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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장의 욕망이 담긴 와인, 그리고 내 삶을 지탱하는 욕망

작성자카페여행|작성시간18.09.11|조회수40 목록 댓글 1



2014년 3월의 마지막 일요일 밤, 사실 내일부터는 다시 월요일이라는 느낌이 존재하게 될 뿐, 특별히 3월의 마지막 날이라던지, 아니면 그 다음 날이 4월의 시작이라던지 하는 느낌이 바로 오진 않을 겁니다. 아마 그런 느낌이 온다면, 그것은 매달 첫째 주 수요일에 나오는 '밸팩'으로 불리우는 광고 우편물 때문일 것이고. 

 

대만에서 나오는 고산차를 아주 조금 다기에 넣고 네 탕째 우려 마시고 있습니다. 찻물에 머금어진 은은한 다향이 입안에 아직도 남아 있을 와인의 여운을 씻고 있습니다.... 아, 와인이요? 네, 굳이 4월이 오는 것을 반가워할 필요는 없겠지만, 와인 한 잔 하면서 일요일 저녁을 편안하게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저녁을 비교적 일찍 먹었다고 할까요. 

 

아내가 사 온 스파게티 국수는 오개닉 밀로 만든, 표백을 거치지 않은 거친 국수였습니다. 이 국수의 질감이 대략 어떨 것이라는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더 많이 거칠고, 일반적으로 스파게티 국수라고 할 때 느껴지는 그런 맛은 떨어졌습니다. 이걸 볶아서 먹을까 생각은 했지만, 일단 그냥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맛은 좋았습니다. 이곳 연안에서 잡히는 꼴두기를 통으로 오븐에 구운 후, 이걸 넣은 토마토 소스를 만들었는데 꽤 맛있습니다. 

 

이 국수의 질감은 아마 우리나라 식으로 쟁반국수 해먹으면 매우 맛있을만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다음엔 소스와 함께 볶는 쪽으로 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일요일, 성당 일 때문에 저보다 아무래도 조금 더 바빴던 아내는 음악 연습 때문에 우리보다 더 바쁜 아드님을 모시고(?) 집에 들어오셨고, 저는 시간 딱 맞추어 스파게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와인을 안 맞춘다면, 그것도 이상하겠지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지금은 영화보다는 와인으로 돈을 더 번다는, 이 열정 덩어리 감독의 영화는 이미 대부, 그리고 지옥의 묵시록 두 편만으로도 전 진가를 다 드러낸다고 봅니다. 물론 그의 필모야 이것보다 훨씬 길고, 그의 다양한 작업들은 미국 영화 발전에 지대한 공을 했다고 봐야지요. 

 

또 영화가 대자본과 언론의 입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그는 젊은 감독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많은 애를 쓰기도 했지요. 그의 도움으로 성공한 감독들이 바로 현대 미국 영화를 이끄는 주역들이 됐습니다.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 그리고 명감독으로 불리우는 것이 당연한 스티븐 스필버그 등도 이른바 코폴라 키드죠.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의 딸인 소피아 코폴라를 뺄 수는 없겠지요. 

 

어쨌든, 거두절미하고 코폴라는 잘 알려진대로 이태리 계이고, 이태리의 문화에서 뺄 수 없는 것이 와인과 파스타 아닐까요. 피짜가 미국에 와서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했다면, 파스타는 그 전부터 분열될 대로 분열되어 있던 이태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음식이라는 평가를 받던 것이니.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스파게티겠지요. 재밌는 건 좋은 파스타를 만드는 데 쓰이는 듀럼 밀은 이태리에서도 상당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무쏠리니의 실각의 큰 이유중 하나가 이 듀럼 밀을 수입금지했던 조치라는, 조금은 그 신빙성 여부를 확신할 수는 없는 그런 이야기도 있지요. 

 

파스타와 와인은 코폴라에게 영화 이후의 열정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던 듯, 그의 와이너리는 이제 캘리포니아에서도 꽤 이름난 곳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의 와인은 다른 와이너리들처럼 컬트 소리를 듣는 것은 없는 대신, 정말 괜찮은 테이블 와인이라는 평판은 꽤 듣는 듯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이태리의 문화를 영화 아닌 다른 수단으로도 미국 땅에 구현하고자 하는 이 거장 감독에겐 가장 어울리는 칭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프란시스 코폴라의 스칼렛 레드 블렌드 와인을 스파게티와 맞추기 위해 땄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 위의 사설이 길었습니다. 재밌는 와인입니다. 와이너리 측의 웹사이트에 가서 이 와인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기리기 위해 이 와인의 이름을 스칼렛 레벨이라고 했다는 꽤 멋드러진 구라로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이딴 수식어들은 다 배고, 일단 화려하고 강하다는 느낌입니다. 당연히 이런 와인이 그렇듯, 육류, 그것도 어쩌면 바베큐로 불맛이 쫙 밴 스테이크와 최상의 궁합을 보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스파게티는 조금 더 가벼운 키얀티 스타일의 산지오베세 베이스의 레드 와인이 훨씬 낫지요. 

 

이 와인의 블렌딩을 살펴보면 이 개성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진판델 8%, 시라 11%, 쁘띠시라 16%, 카버네 소비뇽 34%, 멀로 12% 라는 재밌는 배합입니다. 대포적 레드 품종을 모두 섞은 후에 시라를 넣는 게 이른바 '왈라 왈라 스타일'이라고 불리우는 워싱턴주 식이라면, 코폴라는 여기에 '진판델과 쁘띠 시라'라는 배합을 가함으로서 진정 캘리포니아 아니면 나오기 힘든 맛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결국 이 글을 쓰다가 저는 와인을 또 잔에 따르게 됩니다.)

 

열정이라는 건 사람을 살아 있게 합니다. 그것이 어디에 대한 열정이든간에, 남들에게 해가 되는 것에 대한 변태적 욕망이 아니라면, 열정, 솔직히 말하자면 '욕망'은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 그 목표에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 어쩌면 코폴라는 그런 걸 제대로 보여준 사람입니다. 그가 만든 최고의 걸작이라고 하는 '대부'가 바로 그런 영화였지요. 자본주의가 가진 욕망의 모순점을 잘 짚어낸 영화입니다. 그 욕망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대부의 속편이었지요. 거장께서는 3편에선 좀 삑사리를 냈습니다만. 

 

그의 와인에 대한 사랑이 욕망이 되고, 그 욕망이 제게 전이되는 과정에서 저는 그의 와인을 마시고, 그의 영화를 보면서, 아내가 제 건강을 생각해 사온 오개닉 파스타에 소스를 잔뜩 뿌려 무려 세 그릇이나 먹는 모순적인 행동을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적당히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음식은 맛있고, 그가 만든 와인도 맛있고, 그가 만든 영화는 재밌습니다. 아내에게도 캘리포니아 산, 더 정확히 말하자면 로버트 몬다비에서 나온 '스윗 화이트' 와인을 먹여 재워 놓고, 저는 다시 와인과 영화의 정주행을 시작합니다. 한 병의 와인을 천천히 천천히, 나름으로는 그리 마신다고 하지만 결국 반 병을 넘어섰습니다. 오랜만에 이런 차분하고 조용한 일요일 밤을 맞습니다. 와인도 저도 모르는 새 차분하게(?) 바닥을 드러내는 듯 합니다. 언제 이렇게 마셨지, 쩝.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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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Seattl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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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critical | 작성시간 18.09.13 내용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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