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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의미

여행과 인생을...

작성자캬페지기|작성시간25.12.17|조회수43 목록 댓글 0

늦기 전에라는 말을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되뇌며 길 위에 섰다.
우리는 늘 시간이 많을 것처럼 산다. 내일이 당연히 올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지 자주 깨닫게 된다. 공항 대합실에서. 오래된 기차역 벤치에서. 산길에서 숨을 고르며 문득 드는 생각 속에서.

걷지도 못할 때까지 기다리며 인생을 미루는 사람들을 여러 번 보았다.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채 언젠가를 약속하다가 결국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몸이 허락하는 한 길을 나선다. 다리가 아직 나를 데려다 줄 수 있을 때. 숨이 아직 풍경 앞에서 멎을 수 있을 때. 가보고 싶었던 도시와 골목과 언덕을 향해 간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부자도 있었고 가난한 사람도 있었다. 명함이 화려한 이도 있었고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이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사라지는 길이다. 그 사실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이 중요해진다.

어느 도시의 작은 식당에서 우연히 옛 친구와 다시 만난 적이 있다. 수십 년 만이었다. 우리는 많이 변해 있었고 동시에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의 만남은 식사가 목적이 아니었다. 인생의 남은 날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웃음도 말도 유난히 진했다.

돈에 대해서도 여행은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통장에 있는 숫자는 때로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쓰지 않으면 그 돈은 기억도 이야기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낯선 도시의 작은 카페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이. 오래 기억되는 저녁 식사가. 결국 돈을 돈답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잘 대접하는 일이라는 걸 배운다. 남을 위해서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자신이 사라진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고. 즐길 거리가 있으면 즐긴다.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다.

여행 중 병원에 들른 적도 있었다. 그 순간에도 깨달았다. 몸은 의사에게 맡기면 된다. 목숨은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끝까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두려움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 걱정 대신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짐을 싼다. 아주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가까운 도시. 처음 걷는 골목.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면 충분하다. 인생을 즐기기에는 지금이 가장 빠른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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