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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프레데릭 헨드릭 케머러 - 작품이 더 중요하지 일생이 중요해?

작성자내일을향하여|작성시간17.04.26|조회수117 목록 댓글 0

그림에 대한 포스팅을 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화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때입니다.

그림이 좋은 것이지 화가의 일생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화가 이야기를 찾지 못하면, 꼭 안주 없이

깡 술을 마시는 기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 폴더에 그림만 있는 화가들이 있습니다. 이 번에는 더 이상

묵히고 싶지 않은 그림들 중에 네덜란드의 프레데릭 헨드릭 케머러 (Frederik Hendrik Kaemmerer / 1839~1902)

작품들을 보고자 합니다.

 

 

 

언쟁     The Argument / 50.2cm x 76cm

 

결국 여인의 울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남자도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자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무릎에 척

올려 놓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다리도 과도하게 벌렸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여기까지 이르렀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서 겪어야 할 일 천 가지 일 중

하나라는 것을 두 사람이 아직은 알기 어렵지요. 둘레로 단풍이 한창입니다. 봄과 여름을 푸르게 잘 보내고

이제 그 끝을 곱게 물들이고 있는데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울고 그래?

남자의 눈을 보니 아무래도 여인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역시 여인의 눈물은 정말 무섭군요.

 

케머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료가 없으니 집안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그곳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화가들은 풍경화와 정물화에 아주 능통했었지요. 특히 풍경화는

하늘의 빛을 처음으로 캔버스에 가져온 화가들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아마 케머러도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육제      A Day at the Carnival / 61.6cm x 38cm

 

사육제는 가톨릭에서 사순 시기를 앞두고 벌이던 축제입니다. 가면을 쓰고 악령도 내쫓을 겸 금육과 단식을

앞두고 한바탕 신나게 노는 날이죠. 남자는 긴 양산을, 여인은 짧은 양산을 들었고 옆구리에는 선물도 하나씩

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먹을 것을 든 남자의 손에 여인이 팔짱을 꼈습니다.

저럴 때 평생 먹을 것을 마련하고 여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남자는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여인은 --- 땅에 끌리는 치마만 들면 되죠. 그렇게 보면 요즘 여인들의 삶의 질이 별로 나아진 것이 없군요. 

 

 

낚시하는 오후   An Afternoon Of Fishing / 24.1cm x 35cm / Watercolor

 

햇빛 좋은 오후 낚시를 나왔습니다. 준비해온 바구니는 작은데 걸려 올라온 고기는 아주 덩치가 큰 놈들입니다.

남자의 솜씨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여인 앞에서 저 정도 보여줘야 말이 됩니다. 낚싯대를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얼굴에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걸렸습니다.

어때, 나 낚시 잘하지?

, ---- 아주 잘하네.

낚시터에 끌려 왔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에게 낚인 것같습니다. 제 추측입니다만 당분간 둘 사이가 좀

멀어질 것 같습니다. 여인의 심드렁한 표정이 예고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요?

 

스물 여섯 살이 되던 1865, 케머러는 파리로 이사를 가서 세상을 떠 날 때까지 파리에서 거주합니다. 그를

소개한 자료들 마다 그의 생애를 헤이그 시대와 파리 시대로 구분하는데 정작 헤이그 시대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화가로서 아직 이름을 떨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파리에 도착한 케머러는

장 제롬의 제자가 됩니다.

 

 

 

 

학교 최고 미인     School Belles / 55.9cm x 33cm

 

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예쁘고 맘에 드는 여학생 옆에는 왜 늘 왈가닥이고 좀 남자답게생긴

친구들이 있었는지 이 나이가 되어도 이해가 안 됩니다. 이야기라도 건네 볼 까 하면 무슨 경호원들처럼 막아

섰던 기억이 납니다. 그림 속 여학생이 요즘 말로 인 모양입니다. 옆에 친구와 비교하니 학생이라기 보다는

여인이군요. 지나가는 남학생들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만 도도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자주 있는

일인 모양입니다. 역시 같이 가던 친구가 한 마디 합니다.

뭘 봐, 예쁜 것은 알아가지고

너 아니거든.

그 때 그렇게 예뻤던 아이들도 저처럼 나이를 먹었겠지요.

 

 

겨울철의 탈선    A Winter Escapade / 60.3cm x 40cm

 

제목을 보지 않아도 그림에는 묘한 느낌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여인의 자세가 여간

매혹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릎을 꿇은 남자가 여인의 발에 신겨 주고 있는 것은 스케이트처럼 보입니다.

스케이트는 이미 철기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 날의 모습처럼 강철 날을 부착한 것은

12세기 네덜란드에서 처음 발명 되었다고 하죠. 한 때 유럽에서 여인의 맨 발은 모든 것을 허락한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었습니다. 잘 때 이외에는 신발을 벗지 않은 문화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겠지요.

남자는 신발 끈을 조이기 위해 한 손으로 여인의 발을 살짝 눌렀습니다. 순간 여인의 입에 미소가 떠 올랐습니다.

날씨는 차가운데 그림 속은 후끈한 열기가 가득합니다.

 

장 제롬의 학생이 되어 미술 공부를 하던 케머러는 1870년 파리 살롱에 성공적인 데뷔를 합니다. 초기에 그가

그린 작품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반의 풍속에서 영감을 받은 주제들이었습니다. 그 작품의 크기는

작은 것이었지만 완벽하게 마무리가 된 작품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제롬의 작품도 깔끔한 마감을

보여 주는데, 스승의 기법을 따랐겠지요.

 

 

 

 

가을, 정원에서    Tea In The Garden, Autumn / 62.2cm x 43cm

 

여인의 우아한 자태에 남자가 빠져 들고 있습니다. 턱을 괸 남자의 시선은 여인의 얼굴에 머물렀지만 여인의

눈은 살짝 시선을 비켰습니다. 서늘한 가을이고 야외이니까 쥘 부채는 더위나 햇빛을 쫓는 것이 아니라 마법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앉은 자세에서도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테이블 위의 차가 식은들, 담아 온 과일 바구니가 발치에 쓰러져 있은들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여인의 마음은

붉은색 양말과 같은 색일 것이고 세상도 그 것처럼 붉게 타오르는데요.

 

 

 

붉은 옷의 여인   Lady In Red / 46cm x 33cm

 

머리를 자꾸 흔들리게 하는 것이 꼭 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취기가 올라옵니다. 눈을 좀 크게 떠보고 싶고

자꾸 걸리는 입가의 웃음도 자제해보고 싶지만 마음뿐이죠. 하긴 세상의 남자들 중에 저렇게 매력적인 여인을

옆에 놓고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문제는 세월입니다. 젊어서는 어떤 색의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지만 언제부턴가는 입을 수 있는, 어울리는 옷의 범위가 조금씩 좁아지게 되지요. 술에 취하든 세월이

가든 변하지 않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무슨 색의 옷을 입고 있어도 붉은 색

옷으로 보이거든요.

 

1874년 파리 살롱전에서 케머러는 처음 메달을 수상합니다. 네덜란드를 떠나 파리에 도착한지 10년 만에

파리의 화가들 중에서도 당당한 자리를 차지 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제작한 풍속화는 대중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았고 섬세하게 묘사하는 그의 기법에 대해 사람들은 갈채를 보냈습니다.

 

 

 

 

어부의 아내들    The Fishwives / 110.5cm x 75.6cm

 

큰 소란이 났습니다. 광주리에 담긴 생선이 바닥에 쏟아졌지만 두 여인의 격한 표정과 손 짓은 멈추질 않습니다.

자주 있는 일인 듯 주변 사람들도 그저 구경하는 정도입니다. 무슨 일로 두 여인 사이에 다툼이 있는 걸까요?

배에서 남편들이 같이 잡은 생선을 나누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해가 됩니다.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생선을 건져 올린 남편의 수고를 생각한다면 값이나 마리 수의 문제가 아니겠지요.

하루 하루가 전쟁터 같다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 몸부림이 약해지거든

선창가엘 가 봐야 합니다. 시퍼렇게 뛰는 생선들과 목에 핏줄이 선 목소리를 들어 볼 일입니다.

 

 

 

오페라 안경을 여인   Woman With Opera Glasses

 

관람석에 앉은 여인이 오페라 안경을 들었습니다. 보통 이런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은 배경이 어둡죠.

이렇게 밝은 조명 아래에서는 아무래도 무대에 대한 집중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케머러는 모든 배경을 환하고

단순하게 처리했습니다. 덕분에 한껏 멋을 부린 여인의 모습이 섬세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다른 화가들의 작품

속에는 남자들이 무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객석의 여인들을 훔쳐 보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림 속 여인의

시선이 닿는 곳이 궁금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선창가에서 삶을 온 몸으로 부딪혀가며 사는 여인들이 있는가 하면

저렇게 오페라 관람석에서 보내는 삶도 있습니다. 어떤 삶이 더 근사한가라는 질문은 맥 빠지는 것이지만 저라면

그 것이 선창이던, 오페라 하우스던 건강한 삶을 따르고 싶습니다.

 

특히 프랑스 총재정부 (1795~1797)와 나폴레옹이 황제였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우아한 여인들의 얼굴을

묘사한 작품들은 작은 크기였지만 케머러에게 대단한 성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꼼꼼한 터치와 생동감 넘치는

색상의 그의 작품들은 놀라움이었고 윌리엄 부게로의 작품과도 닮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미국인

수집가들이 이런 작품에 열광했습니다.

 

 

 

 

 

해변가의 우아한 여인들    Elegant Women On The Beach / 14.9cm x 26cm

 

인상파 화풍을 따라서 그린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해변가 맑은 햇살 아래 여인들의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고

있는 모습을 아주 생동감 있게 묘사했습니다. 양산을 펼쳤지만 바람 때문에 걷기 힘들어 하는 모습도 보이고

한 손으로 모자를 잡고 있는 여인도 있습니다. 모래에서 자라는 나무들도 바람 따라 허리를 굽혔습니다. 그림 속

여인들은 아니지만 한 때 영국에서는 바람 부는 하이드 파크 산책에 어울리는 옷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통이 큰 치마가 달린 옷이었는데 여인의 몸이 드러나면서 바람이 치마를 감고 하늘로 오르는 실루엣을 염두에

둔 옷이었죠. 여인들의 허영에 옷이 한 몫 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엘 갈 것이 아니라

하이드 파크를 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날이 흐리고 춥다 보니 그림 속 풍경이 그리워지는군요.

 

 

 

해변 가에서    At the Seashore / 28.6cm x 43cm

 

물이 빠진 바다는 젖은 땅을 두고 까마득하게 멀리 물러 났습니다. 한 때 그 바다를 건너 오던 적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던 대포는 바다의 짠 바람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붉게 녹이 슬었습니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더러는 모래에 묻히기도 했습니다. 산책을 나온 두 여인이 그 옆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모래에 묻혀도 좋고 붉게 녹이 슬어 바람에 가루가 되어 날려도 좋으니까 다시는 바다를 향해, 사람을 향해

무기가 향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케머러는 혹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케머러는 그가 살던 시대보다 앞 선 시대의 우아함과 화려함 그리고 달콤함을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1899년 세계 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케머러는 은메달을 수상합니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 정부로

부터 레종 드뇌르 훈장도 수상하면서 그의 화가로서의 성공적인 경력은 계속 유지됩니다. 1902년 예순 세 살을

일기로 그는 파리의 그의 화실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림으로 남았으면 되었지 삶의 기록이 중요해?’ 라고 케머러가 말하는 듯 합니다.

그럼요, 틀린 말씀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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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화가 진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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