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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Quilceda Creek, 그리고 다시 살게 된 삶

작성자카페여행|작성시간18.12.25|조회수33 목록 댓글 0




워싱턴 주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와인 생산량이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양으로만 보자면 캘리포니아의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2014년 집계된 통계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의 와인 생산량은 89%. 그리고 워싱턴주는 4%로 2위에 랭크됐습니다. 의외로 뉴욕 주가 3위에 올랐으며, 피노 느와로 유명한 오리건의 생산량은 전체 미국 와인 생산량의 1%, 그리고 텍사스가 그에 조금 못 미치는 양을 생산합니다. 

워싱턴주 와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도를 갖는 것은 '콜럼비아 밸리'라는 곳이 갖는 지형상, 기후상의 특성이 워싱턴 와인에 커다른 특색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선사시대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 엄청난 빙하의 댐으로 인해 생긴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 자연적 댐의 높이가 백두산의 몇 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그게 빙하기가 끝나면서 한꺼번에 터져 버립니다. 내륙의 호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엄청나게 컸던 규모의 물이 한꺼번에 터져 갑자기 흐르며 지상의 모든 것을 쓸고 낮은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러다가 캐스케이드 산맥 자락들에 물길이 막히면서 굽이치고 굽이쳐 계곡의 낮은 곳들을 파고 들어 바다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이게 지금의 콜럼비아 강과 스네이크 강이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양의 물이 쓸고 내려간 퇴적물들이 쌓여 완만한 구릉을 이뤘습니다. 워싱턴주 동부의 구릉 지대는 그렇게 생성됐습니다.

아무튼, 그때 퇴적물들이 생성되고 쌓였으며 그것이 워싱턴 주 와인에 독특한 매력을 부여하게 됐을 겁니다. 과거에 밀이 광범위하게 재배됐던 지역들 중에서 서사면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곳들이 정말 빠른 속도로 포도원으로 변했습니다.  여기엔 닷컴 붐 이후에 형성된 와인 붐이 한 몫 했지요. 캘리포니아의 대표적 와인 산지인 나파와 소노마에 실력 있는 와인메이커들이 몰렸습니다. 그런데, 와이너리는 한정돼 있고, 포도밭으로 쓸만한 곳들도 고갈돼고 있었던 상황, UC 데이비스의 양조학과를 졸업한 실력있는 와인메이커들은 캘리포니아의 이곳 저곳들을 찾아 다니다가 결국 워싱턴 주에서 자기들의 꿈을 펼치기로 합니다. 이때 와인메이커들이 워싱턴 주로 유입되기 시작하고, 워싱턴주 와인도 중흥기를 맞게 된 것이지요. 

이미 워싱턴주의 포텐셜을 주목하고 있었던 월터 클로어(후에 콜럼비아 와이너리의 설립에 깊숙이 관여한) 등의 활약이 있었고, 또 이 지역 2세대 와인메이커의 시작을 알린 랍 그리핀(버나드 그리핀 와이너리 오너)등이 워싱턴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다가 콜럼비아 크레스트 와인이 일을 냅니다. 그들의 리저브 카버네 소비뇽이 와인 스펙테이터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된 것이지요. 물론 이때는 세계 와인 시장을 그때까지 장악하고 있던 컨스텔레이션이라는 와인 회사가 로버트 몬다비 와인 그룹 인수에 나섰다가 이른바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로 인해 무너진 후였고, 이후 콜럼비아 크레스트와 샤토 생 미셸 등을 소유하고 있는 생 미셸 와인 그룹이 와인스펙테이터의 최대 광고주가 됐다는 '흑막(?)' 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주의 포텐셜은 그 덕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2017년, 로버트 파커가 워싱턴주의 대표 와이너리 중 하나인 퀼세다 크릭 Quilceda Creek 에서 만든 두 종류의 와인에 100점을 줍니다. 물론 그의 개인적 입맛을 무조건 신뢰하기엔 이제 그는 나이먹었고, 그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이른바 '알콜 폭탄'으로 불리우는 무거운 스타일이라 하여 비판은 받고 있지만, 그의 선택은 워싱턴 와인이 가진 잠재력을 그대로 증거해 주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이렇게 서설이 길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지요(죄송합니다 ^^;). 

6월 29일에 떨어지는 나무에 맞아 산재를 당한 저는 제 2의 인생을 살게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떨어진 나무를 보았을 때, 하느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제게 맞은 그 나무의 두께는 엄청났습니다. 제 옆에 서 있던 자동차가 아니었다면 저는 그 나무를 맞고 아무리 잘 봐줘도 뼈가 몇 군데는 부러졌겠지요. 그러나 찰과상과 무릎 부상 등만을 입고 저는 구사일생 살아났습니다. 지금까지 죽을 뻔 한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나이가 이만큼 먹고 나니 그것이 축복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강하게 실감납니다. 

아무튼 그래서 올해 독립기념일 바베큐는 더 남다른 감회를 갖고 하게 됐지요. 그런데 부모님 집에서 했던 파티에서 남았던 스테이크 몇 피스를 집으로 가져와 냉장고에 넣어 놓고 있었는데, 아내가 이걸 얇게 잘라 애플 소시지와 야채와 볶아내는 스킬렛 요리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던지더군요. "이렇게 살아난 거 축하해요. 고기가 좋은데 축하 와인 한 잔 맞춰야 하는 거 아냐?" 

그 말은 저에게 복음처럼 들렸고, 저는 일단 방의 붙박이장에 모아 놓은 와인들을 흝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갑자기 확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2011년산 퀼세다 크릭의 레드 와인. 이걸 굳이 '레드'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와인은 카버네 소비뇽 91%, 그리고 나머지를 멀로와 카버네 프랑을 섞은 보르도 스타일로서 이곳 와인 관련 법령으로는 그냥 '카버네 소비뇽'으로 이름을 붙여 놓아도 될 건데, 원체 퀼세다 크릭이 100% 카버네 소비뇽으로만 만드는 완전 버라이어털 스타일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걸 굳이 레드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해 놓은 듯 합니다. 

워싱턴주에서도 뛰어난 카버네 소비뇽을 생산하는 샴푸 Champoux 포도원, 왈룰라 포도원 등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이 와인을 그동안 차마 따지는 못하고 보관만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데 이 정도 와인을 따지 않으랴 하며 잡았던 겁니다. 

이거, 7년 된 와인 맞냐. 

강건한 바디, 초컬릿과 같은 느낌, 그러면서 배어나오는 박하뇌의 느낌, 몇 개의 레이어가 중첩돼 있는 강건함 속의 진한 체리와 같은 진득한 느낌. 참으로 오랜만에 저는 제 안에 숨어 있던 와인에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참 미쳐서 마셨을 때의 그 집중도, 그리고 그 미세한 향마저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오래전 제 모습이 다시 살아오더군요. 

아, 무엇엔가 이렇게 미쳐 있던 그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다시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산다는 것, 지금 내가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경험을 와인을 통해 할 수 있다니. 이 한 잔의 와인은 벽장 속에서의 긴 시간동안 전혀 꺾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생명력을 파워풀하게 보여주는 이 와인처럼, 저도 다시 제 생명력을 다 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아내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런 와인도 있구나." 아내를 잠시 바라봤습니다. 아, 이렇게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사람도 있네.

한때 내 삶을 만들어 온 열정 하나가 천천히 살아오는 그런 느낌을 경험하고,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아내와 와인 한 잔을 나누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참 많은 것들에 잠깐 감사하면서, 저는 와인이 가져다 준 그 나른한 취기에 내 몸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참 달디 단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바라보는 햇볕이 굴러들어오는 응접실이 왜 이리 평화로워 보이던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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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와인리더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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