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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140년 인연

작성자카페 지기|작성시간26.06.13|조회수20 목록 댓글 1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을 맺은 한국과 프랑스.. 올해가 2026년이니 

140주년이 되는 해...

그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국가 단체에서는 관련된 행사를 많이 하고 있으며,

그곳에 있는 자료 사진들을 이곳에 같이 공유하고자 한다.

 

183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임기 1831-1846)이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파리외방 전도회에 '선교'를 담당하게 함으로써 프랑스인 선교사들이 조선 입국과

포교 활동이 본격화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로 프랑스 선교사 3명이 순교했으나 이들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1851년 프랑스 고래잡이배 나르발호가 신안군 비금도에 난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배를 구하어 온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 몽티니와 나주 목사 이정현 둘이

만나게 된 것이 양쪽 나라 '관원'이 만난 최초의 만남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들에게 연회를 베푸는등 따뜻하게 귀환시켜 줬다.

고종(임기:1863-1907) 즉위 후 흥선대원군 섭정 기간(1863-1873)에 조선과 프랑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1866년에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병인박해)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베르뇌(1814-1866)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 선교사들과 수많은 조선 신자들이

희생되었다.

 

이에 프랑스군이 강화도로 함대를 이끌고 오면서 '병인양요'가 발생한다.

이로 인하여 조선에서 프랑스-천주교 탄압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1886년 6월4일에 '조불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곧바로 명동성당 건축을 위해서 시작하게 된다.

1845년에 입국한 김대건 신부가 평소에 포교했던 명동 지역에 1889년에 땅을 매입한다.

그렇게 해서 고종황제가 기독교 포교허락이 있었던 1898년이 명동성당이 완공된다.

1919년. 경성일보에서 발행한 고종 국장 사진첩.

덕수궁 석조전 실내에서 찍은 것.

중앙에 고종, 순종이 보인다. 그리고 맨좌측에 영친왕. 순종의 아내 순정효황후,

맨 우측에 덕혜옹주(1912-1989) 모습

일제 강점기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프랑스는 관계를 이어나간다.

1940년대 대한임정 시기에도 교류는 계속되었다.

 

해방 직후 1947년 경교장에서 찍은 사진(위)

중앙에 김구를 중심으로 양쪽이 프랑스에 새로운 영사 앙리 코스티에와 이전 영사 르복

김구의 뒤쪽 왼편에 있는 서영해는 일제 강점기 프랑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표하여 활동했다는 의미로 참석.

사진설명:이승만 대통령과 주레샹바르 대사(중앙)의 기념촬영

 

= 한국을 사랑하여... 자신의 유해를 해인사에 뿌려 달라고 한 주레샹바르 대사

1959년부터 10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 문화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양국의 협력의 중재자 역할을 충분히 했고, 귀국후에도 한국에 수차례 방문함.

1982년 타계후 유언대로 해인사 부근에 뿌렸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1948년 프랑스 파리의 샤이요궁에서 열린 제 3차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받았다.

1949년에 프랑스는 대한민국 정부를 공식 승인하였다.

 

1950년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약 3,500명을 

파병하였고, 이중 267명이 전사하는 희생을 겪었다.

1958년에는 두 나라 간 공관이 대사관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대사로 로제 샹바르(재임1959-1969)가

부임하였다.

1989년 프랑스 국빈 방문= 좌측:노태우 대통령 (우측:미테랑 대통령 선물 교환)

1989년. 공산권 급격한 변화와 독일 통일 등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노태우

(재임:1988-1993)은 프랑스를 국빈 방문했다.

 

북방정책에 대한 프랑스의 협력을 이끌어 냈고, 양국 관계를 의전 차원으로

격상시키고 프랑스와 경제, 정치 협력 관계로 격상시켰다.

1993년 청와대 정상 회담 중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하는 모습.

1993년 프랑스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미테랑 대통령이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병인양요 때 가져간 외규장각 도서 중에 '휘경원 원소도감의궤'

상권 1책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하며,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할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이후 1995년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만난 두 정상은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 및

양국 간 우호 협력 확대 방안을 협의하며 양국의 관계를 공고히 다졌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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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 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행동을 다스릴 수 있다.
    행동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다.
    다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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