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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와인의 위상 추락 속에 즐긴 레이버데이 바베큐

작성자카페여행|작성시간18.03.10|조회수65 목록 댓글 0




가을이 깊어집니다. 마로니에 열매들이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으로서도 충분히 가을이 깊어감을 느낍니다. 조금은 쌀쌀한 아침 공기 속에서, 청명함을 함뿍 느끼면서 아침 거리를 걷다가, 조금 더워지는 오후엔 흐르는 땀을 닦다가, 저녁 무렵의 시원한 바람이 밤엔 쌀쌀함으로 바뀌는 날씨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재채기로 마무리될때 감기인가 싶어서 순간 걱정되기도 하는, 그런 날씨입니다. 


미국 노동절, 레이버데이 연휴가 지난 미국은 지금 본격적인 가을 분위기입니다. 아침 출근길은 등교생들로 인해 조금 더 복잡해지기도 했고, 11학년이 된 지호는 이제 조금 있으면 이곳의 대입 시험, SAT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바빠졌고, 아내는 굳이 도시락을 싸가겠다는 아들놈 때문에 도시락 하나를 더 싸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나마 작은아들 지원이도 고등학생이 되면서 형이랑 같은 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에 아침엔 한번에 학교에 떨어뜨려 주는 게 조금 나아진 걸까요. 


어젯밤 이웃이 산너머에 있는 자기 부모님 댁에 다녀 오면서, 그 지역의 특산물이 햇사과를 잔뜩 가져왔습니다. 도시락에 곁다리로 끼워 준 햇사과의 사각거림을 즐기면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깐동안의 점심시간 망중한을 즐기고 있습니다. 


가을, 이미 산 너머에서 백포도주를 만드는 청포도 수확은 다 끝났을것이고, 리즐링 정도만 아직도 수확되지 않은 채 달려 있을 터. 이제 곧 레드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들의 수확도 모두 끝날 겁니다. 올해 포도는 대단할 겁니다. 그 전례 없는 가뭄과 더위를 이겨내고 수확되는 포도들일테니, 2015년 미국 워싱턴주 산 포도주는 역대 가장 훌륭한 빈티지의 포도주라는 평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와인이 더 이상 예전처럼 팬시한 술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몇번 와인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 부동산 붐이 꺼지면서 이 여파는 포도원 가격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몇몇 신흥 포도원을 구입해 운영하던 막차 귀농인들은 부실 주택이나 주식을 털듯 훌훌 미련없이 포도원들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포도원들은, 아직은 자본이 버틸 여력이 있는 인근의 와이너리나 혹은 원래 워싱턴주의 포도 밭 90%를 점유하고 있던 대형 와이너리들에게 팔려나갔습니다. 물론 원래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에. 


그래서, 포도는 당연히 남았고, 따라서 포도주 생산가격도, 그리고 판매가격도 엄청 떨어진 것이 와인쟁이에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레이버데이 연휴에 마셨던 14 Hands 의 '핫 투 트롯'이라는 레드 블렌드 와인은 코스트코에서 병당 6달러 선에 세일가격으로 나왔습니다. 올해는 와인을 두 병만 땄고, 맥주를 세 병 땄습니다. 맥주는 요즘 매우 잘 나가는 오리건주의 맥주였고, 원래 이 지역에서 거의 처음으로 IPA 붐을 일으켰던(그것도 꽤 오래 전에) 브리지포트 브루어리의 맥주였지요. 나머지 한 병은 프랑스 꼬뜨 뒤 론 산의 와인으로 커클랜드 시그내쳐 상표를 달고 나온 코스트코의 OEM이었는데, 가격은 병당 $6.99. 맛은 둘 다 괜찮았습니다. 


아마 이런 가격에 이렇게 와인을 마시는 것, 당분간은 이어질테지만, 궁극적으로는 와인 산업은 지금도 그렇지만 과점과 다양성의 실종이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안 들 수는 없었습니다. 과거의 와인 가격엔 이미 거품이란 것이 한참 끼어 있고, 지금도 중국의 와인 붐이 최고급 와인 가격이 떨어지지 않게 버텨주고 있긴 하지만, 최근에 중국에서 주식 가격이 폭락하면서 중국의 와인 수입량도 눈에 띄게 줄였고, 이것이 대체적인 와인가격의 하락에 또 하나의 원인을 제공해 주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올해 우리 가족은 이런 상황과는 상관 없이 즐거운 레이버데이 바베큐를 했습니다. 올해는 쇠고기 스테이크 외에 돼지고기 등심을 구운 폭찹, 그리고 맥주와 맞출 소시지를 더 얹었고, 야채는 거의 어머니께서 손수 기르신 것들을 먹었습니다. 사이드로 곁들인 과일도 집에서 기른 것들로. 늘 그렇지만, 부모님 댁 뒷마당은 바베큐를 즐기기엔 최적의 장소이고, 저는 올해도 변함없이 '홀리데이 셰프'로서 맡은바 역할을 다 했습니다. 나중엔 손님들도 오셔서 함께 노동절의 여유를 즐겨 주셨고,.. 부모님도 잘 즐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아빠가 주는 술을 홀짝홀짝 받아마시는 것을 아예 대놓고 즐기는 큰아들놈은 제 잔을 연신 채워주며 자기 잔을 채웠습니다. 요놈이.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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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Seattl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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