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칼 스피츠벡 - 약사였던 유쾌한 화가

작성자fineclub|작성시간18.10.13|조회수110 목록 댓글 0

독일의 문화사를 읽다 보면 비더마이어 시대(the Biedermeier era)가 나옵니다. 미술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19세기 정치에 환멸을 느낀 대중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비정치적인 면에

쏟았던 시대라고 간략하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평화로운 환경을 만든다거나 과거 낭만적인

시대에 대한 향수 또는 자신의 교양을 쌓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감정의 날을 세우는 작품 보다

소소한 일상을 주제로 한 미술 작품들이 많습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 명이 독일의 칼 스피츠벡

(Carl Spitzweg / 1808~1885)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따뜻한 유머가 가득합니다.

그냥 씩 한 번 웃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요일의 산책하는 사람  The Sunday Walker / 28cm x 43cm / 1841

 

첫 느낌은 이발소 그림같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볼 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화창한 일요일입니다.

아버지가 식구들을 이끌고 산책을 나섰습니다. 굳이 이끌고라고 표현한 것은 아버지의 근엄한 얼굴과 맨 앞에

선 모습 때문입니다. 모자로 가린 얼굴이나 말없이 땅 만 보고 있는 소녀를 보면 식구들은 이 행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맨 끝에 아이는 날아다니는 곤충 잡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림 속 유일한

자유인입니다. 배 나온 중년들 중에는 저렇게 자신의 권위를 식구들에게 그리고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아이를 앞세우고 그냥 맨 뒤에서 따라갔더라면 훨씬 보기 좋았을 걸 말입니다.

나이 들면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 보이니까 이제 위치를 잡는 눈치도 있어야겠군요.

혹시 여인들이 들고 있는, 저렇게 꺾이는 양산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스피츠벡은 식품업을 하는 부유한 상인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열 일곱 살에 김나지움을

졸업한 그는 약사로 그를 키우겠다는 아버지의 고집으로 비엔나 대학교에서 약학을 배웁니다. 그리고는

뮌헨 스트라우빙 거리에 있는 약국의 관리인으로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1830, 스물 두 살 되던 해 뮌헨

대학에 입학, 화학과 식물학, 약학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화가가 되기 전까지 참 많은 길을 돌았지요?.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사람들    Wascherinnen am Brunnen / 29.2cm x 35.4cm

 

빨래하는 여인들이 모인 우물가에 한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옷을 보니 관리 같습니다. 귀를 기울여보지만

독일어로 이야기는 통에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눈치로 상황을 이해할 수 밖에요. 아마 관리가 나타나서

우뚝 선 여인에게 뭔가를 채근하는 것 같습니다.

어이, 거기 아줌마, 당신 남편 어제 저녁에 술 먹고 싸웠지? 남편 관리 좀 잘 할 수 없어?

순간 여인이 빨래판을 집어 들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남자를 후려칠 것 같습니다.

여인들 모인 곳에 가서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러고 서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았던 스피츠벡은 천재라고 불렸습니다. 뮌헨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한 그는

약사 자격증을 획득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스피츠벡은 신문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을 공식적으로 배운 일이 없는 그였는데 말입니다. 훗날 그의 경력을 보면 화가 말고도 약사였고

시인이었으며 합창단원이자 연극배우였고 피아노 연주가가 더 해집니다. 거기에 공부도 잘 했으니 이쯤 되면

국제적인 엄친아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지요.

 

 

 

 

낚시꾼     The Angler    / 25.5cm x 18cm

 

낚시 줄에 걸린 생선을 보니 제법 씨알이 굵습니다. 낚시에는 별 취미가 없는 저로서는 저 정도 밖에 안 되는

개울에서도 잡히는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둥글게 휜 낚싯대와 환호하는 식구들의 동작을 보니 적어도 점심은

굶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더 다행스러운 것은 식구들 앞에서 체면을 세웠다는 것이겠지요. 낚시꾼들의

허풍은 워낙 유명하지요.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끝내 내 손에 들어 오지 않은 모든 것은 아쉬움 그 자체이고

그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졌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낚시를 따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걸어 놓은

낚싯대에서는 밤 새 아무런 기별이 없었고 라면에 소주만 들이켰습니다. 같이 간 사람들은 멋쩍은 얼굴로

붕어 대신 세월을 낚았다고 했지만 스무 살 조금 넘은 나이에 무슨 세월을 낚습니까?

 

실제로 스피츠벡은 열 다섯 살부터 별도의 교육 없이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20대 후반에는

미술 모임에 자주 참여 하는 정도였지요. 약사로 일을 시작했지만 스피츠벡은 병을 앓게 됩니다. 무슨

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심하게 앓고 난 뒤 스피츠벡은 화가가 될 결심을 합니다. 아마 그림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마침 그의 결심을 확고히 밀어 주는 일이 일어

났습니다.

 

 

 

 

나비 채집하는 사람    The Butterfly Catcher / 31cm x 25cm / 1840

 

묘한 느낌입니다. 동화책 삽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아무리 거리감이 있다고 하지만 나비 채집꾼이 든 채로는

앞에 있는 나비를 잡을 수 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안경을 쓴 것일까 하고 사내 얼굴을 자세히 드려다 보니

선글라스였군요. 어정쩡한 자세나 한 손에 든 붉은 색 우산과 등에 멘 망태기를 봐서는 나비를 잡으러 왔다기

보다는 나비에게 끌려 온 모습 입니다. 나비 입장에서 본다면 영락 없는 사람 채집입니다.

 

스피츠벡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인지 막대한 유산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생활비를

위해 약사 일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이죠. 재정적으로 안정이 된 그는 화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당시 뮌헨의

젊은 풍경화가였던 에두아르트 쉴라히와 친분을 맺게 되는데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데는 또 따른 계기가 있었습니다.

 

 

 

 

벌레    The Bookworm/ 49.5cm x 26.8cm / c.1850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필요한 책을 찾다 보니 책이 한 권, 두 권 늘었습니다. 가랑이에도 한 권, 옆구리에

한 권 그리고 양 손에 한 권씩 모두 네 권을 들고 있습니다. 책에 거의 파 묻힐 것 같은 얼굴은 뒤에서 들어

오는 빛을 반사한 책 때문에 환합니다. 마치 책 속에 있는 모든 글들이 빛을 따라 그의 머리 속으로 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무엇엔가 몰두 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 이 근사한 신사분을

보면 볼수록 자꾸 웃음이 납니다. 곧 사다리에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이 떠 오르기 때문일까요?

 

사실 스피츠벡은 대단한 여행가였지만 이 사실은 그리 알려 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여행을 떠 난 것은 1832,

스물 네 살 되던 해 이탈리아가 목적지였습니다. 여행 내내 미술에 매혹된 그는 화가에 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이 후로도 친구 쉴라히와 함께 정기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돌아보면 여행은 육체에 머물러 있는 영혼이 정신으로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틈만

나면 떠날 궁리를 하는 것이겠지요.

 

 

 

 

뜻하지 않은 방해꾼   The Unexpected Interruption / 1855

 

연구에 정신이 없는 학자 앞에 뜻하지 않은 방해꾼이 나타났습니다. 열어 놓은 창 틀에 새 한 마리가 날아 와

앉았습니다. 한참 서류를 펴 놓고 도판을 보던 학자는 고개를 들어 안경 너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새와

눈을 맞췄습니다.

좀 쉬었다 하세요.

지금은 바쁘구나. 어쩌지? 너하고 놀 시간이 없는데, 다음에 오면 안 될까?.

새 때문에 방해를 받았으니 그래도 행복합니다.

요즘은 뭘까요? 계란이 왔어요, 싱싱한 갈치가 있어요,--- 인가요?

 

1834년 스피츠벡의 첫 작품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뮌헨 미술협회의 회원이 됩니다. 그 동안도

그림을 그렸겠지만 처음으로 그의 작품이 팔린 것은 1837년이었다고 하니까 화가가 되고 나서 3년이 걸린

셈입니다. 많이 늦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문득 살아서 단 한 점의 작품 밖에 팔지 못했던 고흐가 떠

올랐습니다.  ---- 그렇게 늦은 것이 아니었군요.

 

 

 

 

가난한 시인   The poor poet / 1837

 

스피츠벡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여기 최악의 상황에 몰린 시인이 있습니다. 지붕이 낡아

천정을 뚫고 흐르는 빗물을 피하고자 방 안에 우산을 펴 놓았습니다. 난로 연통에 모자를 걸어 놓은 것으로

봐서는 이미 불 기운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때문에 불이 있어야 할 난로는 그림 속에서 가장 어둡게

묘사 되어 있습니다. 시인의 어둡고 참담한 상황에 대한 상징이겠지요. 침대 속 구부린 몸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타오르는 창작의 열로 몸과 마음을 녹이고 있는데 시인을 방해한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펜을 입에 물고 째려 보는 시인의 눈길을 따라 가보니 손가락이 보입니다. 혹시 이나 벼룩을 잡은 것

아닐까요? 언젠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가난한 시인의 시를 읽을 날이 오겠지요.

 

1837가난한 시인이라는 작품으로 스피츠벡은 약사 보다는 화가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나 그가

소속되어 있던 뮌헨 미술협회의 평은 별로였습니다. 속이 상한 스피츠벡은 미술 협회를 탈퇴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판매해야 했고 그런 점에서

스피츠벡은 스스로를 격려하는 길을 걷게 됩니다. 자신을 믿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는 많은 문제는 자신이 아니라 남을 더 많이 믿기 때문에 빚어 지는 것들이죠.

 

 

 

 

목욕하는 님프      Bathing Nymph / 54cm x 40cm / c.1855

 

다른 화가들의 작품 님프는 가냘프기도 하고 떼를 지어 있는 모습이 많은데 작품 님프는 사람 냄새가

많이 납니다.  자세히 보니 님프가 아니고 님프 같은 여인이군요. 나물 캐는 작은 광주리며 지팡이를 보는

순간, 갑자기 제가 속에 숨어 있는 나무꾼이 기분입니다. 옷을 감추기에는 너무 낮입니다. 살금살금

자신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목덜미를 잡아 끄는 듯한 아내의 눈길이 올라 어렵겠습니다.

가던 길을 재촉해야겠습니다

 

자신만의 길을 모색한 스피츠벡의 재치가 돋보이는 것은 그의 작품 크기입니다. 나중에 그의 작품은 중류층

가정에서 매우 인기가 좋았는데 주제도 유쾌했지만 중류층 집안에서 걸어 놓을 만한 작은 크기의 작품 크기도

한 몫 했습니다. 소위 비즈니스 마인드도 충만했던 것 같습니다.

 

 

 

 

속에서 기도하는 시골 소녀

Betendes Bauernmädchen in Walde / 19cm x 26cm / c.1850~1860

 

산 길을 걷다가 만난 기도처 앞에서 어린 소녀가 기도를 올립니다. 모자도 벗고 붉은 양산도 의자에 기대

놓은 걸 보니 기도가 제법 길고 진지한 것 같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하는 기도는 머리 속에 떠 오르는

대상이 있어 속으로 울려 퍼지지만 눈을 들어 하는 기도는 그 간절함이 하늘로 오릅니다. 아직 천사의 날개를

달아도 될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무슨 간절함이 있을까요? 하느님은 여인의 눈물을 세신다고 하셨으니까

어린 아이의 간절함도 아마 충분히 헤아리고 계시겠지요.

 

스피츠벡은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얻은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지만 작품의 주요 무대는 소박한 시골

이었습니다. 1840년대부터는 그의 작품에 유머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머를 사랑하는 독일 사람들의

일상과 좋았던 옛날 시절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었고 이런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세레나데    The Serenade / 48cm x 27cm / 1854

 

달빛이 교교한 밤, 담 너머에서 사다리 하나가 걸쳐지더니 한 남자가 등장했습니다. 아주 어정쩡하고 불안한

자세로 사다리 끝에 선 남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어 달라는 남자의

애끓는 선율이 흐르지만 남자의 시선이 닿은 곳, 아직 방에 불이 켜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배짱으로 저렇게

할까 궁금했는데 남자의 바지 뒤 호주머니에 담긴 붉은 색 수건을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낮에 여인이 던져

준 것일까요? 여인의 마음은 아기와 같아서 종잡을 수 없다는 걸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너는 잠도 없냐? 그만하고 잠 좀 자자!

건너편 집에 불이 켜지면서 터져 나오는 소리입니다.

 

독학을 하는 동안 그는 플랑드르파 대가들과 바르비종파의 작품들을 모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영향을

받았는데, 1847년 런던을 여행하면서 보게 된 존 컨스터블과 윌리엄 터너의 작품에 매혹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부드럽고 유머스럽지만 빛의 효과와 구성, 뛰어난 세부묘사 같은 스피츠벡만의

독특한 사실주의 기법이 완성된 것이죠.

 

 

 

 

 

피리 콘서트  pipe concert / 37.5cm x 30cm / c.1860

 

피리 연주가 시작되자 여인은 손을 모으고 읽던 책을 잠시 옆으로 밀어 놓고 눈을 감았습니다. 피리 소리는

바람을 타고 고요한 숲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분위기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여인이 음악에

심취해서 눈을 감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남자를 보니 혹시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곡이 진행 될수록 주독이 오른 남자의 코는 더욱 빨갛게 되었겠지요. 루돌프 코 같은 남자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터질까 봐 눈을 감은 것은 아닐까요? 저라면 심각한 얼굴의 남자 얼굴을 보다가 아마 땅을

굴렀을 것입니다. 신사 양반, 술 조금만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1860년 대 스피츠벡은 어느 정도 화가로서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기 저기로부터

명예스러운 자리가 주어졌습니다.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는 비주얼 아트 아카데미 (Academy of Visual

Arts)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된 경우이죠.

 

 

 

구걸하는 연주   The Begging Musicians / 41cm x 12.9cm / 1860~1865

 

멋진 곡을 끝내고 모자를 벗은 거리 연주가가 사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려다 보는 여인은 그다지 연주가

마음에 들리 않았던 모양인지 창문을 닫으려 하고 있습니다.

연주를 들었으면 사례를 좀 하셔야죠?

그것도 연주라고 한 거요? 우리 집 고양이가 해도 댁보다는 잘하겠네.

지금 뭐라고 했어요? 고양이가 어떻다구 --- 당신 말 다했어?

연주가와 여인 사이에는 건물 높이만큼의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는 것이 다 그렇지요. 연주가 선생님, 저를 위해 한 번만 연주해주시죠. 제가 사례하겠습니다.

오늘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네요.

 

높은 곳에서 사는 것을 좋아해 뮌헨의 아파트 꼭대기 층으로 이사를 간 후 전망 끝내주는군. 더 바랄

것이 없는 곳이야라고 했던 스피츠벡이었습니다. 성실했고 스스로 유머가 많은 그는 77세를 일기로

뮌헨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그림이 늘 심각하면 그 것도 답답한 노릇이죠. 스피츠벡이 묘사한 그림 속

괴짜들 때문에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스피츠벡 선생님!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화가 진상용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