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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꼬뜨 뒤 론 와인을 통해 바라본 매스티지 시대와 코스트코의 유통 독점에 관한 잡상

작성자카페여행|작성시간18.09.19|조회수133 목록 댓글 1

 

 

처음에 제 블로그를 개설한 목적은, 전에도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와인을 찾아 소개하는 것' 이었습니다. 처음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정보를 당시 다음의 와인리더소믈리에나 아니면 네이버의 와인카페 등에 가입해서 찾을 때였기 때문에도 그랬고, 또 짧은 와인 지식이나마 한국에서 와인을 고르는 이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를 운영한 지 거의 만 9년이 되어가는 시간동안 와인이란 것의 세계는 참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원래 제가 가졌던 블로그 개설의 목적은 저 대신 코스트코가 다 이뤄줬다... 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그동안 코스트코는 자기들의 이름을 단 지역 레이블 와인을 소개시켜 줘 왔고, 이것은 와인 업계 전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최근에 워싱턴주의 주류관련법이 바뀌면서, 주정부가 전매하고 있던 독주, 즉 증류주는 전매 체제가 깨졌습니다. 매장 규모가 1만 스퀘어피트가 넘는 일반 대형 소매업체들은  특정 허가를 받으면 증류주를 판매할 수 있게 바뀐 거지요. 그러면서도 주정부는 챙길 거 다 챙기고 주류소매가는 오히려 올라가는 이상한 시스템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이란 것이 생기면서 주류가격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같은 시장의 변화를 주도한 것이 코스트코였는데, 이들은 자기들이 고용한 변호사로 하여금 법률 전문을 작성하도록 하고,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 엄청난 로비와 광고자금을 뿌렸고, 주민들이 이 법을 통해 주류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것처럼 어느정도 밑밥을 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몇번째 도전 끝에 코스트코는 하드리커(증류주)전매권을 주정부에서 빼앗아오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주정부가 운영하던 리커스토어들은 민간의 손에 넘어가거나 혹은 폐쇄됐고, 제가 시애틀에 온 지 20년이 넘어서야 수퍼마켓 선반에서 증류주들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코스트코도 뜻밖의 복병들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와인 등 주류를 미국시장에서 가장 저렴하게 공급해오던 도매상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지금까지 워싱턴주 주법 때문에 이곳에 진출을 못 하다가 최근 물밀듯 속속 워싱턴주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겁니다. 대형 와인 도소매 업체인 BEV.MO 라던지, Wine.Co. 같은 것들이 법률의 틈새를 타고 쳐들어오자 코스트코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자구책을 내 놓았습니다. 그것은 자기네 OEM레이블로 나오는 와인의 종류를 늘리는 거였고, 이 전략은 제대로 맞아들어가는 듯 합니다.

 

요즘 코스트코 가 보면 이 OEM 와인들이 대단들 합니다. 맨 처음 이 와인들이 나올 때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그라브, 호주 바로사 밸리 등의 주요 와인지역 몇몇이었는데, 이게 글럿(포도주를 만들고도 남은 포도즙)이 넘치면서 바로 이런 시장으로 유입이 되기 시작한 것이죠. 병당 $7.99 짜리 알렉산더 밸리 카버네 소비뇽이 나오고, $8.99 짜리 콜럼비아 밸리산 와인과 $6.99짜리 소노마산 샤도네, $6.89짜리 이태리 프리울리 피노 그리지오나 꼬뜨 뒤 론 빌라쥬 같은 것들이 생긴 겁니다.

 

아이들 교육구배 육상 예선전이 있었던 어제, 긴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들어오니 저도 지쳤는데, 아내가 얼른 그 기분을 알고 파전을 해서 줍니다. 원래 이런 부침개, 특히 해물파전 같은 경우엔 이런저런 와인이 다 잘 어울리는지라 아내는 다시 리즐링을 맞추고, 저는 바로 이 '무서운' 코스트코의 꼬뜨 뒤 론 빌라쥬를 잡았습니다. 이야기했듯 병당 $6.89. 비슷한 가격으로 팔리던 것이 멘도자 산 말벡이었습니다.

 

알콜 14%의 꼬뜨 뒤 론 빌라쥬... 아마 날씨가 한 몫 했겠지만, 어쩐지 그쪽에서 이제 소비자들을 아예 이쪽으로 겨냥하고 와인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화려하고 인상이 강렬합니다. 입안으로 확 퍼지는 밝은 과일의 맛. 그리고 이어지는 여운들이 화려합니다. 과연 이 가격으로 이런 와인이 나오는 게 가능한 것인가, 이런 의문을 자연스레 가지도록 만드는 좋은 와인입니다. 그쪽 와인이 시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레나슈와 블렌딩되기 때문에 무게감을 조금 상쇄하는 밝은 산도가 유지되고, 이런 까닭으로 인해 여러가지 음식과 어울립니다. 심지어는 '해물' 파전까지도.

 

그리고 보면 정말 대단한 친구들입니다. 코스트코... 이제는 유통업계의 공룡일 뿐 아니라 자기들이 자체 생산하는 제품 영역도 늘려가고 있다는 면에서 생산자이기도 하고, 이제는 금융업의 일부에도 손을 대고 있는 듯 합니다. 어쩌면 이런 성장을 막아야 할 것으로까지 생각되는... 그런 회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에 대한 처우는 최고 수준이고, 동종업종에서 이만큼 돈 받는 사람들도 없고, 알바 안 쓰는 정직원으로만 운영되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장애인과 소수민족 고용비율도 동종업계 1위이고... 그러다보니 직원들이 일하기 즐거운 회사이고, 최고위 경영자의 봉급과 일반 직원들의 봉급 차이가 타 기업에 비해 얼마 나지도 않는 모범적인 면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다른 기업에 대해 진짜 '모범'을 보이고 있는거죠. 글쎄요, 이들의 이런 경영의 뒷면에 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들이 갑으로서 부리는 횡포도 만만치 않을텐데... 그런데 한가지 재밌는 건, 코스트코가 드러내놓고 갑질하는 대상 기업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이른바 '굴지의 갑'들이 꽤 포함돼 있다는 겁니다만.

 

카드업계에서는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코스트코에 갑질하려다 쫓겨난 디스커버 카드를 대신해 코스트코의 을이 되길 기꺼이 청했고, 코카콜라가 코스트코에 갑질을 하려 들다가 오히려 무릎을 꿇는 수모를 당했으며, 코스트코의 판매정책이나 이윤 시스템에 반발한 적잖은 기업들이 물건을 뺐다가 오히려 매출 감소를 당하고나서 다시 '무릎을 꿇다시피' 하면서 들어오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그러나 코스트코라는 거대 유통업체가 생긴 이래, 동네 피짜 집들이 다수 문을 닫았고 - 이들이 푸드 코트에서 파는 10달러짜리 피짜가 어지간한 피짜 가게의 20달러짜리보다 크니 - 슈리페어샵들이 없어졌고(신발을 새로 사 신으면 되니까), 심지어는 여행사들까지도 (인터넷도 발달한데다가 코스트코의 여행 프로그램이 정말 잘 돼 있기 때문에. 크루즈 여행의 최강자로 떠오른 코스트코...) 이들 때문에 문을 닫는 상황에서 여기만을 이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른바 '매스티지(대중+프레스티지: 대중이 명품을 비교적 쉽게 소비하는 것이 가능해진 상황을 일컫는 용어)'시대를 연 코스트코가 아니었으면, 과연 내가 이런 와인을 이렇게 쉽게 사서 즐길 수 있었을까, 혹은 우리집의 TV나, 아니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카메라나, 온갖 생활용품들과 무엇보다도 수제 치즈 같은 고급 먹거리들을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서 다시한번 고민에 젖어들게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것, 그리고 삶을 생각하는 것이 쉽게 딱 재단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은 저녁시간에 코스트코에서 집어 온 꼬뜨 뒤 론 빌라쥬 반 병을 소모하도록 만듭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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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18.09.19 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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