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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빅토르 가브리엘 길버트 - 시장은 구경할 것이 많은 곳입니다

작성자방브라치..|작성시간18.09.18|조회수253 목록 댓글 0

제가 사는 동네에는 역사가 제법 된 재래시장이 있습니다. 작은 길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꽤 길게 뻗어 있는

시장을 가끔 주말 저녁에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느릿한 걸음을 옮기다가 야채를 사기도 하고 좋아하는 술 안주를

사기도 합니다. 물론 마음이 동하는 날에는 시장에 있는 작은 술집에 터를 잡기도 하죠. 그 곳에 가면 사람 사는

진솔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시장의 모습이야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빅토르 가브리엘 길버트 (Victor Gabriel

Gilbert / 1847~1933)가 묘사한 파리의 시장도 사람들 소리로 왁자지껄 합니다.

 

 

 

 

야채 시장    Market with Vegetables / 101.6cm x 127cm / 1878

 

길 옆 야채 시장이 열렸습니다. 야채를 다듬는 주인은 젊은 여인이 부르는 가격이 마뜩찮은지 반가운 표정이

아닙니다. 흥정도 적당해야 구미가 당기는 법이죠. 대부분 여인들이 주인인데 망토를 걸친 남자가 보입니다.

땅에 올려 놓은 것을 보니 어렵게 한 구석 자리를 잡은 모양인데, 시선을 둘 데 없는 노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린 소년은 그 모습이 안타까운 모양입니다. 절대 우위가 아니라 비교 우위에 의해서 물건이 교환

되는 것이라고 수업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정신

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훗날 서로 무엇을 교환 할 것 있을까요? 교환이 가능한 세상이 되기나

할까요?

 

파리에서 태어난 길버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주를 보였습니다. 당시 화가가 되는 엘리트 코스는

에콜드 보자르에 입학해서 공부를 끝내고 살롱전에 데뷔하는 것이었는데 길버트의 집안 형편은 그를 진학시킬

만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열 세 살 되던 해, 길버트는 화가이자 장식 일을 하던 외젠 아담 밑에서 견습공

일을 시작합니다. 다행이었던 것은 그 일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미술적인 영감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죠.

 

 

 

 

 

모뷔주 시장    The Maubeuge Market / 66cm x 100.3cm / 1877

 

요즘 장사는 잘 되시죠?

정기적으로 야채를 사가는 요리사 아저씨가 가게 아주머니에게 살갑게 묻고 있습니다.

그저 그렇지요

여전히 손으로는 야채를 다듬고 있는 아주머니 자세가 다소 곳 합니다. 혹시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 모습을 보는 옆 집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못 마땅합니다. 올려 놓은 생선이며 바닥에 있는

바닷가제가 아주머니 심사를 나타내는 것 같아 웃음이 납니다.

홀아비 마음 과부가 안다고 이해 하셔야죠.

왼쪽 가게 처마에 걸린 것은 토끼인가요? 시장에 가면 낯 선 먹거리들을 만나는 것이 거기나 여기나 같군요.

 

길버트는 낮에는 견습공으로 일을 하고 밤에는 Ecole de Ville de Paris (정확하게 어떤 학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파리시 학원 정도로 이해가 됩니다)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이 것이 그가 받은 유일한 공식적인 미술 공부였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버거운 생활 속에서도 그의 꿈은 자라고 있었겠지요. 돌아보면 꿈은 상황이

힘들 때 더 쑥쑥 커졌던 것 같습니다.

 

 

 

 

파리 시장    Parisian Market / 46cm x 61.2cm / 1878

 

날은 어두워져 가는데 아직 팔아야 할 야채들이 수북합니다.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아저씨 가슴에는 바닥에

놓인 배추 덩어리만한 근심이 걸렸습니다. 건너편 아주머니는 아예 술 잔을 들었습니다. 술은 묘한 것입니다.

무엇이든 두 배로 만드는 힘이 있지요. 기쁠 때는 기쁨을, 우울 할 때는 우울함을 두 배로 만듭니다. 간혹 뱃 속

간을 두 배로 만들어서 필요 없는 드잡이 질을 하게도 합니다.

아주머니, 장사 안 하실 거예요?

젊은 여인의 채근에도 아주머니의 상심은 깊어만 갑니다. 시장에 가면 아직도 못 다 정리한 슬픔과 좌절들이

남아 있습니다.

 

스물 여섯이 되던 1873, 길버트는 작품 두 점을 살롱에 출품합니다. 공식적인 미술 교육이 부족한 그의 경력을

알았지만 살롱에서는 그의 작품 전시를 결정했습니다. 추정이지만 작품 실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의 작품이 파리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거든요.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그의 작품은 살롱전에 걸립니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살롱전 출품은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까지 주기적으로 계속되었지요. 충실한 성격의 소유자가

분명합니다.

 

 

 

 

풍성한 수확    A Good Haul / 80.7cm x 120.7cm

 

방금 도착한 배에서 잡은 생선을 내리는 손 길이 분주합니다. 생선을 분류하는 사람들 옆, 젊은이는 큰 소리로

손님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발 빠른 상인들은 벌써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발견하고 셈을 치르고 있습니다. 항구에

갔다가 바다에서 돌아 오는 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살기 위해 하는 일 중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바다를 상대하는 일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우가 많아 그 치열함이 더 합니다. 어창에서 내려지는 펄떡

거리는 생선을 볼 때마다 선원들의 살아 돌아 왔다는 안도감이 같이 뛰는 느낌을 받습니다. 선창에 가면 시선을

뚫고 온 구리 빛 생명력을 만납니다.

 

아직 화가로 생계를 해결하기 어려웠던 길버트의 후원자가 나타났습니다. 인상파 운동을 후원했던 미술상 페르

마르텡이었습니다. 마르텡은 젊고 가능성 있는 화가들을 많이 지원했는데 그가 길버트의 작품 몇 점을 구입하면서

두 사람은 친구 사이가 됩니다. 안정적인 지원을 받게 된 길버트는 옷감에 디자인 하는 일을 그만두고 이제

그림에 전념합니다. 투자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요. 떡 잎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Market Day / 59.7cm x 48.3cm / 1881

 

건물에 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 없이 하루를 마감하는 장 터는 짐을 싸는 상인들의 모습으로

분주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 판매대 앞에 모였습니다. 식사라고 하지만

뜨거운 죽 한 그릇입니다. 그나마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앉지도 못하고 서서 마시고있습니다. 오늘 보다는

내일이 조금 다 좋아 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또 저녁을 길거리에서 맞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도 있습니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처음 길버트 그림의 주요 주제는 정물이었지만 곧 사실주의 기법에 충실한 풍속화 분야로 바뀝니다.

에콜드 보자르 출신들은 확실한 아카데믹 전통에 따라 수업도 받고 회화 기법을 익혔지만 그런 집중적인 훈련이

부족했던 그에게는 파리의 일상 모습을 담는 것이 더 편했겠지요. 길버트가 자주 찾았고 그림에 담은 곳은

지금도 상점가로 유명한 레 알 (Les Halls)이었습니다.

 

 

 

 

젊은 부셰   Le Jeune Boucher / 37.5cm x 46.5cm

 

영어로 정육점 주인이 butcher라서 그림 제목이 혹시 정육점 주인인가 싶어 찾아 보았더니 엉뚱한 해석이 달려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그림 속 젊은이 이름이 부셰일까요? 고기를 자르기 위해 높이 치켜든 팔에는 오랜 기간의

일 때문에 만들어진 근육이 있습니다. 눈은 고기를 향하고 있고 고기를 누르고 있는 손에도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앞 치마는 고기를 자르면서 묻은 핏자국이 묻어 있지만 꿈이 있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생은 묘한 것이어서

계단을 밟고 올라 갈 것인가 가파른 길을 이용할 것인가를 끝 없이 묻습니다.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길을

택해야겠지만 힘은 배가 들죠. 젊음이 좋은 이유는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계단에서 서서 가파른 길을 힘들게 올라가는 사람의 옷자락은 잡아 당기지 않는 세상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어시장과 꽃 파는 길거리의 좌판 그리고 노숙자들의 모습이 꼼꼼한 길버트의 관찰을 거쳐 캔버스 위에 묘사

되었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유럽의 각국 정부는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엄격하게

통제했었죠. 그런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 중의 하나가 사실주의였습니다. 그 뒤를 자연주의가 따랐는데,

둘 사이의 경계에 대해, 묘사에 감정이 포함되었는가 아닌가 하는 정도로 저는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시장    A Parisian Flower Market / 46.3cm x 137.5cm

 

펼쳐 놓은 여러 종류의 꽃들을 이렇게 저렇게 골라 한 뭉치로 만드는 손 길 위에 많은 여인의 생각이 머물렀군요.

화사한 옷차림에 활짝 웃는 얼굴이었으면 더 좋았을 걸 했다가 그냥 바라보는 사람의 실없는 바램이어서 접기로

했습니다. 생존과 연결되면 어떤 일도 힘들어집니다. 선물을 하기 위해 꽃을 다듬는 것과 빵을 위해서 꽃을 드는

것과 다르겠지요. 문제는 빵을 위한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이죠. 좌판에 깔린 꽃이 수북한 것을 보니 여인의

마음도 희미한 안개에 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기 신사 양반, 꽃 좀 사세요.

 

당시 시장과 파리의 거리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 길버트의 작품은 곧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에밀 졸라의 소설과 함께 파리의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예술가로 파리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길버트 역시 문학 작품을 읽고 그 것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구성했다고 했지요. 이제 길버트는

레 알의 상징이 되었는데, 그의 성공 이유가 요즘 말로 하면 수 많은 그림 주제 중에 시장과 길 거리를 묘사하는

일종의 틈새 시장 공략의 결과였다고 하면 너무 차가운가요?

 

 

 

 

파리 끌리냥꾸르역의 장터The Fairgrounds at Porte de Clignancourt, Paris /64.1cm x108cm / 1895

 

지금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벼룩시장이 자리를 잡고 있는 끌리냥꾸루역 근처이지만 100여년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습니다. 역 근처 넓은 장터에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오른쪽 회전 목마를

타는 사람과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손님을 부를 준비를 하는 청년들, 벌써 낮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까지 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 소박한 가정의 식사가

막 끝난 모양입니다. 주섬주섬 먹고 난 자리를 정리하는 여인과 그 여인을 바라보는 남자의 머리 위에도 연이

날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날리는 연들이 하늘 곳곳을 오르고 있습니다. 연은 꿈도 싣고 나르지만 걱정과 근심을

담아 하늘 멀리 보내는 도구가 되기도 하죠. 무엇을 얹을 것인가는 각자의 몫입니다.

아저씨, 무엇을 날릴 생각인지요?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묘사함으로써 길버트는 사람들로부터 꾸준한 관심을 얻었습니다.

1880년 살롱에 어시장의 모습을 출품한 작품들을 전시했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작품은 프랑스

정부가 구입을 결정했고 2등 상을 수상했는데 그가 받은 첫 메달이었습니다. 파리의 일상을 묘사하는 사실주의

최고의 화가로, 당대 가장 진보적인 화가들 중 한 명으로 그의 명성은 확고해졌습니다. 떡 잎이 이제 확실한

거목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죠.

 

 

 

 

좋아하는 테디 베어    The Favorite Teddy Bear / 38cm x 45.8cm

 

곱게 장식된 장난감 침대에 새 테디 베어를 눕히고 있습니다. 남은 파란색 인형이 자신도 올라가야겠다는 듯이

손을 뻗고 있는데, 오랫동안 같이 놀아서 이제는 색마저 바랜 테디 베어는 바닥에서 누워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

아이들답습니다. 새 것이 왔지만 손 때가 묻었기 때문에 버리지 못하면 나이 들었다는 뜻이겠지요. 낡은 것을

버릴 때 거기에 담긴 추억도 같이 버린다는 것을 아이들은 아주 훗날 알게 되겠지요.

 

 

 

노래하는 행상인   Le Marchand de chansons /1903

 

작품 제목으로 보면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사람은 행상인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팔러 다니는 걸까요? 혹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 주는 것일까요? 설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화면 가운데에서 퍼져

나오는 빛은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내려 앉아 아주 섬세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같이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듣는 것이 즐거운지 미소를 걸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래하는 행상의 얼굴 연기도 프로입니다.

화면 가운데 아이들 등을 보이고 있어서 그림을 보는 저도 현장에 있는 느낌입니다. 노래 소리는 높아가고 듣는

사람들의 미소도 짙어 지고 있는 밤입니다.

 

길버트의 작품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1883년 뮌헨 그리고 그 이후로 비엔나와 대 성공을 거둔 1906년의 런던

전시회를 통해 유럽 각지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1889년 살롱전에서 금메달을 받았고 1897년에는 레종 드뇌르

작위를 받았으니까 화가로서의 영예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 스타일이 점점 발전하면서 인상파 화가들과

친분을 맺게 되는데, 그의 작품에 변화가 옵니다.

 

 

 

 

어린이들의     The Children's Taste / 55cm x 65cm / 1922

 

오빠들 먼저 잼을 바른 빵을 주자 막내가 참다 못해 드디어 손을 내밀었습니다. 발 뒤꿈치까지 바짝 든 것을

보니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입니다. 엄마의 시선이 막내에게 향하는 순간 자신의 차례였던 둘째가 식탁 위로 몸을

날렸습니다.

이번에는 내 차례야!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어린 동생부터 챙기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아이를 키울 때는 큰 애부터 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도 저도 서열을 머리 속에 두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배가 많이 고파 보이는 아이부터 줄 생각입니다. 말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말을 하느냐고요? 눈을 보면 알지요.

 

길버트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인상파 화가는 르누아르였습니다. 르누아르 영향도 있었지만 벨 에포크 시대가

저물어 가면서 그의 그림 속에는 신흥 부유 계급의 화사한 여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은 그 이전 보다

훨씬 밝아졌고 주제도 일상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예쁜 여인들과 아이들이 차지했습니다.

주제의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초기 사실주의 화풍으로 파리의 일상을 그렸던 것보다 진솔한 모습이

희미해진 것은 분명했습니다.

 

 

 

 

건초 작업    Haymaking / 46.4cm x 61cm / 1928

 

엄마가 굴을 따러 가면 섬집 아기는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가에 혼자 잠이 들었다지요.

아직 햇빛이 따가운 가을 날, 건초 만드는 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은 수레가 만들어 준 그림자 속 바퀴 밑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깊은 잠이 들었는지 표정이 편안합니다. 아이와 같이 온 개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림을 보다가 울컥해졌습니다. 세상 모든 부모의 모습과 마음이 다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단한 노동도

결국은 아이들과 식구를 위한 것이죠. 혹시라도 더울까 봐 그늘에 아이들을 눕히고 멀리 가지 못하는 마음,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나도 그림 속 부모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는지 돌아 볼 일입니다.

 

여든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림 작업을 계속 했던 길버트는 비록 중간에 인상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았지만 20세기까지 사실주의를 밀고 온 화가로도 평가를 받습니다. 언제나 같은 생각입니다만 생생한 삶의

모습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면 화풍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길버트 선생님, 덕분에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시장을 구경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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