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서 오래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눈가에 잔주름 하나가 깊어져 있고
검었던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시간이 조용히 스며나와 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세월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실감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거울 속 낯선 내 모습을 바라보다가
괜히 마음이 서러워 울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시간이 지나면 더 단단해지고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무언가를 채워주는 방식보다
하나씩 내려놓게 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성장시켰습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변해가는 몸도
멀어지는 사람도
예전 같지 않은 관계들도
왜 이렇게 서글픈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사람에게 받은 상처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게 남곤 했습니다.
변해버린 마음들. 이기적인 말들. 멀어지는 태도들.
그때는 상대가 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처음에는
내게 없는 모습에 끌리고
좋은 부분만 보이며
그 모든 것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보이지 않던 단점과 성격이 드러나고
그 순간 사람은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변한 것은 어쩌면 상대가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기대가 생겼고
바람이 커졌고
내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상처라는 것도
누군가가 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만든 기대와
내가 바랐던 마음이 부서질 때
사람은 아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을 천천히 바라보게 됩니다.
쉽게 마음을 다 열지 않고
충분히 시간을 두고 알아가려 합니다.
그것이 차가워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는 방식이라는 것도
나이가 들며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인연이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사람도 관계도 결국 흐르는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형제도 부모님이 계실 때 더 가까웠고
자식 또한 언젠가는 자기 삶으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사실이 슬프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너무 기대하지 않으려 합니다.
기대한 만큼 상처도 커진다는 것을
삶이 여러 번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잠시라도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사람은
무언가를 더 얻으며 늙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씩 놓아주는 법을 배우며
삶의 깊이에 가까워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날에는
곁에 오래 남아주는 사람이 사랑이라 믿었는데
지금은 떠나는 뒷모습까지 조용히 바라봐줄 수 있는 마음이
더 깊은 애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마지막 아름다움 또한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잃고도 끝내 평온함을 잃지 않는 마음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밤하늘의 별들은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더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시간도
인연도
어쩌면 그런 별빛 같은 존재인지 모릅니다.
잠시 우리 삶 위에 내려앉아
짧은 온기를 남긴 채
말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언가를 소유했던 기억보다
한 시절을 얼마나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냈는가 하는
조용한 흔적들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삶은
천천히 나를 비워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비워짐 속에서
조금씩 평온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