭이 모이를 쪼지 않고 돌아다니기만 하자 화가난 풀크루스는
“물이라면 먹겠느냐”며 바다에 내던졌다니 그게 불길한 징조였던 것일러나?
해전의 참패와 폭풍우로 인한 해난사고로 5년마다 실시하는 BC 247년의 로마 국세 조사에서
성인 남자의 인구가 17% 나 감소하니 로마도 재정이 소진되었다.
이 해에 한니발의 부친인 하밀카르 는 시칠리아에 파견되어 2개군단의
소규모 병력으로 팔레르모와 여기 트라파니
그리고 마르살라에서 선전하니 로마는 제해권 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에 BC 242년 로마는 전시국채를 발행해 200척의 5단 갤리선을 건조하여
로마 집정관 카툴루스가 이끌고 마르살라 항구를 점령한다.
BC 241년 카르타고 보급함대는 마르살라와 트라파니 사이의 마레티모 섬 에 닻을 내렸고
이 소식을 탐지한 로마 집정관 카툴루스는 파비그나나 Favignana 섬 에 이르렀다.
에가디 제도 Egadi Islands 두 섬의 거리는 불과 10km 인데 3월 10일
서풍이 불자 카르타고 함대는 드디어
트라파니를 향해 출진하자 북상한 로마 함대가 그 앞을 가로막으니 6차 해전이다!
바람을 안고 싸우는 불리한 조건하에서도 로마 함대는 군량을 실어
무거운 카르타고 함대를 공격하니
50척이 침몰하고 70척이 나포되자 카르타고 함대는 본국으로 도망친다.
패전의 책임을 묻지 않으며 작전을 완전히 일임하는 로마군에 비해
카르타고의 대장은 개전이래 3번째로 사형을 당하고는 하밀카르는 강화를 제의한다.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에서 철수하고 로마 동맹국 시라쿠스에도 싸움을 걸지 않는다.
그리고 포로 교환을 하며 카르타고는
배상금을 지불하고 에가디 군도와 몰타도 로마 소유가 된다.
이후 로마제국이 쇠퇴하자 시칠리아는 게르만 반달족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비잔틴 제국 이후 9세기에는 이슬람 사라센 그리고 11세기에는 노르만족의 지배를 받았다.
여기 우리가 상륙한 파비그나나 섬 등 에가디 제도 는 론리 프래닛에서
시칠리아에서 가보고 싶은 곳 1위 로 올려져 있다고 한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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