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포르투갈 와인과 민주주의

작성자루시|작성시간20.04.21|조회수23 목록 댓글 0

"유럽 와인의 미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달려 있을 것이다." 와인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해 왔던 말입니다. 이중 스페인 와인은 이미 리오하나 뻬네데스, 프리오라토, 두오로 같은 지역에서 명품들을 만들어 왔고 라만차 같은 지역에서도 좋은 와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포르투갈 와인은 유럽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들 중에선 가장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포도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지요. 뚜리가 나시오날 같은 품종을 들어본 분들은 와인 애호가 중에서도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상당히 좋은 와인을 만들어 왔지요. 예를 들어 강화 와인인 오포르토(포트) 같은 것이 유명한 포르투갈 와인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 와인은 프랑스 와인을 가장 많이 마시던 영국인들이 프랑스와의 전쟁 때문에 보르도 와인을 마시지 못하게 되자 대체품으로 이 와인을 선택했을만큼 괜찮은 와인을 만들어 왔었습니다. 운송 도중에 상해버리는 게 많아 변질을 막기 위해 포도주 발효 과정에서 브랜디를 부어 강화시킨 것이 달콤하면서도 독한 포트였고, 이것이 영국의 특산물인 체다 치즈라던지, 스틸튼 치즈와 너무나 잘 어울렸고, 지금도 영국에선 최고의 디저트로 내 놓는 것이 커다란 스틸튼 치즈의 한가운데를 파고 거기에 포트 와인을 부어 내 놓는 것이라고 하지요.



어쨌든, 그 엄청난 포텐셜을 갖고 있던 포르투갈 와인은 오랫동안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것은 포르투갈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한때 마젤란이나 바스코 다 가마, 엔리케 왕자 같은 탐험가들을 내며 '포르투갈 제국'을 세웠던 이 나라는 그 이후 왕가가 탐험가들을 착취하고 그 댓가를 내주지 않고, 이후에 내전에 휘말리는 등 엉망이 됩니다. 나중에 공화국이 되고 나서도 오랜동안 독재가 지속되고, 1974년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야 민주화가 어느정도 진전이 됩니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 독재가 가장 오래 지속됐고, 정치 발전이라는 면에선 유럽에서 보기 드문 후진국이었지요.



유럽 와인이 보르도를 넘어서서 이태리나 스페인 와인이 약진하는 동안에도 포르투갈 와인은 그들이 오랫동안 담아 오던 그 방식을 넘어가지 못했었습니다. 심지어 헝가리 같은 동구권의 와인들이 약진하는 가운데에서도, 포르투갈 와인은 포트 와인을 제외하고는 테이블 와인 부문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민주화가 진전된 90년대 말 이후, 자본의 유입이 시작되고 포르투갈 와인의 비약적 발전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조금 조금씩 포르투갈은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대로 훌륭한 와인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포르투갈 와인은 쉽게 발견될 것이고, 아는 사람들은 이제 이쪽의 와인들에 대해 다시 평가를 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뚜리가 나시오날 품종으로 만든 테이블 와인들은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처럼 무겁거나 하기보다는 산뜻한 느낌을 주는, 밝은 색상의 와인이 됩니다. 그것은 피노느와처럼 아주 밝진 않고, 산지오베세 같은 느낌이면서도 멀로 같은 깊은 느낌도 있지요.



까사 산토스 리마는 포르투갈에서도 꽤 큰 와이너리입니다. 19세기 초부터 와인 양조를 시작했으니 나름 역사는 꽤 됐지만 타 지역보다는 한참 늦었지요. 지금은 현대식 시설을 들여 다양한 와인을 만들고, 이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 중에서는 '콜로살'이라는 꽤 알려진 와인이 코스트코에서 인기리에 팔렸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전에 마셔본 적이 있지요. 그런데 이 와이너리에서 만든 '레드 블렌드 포르투갈'와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포르투갈의 토착 포도로만 만든 와인입니다. 병 디자인도 재미있고, 마감은 요즘 유행대로 스텔빈 캡입니다. 알코올은 13%. 보통 13.5%로 나오는 미국의 와인보다는 조금 덜 무겁지만, 12.5%로 나오는 유럽의 보통 테이블와인보다는 조금 무거운 셈입니다.



와인 엔튜어지스트 잡지는 이 빈티지도 없는 와인에 90점을 매겼습니다. 향이 무척 발랄하게 올라오는 와인입니다. 감기에 걸렸다가 나은 후 처음 딴 와인이기도 합니다. 와인을 잔에 따라 스월링을 하고 나서 올라오는 아로마가 맑은 봄날 바람속에 흘러들어오는 꽃향기처럼 화사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과일향보다는 이상하게 꽃향기쪽에 가까운 레드 와인이라.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피노 느와나 가메이 종류인데, 그런것과는 확실이 구별이 가는 밝은 느낌입니다. 와인에서 느껴지는 느낌 자체가 밝습니다. 마치 통통 튀는 소년 소녀의 모습이 연상되는 그런 와인입니다. 재미있는 레이블에서도 그런 느낌이 오지요.



아내는 에어프라이어에 돼지고기를 익혀 주었습니다. 늘 그녀가 하는 방식대로 칼집을 살짝 내어 마늘을 썰어 박아 넣고 후추와 향신료가 들어간 소금으로 밑간을 해 둔 후에 몇 시간 놓아 두고, 간이 살짝 밴 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에어프라이어에 익힌 거지요. 그리고 저는 그레이 푸퐁 겨자를 따라 여기에 발사믹 식초를 넣어 잘 저었습니다. 이 고기를 썰어 이렇게 만든 소스에 찍어 먹으면 쌓인 피로도 풀릴만한 맛이 되지요. 새콤달콤하면서도 매콤함과 쌉사름함이 잘 어울린 이 소스와 돼지고기, 그리고 이 가벼운 느낌의 레드는 감기에서 해방돼 자유로워진 후각과 미각에 꽤 많은 기쁨을 선사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한산해진 코스트코에서 레몬과 이것저것 식료품 장을 보다가 이 와인을 다시 집어들었습니다. 처음 릴리즈 됐을 때는 12달러 정도 했던건데, 이젠 병당 \$5.99에 나오고 있습니다. 6달러 선에서 이런 와인을 즐기긴 쉽지 않지요. 포르투갈의 테이블 와인이 이만큼 많이 풀린 것도 처음 보지만, 무엇보다 이것은 포르투갈 민주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민주화가 이뤄지고 나서 포르투갈엔 서방 자본들이 대량 유입됐는데, 이중 상당한 액수가 와인 부분에 투자됐고, 지금처럼 현대화 된 시설에서 그들의 다양한 와인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제 와인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그들의 모습을 세계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와인들이 오히려 한 풀 꺾였어도 포르투갈 와인은 저렴한 가격과 엄청난 포텐셜을 무기로 천천히 미국 시장을 점령해 들어오고 있는 겁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것을 꽃피우게 합니다.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의 강국으로 세계에 인정받게 된 것도, 결국은 우리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민주주의의 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그것을 세계에 알리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그리고 지금껏 방역 작업을 해 온 사람들과 그리고 여기에 발맞춰 스스로의 작은 희생을 기꺼운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총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요. 우리의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려면 아직 먼 길을 걸어야 할 겁니다. 그렇지만 이 결과가 지금껏 우리가 이뤄 온 민주주의의 성장이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역사에 또 한번 후회할 일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게 될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오랫동안 함께 싸워왔고, 그 때문에 이번에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 봅니다.





시애틀에서...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와인리더소믈리에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