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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식 넓혀줬던 와인 `뮈스까데`와 냉면, 그리고 나의 무지와 편견을 인정하기

작성자카페여행|작성시간18.06.08|조회수35 목록 댓글 2

 

오리건에서 크리미널 저스티스 전공으로 학교를 졸업한 것이 2001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지난해 말에 이곳에서 학교로 돌아간 것은 와인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와서 전공을 세 번 바꿔가며 학교를 다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와인 공부를 시작하려 학교에 가서 등록하려고 했을 때의 일입니다. 처음부터 뜻을 '소믈리에'에 두고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덥썩 와인 앤 푸드 페어링 클래스에 등록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때 그 클래스가 꽉 차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학과장이나 담당 교수에게 허락을 받으라는 교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와인 스쿨을 찾아 갔습니다.

 

어떤 아줌마가 제게 그곳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제가 클래스에 등록하려면 이곳 학과장이나 해당 교수에게 등록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하자, 그녀는 제게 우선 '센서리 이밸류에이션' 클래스를 들을 것을 권했습니다. 제가 와인을 좀 안다고 이야기하자, 그녀는 바로 제 말을 자르고 물어봤습니다.

"뮈스까데라는 와인을 알아요?"

"뮈스까요? 르와르의 소뮈르 지역이나 앙주 지역의 와인이고 달콤하고..."

"아니, 뮈스까데라고 했어요."

"뮈스까가 아니라 뮈스까데였어요? 모르겠는데요."

그러자, 그녀는 제게 이 와인이 굴과 가장 잘 어울리는 궁합이며, 달지 않고 드라이하면서 산도가 강하며 알콜 도수는 낮은 와인이라고 설명해 줬습니다. 저는 고개를 갸우뚱해야 했습니다. 그런 와인도 있구나 하면서. 그리고 순순히 그녀의 권유에 따라 센서리 이밸류에이션 클래스에 우선 등록을 마쳤습니다. 그때 만난 아줌마가 바로 레지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때 알게 된 '뮈스까데'라는 와인을, 저는 두 번째 학기에 들었던 수업인 '세계의 와인' 클래스에서 더욱 자세히 알게 됐고, 처음으로 그 와인을 시음하게 됐었습니다. 아,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런 맛을 지닌 와인이구나... 하면서. 와인의 세계는 참 넓고, 나는 아는것이 참 없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배움의 과정이란 것이, 나의 무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며칠 전 트레이더 조 수퍼마켓에 갔다가 뜻밖에 샤토 데 클레옹이라는 와이너리에서 만든 이 '뮈스까데'를 발견하게 돼 두 병을 샀습니다. 뮈스까데 지역에도 AOC가 있는데, '뮈스까데 드 세브레 에 맹 Muscadet de Sevre et Maine' 입니다. 이 와인이 나오는 낭떼 Nantais 지역은 대서양에 바로 접해 있는 곳입니다. 이 와인을 만드는 데 쓰이는 포도는 믈롱 드 부르고뉴 Melon de Bourgogne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오로지 이 지역에서만 나는 포도이기에 이 이름보다는 오히려 '뮈스까데 Muscadet'라는 동네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웁니다. 특히 이들 중에서도 Sur Lie 라는 이름이 붙어 있을 때는 와인의 맛을 더 풍부하고 깊게 하기 위해 이스트 찌꺼기를 일부러 걷어내지 않고 숙성했음을 뜻합니다.

 

일단 제게 '학문의 본질'을 깨우쳐준, 꽤 의미있는 와인이기 때문에 참 반가왔습니다. 제 비번 날, 지원이 친구 에벤이 우리집에서 슬립 오버(친구네 집에서 하루 자면서 놀기)를 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간단히 피짜를 사 주기로 마음먹고 코스트코에서 방석피짜 한 판을 사왔습니다. 절반은 치즈, 절반은 콤보로 해 달라고 부탁해서 가져왔는데, 그 중 저도 몇 쪽을 와인과 먹으려 따로 돌려놨습니다. 일단 이 와인에 맞춰보니, 허걱... 이건 아닙니다. 와인이 피짜와 안 맞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됩니다. 결국 포기하고 마시다 남은 콜럼비아 크레스트 그랜드 에스테이트 카버네 소비뇽과 피짜를 맞춰 버립니다. 음, 잘 가네요.

 

뮈스까데는 시푸드와 맞춰야 하는데, 문제는 집엔 굴도 없고 그 흔한 새우도 없고... 아내에게 굴을 사다달라 부탁했는데, 코스트코에 갔더니 이상하게 남은 굴들이 물이 별로 안 좋아보여서 안 샀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새 와인을 또 땄느냐"는 핀잔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와인의 맛을 보여주자 아내는 "어머? 이런 재밌는 와인이 다 있네?"라면서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난 이런 게 좋아요. 상큼하고, 알콜이 아주 강하지 않고..." 뮈스까데는 아주 드라이하지만 12%가 채 안되는, 11.5%의 알콜을 가진 와인이기도 합니다. 과일 향은 은은하고, 약간의 바다 내음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피니시는 자몽의 속껍데기 같은 느낌도 주는 재밌는 와인. 사실 그만큼 포도가 농익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비교적 추운 대서양 쪽에는, 프랑스에서 포도가 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인 노르망디가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이곳에선 포도 대신 사과를 재배하고, 그것으로 사과술을 만들어 증류한 것이 그 유명한 '깔바도스'라는 애플 브랜디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찾아온 꽤 더운 날이었기에, 저녁에 아내는 시원한 냉국을 만들어 메밀 국수를 삶아 냉면을 해 주었습니다. 그냥 국수만 먹기엔 심심해서 아까 먹었던 와인을 맞췄는데... 웬걸? 뜻밖에 잘 맞는 궁합이 되어 줍니다. 메밀국수의 거친 느낌과 시원하고 새콤한 냉국과 와인이 조화를 이뤄줍니다. 이건 정말 뜻밖의 경험. 지금까지 '냉면엔 와인 아니다'라고 굳어져 왔던 제 고정관념 하나가 마음 속에서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허니, 이거 좀 해 볼려...?"

"하이구... 와인 마시려구 별 핑계를 다 대요. 냉면에 무슨 와인을 마신다고 그래요?" 하던 아내가 자기도 한잔 해 보더니.. 눈이 똥그랗게 커집니다. "어머, 이거 뭐예요. 아까 나보러 마셔보라고 했던 그 와인이잖아요?... 잘 맞네?" 예... 뮈스까데는 자기와 어울리는 짝인 시푸드는 찾지 못했지만, 대신 집에서 만든 냉면이라는 새로운 짝을 만나 좋은 페어를 이뤄 주었습니다.

 

사람의 삶 속에서 늘상 있는 사소한 것들이, 우리가 가진 편견 때문에 무시되는 것들도 많은 듯 합니다. 또 우리는 정작 그런 편견에 젖어 새로 발견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들, 마땅히 인정해야 할 적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무지 때문이든, 아니면 의도적으로든, '우리의 경험의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혹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사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로, 이 새로운 음식과 와인의 궁합은 저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무더운 여름, 아마 이 와인을 마실 일이 종종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마 해삼이나 멍게 같은, 우리나라에서 내가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먹던 그런 먹거리들과 이 뮈스까데는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니... 아, 우리나라 언제 가 보나... 하는 탄식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갔을 때 비행기표가 왕복 8백달러가 채 안 될 때였는데, 지금은 1천 5백달러가 넘어가니... 그것도 지금 가면 이제 저 혼자만이 아니라 적어도 4명이 움직여야 하니... 비행기표만 6천 달러. 선뜻 엄두가 나지 않네요. 그래도 언젠가는 아이들 때문에도 꼭 가봐야 하는데...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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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루살이2 | 작성시간 18.06.09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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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감사 합니다 | 작성시간 18.06.19 냉면에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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