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같이 물 같이 살자.
돌로미티의 아침은 늘 조용하다. 산장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했고, 바람은 서두르지 않았다. 나는 배낭 하나 메고 천천히 길을 나섰다.
높은 봉우리들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수천 년을 그 자리에서 비와 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산은 내게 묻는 것 같았다.
너는 무엇을 그리 많이 짊어지고 사느냐고.
살다 보면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도 있고, 이루지 못한 아쉬움도 있고, 꼭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욕심도 있다. 나는 그것들을 배낭처럼 등에 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산길을 오래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숨이 차오를수록 욕심은 뒤로 밀려나고, 눈앞의 풍경 하나만으로도 충분해진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은 어느 곳에서도 다투지 않는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길이 막히면 기다렸다가 다시 흐른다. 낮은 곳으로 향하면서도 끝내 바다에 이른다.
우리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꼭 이겨야 하고, 꼭 가져야 하고, 꼭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만 자유로워진다면 훨씬 편안해질 것이다.
여행은 많은 것을 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비우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낯선 길을 걷고, 잠시 머물다
떠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다 보면 결국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산은 내게 산처럼 묵묵히 살라고 한다. 물은 내게 물처럼 부드럽게 살라고 한다.
빈손으로 왔으니 너무 많이 움켜쥐지 말라고. 빈 마음이 되어야 새로운 풍경도, 새로운 사람도, 새로운 행복도 담을 수 있다고.
오늘도 나는 여행길에서 조금 더 비우는 연습을 한다. 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물처럼 흘러가며, 남은 인생은 가볍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